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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3

인터넷 세상에선 수많은 밈이 탄생하고, 또 그만큼 많은 밈이 사라진다.

그러나 수많은 밈이 사라지는 와중에도 꿋꿋하게 명맥을 유지하는, 커뮤니티 속 물고기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가 있었으니.

[둘 중 누가 더 잘함?]

바로 ‘줄 세우기’라는 놀이였다.

놀이의 대상은 매번 달랐다.

때로는 유명한 가수들일 때도 있었고, 실력 있는 프로게이머일 때도 있었으며 심지어 영화나 게임처럼 형체가 없는 것이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건 실리아 온라인도 예외가 되지 못했다.

인기가 많다는 건 즐기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고, 그 말은 곧 놀이를 하는 사람도 많다는 뜻과 일맥상통했으니까.

[그래서 누가 제일 잘 싸움?]

역시 유키가 정배인가??

[댓글]

-유키는 걍 레벨이 높은 거지 잘하는 건 아니지 않나?

┗??? 이건 또 뭔 헛소리?

┗유키 PVP 승률은 알고 하는 말이냐?

┗나도 레벨 높으면 다 썰고 다닐 수 있는데?

이렇게, 플레이어 중 가장 강한 게 누군지 궁금해하는 건 상당히 흔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중엔 이런 사람들도 있었다.

[제일 잘 싸우는 건 모르겠고]

제일 강한 건 저니 아니냐?

싸우다가 질 거 같으면 카나한테 도와달라 하면 됨 ㄷㄷ;

[댓글]

-검사가 아니라 소환사였던 것;

┗검은 ‘취미’일 뿐..

-소환수가 왜 주인보다 세죠?

┗캔따개가 어떻게 주인보다 세죠?

┗???

-가라, 카나! 몸통 박치기!

-카나는 아가야. 카나는 사람을 찢어..

저니는 스펙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강자 반열에 들 수 없는 인물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저니에게 우호적인 저니의 방 시청자들도, 심지어 저니 본인도 그걸 알고 인정했다.

그렇기에 딱히 화젯거리가 되는 일 없이 넘어가는 듯했으나….

사람들의 관심이 생뚱맞은 곳에 꽂혀버렸다.

[근데 카나는 대체 얼마나 센 거임?]

(저니의 시점으로 본 차원수.jpg)

이번에 저니 방송에서 나온 차원수임

덩치가 무슨 웬만한 주택 크기임;

그냥 크기만 크고 약한 거 아니냐고?

(차원수의 레벨과 체력이 표기된 체력바.jpg)

무려 78레벨짜리 차원수였음;

다들 알다시피 웬만한 사람은 동레벨 몹이랑 일대일로 싸우기도 힘들어함

당연히 자기보다 레벨이 높은 몹과 일대일로 싸워서 이기는 건 더 힘들고

그 미친개 유키도 자기보다 레벨이 높은 몹이랑 싸울 땐 상당히 고전함

고작 몇 레벨 차이밖에 안 나는데도ㅇㅇ

그런 걸 생각하면 저 차원수가 얼마나 강한지 대충 감이 올 거임

(카나와 차원수의 싸움.gif)

그런데 카나는 그걸 상처 하나 없이 해치웠음

심지어 딱히 지친 기색을 보인 것도 아님;

물론 같은 레벨이어도 NPC한테 지는 플레이어도 있고, 반대도 있는 만큼 레벨이 강함을 판가름하는 절대적인 요소가 될 순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판단 기준은 된다고 봄

즉, 78레벨 몹을 말 그대로 ‘발라버린’ 카나는 차원수보다 훨씬 레벨이 높다는 뜻임

만약 그게 아니라 해도 78레벨 몹을 바를 정도로 강하다는 뜻이고

사람들이 카나 퍼킬 따보겠다고 한창 레이드 할 땐 정보 부족 때문에 이름이고 레벨이고 표기되는 게 없었는데 이젠 좀 다르려나?

