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창문을 통해 스며들어 원룸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헬멧 연구원은 천천히 눈을 뜨며 잠에서 깨어나자, 옆에서 자고 있던 황금 사신도 함께 기지개를 켜며 히히 웃었다.
헬멧 연구원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배고프지?”
헬멧 연구원이 물었다.
그러자 황금 사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반짝이는 눈으로 만세를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웃은 헬멧 연구원은 침대에서 일어나 주방을 향했다.
아침은 평소처럼 간단하게 칼로리바.
연구원은 칼로리바를 한 입 베어 물며, 황금 사신에게도 작은 쿠키 하나를 건넸다.
애착 황금 사신은 자기 몸통만 한 쿠키를 받아 들고 식탁에 앉아, 쿠키를 뜯어 먹기 시작했다.
옴뇸뇸.
협회를 나온 뒤, 언제나 이어지는 행복하고 소소한 아침의 풍경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헬멧 연구원은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기는 동안 황금 사신은 계속해서 주변을 맴돌았다.
마침내 준비를 마치고 현관 앞에 선 헬멧 연구원은 팔을 내밀었다.
평소라면 지금쯤 황금 사신이 폴짝 뛰어올라 손바닥 위에 앉았을 텐데, 오늘은 달랐다.
‘?’
헬멧 연구원은 의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식탁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콩. 콩.
뒤를 돌아보니 황금 사신은 여전히 식탁 위에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황금 사신이 양손으로 무언가를 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축 늘어진 또 다른 황금 사신이었다.
“자연 발생 황금 사신인가? 오랜만에 보네.”
헬멧 연구원이 중얼거렸다.
최근 들어 황금 사신이 세희 연구소가 아닌 곳에서도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어딘가에 붙어서 따라온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지구 어디서든 황금 사신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게 정설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허공에서,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아기 황금 사신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꽤 관측되었으니까.
세희 연구소나 바람개비 근처처럼, 황금 사신이 많은 곳에서 나타날 확률이 높았다.
황금 사신 발생 확률 지도 같은 것도 있을 정도!
발생 확률이 높으면 유의미할 정도로 집값이 높아지는 경향성이 있어서, 집을 구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수치이기도 했다.
헬멧 연구원은 비몽사몽인 아기 황금 사신을 주워서 주머니 속에 넣고, 애착 황금 사신을 어깨 위에 올린 뒤 집을 나섰다.
거리로 나오자 더 많은 아기 황금 사신들이 눈에 띄었다. 담벼락 위에서 뒹굴뒹굴하는 녀석들, 돌과 돌 사이에서 얼굴을 내밀고 손을 흔드는 녀석들.
“엄청나게 많아졌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
헬멧 연구원이 물었지만, 어깨 위의 황금 사신은 별생각이 없는지, 고개를 도리도리 저을 뿐이었다.
연구소에 가까워질수록 황금 사신의 숫자는 더욱 늘어났다.
‘이러니까, 세희 연구소 주변 집값이 오르는 건가?’
대부분의 연구소는 위험한 오브젝트 때문에 혐오시설 취급을 받지만, 세희 연구소만은 달랐다.
오히려 연구소가 이전한다고 하면 주민들이 반대할 정도였다.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더니, 어느새 세희 연구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사무실에 짐을 풀고 있을 때, 갑자기 오예린 선배가 나타나더니 만행을 저질렀다.
“자, 이제 가서 놀아!”
오예린 선배가 ‘황금 사신 대축제!’라고 덧붙이며, 커다란 가방을 열어젖혔다.
화물 운송용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커다란 가방이었는데, 그 속에서 끝도 없이 아기 황금 사신들이 쏟아져 나왔다.
순식간에 사무실은 아기 황금 사신들로 가득 차버렸다.
“오예린 선배!”
헬멧 연구원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그리고 김중뢰 선임 연구원이 서둘러 달려와 오예린 선배를 막으려 했지만, 사무실은 이미 마비 상태에 빠져버렸다.
