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글우글 몰려든 검은 사신들에 둘러싸인 채, 신참 검은 사신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끌려 갔다.
검은 사신들의 본거지로 향하는 길은 마치 축제의 행렬 같았다.
검은 사신들의 의지가 공기 중에 흩뿌려졌다.
‘동생이야!’
‘새로운 동생!’
흘러나오는 의지에는 기쁨과 흥분, 그리고 오랜 세월의 고독함이 녹아있었다.
새로운 검은 사신의 합류가 얼마나 드문 일인지, 열렬한 반응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본거지에 도착하자, 더 많은 검은 사신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신참에게 조심스레 다가와 길쭉한 팔로 살며시 안아주었다.
그 포옹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엄마, 이제 안 아파?’
‘정신 차린 거야?’
검은 사신들은 신참을 환영해 주면서도, 엄마에 대해 계속해서 물어보았다.
거기에 신참 검은 사신은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엄마 약해! 그리고 안 아파!’
엄마가 멀쩡하다는 소식에, 검은 사신들 사이에 안도의 감정이 흘렀다.
그리고 약간의 정적 후, 검은 사신들의 의지가 폭발하는 것처럼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엄마 이제 안 아파!’
‘약해? 무슨 뜻이야?’
‘엄마, 곧 오는 거야?’
‘동생 더 와?’
‘엄마 언제 와?’
‘엄마 곧 오는 거지?’
신참 검은 사신의 팔다리를 하나씩 붙잡고, 의지를 내뱉는 검은 사신들.
그것은 궁금증에 동생의 사지를 뜯어버릴 것 같은 기세였다.
그래서 신참은 몰려든 검은 사신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이제 우리 안 먹어!’
엄마에 대한 설명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신참 검은 사신이 놀랐던 것처럼, 차원의 틈의 검은 사신들도 굉장히 놀랐다.
‘말도 안 돼!’
‘그런 엄마가 있다니….’
그리고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장난을 치고, 과자를 뺏어 먹고, 귀찮으면 집어던지고, 가끔 과자를 주기도 하는, 회색 사신의 일상.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검은 사신들은 눈물을 뚝뚝 흘릴 기세로 감동하고 있었다.
‘너무 상냥해.’
‘달라붙어도 안 먹는 엄마….’
‘껴안아도 안 녹아내리는 엄마….’
‘아프지 않은 엄마….’
검은 사신들에게 엄마는 언제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아프고, 틈만 나면 검은 사신을 집어먹는 존재였으니까.
신참 검은 사신은 그 뒤를 이어서 미니 사신 정원에 대한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마시멜로 평원, 아귀 맛있어!’
말랑말랑한 마시멜로 정원, 맛있는 간식들이 뛰어노는 행복의 땅.
그리고 핫초코의 바다, 사탕 산맥, 우유 빙수 설원 등등.
그 모든 곳은 검은 사신은 먹어보지도 못한 과자들로 이루어진 낙원이었다.
‘맛있겠다….’
‘그런 곳이 있다니.’
‘신기해!’
그리고 검은 사신은 마지막으로 엄마가 올 수 있냐는 질문에 답했다.
이곳은 엄마를 부를 수 없는 정체불명의 장소.
‘모르겠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답하는 신참 검은 사신.
‘그래도 언제나 엄마는 왔어.’
‘필요한 순간에 꼭 왔으니까!’
‘엄마는 나타날 거야!’
하지만 뒤 이어서 환하게 웃으며 꼭 나타날 거라고, 확고한 믿음이 서린 의지로 외쳤다.
‘엄마….’
‘엄마 보고 싶다.’
그 모습을 보고, 차원의 틈의 검은 사신들은 다시 한번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그렇게 희망을 안고 검은 사신들이 흩어지자, 신참 검은 사신은 드디어 본거지를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안내는 한쪽 눈에 깊은 흉터가 있는 검은 사신이 맡았다.
신참은 흉터 사신을 처음 봤을 때, ‘아프지 않아?’라고 물어보며 장작으로 치료해 주려고 했다.
‘이 정도 상처에 장작은 쓸 수 없어. 장작은 아껴야 해.’
흉터 사신은 신참의 호의를 고마워하면서도 단호하게 거절했다.
‘….’
신참 사신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본거지는 마치 거대한 동굴과 같았다.
천장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았고, 벽면에는 수천 개의 작은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별처럼 빛나며 공간을 은은하게 밝혔다.
본거지의 별빛들은 모두, 흔적만 남아버린 검은 사신들의 흔적이었다.
너무 많이 다쳐서, 장작으로 몸을 고칠 수 없는 불쌍한 동료들.
그 숫자는 정말 밤하늘의 별만큼 많았다.
‘엄마가 필요해.’
본거지를 밝히는 빛을 보며 신참 사신이 의지를 흘리자, 흉터 사신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본거지 중앙에 다다르자, 신참 사신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곳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화로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크기는 마치 작은 산과도 같았다.
‘엄마가 남겨준 화로야.’
흉터 사신이 내뿜는 의지에는 자부심과 그리움이 섞여 있었다.
화로 중앙에는 하얀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 불꽃은 굉장히 거대했지만, 화로의 크기에 비하면 너무나도 보잘것없어 보였다.
검은 사신들은 그 거대한 화로에서 장작을 받고 있었다.
