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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22

인형의 기억은 마치 깨진 거울 조각처럼 조각나 버렸다.

그 조각들은 서로 이어지지 않고, 그저 흐릿한 이미지로 남았다.

그녀는 언제나 같은 위치에 앉아 있었다.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웅장한 종교 건물의 중앙에, 거대한 화로가 있었다.

그 화로에서는 눈부신 하얀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불꽃은 어딘가 불길한 느낌을 풍겼지만, 사람들은 그 앞에서 머리를 숙이며 경배를 올렸다.

사람들의 얼굴은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어 표정을 보지 못했지만, 그 행동거지에는 경외심과 숭배의 감정이 가득했다.

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인형은 그런 그들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살아있는 것처럼 깊고 맑았지만, 그 안에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녀는 성녀를 본뜬 인형에 불과했으니까.

일과가 끝난 후, 사람들은 인형에게 다가와 그녀를 정성스럽게 돌봤다.

먼지를 털어내고,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빗겨주며,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소중히 다뤘다.

그들의 손길은 부드럽고 조심스러웠다.

인형은 그들의 손길을 느끼며 어딘가 모를 따뜻함을 느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이 평온한 시간이 끝없이 이어졌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러나 어느 날 밤, 모든 것이 변했다.

갑작스러운 폭발음과 함께 붉은 화염이 건물을 집어삼켰다.

불길은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솟아올랐고, 그녀를 돌보던 사람들은 날카로운 칼날을 뽑아 든 채 적을 맞았다.

인형은 그 혼란 속에서도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흩뿌려지는 붉은 핏물.

그녀의 눈앞에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갔다.

처음으로 그녀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감정이 일렁였다.

그것은 슬픔이었을까, 아니면 공허함이었을까.

그때, 날카로운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탕!

총알은 빠른 속도로 바람을 가르며 인형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그 소리가 미처 들리기 전에 그녀의 얼굴 한쪽이 산산조각 났고, 그 충격으로 그녀는 뒤로 넘어졌다.

부서진 얼굴에서 작은 조각들이 바닥에 흩어졌다.

그녀의 시야는 한쪽으로 흐려졌고, 소리는 멀어져 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불길은 서서히 꺼지고, 건물은 무너져 내렸다.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던 인형은, 폐허 속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주변은 잿더미와 부서진 기둥들로 가득했다.

고요한 침묵만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형형색색의 달빛이 내려앉는 폐허 속에서, 인형은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마도서.

이곳 말로는 오브젝트가 된 것이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부서진 부분 때문에 쉽지 않았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생명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고, 찬바람만이 그녀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인형은 천천히, 그러나 굳은 결심으로 몸을 일으켰다.

부서진 관절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의 주변은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부서진 건물의 파편과 검게 탄 잔해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손을 뻗어 바닥에 떨어진 검은 천 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한때 그녀를 돌봐주던 사람들이 입었던 복장의 일부였다.

그녀는 천 조각을 가슴에 품으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 순간, 천 조각은 바람에 실려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인형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가 손을 댈 때마다 사람들의 흔적은 먼지처럼 사라져 갔다.

이제서야 그녀는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는데.

이제서야 사람들이 원했던 것처럼 하얀 불꽃을 다룰 수 있게 되었는데.

정작 그녀를 돌봐주던 사람들은 이 세상에 없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절망감이 밀려왔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둠에 물든 하늘은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사람들을 돌려줘.]

[그 시절을 돌려줘.]

마음속으로 절규했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는커녕 숨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인형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하얀 불꽃을 흘렸다.

그 불꽃은 마치 눈물처럼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주변은 고요했다.

부서진 기둥과 잿더미만이 그녀의 슬픔을 함께하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달그락, 달그락.

작은 돌멩이들이 서로 부딪치는 듯한 소리였다.

인형은 고개를 들었다.

연기가 자욱한 폐허 속에서 한 남자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그는 고풍스러운 램프를 손에 들고 있었고, 그의 몸은 연기로 둘러싸여 형체가 뚜렷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에서 타오르는 램프들의 빛은 연기 속에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

미니 사신 정원의 깊숙한 곳, 마시멜로 평원.

나는 한가롭게 산책하다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

아직도 혼종 아귀 사신이 합쳐진 채로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발견해 버린 것이다.

‘왜 아직도 합쳐진 상태인 거지?’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혼종 아귀 사신을 바라보았다.

다른 미니 사신들의 융합은 오래가지 않았는데, 이 혼종 융합은 지속 시간이 너무 길었다.

황금 사신과 황금 사신 융합도.

검은 사신과 검은 사신의 융합도.

심지어 제1 검과 황금 망토 사신의 융합도.

저렇게 오래 유지되지는 못했다.

무려 내가 주황 사신이나, 황금 사신과 융합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제1 검과 황금 망토 사신도 저렇게 오랫동안 융합되면 좋을 텐데….’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결국 혼종 아귀 사신을 분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야, 혼종은 너무 무섭게 생겼으니까!

