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스며들자, 즐거운 아기 황금 사신 파티가 끝나고 평범한 일상이 시작되기 시작했다.
예린이와 함께 세희 연구소에 도착한 뒤, 예린이는 사무실을 향했고, 나는 황금 뿔 격리 구역을 향했다.
‘한 달이나 지났으니…. 뭔가 변화가 있겠지?’
나비의 공간 때문에 무려 한 달이나 지났으니까, 기대할만했다.
그동안 황금 사신들이 어떻게 변했을지, 그중에서도 황금 뿔 사신으로 진화한 개체가 있을지 궁금증이 마구 돋아났다.
그런 커다란 기대감을 안고서 순간 이동으로 순식간에 격리 구역에 도착했다.
그렇게 내부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
예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한 달 전에 가득했던 격리 구역 특유의 삭막함은 온데간데없었고, 길거리를 잠시 보는 것만으로도 뚜방뚜방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인간보다 황금 사신이 더 많아졌네….’
눈을 돌리는 곳마다 황금 사신들이 보였다.
예전에는 황금 사신 하나당 인간이 두 명 정도였다면, 지금은 그 비율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이제 이곳은 황금 뿔 격리 구역이라기보다는 황금 사신 자생 구역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였다.
그때였다.
‘앗!’
‘엄마!’
내가 지나가는 것을 발견한 황금 사신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 내 허벅지 위로 올라오더니, 자기 머리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아마도 지난번에 내가 뿔을 찾으려고 머리를 문질러 주던 기억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웃으며, 머리를 천천히 조물조물해 주었다.
‘오늘은 조그마한 황금 뿔 하나라도 돋아나 있기를.’
나는 작은 소망을 하나 품은 채, 황금 사신들의 머리를 차례차례 쓰다듬어 주기 시작했다.
***
나는 수많은 황금 사신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자동 사냥의 핵심이 되어줄 황금 뿔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 표정은 점점 지쳐갔다.
‘히히.’
두피 마사지를 받은 황금 사신이 간지러운 듯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
반대로 나는 조금 지친 표정으로 다음 황금 사신을 불렀다.
벌써 몇 시간째 찾고 있었지만, 여전히 뿔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황금 뿔 사신도 다른 특수 사신처럼 희귀한 걸까?
황금 뿔 사신은 성격이나 행동이 황금 사신 그대로라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건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발현이 되지 않는다니.
결국 마지막 남은 황금 사신의 머리 위에도 뿔은 없었다.
힝.
‘엄마, 힘들어?’
황금 사신은 내가 힘들어 보였는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손가락을 토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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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황금 사신의 머리통을 만지작거리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찹쌀떡처럼 말랑말랑하네…. 황금 사신 머리통.’
그렇게 계속 마지막 황금 사신의 머리통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문득 더욱 말랑한 무언가가 손끝에 느껴졌다.
‘!’
깜짝 놀란 나는 마지막 황금 사신을 들어 올려 머리카락 속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확인해 보니, 황금 사신의 머리 양옆으로 뿔처럼 생긴 것이 아주 얕게 튀어나와 있었다.
황금 뿔이야!
황금 뿔의 흔적을 발견하자, 내 몸을 짓누르던 피로감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리고 나는 기쁜 마음에 헹가래를 치듯이 마지막 황금 사신을 하늘 높이 던져올렸다.
‘높아!’
황금 사신은 내 감정을 느끼고 싱글벙글했다.
그 모습에 다른 황금 사신들도 부러운 표정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엄마!’
‘나도!’
나는 황금 뿔 등장을 기념해서, 공간 지배 능력으로 몰려든 황금 사신들을 하늘로 쏘아 보냈다.
그들은 마치 총알처럼 하늘로 솟구쳐 올랐고, 그 광경은 마치 황금빛 불꽃놀이 같았다.
흥분이 가라앉은 후, 나는 두 번째 황금 뿔 사신을 내려다보며 의지를 보냈다.
‘자, 장작을 보내봐! 넌 할 수 있어!’
하지만 두 번째 황금 뿔 사신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기만 할 뿐이었다.
아직 뿔이 짧아서 그런 걸까?
황금 뿔 사신을 라디오라고 보면, 안테나가 짧은 상태인 거니까 말이야.
미니 뿔 황금 사신은 눈을 꼭 감고, 장작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나는 황금 사신이 정신이 팔린 틈을 타, 몰래 공간을 붙잡아서 뿔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머리카락 속에 숨겨져 있던 작은 뿔이 머리카락 밖으로 튀어나왔다.
‘앗!’
황금 사신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순식간에 단단히 화가 난 표정으로 변했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돌진해 왔다.
때찌때찌.
강제로 잡아당겨서 아팠는지, 상당히 힘을 실어 때리는 때찌때찌였다.
게다가 정말 안타깝게도 때리는 동안 점점 뿔이 작아지더니, 때찌를 멈출 때쯤 되자 다시 머리카락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안테나처럼 잡아당기는 건 안 되네….
힝.
