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대지에 도착한 나는 상처 입은 황금 사신들을 품에 안고, 그 아이들의 몸에 장작을 잔뜩 불어넣었다.
회복된 아이들이 평화롭게 잠든 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의지를 전했다.
‘괜찮아, 곧 나아질 거야.’
아이들을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은 후, 나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갑자기 미쳐버린 황금 사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난동을 부리던 황금 사신은 ‘겹치기’로 주변 황금 사신들을 공격해 자기 양팔을 소모해 버렸다.
그리고 전기가 끊긴 기계처럼 픽하고 쓰러지더니, 또 다른 황금 사신이 광기에 휩싸여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
‘설마 광견병처럼 전염되는 건가?’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이런 현상을 ‘배신자’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황금 사신들은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닌지, 능숙하게 거리를 벌리고 대처를 시작했다.
그렇게 잠깐 관찰하다 보니, 희미하게 해로운 오브젝트의 악취가 느껴졌다.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살피자, 그 해로운 오브젝트의 기척은 다른 곳에서 느껴지지 않았다.
태양의 향기에 가려져 있었지만, 악취는 난동을 부리는 황금 사신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빙의형 오브젝트?’
황금 사신은 정신 오염에 강해서 빙의할 정도면, 빙의에 특화된 특급 오브젝트 수준은 되어야 할 텐데….
나는 그런 의문을 품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광기에 사로잡힌 황금 사신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나는 광기 황금 사신과 눈이 마주쳐 버렸다.
그러자 광기 황금 사신은 정말 상상하지도 못한 공포를 마주한 것처럼 눈을 크게 뜨더니, 풀썩 쓰러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해로운 기척도 함께 사라졌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쓰러졌던 황금 사신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황금 사신.
광기에 젖지 않은, 해맑은 미소의 황금 사신이었다.
아이들이 잔뜩 다쳐서 그런지, 속에서 천천히 분노가 쌓여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화를 참고 싱긋 웃으며 황금 사신들에게 의지를 보냈다.
‘누가 배신자를 발견했다고 의지를 보냈어?’
몇몇 황금 사신들이 칭찬을 바라는 듯 히히 웃으며 다가왔다.
그 아이들이 충분히 가까워지자, 나는 강한 의지를 뿜어냈다.
‘배신자가 아니잖아!’
그리고 성급하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아이들을 전부 댖지로 만들어버렸다.
‘앙대!’
황금 사신들은 통통해진 채, 바닥에 널브러져 버렸다.
잘못을 한 황금 사신들을 처벌한 뒤, 나는 사나운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감히 내 아이들을 건드리다니….
게다가 도망치기까지 해?
나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그리고 반쯤은 내 영역이 되어버린 공간이 내 감정에 반응해, 희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엄마 화났어!’
‘큰일이야!’
나는 황금 사신들의 소란을 무시하고, 지구 전역으로 의지를 퍼트렸다.
‘모두 모여! 지금부터 수색이다!’
그리고 살짝 으름장을 놓듯 덧붙였다.
‘특별한 이유 없이 오지 못한 녀석은 3배 댖지형이야!’
그러자 순식간에 수많은 미니 사신이 내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주황 왕관 사신.
평소에는 거의 오지도 않으면서, 이럴 때는 가장 먼저 나타나네….
미니 사신이 충분히 모이자, 나는 아이들을 주변에 풀어놓았다.
‘자, 흩어져서 해로운 오브젝트를 찾아!’
***
텍사스의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초록 사신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눈은 지상을 향해 있었지만, 마음은 멀리 떨어진 곳에 가 있었다.
‘인간이랑 놀아야 하는데….’
초록 사신은 한숨을 내쉬었다.
애착 인간이 맛있는 음식을 잔뜩 준비해 파티를 시작하려는 순간이었다.
향긋한 바비큐 향이 코끝을 스치는 것 같았고,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애착 인간과의 즐거운 추억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밍….”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엄마는 보기 드물 정도로 화가 나 있었고, 그 분노는 지구 반대편에서도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빨리 찾고, 인간한테 가야지.’
초록 사신은 평소와는 다르게 깊은 집중력을 발휘하며 사방을 샅샅이 뒤졌다.
눈빛은 고양이처럼 날카로워졌고, 움직임은 더욱 민첩해졌다.
지상은 말 그대로 오브젝트의 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메뚜기 떼처럼 황금 사신들이 지상을 뒤덮고 있었다.
황금의 물결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해로운 오브젝트를 찾아 갈아버리고 있었다.