‘….’
헬멧 연구원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았다.
키보드 위에는 황금 사신들이 잔뜩 누워서 헬멧 연구원을 올려다보고 있었고, 모니터 주변에도 황금 사신들이 잔뜩 매달려 있었다.
‘같이 놀자!’하는 표정의 황금 사신들.
헬멧 연구원은 그것을 애써 무시하며, 조심스럽게 키보드와 마우스, 그리고 모니터 위의 황금 사신들을 치웠다.
아기 황금 사신들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모니터 뒤에서 쳐다봤지만, 그대로 이제 겨우 작업을 시작할 환경이 마련되었다.
다행히 애착 황금 사신이 상황을 파악하고 행동에 나섰다.
작업에 방해가 되는 아기 황금 사신들을 휴게실로 이끌고 가주었다.
앞장서는 애착 황금 사신과 그 뒤를 따르는 아기 황금 사신들.
후우.
헬멧 연구원은 황금 사신의 귀여운 행렬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헬멧 연구원이라도 슬픈 표정의 황금 사신을 보면서 작업하기는 힘들었으니까.
그렇게 작업을 시작한 지 몇분,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시선을 돌려보니 아기 황금 사신 하나가 남아서 핸드폰 위에 엎드려 있었다.
안 놀아줘서 슬퍼 보이는 표정의 황금 사신이었다.
헬멧 연구원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연구원은 전화를 받은 뒤, 아기 황금 사신을 들고 휴게실로 향했다.
‘오늘 정도는 쉬어도 괜찮겠지….’
도무지 작업을 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던 연구소 분위기를 떠올리며, 헬멧 연구원은 휴게실 문을 열었다.
그러자 황금 사신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헬멧 연구원을 반겼다.
‘인간!’
‘인간이 왔어!’
행복해 보이는 표정의 황금 사신들.
헬멧 연구원은 그 황금 사신들을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
차원의 경계를 넘어 나비들의 공간에서 미니 사신 정원으로 돌아오자, 황금 사신들이 사방에서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검은 사신들이 우글우글한 가운데, 황금 사신들이 마치 축제라도 벌어진 듯 즐거운 표정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동생!’
‘새로운 동생!’
‘검은 동생!’
황금 사신들의 즐거운 의지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검은 사신들은 마치 낯선 세계에 떨어진 것처럼 당황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그러던 중, 나를 발견하자, 일제히 나를 향해 돌아보며 의지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엄마!’
‘이제 뭐 해야 해?’
‘신전을 지을까?’
‘인류의 적이랑 싸워야 해?’
‘누구랑 싸워?’
마치 평생 일만 하던 노예처럼, 검은 사신들은 다음 임무를 갈구하고 있었다.
‘인간 필요해?’
‘인간을 모을까?’
‘인간 없으면, 엄마 아파.’
이상하게도 인간을 납치하겠다는 아이들이 많았다.
인간이 필요하긴 해도 인간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는 충분한데 말이다.
설마 검은 거인은 인간이 부족해서 장작 부족으로 쓰러진 건가?
뭐, 아무래도 상관없긴 하지만.
나는 검은 사신들을 향해 의지를 보냈다.
‘뭔가를 할 필요는 없어. 자유롭게 놀아!’
그러자 어리둥절한 표정의 검은 사신들.
‘?’
하지만 어느새 황금 사신들에게 하나씩 붙잡혀 미니 사신 정원 투어를 시작해 버렸다.
‘여기는 바닥이 따뜻해서 기분 좋아.’
마시멜로 평원을 뚜방뚜방 걸어 다니며, 평원의 숨겨진 명소를 소개하는 황금 사신들의 모습이 보였다.
뀨힝힝.
그리고 아귀를 나눠 먹으며 정원의 맛있는 간식들을 소개하는 모습도 있었다.
‘엄마, 인간 진짜로 필요 없어?’
마지막까지 심각한 표정으로 되묻던 검은 사신마저 황금 사신들에게 끌려가자, 이번에는 황금 사신들이 내 발목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엄마!’