***
송파구의 하늘을 찌르는 제임스 타워 최상층,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서울의 아침 풍경이 펼쳐졌다. 제임스는 넓은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미국에서 발행된 신문 기사가 떠 있었고, 그의 입가에는 허탈한 듯한 미소가 맴돌았다.
“오브젝트 협회의 개입으로 반-황금 사신 단체 해체”
기사 제목을 다시 한번 읽으며 제임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방법을 생각한 거지?”
그의 눈은 기사 내용을 빠르게 훑었다.
오브젝트 협회가 반-황금 사신 단체를 해체한 방법은 굉장히 단순했지만, 특이하기도 했다.
그들의 본거지에 몰래 잠입해서, 종이 상자를 잔뜩 놓아두고 왔을 뿐이었다.
그것만으로 반-황금 사신 단체를 괴멸해 버린 것이다.
그 안에는 황금 사신들이 가득 들어있었으니까.
황금 사신이 미국을 좀먹고, 세계를 망하게 할 오브젝트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은 결국, 황금 사신과 만나 그 매력에 빠져 단체를 탈퇴해 버렸다.
제임스는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사실 오브젝트 협회에서 벌인 작전은, 제임스 연구소에서 올린 보고서를 토대로 벌인 작전처럼 보였다.
제임스 연구소에서 얼마 전 ‘반-황금 사신 단체’의 구성원들은 전부 황금 사신을 전혀 볼 수 없는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뿐이라는 통계를 제출했었으니까.
그리고 기사 말미에는, 이런 방식의 해결이 일종의 생화학 테러와 비슷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오브젝트 정신 오염 테러라고 분류하고, 비슷한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기사를 마무리 지었다.
‘흠.’
물론 제임스도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와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다.
오브젝트로 멸망해 가는 세계에서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황금 사신이 딱히 해로운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리자, 커다란 쿠키를 핫초코에 찍어 먹던 황금 사신이 제임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
제임스는 작게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 뒤, 손을 뻗어 황금 사신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제임스는 기사를 쓴 기자의 이름을 기억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조만간 저 기자에게도 황금 사신이 배달되겠지.’
제임스는 저 기자가 뚜방당한 다음에는 어떤 기사를 쓰게 될지 조금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제임스는 마우스로 화면을 스크롤 하며 다른 뉴스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때, 그의 휴대전화에서 날카로운 경보음이 울렸다.
삐이익!
제임스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화면을 확인하자마자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짧은 간이 보고가 올라와 있었다.
<텍사스, 오브젝트. 존재 확인됨.>
제임스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며칠 전 노란 탐정이 남긴 편지의 내용이 사실로 판명되었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정신 오염도 없이 인간을 조종하는 능력.’
‘미니 사신들이 웬만한 일들을 해결하는 시대에, 회색 사신이 꼭 있어야 하는 특급 오브젝트라….’
제임스는 서울의 아침 풍경을 내려다보며, 회색 사신에게 텍사스 사태를 어떻게 노출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들었다.
***
연기가 흩어지자, 램프의 남자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마치 환영처럼 그가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후배 2호는 긴장이 풀리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후아….
그녀의 숨소리와 함께 주변의 공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 것처럼, 허공에 멈춰있던 황금 사신들도 서서히 움직임을 되찾았다.
‘해로운…. 오브젝트?’
‘?’
황금 사신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전까지 그들의 눈앞에 있던 강력한 오브젝트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그들은 이내 후배 2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미안해!’
‘으앙!’
황금 뿔 사신을 포함한 여러 황금 사신이 후배 2호에게 달라붙었다.
그들의 눈에는 미안함과 자책감이 가득했다.
해로운 오브젝트를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울먹이는 모습이었다.
후배 2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토닥여 주었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었어.”
그녀의 손길에 안도감을 느낀 황금 사신들은 조금씩 진정되어 갔다.
하지만 후배 2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의 손 위에 놓인 두꺼운 양피지 계약서가 그 증거였다.
계약서를 내려다보며 후배 2호는 작게 중얼거렸다.
“정말 괜찮은 거죠…. 선배?”
그녀의 눈길이 계약서 중간에 적힌 의미심장한 문구에 머물렀다.
<계약 사항이 전부 이행될 경우, ‘계약의 오브젝트’는 램프 속에 박제된 ‘노란 탐정’과 그 일행을 돌려준다.>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후배 2호의 가슴은 무거워졌다.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선배, 왜 이렇게 터무니없는 일을 저지른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실망, 그리고 미묘한 분노가 섞여 있었다.
선배의 감은 이제 미래 예지의 영역에 닿아있었으니, 자신이 곧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한참을 투덜거리던 후배 2호는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의 눈빛에는 결연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황금 뿔 사신을 자신의 가슴팍에 올려놓은 그녀는 씩씩하게 외쳤다.
“자, 가자. 중국으로!”
황금 뿔 사신과 다른 황금 사신들도 그녀의 외침에 화답하듯 반짝이는 눈빛을 보였다.
그녀의 목적지는 자신을 [교단]이라고 부르는 정체불명의 테러리스트 집단이었다.
탐정 선배가 부르기를, ‘닌자 교단’이라고 하는 수상쩍은 단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