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 외곽에 우뚝 선 제임스 타워.
그곳의 고급스러운 식당에서는 제임스 연구소 소속 직원들이 늦은 아침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깊은 피로가 묻어났지만, 성취감이 엿보이는 미소도 떠올랐다.
“드디어 텍사스 쪽 뉴스를 구성했네요.”
한 직원이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어.”
다른 직원이 하품하며 동의했다.
그들의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고, 몇몇은 밤샘 작업의 흔적이 역력했다.
이때, 회색 사신 특수 대책팀 팀장이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의를 끌었다.
“여러분.”
그는 따뜻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는 오브젝트라 뉴스거리가 부족했지만, 어떻게든 정리해서 이해되는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팀장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모두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그의 말에 팀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환한 미소와 함께 박수를 쳤다.
그 옆에서 쿠키를 먹고 있던 미니 사신들도 그 분위기에 이끌려 작은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인간!’
‘이제 같이 놀 수 있어!’
미니 사신들은 앞으로 놀 것을 기대하는지, 굉장히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눈을 반짝였다.
그 순간, 한 황금 사신이 식탁 위에서 살금살금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대화에 몰두한 사이, 그 황금 사신은 애착 인간의 젓가락 받침을 살며시 옆으로 밀어 치워버렸다.
그러고는 휴지로 자기 몸을 덮어, 젓가락 받침인 척하며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한 직원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 위에 젓가락을 올려놓았다.
황금 사신은 휴지 틈으로 애착 인간을 힐끗 올려다보며, 즐거운 의지를 흘렸다.
‘히히, 속았어.’
하지만 직원은 애착 사신의 계략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그는 모른 척 식사하다가, 젓가락으로 휴지 속에 숨은 황금 사신을 콕콕 찔렀다.
‘앗, 들켰어!’
그러자 황금 사신은 그 젓가락을 붙잡고는 히히 웃었다.
다른 직원들도 편안한 표정으로 애착 사신과 놀고 있었다.
미니 사신과 후식으로 나온 푸딩을 나눠 먹는다든지.
애착 인간이 먹던 매콤한 음식을 한입 먹더니, ‘인간이 독약을 먹고 있어!’라는 표정으로 각설탕을 넣으려고 하는 황금 사신을 막으려고 실랑이를 벌인다든지.
애착 사신이 먹고 있는 쿠키를 몰래 뺏어 먹는다든지.
젓가락으로 미니 사신을 들어 올려서 잡아먹을 것처럼 겁을 준다든지.
여러 가지 즐거운 방식으로 미니 사신과 늦은 아침을 즐겼다.
식당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모두는 잠시나마 업무의 스트레스를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때, 팀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어딘가 불길해 보이는 소리였다.
조금 전까지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식당에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설마….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니겠죠?”
한 직원이 불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앙대….’
미니 사신들도 행복한 표정을 지우고, 조마조마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방송 송출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회색 사신이 텍사스로 이동한 것이 확인되었다는군.”
그 순간 식당에 흐르는 안타까운 분위기를 느끼고, 미니 사신들은 식탁 위에 널브러져 버렸다.
마치 나라를 잃어버린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팀장은 그렇게 널브러지는 미니 사신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아쉽지만, 지금부터 특별 대기에 들어간다.”
그렇게 직원들은 식당에서 터덜터덜 일어나, 미니 사신을 하나씩 품에 안고 식당을 떠나가기 시작했다.
***
미니 사신 정원의 한가운데, 웅장하게 서 있는 거대한 콜로세움.
그곳에서 황금 사신 제1 검과 검은 후드 사신의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관중석에 앉아 팝콘을 손에 들고, 숨을 죽인 채 싸움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제1 검은 예리한 검격으로 공간을 가르며, 빛처럼 빠른 공격을 퍼부었다.
공간을 자르는 빛의 궤적이 후드 사신을 향해 날아들었다.
후드 사신은 실전에서 단련된, 예측하기 힘든 불규칙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제1 검의 검격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그저 튼튼함 하나로 헤일로의 힘마저 견뎌냈던 후드 사신은 그대로 버텨내고, 저돌적으로 앞으로 돌진했다.
반면에 후드 사신의 공격은 제1 검에게도 큰 위협이었다.
외신을 죽이기 위해 갈고닦은 할퀴기는 물리 면역인 나비들조차 가볍게 찢어버릴 정도였으니까.
한 번이라도 그 공격에 맞는다면, 특별한 방어 능력이 없는 황금 사신에게는 치명적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공격도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다.
황금 사신 제1 검은 그저 가볍게 사뿐사뿐 뛰는 것만으로 검은 후드 사신의 할퀴기를 피했다.
그 모습은 춤을 추는 것만 같아서, 마치 잘 짜인 프로레슬링 경기로 보일 정도였다.
두 미니 사신의 격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전투는 제1 검의 일방적인 우세로 보였다.
단 한 번도 공격을 허용하지 않은 채, 후드 사신을 계속해서 몰아붙였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후드 사신은 끈질기게 달려들었고, 후드 사신의 한 방은 전세를 뒤집을 힘을 가지고 있었다.
과연 후드 사신의 장작이 먼저 바닥날 것인가, 아니면 제1 검에게 한 방을 먹일 것인가.
경기는 점점 더 흥미진진해졌고, 나는 팝콘을 먹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점점 더 경기에 몰입했다.
