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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03

북극의 혹한을 뚫고 서 있는 연구 차량 안, 제임스는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 모니터에는 제임스 연구소 소속 드론 수십 대가 포착한 영상들이 실시간으로 스트리밍되는 중이었다.

화면에는 오브젝트에 잠식되어 버린 샌프란시스코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황금색 불꽃이 하늘과 지상을 태우는 샌프란시스코.

그런 샌프란시스코 한가운데, 건물만큼이나 거대한 지렁이 구체가 단번에 반으로 쪼개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하늘을 뒤덮었던, 검게 탄 지렁이들의 잔해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보이기 시작하는 푸른 하늘과 황금색 태양.

아침 햇살이 텅 빈 도시를 비추자, 그제서야 도시의 전경이 제대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부서진 건물들.

끊어진 금문교.

망가진 도로와 자동차들.

“후우.”

긴 한숨이 제임스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피해가 적어 보여서 나오는 안도의 한숨이었다.

“회색 사신이 TV를 보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서부지역 포기까지 생각했었는데, 정말… 정말 다행이군.”

그의 말에, 뒤에 서 있던 신입 연구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에서도 안도감이 묻어났다.

“네, 사장님. 정말 다행입니다. 다만 재건 작업이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게다가 알렉산더 그룹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겠지.”

그렇게 말한 제임스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그의 시선이 모니터 탁자 위에 놓인 투명한 유리컵에 멈췄다.

투명한 물이 담긴 컵 안에 황금 사신이 퐁당 빠져있었다.

조금 지루한 표정으로, 컵 속에서 수영하는 것처럼 팔다리를 휘적거리던 황금 사신은 제임스와 눈이 마주치자 히히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제임스는 작게 웃더니, 탁자 위에 놓인 플라스틱 뚜껑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플라스틱 뚜껑을 컵 위에 덮어버렸다.

‘앗!’

황금 사신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임스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당황한 듯, 컵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곧 플라스틱 뚜껑을 향해 힘차게 헤엄쳐 올라갔다.

그리고 작은 손으로 필사적으로 뚜껑을 밀어보았지만, 제임스의 굳건한 손바닥이 뚜껑을 꾹 누르고 있어 열리지 않았다.

‘앙대!’

황금 사신의 표정이 점점 당혹스러워졌다.

‘갇혔어!’

이내 탈출하는 것을 포기한 황금 사신은 어린아이가 연극 놀이를 하듯, 과장된 표정과 행동을 했다.

마치 ‘끄앙!’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시체처럼 물속을 둥실둥실 떠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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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끔 눈을 작게 뜨고, 제임스를 힐끗거렸다.

그렇게 제임스와 황금 사신이 놀고 있을 때, 신입 연구원이 작은 목소리로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사장님. 회색 사신이 TV를 보지 않았을 때, 왜 별다른 대처를 하지 않은 거죠? 정보 노출을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이 있었을 텐데요…?”

“아니, 그러면 별로 좋지 않아. 우리는 어디까지나 자연스럽게 정보를 노출하는 수준의 행동만을 해야 해.”

제임스는 컵에서 시선을 떼고는 한 낡은 보고서를 꺼내서 연구원에게 넘겨주었다.

그 보고서 표지에는 <회색 사신 행동 패턴 보고서>라고 쓰여있었다.

“자네, 이 보고서를 읽지 않았군? 그 어떤 경우에도 직접 회색 사신에게 브리핑하거나, 억지스러운 방법으로 정보를 제공해선 안 돼.”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우리 인류는 ‘새로운 신’인, 회색 사신의 변덕 때문에 생존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띠디디디.

그 순간, 제임스의 비상용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뭐?”

비상 연락망을 통해 전달된 소식은 충격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알렉산더 그룹 상층부, 전원 사망.]

[시간 왜곡을 일으키는 거대한 나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나타남.]

그렇게 관련 소식에 대한 보고를 듣고, 지시를 내리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제임스가 한시름 놓고 고개를 돌렸더니, 컵 속에 있던 황금 사신이 제임스를 기다리다 지쳐서 잠들어 있었다.

제임스는 잠든 황금 사신을 물속에서 꺼내 수건으로 잘 닦아주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잘 자’라고 말한 뒤, 황금 사신 전용 침대 위에 눕혀주었다.

딸깍.

연구 차량 내부의 불빛이 꺼지고, 안락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

지렁이 외신 사태가 끝나고, 샌프란시스코의 아침이 밝아왔다.

따스한 햇살이 부서진 금문교와 무너진 건물들 위로 부드럽게 내리쬐었다.

황금빛 아침 하늘은 마치 어제의 혼돈이 거짓말이었다는 듯 평화로웠다.

하지만 도시의 모습은 그 평화로움과는 대조적이었다.

부서진 유리창들, 뒤틀린 철골 구조물들, 그리고 여기저기 널브러진 잔해들이 지난밤의 격전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었다.