대충 짐작하기로는 엑스퍼트 위 등급, 마스터가 아닐까 싶음

다른 마스터들이 싸우는 걸 보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데이터가 부족해서 확신은 못 함

근데 카나가 마스터가 맞다고 해도 문제인 게, 실리아 세계 사람이 마스터의 경지를 이룩하는 평균 나이는 60대라고 함

재능이 없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재능이 없으면 마스터에 오르지도 못한다고 함

그중에서도 특히 재능 있는, 불세출의 천재라고 불린 NPC들도 대부분 마흔이 넘어서야 마스터에 올랐음

그러니 우리의 작고 소중한 카나가 마스터가 맞다면 둘 중 하나임

하늘조차 모독하는 초초초초초천재병약미소녀라서 어린 나이에 마스터의 경지를 달성했거나.

긴 수련 끝에 깨달음을 얻고 반로환동한 고수거나.

[댓글]

-결론의 상태가?

-병?약

┗아 아무튼 병약하다고 ㅋㅋ

┗그치만 그게 더 꼴리는걸

┗잡았다 요놈

-사실 마스터인 거는 기사들 썰 때부터 반쯤 확정이긴 했지

-그러니까 카나가 사실 합법이었다는 거죠???

┗마구마구 쓰다듬고 만지작거려도 괜찮다는 거죠???

┗이 새낀 진짜 위험한데;

┗목숨이 아홉 개 정도 있으면 가능할 듯?

┗죽어도 살아나면 그만이야~

[이번에 저니 방송 보고 검사로 직업 바꿨다 ㅇㅇ]

(카나리아류 비상.gif)

솔직히 이거 보고 어떻게 참음?

그동안 검사들 싸우는 거 답답하다고 생각했는데 카나가 검 쓰는 거 보고 바로 바꿨음

[댓글]

-원래 직업이 뭐였는데?

┗법사

-얘 검사들 욕하던 새끼 아님?

┗맞음. 그래서 검사들은 파티에 얘 있으면 거르고 봄

-악질마저 교화시키는 그저 빛나 님…

-저거 진짜 지리긴 했지. 실리아 온라인 안 하는 지인들한테 보여주니까 뽕 차서 바로 깔아서 시작하더라

┗약팔이 ㄷㄷ

[아니; 마스터고 뭐고 그게 그렇게 중요함?]

카나가 커엽다는 게 중요하지

그런 의미에서 커여운 카나가 나오는 저니 방송이나 보러 가라

지금 저니가 카나한테 아르키쉬 가르쳐 주는 중임

무표정한 얼굴로 어눌하게 말하니까 갭 때문에 진짜 개 커여움ㅋㅋㅋ

(저니 방송 링크)

빨리 보러 가셈 ㄱㄱㄱㄱ

[댓글]

-왜너만봐왜너만봐왜너만봐왜너만봐왜너만봐

┗나도볼래나도볼래나도볼래나도볼래

┗링크 걸어줬잖아. 가서 보셈

┗일하는 중이야

┗누가 현생 살라고 칼 들고 협박함??

┗ㅆㅂ;

-(카나 감사 콘)

* * *

“이건?”

“사과.”

“잘했어. 그러면 이건?”

“마차.”

“우리 카나, 완전 똑똑하네? 그러면 이건 뭐야?”

“바보.”

“….”

“허접?”

“…아니야! 사람 아니면 인간! 하다못해 저니라고 해야지!”

카나의 대답에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던 저니가 울상을 지었다.

차원수와의 싸움 이후, 저니는 단 한 마리의 몬스터도 보지 못했다.

마치 호위 의뢰를 수행하는 동안 겪을 일들을 이틀 동안 몰아서 겪은 것처럼.

달라진 점은 몬스터 뿐만이 아니었다.

“저, 식사 시간입니다.”

상단 사람들이 직접 그녀와 카나에게 식사를 가져다주질 않나.

“응? 뭔가 다른 분들이 먹는 거랑 다른 거 같은데요?”

“어후, 그럴 리가요. 다른 분들에게도 똑같이 드렸습니다.”

상인들과 용병들이 먹는 것보다 더 호화로운 식사가 나오질 않나.

그 외에도 대놓고 경외심 어린 시선을 보낸다거나, 은근히 와서 말을 붙인다거나 하는 등의 일이 있었다.

카나를 그렇게 대하는 거야 이해가 된다.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오우거나 차원수를 죽인 장본인이니까, 당연히 연을 만들어 두고 싶겠지.

‘그런데 왜 나한테까지?’

그렇게 생각하던 저니였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상황을 정리한 건 카나다.

그리고 카나를 상단에 데려온 건 저니였고.

