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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04

회색 사신이 떠나간 샌프란시스코는 밤중의 소란이 거짓말인 것처럼, 평온한 아침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무너진 건물들이 만드는 그림자들 사이로, 황금색 햇빛이 스며들었다.

기자를 감싸고 있던 거대한 검은 사신의 몸체가 서서히 형체를 잃어갔다.

마치 거대한 퍼즐이 해체되는 것처럼, 그 거대한 몸은 조각조각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퍼즐들은 수많은 검은 사신으로 분해되어 지면 위로 쏟아졌다.

그러자 기자는 어느새 검은 사신의 껍질을 벗고 인간으로 돌아와, 폐허가 된 도시의 잔해 사이에 서 있었다.

그 잔해 사이에서 기자를 빤히 올려다보는 검은 사신들.

기자는 그녀를 둘러싼 검은 사신들을 바라보며, 한 가지 당연한 사실을 직감했다.

‘떠나려고 하는구나.’

검은 사신들의 눈빛에서 그런 사실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한참 동안 기자를 올려다보던 검은 사신들 무리에서 검은 사신 하나가 아쉬운 표정으로 빠져나왔다.

토도도.

그리고 작은 소동물의 발소리를 내며 달려와, 기자의 품을 향해 점프했다.

검은 사신은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것처럼 자기 얼굴을 기자의 뺨에 비비적거렸다.

검은 사신은 폴짝 뛰어 바닥에 내려선 후, 뚜방뚜방 회색 사신이 통과한 통로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잘 있어!’

통로를 넘어가기 직전, 검은 사신은 고개를 돌려 기자를 올려다보며 손을 흔들었다.

“잘 가!”

기자는 조금 슬펐지만, 웃는 얼굴로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뚜방뚜방.

기자는 검은 사신이 통로를 넘어가는 모습을 살짝 아쉬운 마음을 품은 채 지켜보았다.

그것이 시작이었을까.

그때 갑자기 주변의 모든 검은 사신들이 일제히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마치 영역 표시를 하듯, 검은 사신들은 차례로 자기 뺨을 기자에게 비볐다.

‘잘 있어!’

‘건강해야 해!’

‘가끔 놀러 올게!’

‘히히.’

그리고 차례차례, 통로를 넘어가 버렸다.

아쉬워 보였지만, 검은 사신들은 재회를 확신하는 것처럼 즐거운 기색이 담긴 작별 인사를 건네주었다.

“가버렸네.”

그렇게나 많던 검은 사신이 사라져 버리자, 주변이 허전해진 기분이었다.

삐-!

그 순간, 청량한 소리가 그녀의 어깨 위에서 울려 퍼졌다.

‘괜찮아!’

‘우리가 있어.’

기자의 몸속에서 검은 사신들이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그녀의 심장과 같은 손상된 주요 부위를 대체하고 있는 검은 사신들이었다.

“그래, 너희들이 있었지.”

기자는 그런 검은 사신들을 품 안에 그러모았다.

처음 매립지에서 눈을 떴을 때부터, 같이 했던 검은 사신들.

총에 맞아 죽었어야 했던 그녀를 살려준 생명의 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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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검은 사신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작게 웃었다.

검은 사신들은 기자의 손길을 즐기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기자는 한숨을 내쉬며, 평평한 시멘트 위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이제 뭐 먹고 살아야 할까? 직장은 건물째로 무너져 버렸고, 도시는 완전 난장판이 돼버렸어.”

검은 사신들은 기자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괜찮아!’

‘우리가 있어!’

기자는 그 속삭임을 듣고는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작게 웃으며 동의했다.

“그건…, 확실히 그러네. 너희들이 있는데, 뭔들 못 하겠어?”

기자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번 사건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단순한 비리 취재였는데, 어느새 기자의 손을 떠나버린 사건이었다.

‘정말, 인간은 감당하기 힘든 규모의 일이었어.’

기자는 고개를 돌려 검은 사신을 바라보았다.

검은 사신들은 꾸물꾸물 움직이며, 기자랑 똑같은 자세를 취하려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롭고 귀엽다고만 생각하는 검은 사신은 세상이 모르는 비밀을 품고 있었지.’