게다가 얼마나 열심인지, 인간들이 황금 사신을 보고 반가운 표정으로 과자를 흔들어도 끄떡없었다.
평소라면 수십의 이탈자가 생길 상황이었지만, 겨우 한둘 정도만 무리에서 이탈할 뿐이었다.
초록 사신은 계속해서 하늘을 날아다녔다.
그리고 감각을 최대한 펼쳐, 지상의 모든 것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한참을 날아다니던 중, 갑자기 초록 사신의 더듬이가 꿈틀거렸다.
‘이건….’
황금 사신들이 이미 휩쓸고 지나간 건물.
황금 사신들은 느끼지 못한 것 같았지만, 건물 안에는 분명 수상한 기척이 있었다.
물질도 없고, 육신도 없이, 그저 존재하기만 하는 이상한 생명체였다.
초록 사신은 천천히 그 기척의 근원지로 접근했다.
주변에는 환하게 빛나는 가로등이 줄지어 있었지만, 유독 어둠에 잠긴 듯한 건물 하나가 보였다.
창문을 통해 그 안을 들여다보던 초록 사신의 눈이 커졌다.
찾았어!
초록 사신은 주저 없이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여기 이상한 오브젝트가 있어!’
***
한 남자가 있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는 일상.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해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삶.
그 속에서 한 남자는 작은 소원을 품고 있었다.
두 발로 자유롭게 세상을 돌아다니고 싶다는, 누군가에겐 당연할 수 있는 그 소망이 그에겐 꿈같은 일이었다.
어느 흐린 날, 그의 방에 정체불명의 존재가 나타났다.
얼굴은 연기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인간의 형상을 한 오브젝트였다.
수많은 램프와 매캐한 연기를 몰고 온 이 존재는 남자의 귓가에 속삭였다.
남자의 작은 소원을 이루어 주겠다고.
그 순간, 절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남자의 이성은 경고음을 울렸다.
수상하기 그지없는 제안이었다.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오브젝트가 선사하는 독이 든 사과와 같은 제안이었다.
하지만 절박함이 이성을 압도해 버렸다.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이겠습니다.”
‘램프의 남자’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그 존재는 만족스러운 듯 웃음 지었다.
그러고는 고풍스러운 램프 하나만을 남긴 채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방은 다시 적막에 휩싸였다.
텅 비어버린 방, 그리고 굳게 닫힌 문.
마치 한낮의 꿈 같은 일이었지만, 침대 옆에 놓인 램프가 현실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램프가 속삭였다.
[자유롭게 만들어 줄게.]
그 순간, 남자는 투명한 연기가 되어, 다른 사람의 육신으로 갈아탈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죄책감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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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빌고 또 빌며 빌린 몸으로 한 시간 정도 걸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느낀 행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따스한 햇살, 바람, 그리고 자유.
그러나 자기 몸으로 돌아왔을 때 느껴지는 무력감과 고통은 더욱 강렬해졌다.
남자는 깨달았다.
이것은 마약과 다름없었다.
오브젝트가 만든 교묘한 함정이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건, 남자는 이것을 절대 그만두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자신이 그 자유의 포로가 되어버렸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빙의의 횟수는 늘어갔다.
처음의 죄책감은 사라지고, 대신 더 강한 자극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그리고 빙의를 하면 할수록 그 반동으로 원래의 몸은 점점 망가져 갔다.
잠시라도 자기 몸에 머무를 때마다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그것도 오브젝트가 준비한 함정이겠지만, 남자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해.’
남자의 이성은 서서히 무너져 갔다.
처음 느꼈던 그 해방감을 다시 느끼기 위해 그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자극을 위해 사람을 죽이게 되었을 때, 남자의 원래 몸도 죽어버렸다.
‘아아,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구나.’
하지만 이상하게도 후련했다.
고통스러운 감옥, 죽음으로부터의 해방.
그는 이제 완전한 자유를 얻은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남자는 극도의 공포에 빠져있었다.
‘어째서 회색 사신이 나타난 거지?’
그는 오브젝트 사건으로 의심받지 않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미국의 오브젝트 협회가 얼마나 유능한지 알기에, 그는 조그마한 수상함도 남기지 않으려 했다.
찾아온 황금 사신들에게 공포를 느끼게 해서 도망치게 만들려고 했을 뿐인데….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정말 괜찮을 거야.’
끊임없이 되뇌며, 그는 이제는 미라가 되어버린 자신의 시체 위를 서성였다.
그 순간, 밝은 유리창 너머로 무언가 그림자가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남자의 심장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마치 그 그림자는 죽은 자를 마중 오는 저승사자의 모습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