‘엄마! 새로운 곳이 있어!’
황금 사신들이 새로운 곳을 발견했다며, 같이 가자고 보챘다.
나는 어딘가 들떠 보이는 황금 사신들에게 이끌려, 젤리 밀림 너머로 뚜방뚜방 나아갔다.
‘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드넓은 갈색빛 대협곡.
진짜 자연환경처럼 멋들어진, 캐러멜로 된 새로운 지역이었다.
하늘 위에는 나비 오브젝트와 닮은 투명 나비들이 펄럭펄럭 날아다녔다.
‘엄마!’
‘같이 들어가자!’
협곡과 젤리 밀림의 경계에는 엄마랑 같이 들어가고 싶다며, 황금 사신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그래, 같이 가자.’
나와 황금 사신은 함께 발을 맞춰 폴짝 뛰어, 캐러멜 대지에 발을 딛었다.
황금 사신들은 캐러멜 위에 발을 딛고는 행복한 표정으로 웃었다.
하지만 나는 말랑한 바닥에 제대로 착지하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으악, 늪이야.’
내가 점점 깊숙이 빨려 들어가며 버둥거리자, 주변 황금 사신들이 히히 웃었다.
‘히히’
‘엄마 댖지.’
‘엄마 댖지야.’
나는 공간을 붙잡고 늪에서 빠져나온 뒤, 모두 댖지로 만들어서 캐러멜 속에 처박아버렸다.
‘앙대!’
‘앙대!!’
캐러멜 위로 볼록한 배만 튀어나오도록, 세심하게 묻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메시지 구슬을 박아두었다.
<엄마를 비웃은 나쁜 아이들.>
히히.
***
송파구 외곽, 제임스 타워의 최상층.
거대한 유리창을 통해 서울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제임스의 집무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늦은 밤, 도시의 불빛들이 반짝이는 가운데 제임스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의 책상 위에는 두꺼운 보고서가 펼쳐져 있었다.
표지에는 <시간 나비 출현 추이 보고서>라고 쓰여 있었다.
제임스는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며, 내용을 확인했다.
확인해 보니,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던 시간 나비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내용이었다.
SDVIMVFoanVzY1YwSVhjamMzUkt1U3pnY1pRaU5OZVlrWGsxQUxDREd6elBwa2NGMjQydnNtK0JwRDZ6T1p3Ug
“흠.”
제임스는 턱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시간 나비 출현은 황금 사신들의 분투로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점점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있어서 제임스 연구소의 전력을 기울여서 원인을 찾던 문제였다.
제임스는 핫초코를 한 모금 마시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군.”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안도감보다는 걱정이 더 묻어났다.
제임스의 시선이 책상 위의 다른 서류들로 향했다.
그중에는 최근 세희 연구소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보고서도 있었다.
거대한 염소 형태의 오브젝트가 나타났다는 내용이었다.
“특급 대형 오브젝트들의 출현 빈도가 높아지고 있어….”
제임스는 중얼거렸다.
그때, 제임스의 눈에 책상 위에 놓인 신문이 들어왔다.
‘인간형 오브젝트 불신 연합’이라는 반-황금 사신 집단의 성명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제임스는 피식 웃으며 신문을 집어 들었다.
그는 신문을 대충 훑어보고는 다시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반-황금 사신 집단들은 특급 오브젝트의 증가가 황금 사신의 증가와 관련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멍청한 녀석들이지….’
하지만 제임스는 그들의 주장이 근거 없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저 황금 사신의 증가가 꾸준하고, 마찬가지로 특급 오브젝트의 증가도 꾸준할 뿐 다른 연관성은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오히려 특급 오브젝트와 연관이 있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제임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반투명한 검은 행성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안 그래도 하늘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검은 행성은, 이제 하늘 반 이상을 가리고 있었다.
검은 행성.
제임스에게는 저 다가오는 행성이 종말의 뿔피리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