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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05

미니 사신 정원 깊숙한 곳.

푹신한 마시멜로 평원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 위로는 캐노피 하늘이 드리워진 미니 사신들의 낙원.

나는 그곳에 무선 TV 하나를 놓아두고 편안한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커다란 하얀 아귀 위에 몸을 던져 누워있던 나는, 손에 들린 젤리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아귀 사신이 자기 손가락을 잘라서 만든 젤리의 달콤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그리고 바로 앞에 놓인 무선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교수님, 샌프란시스코 사태 이후 꽤 시간이 흘렀는데요. 하늘을 뒤덮은 오브젝트를 시작으로, 금문교를 비롯한 수많은 건물이 파괴되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었죠.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이 사건에 대해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하던데, 어떤 내용인가요?]

[네, 맞습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이번 사태가 제임스 사에 의해 계획된 것이라는 음모론이 퍼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사태로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은 기업이 제임스 사의 라이벌로 알려진 ‘알렉산더 그룹’이라는 점이 이런 의혹에 더욱 무게를 실어주고 있죠.]

TV 화면 속에서 아나운서와 패널이 최근 발생한 샌프란시스코 사태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방송되는 모습에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미국에서 일어난 일인데도, 재깍재깍 방송되네….’

이제까지 한국 방송이 어땠는지 생각해 보면, 얼마나 변화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방송해 주지 않거나, 한 달은 지나서야 방송에 실렸겠지.

협회 인형 사건 이후 협회가 해체되면서, 그동안 철저히 차단되어 왔던 해외 오브젝트 관련 소식들이 물밀듯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 그렇군요.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의혹이 제기되고 있나요?]

[주로 미니 사신 도입을 둘러싼 두 기업의 견해 차이에서 의혹이 시작됐습니다. 알렉산더 그룹은 미니 사신 도입에 신중한 입장이었던 반면, 제임스 사는 매우 적극적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샌프란시스코 사태에서 갑자기 거대 검은 사신이 나타나서 몇몇 이들의 의심을 사고 있습니다.]

나는 들려온 TV 소리를 들으며, 협회 이후에 생긴 협의회에 대한 생각을 이어 나갔다.

‘의외로 오브젝트 협의회의 의장, 황금철이 일을 잘하는 건가?’

생긴 것만 보면 굉장히 탐욕스럽게 생겨서, 오무룡 그 이상의 지옥을 보여줄 것만 같았는데….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이 모든 변화가 반가웠다.

내 몇 안 되는 취미 생활이 뉴스를 보는 거였으니까.

해외 소식까지 자유롭게 접할 수 있게 되었으니, 뉴스거리가 수십 배나 늘어난 셈!

히히.

[최근 알렉산더 그룹의 고위 임원들이 모두 잔혹하게 터져 죽은 사실이 알려져, 사건에 영향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하지만 미국 여론은 여전히 미니 사신들에게 극히 우호적이라서 이번 사건이 제대로 수사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

[이상으로 샌프란시스코 사태 관련 최근 동향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저희는 다음 소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간이 흘러 아나운서의 종료 멘트와 함께 뉴스가 끝나자, 나는 슬슬 예린이를 보러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뚜방뚜방

폭신한 마시멜로 평원 위에 발을 디디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하얀 아귀와 아귀 사신은 나란히 서서 나를 배웅해 주었다.

뀨!

하얀 아귀의 ‘뀨!’ 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재미있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마치 장난기 많은 어린아이처럼, 나는 흥미진진한 아이디어에 사로잡혔다.

‘하얀 아귀와 아귀 사신을 융합하면 어떻게 될까?’

색으로 치자면 아귀 사신은 아귀 색이니까, 하얀 아귀와 융합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호기심이 폭발하듯 피어오르자, 나는 망설임 없이 행동에 옮겼다.

융합의 헤일로를 머리 위에 뒤집어쓰고, 순식간에 하얀 아귀와 아귀 사신을 합쳐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커다란 하얀 구슬이 생겨났고, 그것은 곧 깨어지기 시작했다.

긴장감과 기대감이 뒤섞인 채, 나는 숨을 죽이고 결과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구슬이 완전히 깨지자,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혼종이었다.

‘이… 이게 뭐야.’

나는 놀라움과 당혹감이 담긴 의지를 흘리며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깜짝 놀란 나는, 혼종이 눈을 뜨기 전에 순간이동으로 그 자리에서 도망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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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 사신 정원, 마시멜로 평원의 구석진 자리.

그곳에서 황금 망토 사신은 자기 주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난날의 기억을 더듬으며, 최강의 황금 사신인 제1 검과 융합했던 그 순간의 감각을 되살리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화륵.

작은 황금색 불꽃과 함께, 황금 망토 사신의 주먹에 한 줌의 장작이 깃들었다.

