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를 따라 시선을 옮기자, 끝없이 뻗은 아스팔트 도로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도로 양옆으로는 황량한 초원이 펼쳐져 있고, 이따금 키 작은 관목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멀리 보이는 언덕들은 흐릿한 실루엣으로 밤하늘과 맞닿아 있어, 마치 세상의 끝을 보는 듯한 기묘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생각보다 쌀쌀하네.’
나는 아스팔트 바닥에서 전해지는 냉기를 느끼며, 의지를 중얼거렸다.
사막의 밤은 춥다고들 하니까, 황량한 평야가 펼쳐진 이곳도 비슷한 걸까?
지나가는 차 한 대 없이 적막으로 가득한 도로.
때때로 강한 바람이 불어와 먼지를 일으켜 텅 빈 도로를 가로질렀다.
만약 지금이 낮이었다면, 그야말로 서부 영화 속에서나 볼법한 풍경이었을 텐데….
조금 아쉬웠다.
뚜방뚜방.
내 발걸음 소리만이 적막 속에서 울려 퍼졌다.
미니 사신들의 연락을 기다리며 걷다 보니, 도로변에 서 있는 녹슨 도로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 황량한 풍경 위로 튀어나온 유일한 인공물이었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표지판을 올려다보았다.
영어로 쓰인 표지판이라 그런지, 뭐라고 쓰인 건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미니 사신들의 위치로 유추해 보면 대충 미국인 것 같긴 한데….
시선을 옮겨 하늘을 올려다보니, 반짝이는 별빛과 형형색색의 달빛이 나를 향해 내리쬐고 있었다.
낮 정도는 아니어도 충분한 빛을 보내주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미니 사신들의 연락을 기다렸다.
‘언제쯤 찾아내려나….’
한가한 모든 미니 사신을 동원했으니, 머지않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오브젝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간식으로 만들어서 괴롭혀 줘야지.’
어떤 식으로 괴롭힐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초록 사신의 호출이 느껴졌다.
‘엄마! 여기 이상한 오브젝트가 있어!’
드디어!
초록 사신의 호출인 걸 보면, 확실히 뭔가를 발견한 것이 분명했다.
이제까지 황금 사신의 호출은 몇 번 있었지만, 별 이상한 것들을 수상하다고 보고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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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미러를 보고 ‘이쪽에서는 보이는데, 이쪽에서는 안 보여!’라고 보고하는 등, 쓸모없는 보고가 잦았다.
물론 그런 허튼소리를 한 황금 사신은 모두 댖지가 되었다.
나는 커다란 기대감을 안고 초록 사신이 있는 곳으로 순간 이동했다.
‘….’
도착한 곳에는 유독 어두워 보이는 건물이 서 있었고, 그 앞에 초록 사신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에는 환하게 빛나는 가로등이 줄지어 있었지만, 그 건물은 마치 빛을 잡아먹는 듯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엄마! 이상한 생명이 있어!’
초록 사신은 물질도 없고 육신도 없이 그저 존재하기만 하는 생명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확실히, 초록 사신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느꼈던 해로운 오브젝트의 기척도 그런 느낌이었다.
‘잘했어.’
나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 초록 사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초록 사신은 할 일을 다했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뭔가 바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미니 사신 정원으로 돌아가 버렸다.
나도 손을 흔들며 초록 사신을 배웅한 뒤, 천천히 문제의 건물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매캐한 연기가 코끝을 찔렀다.
미묘한 철의 향과 섞인 흐릿한 가스의 휘발성 냄새였다.
그것은 가스램프의 냄새였다.
나는 분명 이 냄새를 어디선가 맡아본 기억이 있었다.
끼익. 끼익.
작지만, 적막을 부수는 소리.
내 발바닥이 바닥을 밟자, 나무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건물 내부에 울려 퍼졌다.
현관을 지나 거실로 들어가자, 덩그러니 걸려 있는 두 개의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목을 매단 채, 죽어 있는 사람의 시신이었다.
무언가 오브젝트의 작용이 있었는지, 시신은 썩지 않고 미라처럼 말라 있었다.
아무런 흔적도 없는 기묘한 자살 현장.
유서도 없고, 저항의 흔적도 없고, 그밖에 특이한 점이라곤 전혀 없었다.
마치 아침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목을 매단 것 같았다.
나는 시신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램프의 냄새와 해로운 오브젝트의 악취를 느꼈다.
‘빙의형 오브젝트였으니, 아마 이 사람들에게 빙의해서 자살시킨 것 같네.’
나는 이 집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시신을 뒤로 하고, 건물 깊숙한 곳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마치 악이 도사리고 있는 던전처럼 어둠은 점점 짙어져 갔다.
그리고 어디선가 불길한 램프의 냄새가 풍겨왔다.
그 끝에는 어둠에 삼켜진 방문 하나가 있었다.
<■ ■ ■ ■의 방.>
집 안의 방마다 가구와 잘 어울리는 명패가 붙어 있었는데, 이 방문의 명패에는 이름이 손톱으로 긁힌 듯 지워져 있었다.
방 손잡이를 잡자, 전신으로 서늘한 기운이 퍼져 나갔다.
마치 바람이 불어오는 듯, 방문에 달라붙은 어둠이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그런 불길한 신호들을 무시하고 그대로 문을 열어젖혔다.
[그어어!]
그 순간, 미라처럼 말라붙은 인간의 형상을 한 연기 덩어리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재빠르게 공간을 붙잡아 연기를 허공에 못 박았다.
‘이건….’
유령처럼 보이는 연기 덩어리였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유령이 아니었다.
