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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02

샌프란시스코의 밤하늘은 더 이상 어둠에 잠겨있지 않았다.

대신 형형색색의 지렁이 외신이 마치 살아있는 무지개처럼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그 광경은 끔찍하면서도 존재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보는 것 같았다.

도시의 불빛들과 지렁이 외신들의 꿈틀거리는 본체, 그리고 푸른 사신들의 환영이 뒤섞여 하늘은 혼돈으로 가득 차 버렸다.

나는 고층 빌딩 꼭대기에 서서 이 모든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내 긴 머리카락이 망토처럼 펄럭였고, 허그 사신은 내 어깨 위에서 작은 손으로 내 목을 꼭 껴안았다.

‘허그!’

도시는 이제 텅 비어 있었다.

거리를 가득 메웠던 사람들은 이제 없었다.

지렁이의 모습이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보이기 시작한 순간, 순식간에 유령 도시처럼 변해버렸다.

‘이제 마음껏 싸워도 괜찮겠네.’

‘허그!’

내가 흘리는 작은 의지에 허그 사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눈을 돌리자, 거대 검은 사신의 모습이 보였다.

거대한 건물들 사이를 뚜방뚜방 돌아다니며, 지상에 내려온 지렁이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조금 신기하네.’

옛 신 형상의 검은 사신과 미니 사신 형상의 검은 사신이 하는 짓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하는 짓은 똑같은데, 느낌은 180도 달랐다.

옛 신이 샌프란시스코를 부수고 있을 때는 인류 문명을 파괴하는 괴수물의 한 장면 같았다면, 검은 사신이 돌아다니는 모습은 왠지 뚜방뚜방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검은 사신 혼자서는 지상에 떨어진 지렁이 제거 작업을 제시간에 할 수 없었다.

제거하는 속도보다 하늘에서 지렁이가 떨어지는 속도가 더 빨랐으니까.

거대 황금 사신을 불러서 이 작업을 돕게 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힘들겠지.

허그 사신은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융합으로 거대 미니 사신을 만들 때마다 상당한 소모가 있는 걸로 보였다.

색깔도 조금 칙칙해진 것 같고, 몸 내부에서 타오르는 장작의 양도 꽤 줄어든 상태였다.

‘아무래도 융합 거대 사신을 여럿 동시에 운영하기는 좀 힘들어 보이네.’

나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하늘의 지렁이들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의 지렁이들이 점점 더 낮게 내려오고 있었다.

평범하게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뭔가의 규칙을 안고서 천천히 하강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지렁이가 지상에 닿는 순간 엄청난 일이 벌어지겠지.

도시가 지렁이투성이가 되어버리는 정도가 아니라, 외신 규모의 대사건!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준비됐어?’

나는 허그 사신에게 물었다.

작은 고개가 끄덕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눈을 꼭 감았다가 천천히 열었다.

발끝에 힘을 주어 앞으로 한 발짝 내디뎠다.

‘와라. 최강의 미니 사신!’

그리고 내 아이 중에서 가장 격이 높은 두 아이를 불러내었다.

히히.

***

나는 자동사냥의 꿈과 희망을 안고, 주황 왕관 사신과 황금 사신 제1 검을 불러들였다.

제1 검은 나타나자마자 침착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날카로운 눈빛에서 제1 검다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반면 왕관 사신은 자다가 불려 온 듯했다.

졸린 표정으로 작게 하품을 한 왕관 사신은, 순식간에 자신의 풍성한 머리카락을 베개 삼아 바닥에 누워버렸다.

성격이 명확히 드러나는 둘을 바라보며, 헤일로를 쓴 허그 사신에게 명령했다.

‘저 둘을 융합해 줘.’

‘허그!’

허그 사신의 눈이 반짝이고, 작은 팔을 크게 벌리며 의지를 내뱉었다.

그리고 제1 검과 왕관 사신이 찬란한 빛에 삼켜지더니, 커다란 구슬로 변했다.

내 머리통보다 큰 커다란 구슬.

‘어떤 융합 사신이 나올까?’

마치 예전에 뽑기 게임을 할 때처럼 두근두근한 기분이었다.

펑!

시간이 지나자, 구슬이 깨지며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이 사그라들자 그 자리에 어리둥절한 표정의 제1 검과 왕관 사신이 서 있었다.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허그 사신을 돌아보자, 허그 사신은 나를 올려다보며 의지를 뿜어냈다.

‘허그!’

지금 실력으로는 융합할 수 없다는 의지를 뱉는 허그 사신.

아예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여러 색의 미니 사신을 섞기에는 허그 사신의 힘이 부족한 것 같았다.

격 문제가 아니라 색 문제라니, 다행이었다.

음….

나는 자동사냥을 위한 새로운 조합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으음….

나는 아침에 먹을 푸딩을 고르는 만큼 심사숙고했다.

황금 사신 중에 합칠만한 녀석이 누가 있을까?

제2 검 같은 녀석들?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아.

황금 사신 잔뜩 모아서 합치기? 푸른 사신처럼 그저 큰 황금 사신이 될 확률이 높았다.

황금 뿔 사신? 초창기부터 집을 나간 불량 사신이라 그런지, 아예 연락이 안 됐다.

그때 번뜩 하나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망토를 매고 있던 장작 돼지 황금 사신!

그저 장작이 많을 뿐이지만, 격이 이상하게 높고 제1 검의 단점인 장작량을 보완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진 황금 사신이었다.