검은 사신이 장작을 흡수할 때마다 조금씩 줄어들었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확실히 줄어들었다.
텅 빈 화로와 남아있는 장작의 크기만 봐도, 검은 사신의 전쟁이 얼마나 오래 이어졌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이어진 전쟁에 생각이 닿자, 신참 사신은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슬퍼.’
신참 사신은 작은 의지로 속삭였다.
엄마를 만나지 못하고 저렇게 오랜 시간 외신과 싸웠다니.
만약 신참 사신도 그렇게 될 거라고 누군가 알려준다면, 듣자마자 펑펑 울어버릴 정도로 슬픈 일이었다.
신참 사신을 바라보는 흉터 사신도 어쩐지 조금 슬퍼 보였다.
본거지 안내가 끝나자, 흉터 사신은 신참 사신을 돌아보며 의지를 보내왔다.
그 의지에는 단호함과 결의가 가득했다.
‘이제, 훈련을 시작해야지. 신참!’
그렇게 시작된 훈련에, 신참 사신의 애처로운 의지가 울려 퍼졌다.
‘으앙!’
엄마 빨리 와….
신참 사신은 바닥에 널브러진 채, 엄마를 찾았다.
***
서울 인근, 황금 사신을 살포해둔 황금뿔 격리 구역.
나는 유령화를 한 채 격리 구역을 천천히 걸어 다니고 있었다.
왠지 산에 뿌린 인삼의 씨를 확인하러 가는 기분이었다.
‘신기하게 생긴 뿔이 많네.’
황금뿔 모양이 각양각색 하다는 건 배워서 알고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그 모양이 생각보다 다양해서 신기했다.
나는 거리를 걸으며 다양한 형태의 황금뿔을 가진 사람들을 살펴봤다.
어떤 이는 마치 탐정 부하처럼 이마에서 돋아난 뿔을 가졌고, 또 다른 이는 정수리에서 자라난 도깨비뿔을 자랑스럽게 내보이고 있었다.
양 뿔이나 소뿔처럼 동물의 뿔을 닮은 이들도 있었고, 자연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복잡한 도형 형태의 뿔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황금 사신 확인은 까맣게 잊은 채, 황금뿔 관광을 계속했다.
그러던 중, 시선을 빨아들일 정도로 크고 화려한 뿔을 가진 사람을 발견했다.
대칭으로 아름답게 사방으로 뻗어나간, 황금색으로 빛나는 사슴뿔!
‘저런 뿔이면 일상생활이 힘들 것 같은데, 자를 수도 없어서 난감하겠네.’
불편해서 옷도 안 입는 내 입장에서, 저런 불편한 뿔을 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아마 저 사람도 내심 자신의 뿔을 저주하면서 살고 있지 않을까?
그런 거대하고 아름다운 뿔의 매력 때문일까.
커다란 사슴뿔 위에는 황금 사신 하나가 매달려서 행복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인간!’
그 황금 사신에게는 조금 특이한 것이 있었다.
조그마한 나뭇가지를 잘라 자기 머리 양옆에 붙여둔 상태라는 점이었다.
마치 자기 애착 인간의 모습을 따라 하려는 것처럼.
‘아…!’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황금 사신들을 확인하러 왔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 나는 격리 구역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확인해 보니 격리 구역 곳곳에서 비슷한 광경이 잔뜩 펼쳐지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조종하는 능력을 이용해서, 각자의 애착 인간 뿔 모양을 따라 하는 황금 사신들.
그리고 그런 황금 사신들을 보며 행복한 표정으로 웃는 애착 인간들.
성공적으로 정착한 황금 사신들을 보며, 나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황금 뿔 사신이 우글우글 튀어나오겠지?’
진정한 자동사냥의 완성이 코앞이었다.
황금 사신들은 자신과 닮은 향기가 나는 사람들이 마음에 드는지, 이 격리 구역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았다.
사실 이런 곳이 황금 사신의 사각지대였다는 사실이 조금 의외였다.
외국처럼 구름 고기를 타고 가야 할 만큼 멀지도 않아서, 구름 고기를 탄 미니 사신들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었다.
게다가 서울 인근이라고는 하지만, 이곳은 황금 사신의 걸음으로 오기에는 살짝 멀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이곳은 ‘황금 사신의 사각지대’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 지역은 황금 사신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나는 황금뿔 사신 대군단의 미래를 꿈꾸며 작게 웃었다.
히히.
***
회색 사신이 자리를 비운 미니 사신 정원 깊숙한 곳, 마시멜로 평원.
뚜방뚜방.
한 황금 사신이 빙수 설원을 가기 위해서, 마시멜로 평원을 혼자서 씩씩한 발걸음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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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다.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난 반투명한 칼날이 황금 사신의 심장 부근을 관통했다.
‘앗!’
황금 사신에게서 깜짝 놀란 의지가 흘러나왔다.
황금 사신의 눈이 크게 떠졌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자기 가슴 근처를 내려다보았다.
반투명한 칼날은 마치 처음부터 황금 사신 몸에 박혀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박혀 있었다.
그리고 스르륵 소리와 함께, 황금 사신의 몸이 힘없이 쓰러졌다.
그렇게 황금 사신은 마시멜로 평원 한복판에 홀로 쓸쓸하게 널브러졌다.
마시멜로 평원 구석에서 일어난 사건을 목격한 미니 사신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