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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10

황폐해진 전장의 한가운데, 신참 검은 사신은 흉터 사신이 남긴 구슬을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구슬은 따뜻했다.

마치 흉터 사신의 온기가 아직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

‘선배….’

신참 검은 사신은 작게 의지를 흘리며, 손에 들린 구슬을 내려다보았다.

구슬 표면의 무수한 흉터들이 흉터 사신이 겪어왔던 전투들을 말해주는 듯했다.

오랜 시간 동안의 싸움, 견뎌낸 고통, 그리고 끝까지 놓지 않았던 희망.

그 모든 것이 이 작은 구슬 안에 담겨 있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순 없어.’

슬픔의 무게에 짓눌릴 것 같았지만, 신참 검은 사신의 의지가 점점 강해졌다.

슬픔은 여전했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감정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결의, 그리고 책임감.

‘선배가 알려줬던 것들을 헛되지 않게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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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구슬이 미세하게 빛났다.

마치 흉터 사신의 영혼이 신참 사신의 의지에 답하는 듯했다.

그 작은 반짝임에 용기를 얻은 신참 사신은 구슬을 가슴에 꼭 안은 채 천천히 일어섰다.

자리에서 일어선 신참 사신이 흘리는 감정이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다.

불안함과 망설임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단단한 의지가 새겨졌다.

의지의 변화가 장작에 무슨 영향을 미친 걸까?

의지를 품은 심장에서 황금색 장작이 퍼져 나와, 검은 사신의 몸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회색 사신을 닮은 미니 사신의 형태 위로, 무언가가 내려앉았다.

신참 사신 위로 내려앉은 것은 마치 옛 신의 긴 팔을 연상시키는 듯한 긴 소매를 가지고 있었다.

신참 검은 사신은 자기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황금 사신 제1 검이나 왕관 사신과 비슷하지만, 새로운 힘이었다.

그리고 하늘을 가득 채운 색채 우주의 빛이 신참 사신의 몸을 감쌌다.

‘엄마….’

신참 검은 사신은 고개를 들어, 색채 우주를 올려다보았다.

‘엄마가 올 때까지 열심히 할게.’

작게 다짐하며, 신참 사신은 구슬을 꼭 안은 채, 본거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뚜방뚜방.

그 발걸음은 흔들림 없이 힘차고 단단했다.

뒤로는 황폐해진 전장이, 앞으로는 불확실한 미래가 펼쳐져 있었지만, 신참 사신은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황량한 대지를 걷는 신참 사신의 뒤로 색채 우주의 빛이 따라붙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신참 검은 사신의 머리 위로 흐릿하게 헤일로가 떠올라 있었다.

***

눈에서 불길을 흘리는 멋진 황금 사신이 날뛰는 마시멜로 평원.

나는 그 모습을 구경하던 도중, 문득 황금 사신을 관통한 칼날 모양이 어디서 본 듯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번뜩이는 깨달음이 나에게 불어닥쳤다.

‘유령 사신의 효도랑 비슷해 보여.’

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자마자, 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주변을 훑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안광이 타오르는 황금 사신 근처에서 일렁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유령 사신이었다.

미니 사신들이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유령화 같은 방법 대신, 몸을 감싼 천 조각을 이용해서 위장하고 있었다.

그 천은 마치 마법처럼 주변 환경을 그대로 모사해서, 완벽하게 주변과 동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모든 미니 사신과 연결을 가진 내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그런 완벽한 위장도 소용없었다.

살금살금 유령 사신에게 다가간 나는 재빨리 손을 뻗어 붙잡았다.

‘!’

유령 사신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 표정에서 ‘어떻게 날 찾았지?’라는 물음이 읽혔다.

‘저 황금 사신, 네가 한 짓이지?’

내가 묻자, 유령 사신은 히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도!’

그 순간 유령 사신이 의지를 외치며, 실체 없는 반투명한 칼날을 꺼내 들었다.

강화하는 칼이라서 강도라고 이름 붙인 건가?

‘나이프다!’

그리고 그대로 내 손을 향해 강도를 내리찍으려 들었다.

나는 왠지 그럴 것 같아서 준비하고 있다가, 강도를 뺏어 버렸다.

저번에 압수한 효도처럼.

‘….’

유령 사신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그 얼굴에서 ‘엄마를 위해서 한 건데….’라는 억울함이 묻어났다.

나는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으며, 유령 사신의 통통한 볼을 콕콕 찔렀다.

그러자 유령 사신은 팔다리를 휘적휘적 흔들며, 이제까지의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효도!’

‘강도!’

‘자동 사냥!’

유령 사신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애착 인간도 없어서 그런지 어휘력이 부족했다.

갓 태어난 황금 사신보단 낫지만, 그래도 상당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끈기 있게 몇 번이고 되물으며 유령 사신의 의도를 파악해 나갔다.

‘그러니까 효도는 자동 사냥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만든 거고, 강도는 외신을 상대로 더 강한 힘을 원하는 나를 위해 만든 거라고?’

유령 사신은 바로 그거라는 표정으로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나는 그렇게 의지를 전하며, 유령 사신에게 효도와 강도를 돌려주었다.

유령 사신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양손에 칼 한 자루씩을 들고 하늘을 향해 치켜들었다.

‘효도!’

그리고 다시 나를 찌를 것 같은 분위기라서, 나는 유령 사신의 양손을 붙들고 의지를 전했다.

‘그래도 나를 아무 때나 찌르지 말고, 내가 필요하다고 하면 찔러.’