인간이었을 수는 있었지만, 연기에는 인간의 흔적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네가 우리 아이들을 괴롭힌 녀석이구나.’
나는 사나운 표정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공간을 조이기 시작했다.
[!!!!]
연기 덩어리는 고통스러운 듯 온몸을 비틀었지만, 내가 붙잡은 공간 속에서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고통받으며 천천히 죽어갈 뿐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연기 덩어리가 소멸하기 직전까지 괴롭힌 후, 나는 온 힘을 다해 그것을 짓눌러 버렸다.
[그어어….]
마치 드디어 해방된다는 표정으로 사라져 가는 연기 덩어리를 향해, 나는 의지를 보냈다.
‘죽음으로도 도망칠 수는 없을 거야.’
너에게 황금 사신들을 괴롭힌 값을 다 받아내지 못했으니까.
***
남자는 눈을 떴다.
온몸을 휘감고 있던 차가운 사슬들이 사라진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무거운 족쇄에서 벗어난 새처럼, 그는 가슴 깊숙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나 그 공기는 어딘가 허망하고 비어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끝없는 어둠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발밑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위를 올려다보아도 별 하나 보이지 않는 깊은 밤하늘뿐이었다.
그러나 이 고요한 어둠 속에서 남자는 오랜만에 편안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끔찍한 기억들이 밀려들었다.
램프의 속박에서 벗어난 지금, 그는 자신이 저지른 수많은 죄악을 마주하게 되었다.
타인의 육신을 빌려 자유를 누렸던 날들, 그리고 그 대가로 빼앗아 간 무고한 생명들.
“내가… 어떻게 그런 짓을….”
그의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허공에 흩어졌다.
후회와 자책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는 깨달았다.
램프의 능력은 단순히 사람을 좀먹는 마약이 아니었다.
램프를 받아들인 순간부터, 그는 이미 인간이 아니게 되었던 것이다.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끝없는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책망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아, 이곳이 지옥이구나….”
이런 식으로 영원히 자책하게 되는 걸까?
하지만 남자는 오히려 이편이 더 낫다고 여겼다.
남자는 이것이 부모님을 포함해서 그가 죽인 사람들에 대한 속죄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며, 눈앞에 밝은 빛이 서서히 퍼져나갔다.
처음에는 희미했지만, 점점 더 강렬해지며 어둠을 밀어내었다.
눈을 들어보니, 문처럼 사각형으로 잘려진 공간의 틈새에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빛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였다.
호기심에 이끌려 그 틈을 통해 보이는 세계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파스텔톤의 하늘 아래, 달콤한 향기가 가득한 대지와 과자로 만들어진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설탕으로 만들어진 새가 구름 고기와 함께 하늘을 누비고 있었고, 젤리로 만들어진 꽃들은 바람에 살랑거렸다.
마치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풍경이었다.
‘저곳은… 천국인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틈을 넘어가면, 평화로운 세계의 일원이 되어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을 느끼는 순간, 무해해 보이는 무언가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뀨.
하얀 피부에 둥글고 귀여운 모습의 그 존재는 마치 요정의 나라에서 온 전령처럼 보였다.
그 하얀 전령은 빨리 오라고 재촉하듯이 계속해서 ‘뀨’를 외쳤다.
남자는 잠시 망설였다.
저 세계는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마음 한편에서는 그곳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나에겐 저곳에 갈 자격이 없어.’
자기 손에 묻은 수많은 죄악을 떠올리며, 그는 결심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려 다시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이곳에서 영원히 속죄하며 살아가야 해.’
그의 목소리는 결연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씁쓸함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이 받아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무언가가 그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불길한 노란 빛으로 타오르는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신처럼 거대하고 끔찍한 무언가의 시선이었다.
‘!’
남자는 공포에 질려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이미 그 눈동자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눈동자를 보는 순간, 요정의 나라는 더 이상 천국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 안돼!’
남자는 큰 소리로 외쳤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저항하려 해도 몸은 움직이지 않았고, 마음속에는 극도의 공포가 밀려왔다.
그렇게 틈 밖으로 강제로 끌려 나가는 순간, 남자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다.
뀨히히.
아득해지는 정신 속에서, 요정의 전령과 어울리지 않는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 것 같았다.
***
검게 물든 하늘은 무한한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달은 존재하지 않았고, 대신 형형색색의 별빛이 희미하게 하늘을 수놓았다.
그 별빛은 마치 오래된 존재의 잔상처럼 흐릿하게 반짝이며, 불길한 기운을 퍼트리고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폐를 자극하는 독한 석유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그 냄새는 공기 중에 진하게 퍼져 있어 어지러움을 느끼게 했다.
후배 2호는 손으로 코와 입을 가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발밑에 펼쳐진 땅은 메마르고 갈라져 있었으며, 곳곳에 검은 액체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절벽 가장자리에 서서 밑을 내려다보았다.
찰랑거리는 검은 액체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절벽 위로 솟구칠 듯한 기세로 넘실거렸다.
그 액체는 단순한 물이 아니라, 이 행성을 삼켜버린 ‘진화액’이었다.
후배 2호는 ‘성녀’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이 멸망한 검은 행성에 도착해, 가장 높은 산 정상에 발을 디뎠다.
차가운 바람이 그녀의 피부를 스치며 지나갔고, 귓가에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희미한 속삭임이 맴돌았다.
그것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별빛들의 속삭임처럼 들렸다.
하늘과 땅, 그리고 공기마저도 어둠에 잠식된 이 세계의 풍경은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여기서 옥판을 찾을 수 있을까?’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나아갔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메마른 땅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났고, 시야가 닿는 곳은 어디까지나 검은 액체의 수평선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