나는 거대 검은 사신의 손바닥 위에 서서 이 모든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어느새 둘로 분해된 제1 검과 망토 사신이 내 곁으로 달려들었다.

진화한 황금 사신들은 좀처럼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아이들의 얼굴에서 피로함과 동시에 승리의 기쁨이 느껴졌다.

‘잘했어.’

나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아이들을 품 안에 넣고 쓰다듬어 주었다.

제1 검과 망토 사신은 눈을 감고, 품속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허그!’

그 순간 익숙한 의지가 들려오더니, 허그 사신이 어깨 위에서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마치 자기도 칭찬해달라는 것처럼.

‘그래, 그래. 너도 잘했어.’

나는 허그 사신도 같이 안아주며 말했다.

사실 지렁이 외신이 다른 외신보다 약했던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거의 미니 사신들만의 힘으로 외신을 처리했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물론 아직 완벽하진 않았다.

내가 근처에서 장작을 불어넣어야 했고, 파괴 조건을 확인해 줘야 했으니까.

하지만 이 정도면 거의 자동 사냥에 근접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 장작을 원격으로 전송할 수 있는 황금 뿔 사신까지 합쳐지면!

히히.

그러면 현재 갖출 수 있는 최선의 자동 사냥이 가능해질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파괴 조건을 보는 ‘눈’.

미니 사신으로는 절대로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눈’을 대체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제1 검이 검은 거인처럼 파괴 조건을 무시할 정도의 격을 쌓기 전까지는 이 정도에서 만족해야겠지.

평화로운 순간도 잠시, 갑자기 하늘을 가르는 소음이 고요를 깨뜨렸다.

부우웅.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수많은 드론이 마치 기계 벌 떼처럼 도시 상공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의 카메라 렌즈가 반짝이며 아래의 광경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는 방송국 차들과 헬기들이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중이었다.

위기 상황이 해결되었으니,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도시를 덮친 재앙이 사라지자, 인간들의 호기심과 뉴스에 대한 갈증이 그들을 이곳으로 이끌었다.

‘슬슬, 돌아가야겠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주변의 사신들을 둘러보았다.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허그 사신.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는 황금 사신 제1 검과 황금 망토 사신.

행복한 표정으로 세상모르고 잠든 주황 왕관 사신.

나를 내려다보는 거대 검은 사신.

나는 주황 왕관 사신의 머리를 통통 두들겨서 깨웠다.

‘자, 이제 돌아가자.’

내 의지가 세상에 닿자, 허공에 미니 사신 정원으로 향하는 통로가 열렸다.

나는 천천히, 마치 산책의 마지막을 즐기듯 뚜방뚜방 걸어서 그 통로로 향했다.

내 뒤를 황금 사신 제1 검과 황금 망토 사신이 묵묵히 따라왔다.

허그 사신은 여전히 들뜬 모습으로 내 주위를 맴돌며 따라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주황 왕관 사신이 여전히 졸린 표정으로 둥실둥실 정원으로 날아들었다.

문득 시선을 돌려 뒤를 돌아보니, 주황 왕관 사신이 허그 사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가에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것은 마치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듯한, 호기심 가득한 미소였다.

***

송파구 외곽에 있는 제임스 타워.

그 내부의 한 숙소에서 은빛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가 잠에서 깨어났다.

“또 그 꿈이야….”

소녀는 중얼거렸다.

은빛 소녀는 꿈을 꾸었다.

시설에서 봤던 꿈처럼, 계속해서 똑같은 꿈을 꾸었다.

다만 다른 점은 이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녀가 꾼 꿈은 마치 오브젝트 간의 전쟁을 다룬 괴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대지 위로 검은 괴물들이 우글거렸고, 하늘은 거대한 나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전황은 지상의 괴물들에게 불리해 보였다.

길쭉한 손과 날카로운 이빨만을 다루는 검은 괴물들.

하지만 거대 나비들은 날아다니는 데다가, 시간을 뒤틀어 버리곤 했으니까.

검은 괴물들이 자기들끼리 합체해서 커다랗게 변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진작에 검은 괴물들이 패배해 버렸겠지.

은빛 소녀는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반복되는 꿈으로 인해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 탓에, 그녀의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했다.

“흐아암….”

그녀는 크게 하품하며 침실 문을 열었다.

공용 거실에서는 이미 갈색 머리의 소녀가 TV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은빛 소녀를 발견하자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도 늦잠이네. 아직도 그 꿈을 꿔?”

“응.”

은빛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샤워하고 올게.”

그녀는 졸린 목소리로 말하며 욕실로 향하려 했다.

그 순간, TV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

은빛 소녀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TV 화면 속 괴물은 그녀의 꿈에서 본 것과 똑같았다.

검은 피부, 길쭉한 양팔, 그리고 마치 대지에 뿌리를 내린 듯한 다리.

꿈속에서 본 것과 똑같은 괴물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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