그렇게 몰입해서 시합을 구경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쾅!
갑작스러운 충격파가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제1 검이 휘두른 검에서 막대한 장작이 뿜어져 나와, 두 사신은 서로 크게 거리를 두게 되었다.
‘?’
검은 후드 사신은 고개를 갸웃하며 제1 검을 바라보았다.
후드 사신의 표정에는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지?’라는 의문이 가득했다.
조금 전, 제1 검은 후드 사신을 떼어내기 위해 무리한 공격을 감행했고, 그로 인해 제1 검의 장작이 뭉텅이로 사라져 버렸으니까.
그러나 이상하게도 제1 검은 후드 사신을 바라보지 않고 있었다.
그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후드 사신도 천천히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관중석에 있던 다른 미니 사신들도 하나둘씩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뭐지? 왜 저러지?’
몰입이 깨진 나는 의아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콜로세움은 갑자기 적막에 휩싸였고, 아이들의 시선은 모두 하늘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적막 속에서 팝콘을 씹으며, 경기가 재개되기를 기다렸다.
그 순간, 제1 검과 후드 사신을 비롯한 모든 미니 사신이 일제히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엄마! 큰일이야!’
‘큰일 났어!’
‘빨리 가야 해!’
아이들은 다급한 표정으로 내 주변에 몰려들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나는 당황한 채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때가 돼서야, 멀리서 흘러들어오는 아이들의 의지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엄마. 배신자가 나타났어.’
‘으앙!’
‘엄마아!’
경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아이들이 보내는 신호를 놓치고 있었다니.
깜짝 놀란 나는 주변의 미니 사신들을 데리고, 아이들이 부르는 곳으로 즉시 순간 이동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서 마주한 광경은 상상 이상으로 혼란스러웠다.
‘????’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언제나 해맑은 모습을 보이다가도, 해로운 오브젝트를 보면 단호한 모습을 보였던 황금 사신들이 불안에 떨며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황금 사신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그 혼돈의 중심에는 한 황금 사신이 있었다.
분명히 황금 사신이었지만, 그 모습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황금 사신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 얼굴에는 광기가 가득해서, 마치 다른 생명체에 몸을 빼앗긴 것 같았다.
이 이상한 황금 사신은 무자비하게 다른 황금 사신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공격 방식은 더욱더 충격적이었다.
황금 사신끼리는 절대 사용하지 않던, ‘겹치기’를 사용해서 다른 황금 사신을 습격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공격을 받은 황금 사신들은 몸 일부가 사라진 채 여기저기 널브러진 상태였다.
다친 황금 사신들의 몸에서는 마치 핏물처럼 장작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우선 널브러진 아이들을 끌어안고, 장작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
후배 2호의 눈앞에 나타난 여인의 모습에 그녀는 숨을 들이켰다.
그 얼굴은 너무나도 익숙했다.
세희 연구소의 예린과 똑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성녀의 한쪽 눈이 마치 유리처럼 깨져 있었던 것이다.
“그 얼굴은…?”
후배 2호는 놀란 목소리를 겨우 삼켰다.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의문과 불안이 뒤엉켰다.
유리처럼 깨진 눈을 가진 인간이라니, 그 모습은 분명 정상적이지 않았다.
분명 ‘성녀’도 오브젝트인 거겠지.
성녀라 불리는 이 여인은 후배 2호를 바라보며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이런 곳에서 이야기하긴 좀 그러니, 들어오세요.]
성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 의미는 마음속으로 전해져 왔다.
후배 2호는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성녀를 따라나섰다.
그들이 지나가는 길은 기묘했다.
검은 천으로 온몸을 감싼 사람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그들은 후배 2호와 성녀를 보지 못하는 듯했다.
마치 특정한 순간을 재생하는 동영상 속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들은 깊숙한 곳에 있는, 아무도 없는 방에 도착했다.
성녀는 우아하게 자리에 앉았고, 후배 2호도 그녀를 따라 앉았다.
[마실 것조차 내어드릴 수 없어서 죄송합니다.]
성녀는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은 허상이기에 어쩔 수 없다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후배 2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든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지만, 그녀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계약서를 확인할 수 있을까요?]
성녀의 목소리가 다시 마음속에 울렸다.
후배 2호는 주저 없이 계약서를 꺼내 보였다.
성녀는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작게 미소 지었다.
[맞네요. 램프의 남자의 대리인. 혜진 씨.]
성녀의 눈빛이 깊어졌다.
[제가 부탁드릴 일이 있어요.]
성녀는 서랍에서 한 장의 그림을 꺼내 후배 2호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녹색 옥으로 만들어진 옥판이었다.
[이것은 우리 ‘교단’의 가장 중요한 성물이었어요.]
그림 속 옥판은 신비로운 빛을 발하는 듯했고, 표면에는 알 수 없는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잃어버리고 말았죠. 이제는 더 이상 되찾을 수 없는 곳에 남겨져 버렸다고 해요.]
성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후배 2호의 눈을 바라보았다.
[제 첫 번째 소원은 바로 이 옥판을 찾아와 주시는 거예요.]
하지만 소원을 말하는 성녀의 목소리는, 성물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SDVIMVFoanVzY1YwSVhjamMzUkt1U3pnY1pRaU5OZVlrWGsxQUxDREd6eVB0czBTWU9iLzNmcWFxWm9kWEpReA
[할 수 있으시겠어요, 혜진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