검은 사신이 보여준 꿈은 도저히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이 아이들은 도대체 무슨 일을 겪고, 우리 앞에 오게 된 걸까?

그래서 그런지, 검은 사신들이 가끔 보여주는 행동들은 슬픔이 묻어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언젠가 검은 사신들의 과거를 알아낼 수 있으면 좋겠네….’

기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멀리서 프로펠러 소리와 차량 엔진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상황을 조사하기 위한 오브젝트 협회와 방송국 소속의 차량과 헬기 소리였다.

‘어느새,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버렸어. 아무래도 사람들의 눈에 띄면 굉장히 귀찮아지겠지.’

기자는 그림자 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가자!”

그러자 검은 사신들은 기자의 몸을 뒤덮어 검은 사신 형상으로 바뀌어버렸다.

인간 크기의 검은 사신이 된 기자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사건 현장을 벗어났다.

그렇게 검은 사신과 붉은 머리카락 기자의 모험이 끝나고, 일상이 시작되었다.

***

미니 사신 정원, 황금 사신 대회의장.

나는 황금 사신들의 슬픈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대회의장에 놀러 온 상태였다.

검은 사신들이 대거 늘어났으니, 황금 사신의 슬픔도 늘어났겠지.

히히.

황금 사신들은 숫자는 제일 많았지만, 놀기 바빠서 그런지 대회의 참석 비율이 굉장히 낮은 반면.

검은 사신들은 이상하게 대회의 참석 비율이 엄청나게 높았다.

검은 사신들의 성격이 황금 사신들과 유사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신기한 일이었다.

검은 사신은 조금 얌전해진 황금 사신이었으니까.

하지만 황금 사신 대회의는 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황금 사신 대회의 간식은 세희 연구소 말랑 쿠키로 선정되었습니다!]

단상 위에 올라가, 투표 결과를 발표하는 푸른 아이돌 사신의 염파가 들려왔다.

‘이럴 수가….’

황금 사신이 좋아하는 말랑 쿠키가 선정되어 버리다니.

‘만세!’

‘히히.’

황금 사신들은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쿠키를 야금야금 뜯어 먹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검은 사신 숫자가 약간 줄었네?’

검은 사신들이 미니 사신 정원에 잔뜩 추가되었는데, 숫자가 줄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역시 황금 사신들이 투표에서 이기기 위해서 검은 사신 몇몇을 담가버린 건가?

검은 사신의 숫자를 천천히 눈대중으로 세보는 도중, 쿠키를 먹고 있는 황금 사신과 눈이 마주쳤다.

커다란 쿠키를 거의 다 먹어 치운 황금 사신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황금 사신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조그마한 쿠키 덩어리를 반으로 쪼갰다.

그리고 한 덩어리는 자기 입에 넣고, 나머지 한 덩어리는 나에게 내밀었다.

‘엄마도 먹어!’

즐거운 감정이 가득 담긴 황금 사신의 의지가 들려왔다.

딱딱한 쿠키를 먹을 때는 나눠주지 않던데, 말랑 쿠키를 먹으니 나눠주네.

‘곳간에서 인심 난다’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자기가 싫어하는 걸 나눠주지 않겠다는 걸까?

뭐, 나라면 맛없든 맛있든 안 줬겠지만.

‘내가 먹기엔 너무 작아.’

나는 그렇게 의지를 전하며, 밥알만 한 조각을 들이미는 황금 사신의 머리카락을 앞으로 묶어서 눈을 가려버렸다.

‘으앙!’

황금 사신은 앞이 공간 장악으로 붙잡힌 머리카락을 풀어내려고 버둥거렸다.

‘아무래도 검은 사신들을 찾아봐야겠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검은 사신들을 찾아 미니 사신 정원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뚜방뚜방 돌아다닌 지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마시멜로 평원 구석에서 검은 사신들이 잔뜩 모여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미니 사신 정원의 모든 검은 사신이 모여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잔뜩!

‘앗!’

‘앙대!’

검은 사신들끼리 격투 시합을 벌이고 있었는데, 같은 검은 사신인데도 일방적인 구도가 자주 나왔다.