나는 단단히 당부했다.

자는 동안 뭔가가 콕콕 찌르는 바람에 깜짝 놀라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렇게 유령 사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주변으로 황금 사신들이 뚜방뚜방 모여들기 시작했다.

‘엄마!’

‘동생이 불러!’

‘인간도 있어!’

내 주변으로 모여든 황금 사신들이 어지럽게 의지를 흘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황금 사신들의 인도를 따라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

세희 연구소 안뜰의 안뜰은 마치 동화 속 세상을 옮겨놓은 듯했다.

온갖 종류의 미니 사신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손톱만한 작은 동물들이 자유롭게 뛰놀고 있었다.

은빛 소녀는 이 신비로운 광경 한가운데 앉아있었다.

그녀의 머리 위로 돋아난 새싹을 미니 사신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을 한 채 만지작거리고 있었지만, 은빛 소녀는 그런 미니 사신들에게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곧, 특급 오브젝트로 유명한 회색 사신을 대면하게 될 테니까.

‘정말로 특급 오브젝트인 회색 사신이 나타날까?’

‘예지몽 때문에 찾아갈 때마다 못 만났는데, 오늘은 과연 만날 수 있을까?’

은빛 소녀의 마음속 불안에 대답하는 것처럼, 그녀 곁에 있던 미니 꽃 사신이 다정하게 속삭였다.

[엄마, 곧 올 거야!]

물론 은빛 소녀와 함께 다니는 이 미니 꽃 사신도 측정해 본다면 ‘특급 오브젝트’로 분류되겠지만, 회색 사신은 차원이 달랐다.

전 세계 어디서든 불쑥 나타날 수 있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진정한 의미의 특급 오브젝트였으니까.

뚜방뚜방.

그 순간, 미니 꽃 사신의 예언이 적중하듯, 회색 사신이 안뜰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저 나타났을 뿐인데도 압도적인 존재감이 주변을 휘감았다.

회색 사신의 시선이 은빛 소녀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처럼 거대한 아귀를 소환해 그 위에 앉더니, 무심하게 TV를 보기 시작했다.

은빛 소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떡하지? 꿈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냥 다짜고짜 말해도 될까?’

하지만 회색 사신은 소녀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직 TV 화면만을 무표정하게 응시할 뿐이었다.

가끔 달라붙는 미니 사신들을 짜증스럽게 집어던지는 것 말고는 거의 움직임도 없었다.

‘괜히 말을 걸었다가 화라도 내면 어쩌지?’

소녀의 불안감이 커져갔다.

그때, 긴장해서 움직이지 못하는 애착 인간을 대신해서, 미니 꽃 사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회색 사신 곁으로 뚜방뚜방 다가가 염파를 보냈다.

[엄마!]

[꿈꿨어!]

[엄마가 투명한 칼날에 찔리는 꿈이야!]

그러자 회색 사신의 표정이 미세하게 바뀌더니, 정수리에 난 머리카락이 살랑거렸다.

그리고 관심 없다는 듯이 자세를 바꿔서 TV를 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거대한 짐볼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처럼 보였다.

여전히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는듯한 모습이었지만, 미니 꽃 사신은 엄마가 듣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처럼 염파를 이어 나갔다.

[검은 사신 위험해 보여!]

[외신이 있어!]

[색채 우주도 보여!]

짧고 강렬한 메시지들을 연달아 전했다.

그리고 마치 임무를 완수한 것처럼 은빛 소녀의 품으로 돌아와 안겼다.

[이제 돌아가자!]

미니 꽃 사신의 얼굴에는 뿌듯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은빛 소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천천히 일어나 안뜰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잘 가!’

‘또 와야 해!’

뒤에서는 그동안 함께 놀았던 미니 사신들의 작별 인사가 들려왔다.

‘….’

세희 연구소를 벗어나자, 은빛 소녀는 비로소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아있었다.

‘회색 사신은 정말로 예지몽 이야기를 들었을까?’

[응!]

미니 꽃 사신의 대답은 확신에 차 있었다.

‘정말?’

은빛 소녀가 의아해하자, 미니 꽃 사신은 더욱 단호하게 대답했다.

[엄마 더듬이가 팔랑거렸으니까. 분명 들었어!]

‘더듬이?’

수수께끼 같은 말에 은빛 소녀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미니 꽃 사신은 ‘더듬이는 더듬이야!’라고 할 뿐이었다.

***

늦은 밤, 서울숲은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형형색색의 달빛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어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가운데, 나는 황금 사신을 데리고 홀로 서 있었다.

나는 강철탑이 있던 자리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서울숲을 경계하고 있던 검은 사신이 여기서 하나 실종.’

그렇게 의지를 흘리며 손아귀에 잡힌 황금 사신을 내려다보자, 황금 사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금 사신은 나의 물음에 해답을 제공했다는 것이 정말 기쁜지, 행복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그런데 검은 사신이 실종됐는데, 나한테 보고를 안 해?’

‘앗!’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황금 사신은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황금 사신을 그대로 댖지로 만들어버렸다.

‘앙대!’

황금 사신은 슬픈 표정으로 축 늘어져 버렸다.

나는 말랑말랑한 황금 댖지 사신의 감촉을 즐기며, 서울숲 내부로 감각을 넓게 펼쳐 나갔다.

하지만 아무리 집중해도 실종되었다는 검은 사신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공간만이 선명하게 감지될 뿐이었다.

‘분명 이 근처에서 들어가는 입구가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조금 불안한 기분을 애써 무시하며, 어두운 서울숲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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