게다가 저니는 사람들에게 카나가 자기 동생이라고 소개하고 다녔다.

설령 사람들이 그걸 믿지 않는다고 해도 둘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는 건 사실이니 홀대할 수 없었을 거라고 그녀는 추측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확 달라진 대우? 마을 사람들의 보답?

물론 좋다.

하지만 저니에게 있어 가장 큰 수확은 따로 있었다.

‘나한테 아르키쉬를 가르쳐 줘.’

설마 그런 부탁을 할 줄이야.

처음에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어리둥절하던 저니는, 이내 현실인 걸 깨닫고 뛸 듯이 기뻐했다.

표면만 보면 언어를 가르쳐 달라는 부탁이었지만, 그건 단순한 부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카나가 저니를 향해 디딘 작은 한 걸음이었다.

그 후로 저니는 틈이 날 때마다 카나에게 아르키쉬를 가르쳤다.

수업을 처음 시작한 날, 저니는 카나에게 물었다.

‘혹시 아는 아르키쉬 있어?’

수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의 수준을 아는 것.

저니의 물음에 카나가 답했다.

“살려줘. 괴물. 개새끼. 죽어. 아파. 후퇴. 꼬맹이. 으아악….”

“자, 잠깐만!”

줄줄이 나오는 섬뜩한 단어들의 행렬에 저니가 다급하게 카나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마지막은 말이 아니라 비명이잖아.’

저니는 카나가 전쟁에 나가 싸우던 기사였다는 것을 다시금 떠올렸다.

사람은 원래 좋은 말보다 나쁜 말을 더 빨리 배우는데, 전쟁터에서 좋은 말이 오갈 리 없으니 카나가 아는 말이 그런 것들뿐인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무튼, 카나의 아르키쉬 실력이 백지에 가깝다는 것을 안 저니는 글자와 단어 같은 기초적인 것부터 가르쳤다.

사실, 저니도 아르키쉬를 잘 알진 못했다.

그녀도 아르키쉬를 정식으로 배운 게 아니라 원래 하던 것처럼 말해도 게임 시스템이 아르키쉬로 자동 번역 해주는 것이니까.

그렇기에 카나를 가르치려면 저니도 아르키쉬를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라닉에 이어 아르키쉬까지.

순식간에 공부할 게 두 배가 되었지만, 카나가 자신을 의지한다고 생각하니 하나도 괴롭지 않은 저니였다.

“카나, 일부러 그런 거지?!”

“?”

“모르는 척하지 말고!”

“몰라, 나. 아르키쉬.”

“…씨이, 귀여우면 다 봐줄 줄 알아?”

그렇게 생각했으면….

…정답이야.

어눌한 발음으로 말하면서 두 눈을 깜박거리는 카나를 본 저니가 가슴을 부여잡았다.

바보니 허접이니, 분명 다 알고 한 말일 테지만 저 깜찍한 모습을 보니 추궁할 마음이 싹 사라졌다.

“나쁜 말이니까 앞으로 쓰면 안 돼. 알았지?”

“바보?”

“응. 그거 말이야.”

“허접?”

“…그것도.”

“크흠!”

저니가 카나와 함께 아르키쉬 수업을 하고 있을 때, 앞자리 천막 너머의 마부가 헛기침하며 기척을 냈다.

“무슨 일이세요?”

“이제 곧 리베리에 도착합니다.”

“와아, 벌써요?”

기나긴 호위 의뢰의 끝을 알리는 말이었다.

카나 덕분에 긴 시간을 즐겁게 보내긴 했지만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라, 마침내 편히 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저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제 마차의 흔들림 때문에 엉덩이를 찧을 일도 없고, 가수면 모드를 쓸 필요도 없고, 캡슐에 누워 불침번 모드를 쓰고 자는 대신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잘 수 있고….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잔뜩 신이 난 저니가 수업의 끝을 알렸다.

카나는 갑자기 분주해진 저니에게서 시선을 돌려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창문 밖 저 멀리, 리베리의 풍경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I Became a Raid Boss

I Became a Raid Boss

레이드 보스가 되었다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One day, when I came to my senses, I found myself reincarnated in another world. After enduring a rough life post-reincarnation, I thought I could finally settle down, quietly tending to a flower garden in the mountains… …But something feels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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