그리고 힘차게 주먹을 휘둘렀지만, 기대와는 달리 주먹은 그저 허공을 빠르게 가를 뿐이었다.

‘공간….’

분명 황금 망토 사신의 두 주먹에는 공간을 자르던 그 감각이 남아있건만, 아무리 반복해도 진전은 미미했다.

물론 원래 하던 것처럼 주먹에 장작을 잔뜩 불어넣으면 공간을 찢어버릴 수 있겠지만,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마아아….’

갑자기 들려온 의지에 황금 망토 사신은 고개를 돌렸다.

옆에는 어느새 탈색 사신이 서 있었다.

탈색 사신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황금 망토 사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황금 망토 사신의 입가에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

‘괜찮아.’

황금 망토 사신은 몸을 숙여 탈색 사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무리 막막해도 이정표만 있으면 나아갈 수 있어.’

황금 망토 사신이 전하는 의지에 탈색 사신의 눈빛이 조금 밝아졌다.

황금 망토 사신은 다시 자세를 잡고, 주먹에 장작을 담아 휘두르는 동작을 반복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끊임없이 계속.

원하던 경지에 닿을 때까지, 영원토록.

게다가 황금 망토 사신은 혼자가 아니었다.

‘마아!’

‘마아!’

그 옆에서 탈색 사신도 작은 주먹을 뻗어 황금 망토 사신의 동작을 따라 했다.

‘….’

그렇게 훈련을 거듭하던 중, 멀리서 갑자기 시끌벅적한 의지가 들려왔다.

‘축제!’

‘축제야!’

‘전쟁 축제!’

언제나 해맑은 황금 사신들의 의지였다.

‘?’

‘마아아?’

하지만 이번의 소란은 조금 생소했다.

황금 사신들은 주기적으로 검술 대회나 콜로세움, 그리고 술래잡기 등의 축제를 벌이곤 했다.

그런데 전쟁 축제라니?

황금 사신인 황금 망토 사신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축제였다.

‘마아!’

탈색 사신이 궁금해하자, 황금 망토 사신은 훈련을 멈췄다.

그리고 탈색 사신을 목말 태운 뒤, 천천히 ‘전쟁 축제’가 벌어지는 장소를 향해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

나는 예린이의 품에 안겨서 과자를 먹다가, 슬슬 혼종이 사라질 시간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미니 사신 정원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마시멜로 평원의 폭신한 바닥에 내려서자, 예상치 못한 광경이 나를 반겨주었다.

‘축제야!’

‘전쟁 축제!’

‘돌진!’

콜로세움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처럼, 굉장히 들뜬 것 같은 황금 사신들.

도대체 무슨 일이지?

나는 궁금증을 안고, 마시멜로 평원을 질주하는 황금 사신들의 뒤에 재빨리 따라붙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던 혼종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다시 봐도 그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3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크기.

하얀 젤리로 만들어진 커다란 두 개의 곡도.

주변을 날아다니는 하얀 불꽃 아귀 거품.

‘전쟁 축제’라는 것은 바로 이 혼종과 황금 사신들이 즐겁게 투닥투닥 싸우는 것을 일컫는 것이었다.

‘왜 아직도 안 사라진 거야???’

상당히 오래 유지된 샌프란시스코의 제1 검 융합 유지 시간의 몇 배나 되는 시간이 지났는데…!

혼종이 싸우는 모습을 보니, ‘그것’은 내 예상보다 10배는 강했고 지속 시간도 훨씬 길었다.

나는 내가 만들어 낸 끔찍한 혼종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양손으로 두 눈을 가려버렸다.

하지만 눈을 가려도 그 끔찍한 모습은 가려지지 않았다.

힝힝.

***

전쟁 축제가 한창인 시간, 서울숲.

하늘 위로 흐릿한 검은 행성이 보이는, 나무가 울창하게 자란 숲에서 수많은 황금 사신과 검은 사신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전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서울숲 인근은 여전히 공간 유실 현상이 자주 발생하고 했으니까.

경비를 서는 미니 사신들은 인간이 다가오면 ‘여긴 위험해!’라고 알려주는 것이 주 업무였다.

뚜방뚜방.

그런 서울 숲에서 한 검은 사신이 팔다리를 씩씩하게 흔들며, 서울숲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깊은 숲이라 그런지, 해가 빨리 저물어 드리운 어둑어둑한 그림자 속에서 희미한 의지가 들려왔다.

‘엄마를 위해서!’

처음 들어보는 의지였다.

‘? 누구?’

굉장히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의지.

미니 사신인 것은 분명했지만,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속삭임.

검은 사신은 머리 위에 물음표를 만든 채, 뚜방뚜방 그 의지가 퍼져나온 곳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엄마를 위해서!’

‘엄마아아!’

다가갈수록 분명하게 들리는 처절한 의지.

검은 사신은 그렇게 서울숲의 깊은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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