나는 즉시 황금 망토 사신을 불러냈다.

‘?’

황금 망토 사신은 막대한 장작을 바탕으로 허공에 둥둥 뜬 채,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나는 예상보다 몇 배는 강해 보이는 황금 망토 사신을 보며 미소 지었다.

‘이번에는 되겠지? 저 둘을 융합해 줘!’

‘허그!’

허그 사신의 힘찬 의지와 함께, 제1 검과 황금 망토 사신이 황금색 구슬로 변했다.

나는 다시 한번 두근두근한 마음을 품고, 결과를 기다렸다.

구슬이 부서지고, 그 속에서 새로운 모습의 사신이 나타났다.

이전보다 조금 더 성숙한 것 같은 황금 사신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존재감이 주변의 공기를 진동시켰다.

나는 놀란 눈으로 융합 사신을 바라보았다.

이 황금 망토 사신 제1 검은 나보다는 적지만, 거의 필적할 정도의 장작을 품고 있었다.

나는 자동사냥의 꿈을 이루어 줄 만큼 강해 보이는 융합 사신을 보며, 의지를 보냈다.

‘자, 가서 지렁이를 썰어버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융합 사신은 빠른 속도로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 궤적은 언젠가 본 것 같은 황금빛 유성처럼 보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황금색 검격이 하늘을 가득 채워버렸다.

단 한 번의 휘두름만으로 밤하늘을 마치 낮처럼 황금색으로 밝혀버린 것이다.

***

샌프란시스코의 하늘과 땅에 황금빛 불길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야말로 ‘지치지 않는, 장작을 아끼지 않는, 제1 검의 모습이 이런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듯한 장면이었다.

그야말로 자연재해.

그 정도로 한 번에 황금 망토 사신급 출력을 낼 수 있는 제1 검은 정말 강했다.

땅에 있는 지렁이들은 모두 불타서 사라진 지 오래라 그런지, 거대 검은 사신은 할 일이 없어져서 나를 품에 안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검은 사신 손아귀 속에서 커다란 원본 아귀 위에 누워,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나는 마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처럼 팝콘 봉지를 안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히히.

외신 자동사냥이 정말 코앞이네.

아직은 내가 근처에서 장작을 전해줘야 했지만, 자동사냥의 완성이 코앞에 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늘을 뒤덮고 있던 형형색색의 지렁이들이 융합 사신의 공격을 받아 점점 색이 변해갔다.

깎여나가고 장작에 타들어 가면서, 그들의 색채는 점점 더 어두워져 갔다.

마침내 그들은 공허와도 같은 검고 뒤엉킨 색으로 변했다.

이제야 지렁이에게서 느껴지는 꺼림칙함과 어울리는 색이 된 것 같았다.

끼이이이!

그렇게 모든 지렁이가 검게 타버리자, 기묘한 소리와 함께 갑자기 하늘이 쩍 하고 거대한 입을 벌렸다.

그리고 그 틈새로, 지렁이가 나선 형태로 비비 꼬인 거대한 촉수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꽂혔다.

드르르르륵!

마치 거대한 드릴이 지구를 파헤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지렁이는 지구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 과정에서 지면과 하늘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주변의 중력과 빛이 이리저리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융합 사신은 지렁이 외신의 제2 페이즈에 맞서 필사적으로 사방에 검격을 날렸지만, 외신의 뒤틀린 규칙을 베어낼 정도로 강력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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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야, 외신이 힘을 꽤 많이 썼는지 파괴 조건이 드러났으니까.

<똬리가 지면에 내려앉기 전에, 통로를 부순다.>

나는 ‘눈’으로 파괴 조건을 보고, 융합 사신에게 의지를 보냈다.

‘지하에 있는 구슬을 노려!’

융합 사신의 시선이 지면으로 향하자, 지렁이 외신은 마치 깜짝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

지면을 파고든 기둥처럼 두꺼운 나선의 촉수가 모두 모여, 구슬이 있는 곳을 둥글게 둘러싸 구체를 이뤘다.

이제까지의 검격으로는 뚫을 수 없는 구체였다.

‘슬슬 내가 직접 나서야겠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하늘 위에서 찬란한 황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장작을 검에 담는다.’

‘계속, 계속 한계가 올 때까지 계속 모은다.’

융합 사신이 장작의 검을 하늘로 치켜세우고 있었다.

자기 몸의 빛이 흐릿해질 정도로 억지로 장작을 몰아넣은 모습.

그것은 나에게 알려줬었던 망토 사신의 시그니쳐 기술이었다.

그리고 황금색 무형검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흔들리는 순간, 아주 느릿한 참격이 하늘을 갈랐다.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지만, 너무 느려서 실용성이 없어 보이는 검격.

‘공허 베기!’

쩡!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무언가가 잘리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 내 시야가 반으로 깨진 유리처럼 똑 부러졌다.

‘!’

깜짝 놀라 의자에서 벌떡 일어선 순간, 잘린 공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결과는 명확했다.

지렁이가 만들어 낸 구체가 반으로 쪼개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있던 구슬도.

‘…. 진짜 되네. 자동사냥.’

파괴 조건이 충족된 지렁이 외신이 먼지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검게 타버린 지렁이들이 사라지는 하늘 너머로, 찬란한 황금빛 태양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황금 사신을 닮은 아침이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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