‘검은 사신들은 전부 비슷한 수준의 격투 실력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검은 사신들의 격투 실력은 마치 오랜 시간 서로 합을 맞춰 훈련했던 것 같은 느낌을 풍겼었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 추가된 검은 사신들의 격투 실력이 월등해 보였다.

‘신기하네….’

나야 몸 쓰는 데 자신이 없으니 그냥 둘 다 잘 싸우는 것처럼 보였지만, 격투 결과는 매번 새로 추가된 검은 사신들의 승리!

‘으앙!’

그때 한 검은 사신이 튕겨 나와 데굴데굴 굴러, 내 앞에 쓰러져 버렸다.

나는 바닥에 대자로 누워있는 검은 사신의 뱃살을 간지럽히며 물었다.

‘왜 이렇게 실력 차가 나는 거야?’

검은 사신은 간지러운지, 내 손가락을 밀어내려고 하다가 밀어내는 것을 포기하고 슬라임처럼 녹아내려 버렸다.

슬라임이 된 검은 사신은 마치 장갑처럼 내 손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내 질문에 답을 보내왔다.

‘훨씬 오래 싸웠어!’

‘인류의 적과 싸웠어!’

그렇게 답한 검은 사신은 장갑 위로 노랗게 빛나는 눈을 반짝였다.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정리하면 간단한 이야기였다.

불변구에 있던 아이들은 싸울 일이 별로 없었던 내근직이었다는 뜻!

내근직인 검은 사신도 황금 사신보다 훨씬 잘 싸웠었는데, 검은 거인은 도대체 뭘 하며 지낸 거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저 멀리 미니 사신 정원 구석에서 보이는 불변구를 바라보았다.

***

시간의 틈새에 있는 연구소의 작은 방.

그곳에서 노란 탐정은 자기 머리를 감싸 안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망했군. 완전히 망했어.”

이제 완전히 초능력의 영역에 들어선 탐정의 직감은 그에게 강렬한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이제는 느낌에서 벗어나, 온갖 색으로 표현되는 득과 실, 위기와 돌파구.

탐정이 머무는 틈새 연구소는 어느새 위험을 뜻하는 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탐정은 이제 완전히 침묵해 버린 왓슨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왓슨을 막을 수 있을 같아서 여기까지 왔건만….”

그의 직감처럼 틈새 연구소에 도착하자, 왓슨 램프의 불이 꺼져버렸다.

하지만 최근 들어 왓슨의 중심에서 작은 불씨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이곳은 안전하지 않았다.

“….”

그때부터 탐정의 기괴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틈새 연구소 강당에서 장작으로 이루어진 번개가 천장을 향해 내뿜어졌다.

“회색 사신을 부르면서 힘을 쏘아 보내는 거야. 하늘을 향해 콰앙!”

‘엄마아아아아아!!!’

탐정이 황금 뿔 사신을 데려가더니 이상한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후배들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원래부터 기상천외한 짓을 많이 하던 탐정이라서 그런지, 그러려니 했다.

그 수상쩍은 훈련은 후배들도 피할 수 없었다.

후배 1호에게는 망치를 빠르고 정확하게 휘두르는 훈련을 시켰다.

그리고 싸울 줄 전혀 모르는 후배 3호에게 권총 사격을 가르치는 등, 마치 누군가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이 탐정은 다급해 보였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탐정은 그저 “램프의 주인이 오고 있어.”라고 말할 뿐이었다.

‘램프의 주인?’

전보다 한층 뿔이 길어져, 그 끝에 테니스공을 꽂아둔 후배 2호는 그런 탐정을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괜찮을까요?”

후배 2호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묻자, 옆에서 탐정의 기행을 같이 구경하던 사람이 답했다.

“저 남자는 저래 보여도 오브젝트의 영역에 닿아 있으니, 분명 의미가 있는 행동일 거야.”

답한 사람은 한때 중앙 연구소의 소장을 맡았던 남자였다.

그는 머리에 정신 오염 방지 헬멧이 씌워진 채, 탐정을 관찰하며 무언가를 노트에 열심히 적고 있었다.

‘괜찮아!’

그리고 걱정스러운 표정의 후배 2호의 뺨을 황금 뿔 사신이 토닥여 주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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