천천히 혼종 아귀 사신에게 다가가 보니 푸딩 사신과 함께였다.

포잉. 포잉.

푸딩 사신은 슬라임처럼 몸을 통통 튕겼고, 혼종 아귀 사신은 그 곁에 앉아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나는 융합의 헤일로를 머리에 뒤집어쓴 뒤, 혼종 아귀 사신에게 몰래 다가갔다.

‘!’

무언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는지, 혼종 아귀 사신이 회색 사신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융합은 풀어졌고, 아귀 사신과 하얀 아귀는 각각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뀨!

뀨힝힝.

그러자 아귀 사신과 하얀 아귀는 원통한 소리로 울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포잉. 포잉.

그리고 푸딩 사신도 아귀 사신의 감정을 느끼고는, 통통 몸을 튕기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아귀와 아이들의 눈에는 실망과 서운함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나 융합이 좋은 건가?’

나는 아이들의 반응을 보며, 살짝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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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했을 때, 나는 그 정도 집착을 가질 정도로 강렬한 기분을 느낀 적이 없었으니까.

‘왜일까….’

아무런 이유도 없이 ‘거대한 것’을 좋아하는 미니 사신들의 습성처럼, 융합에도 아이들을 열광시킬 만한 특이한 요소가 있을지도 모르겠네.

뚜방뚜방.

그렇게 슬퍼 보이는 아귀 사신을 뒤로하고 돌아다니던 도중, 황금 사신과 검은 사신이 동시에 어딘가로 우르르 몰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작은 아이들이 모여서 우르르 몰려가는 모습은 마치 거대한 물줄기처럼 보였다.

신기한 점은 검은 사신과 황금 사신의 격류가 서로 섞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평소라면 어지럽게 섞여서 움직였는데 말이다.

그리고 검은 사신과 황금 사신들이 내뿜는 의지에 흉흉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싸움!’

‘전투!’

‘승리!’

드디어 황금 사신 대의회 문제로 두 계파가 전쟁이라도 하는 건가?

나는 즐거운 싸움 구경을 기대하며, 커다란 팝콘을 들고, 황금 사신과 검은 사신의 격류를 따라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거대한 콜로세움.

그 안에는 황금 사신과 검은 사신이 섞이지 않고, 명확하게 콜로세움을 반으로 나눠서 자리 잡고 있었다.

‘!’

그 모습을 보고 ‘진짜 전쟁이라도 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황금 사신들 쪽에서 한 황금 사신이 경기장 쪽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제1 검!’

‘최강의 황금 사신!’

그러자 황금 사신은 박수를 치고, 폴짝폴짝 뛰면서 열광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반대쪽에서 한 검은 사신이 경기장 쪽으로 걸어 나왔다.

‘가장 강한 검은 사신!’

‘외신과 싸운 검은 사신!’

그러자 검은 사신들도 박수를 치며 열광하기 시작했다.

‘!’

황금 사신 제1 검과 검은 후드 사신의 싸움이라….

둘 다 격은 비슷해서 예측하기 힘든 승부였다.

나는 갑자기 흥미진진한 기분이 들어, 엄마 전용 좌석에 앉아 팝콘을 먹었다.

아삭. 아삭.

조금 전까지 아이들이 폴짝폴짝 뛰는 콩콩 소리와 박수 소리로 가득했던 콜로세움에 정적이 내려앉아서, 내가 팝콘 먹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

의아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자, 모든 미니 사신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를 기대하는 듯한, 초롱초롱한 눈빛.

갑자기 몰려든 기대감이 어리둥절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지를 크게 뿜어내었다.

‘이제부터 경기를 시작한다!’

***

중국 산속 깊숙한 곳에 있는 ‘교단’의 폐허.

후배 2호는 램프의 남자가 거짓 정보를 주지는 않았을 거로 생각하고, 무작정 폐허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교단’이 있던 곳은 멀쩡한 것이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부서져,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정말, 이런 곳에 소원을 들어줄 ‘성녀’라는 사람이 있을까?”

후배 2호는 자기 가슴팍에 앉아 있는 황금 뿔 사신을 콕콕 찌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황금 뿔 사신은 평소와 달리 그녀에게 반응을 보이지 않고, 한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뭐라도 있어?”

그리고 후배 2호도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뭔가 어긋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벅. 저벅.

그리고 이 폐허에서 가장 큰 건물이 자리했던 땅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주변 환경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정밀한 조각이 새겨진,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건물.

계양산에서 봤던, 검은 천으로 꽁꽁 싸맨 이상한 사람들.

그리고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화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후끈한 열기.

조금 전까지만 해도 깊은 산속에 늦은 밤이라 조금 추운 듯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더울 정도였다.

“뭐… 뭐지?”

그때, 당황한 목소리를 흘리는 후배 2호에게 한 여자가 다가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소원을 들어주러 오신 분들이시죠?]

말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는 인사였다.

“그 얼굴은…?”

후배 2호는 고개를 돌려, 인사를 건넨 여자를 보며 의아한 목소리를 흘렸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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