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닥파닥
파닥파닥
사신이가 신나서 양발을 마구 파닥였다.
사신이의 시선은 하늘로 고정되어 있었다.
사신이의 양팔은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이 허공을 향해 있었다.
티라노사우루스!
사신이와 나는 거대한 공룡 앞에 서있었다.
사실 사신이는 이런 거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 이상으로 좋아했다.
오브젝트로 되살아난 공룡은 생각보다 꽤 많이 발견되는 편이었다.
다만 현재 살아있는 개체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수명 문제도 있고, 사살되는 경우도 꽤 있어서 그랬다.
사신이가 공룡을 좋아할 줄이야, 다음에는 공룡을 잔뜩 격리하고 있는 ‘화성 연구소’라도 데려가야 하나?
화성 연구소로의 사신이 반출 허가,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
흠흠.
공룡에 정신이 팔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남녀노소 누구라도 좋아하잖아?
예린이가 나를 바라보는 표정이 한층 불손해진 것 같은데….
관광을 너무 즐기다보니 점심때가 훌쩍 지나있었다.
나야 아무것도 안 먹어도 멀쩡하지만, 예린은 힘들겠지.
두리번거리며 식사를 할 만한 곳을 찾다보니, 한 연구소 부스가 보였다.
동물원에서 간혹 볼 수 있는 공연장처럼 꾸며둔 곳이었는데,좀 비싸긴 해도먹을거리를 풍성하게 준비해 둔 곳이었다.
자리에 앉아 핫도그 같은 것을 냠냠 먹으면서 연구소에서 준비한 공연을 관람했다.
오브젝트 연구소라서 그런지, 돌고래가 아니라 예티가 공연을 했다.
불붙은 링을 뛰어넘는 예티.
커다란 그네를 타는 예티.
농땡이 피다가 전기로 지져지는 예티.
커다란 공을 타는 예티.
외발자전거를 타다가 떨어져서 전기로 지져지는 예티.
대포에서 과녁을 향해 발사되는 예티.
중간중간 이상한 게 껴있긴 했지만, 꽤 재미있었다.
사실 동물원보다는 서커스에 가까웠는데, 볼만했으니 불만은 없었다.
식사와 공연 관람을 마치고 다시 관광을 시작하자, 여전히 신기한 오브젝트가 많았다.
세종 연구소 부스에서는 딱 한 점의 오브젝트를 전시 중이었다.
<부서지지 않는 큐브.>
<주변에 존재하는 물체를 물리적으로 파괴하지 못하는 상태로 만듭니다.>
<부작용은 보고된 바 없습니다.>
‘와, 물리 면역 부여 오브젝트!’
아직 나에게도 인간의 감성이 남아있었는지, 절로 감탄이 나오는 오브젝트였다.
잠깐만 생각해도 활용 방법이 무궁무진해보였다.
이 정도면 당연히 유명해야 하는 오브젝트인데, 처음 보는 오브젝트였다.
그래서 이유를 찾아보니 불과 한 달 전에 발견된 신상 오브젝트였다.
와 신상!
박람회의 주최자인 정부에서 만든 격리시설도 눈에 띄었다.
주최자인 만큼 화려하고 규모도 상당했는데, 그 중에 한 오브젝트가 심히 위험해보였다.
<훔치지 않는 도둑.>
사람처럼 팔다리를 가지고, 이목구비가 불명확한 오브젝트였다.
격리실 중앙에 멍하니 앉아있기만 해서, 이게 뭐가 도둑이라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드는 오브젝트였다.
<10초 이상 시야 안에 두지 않으면 사라집니다.>
<사라질 경우 가장 가까운 잠긴 자물쇠나 문 앞에 출현합니다.>
<그리고 그 자물쇠를 순식간에 해제하고 다시 사라집니다.>
<이 오브젝트가 열지 못하는 문이나 상자는 보고된 바가 없습니다.>
설명을 읽고 나니, 그 이름이 이해가 되는 오브젝트였다.
시야 안에 두기 위해서, 100명이나 되는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주시를 하고 있었다.
하긴 저걸 시선에서 놓치면 박람회에 출품된 오브젝트가 모두 풀려나는 지옥도가 펼쳐질 테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아니 그전에 이런 박람회에 전시하면 절대로 안 되는 오브젝트 같은데….
사고가 안 날 거라고 생각해서 반입했다고 쳐도 좀 안일한 판단인 것 같았다.
***
사신이의 파닥파닥에 따라서 돌아다니던 중, 최근 유명해진 연구소 ‘트리니티’의 부스가 눈에 띄었다.
한국 최대 규모의 연구소.
한국 최고 수준의 연구소.
연구소 커뮤니티를 가보면 트리니티 소속 연구원들이 거들먹거리는 꼴은 자주 볼 수 있었다.
거기서 출품한 오브젝트는 한 때 한국을 공포에 빠트렸던 오브젝트였다.
일반인들이 부르기로는 짭강철탑.
처음 나타났을 때는 강철탑만큼이나 큰 피해를 줬던 오브젝트.
<자기구>
형상은 반구형 철판 여러 개가 뭉쳐서 구체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었다.
유명한만큼 반출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오브젝트라서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신이도 처음 보는지 흥미진진한 표정이었다.
<주변 반경 1km에서 문명의 전류를 흡수합니다.>
<흡수하는 전류의 양만큼 고속으로 회전합니다.>
<물리적인 방법으로 파괴가 불가능합니다.>
<적합한 방법으로 격리하지 않으면 약간의 예열 시간을 가진 뒤 순간 이동합니다.>
자기구는 강철탑처럼 인류 문명에 적대적인 오브젝트였다.
다만 그 영역은 강철탑에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좁았고, 덜 위협적이었다.
번개나 전기뱀장어의 전류를 제거하지 않고, 문명에 사용되는 전류만 골라서 제거했다.
저런 오브젝트가 순간이동하면서 한국을 들쑤시고 다녔으면 아주 곤란했겠지만 다행히도 해결책은 금세 발견되었다.
한 연구원이 자기장을 걸어주면 손쉽게 자기구의 능력을 봉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트리니티의 격리실만 봐도 자기구 근처에 전자석을 잔뜩 배치해서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신아. 그럼 다음 부스로 갈까?”
사신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사신이의 애기 발을 손으로 잡고 흔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그저 박람회장 구석을 계속 바라만 보고 있었다.
사신이의 표정은 보기 드물 정도로 심각해보였다.
바라보는 방향에는 황금색으로 천천히 점멸하고 있는 황금 나무가 있었다.
저기는 아침에 잠깐 들렸던 부천 연구소 부스가 있는 곳인데….
실적도 없는데 엄청 넓은 부지를 차지해서 이상한 곳이었다.
나무가 점점, 점점 더 밝게 빛나는데?
거슬릴 정도로 나무가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기이한 현상에 다들 나무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 이변이 발생했다.
우웅.
낮게 깔리는 진동음과 함께 잘 보이지 않는 파동이 나무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파동에 닿은 사람들은 끈이 풀린 인형처럼 쓰러지기 시작했다.
경기장 관람석에서 파도타기를 하듯, 정확하게 자로 잰 듯이 동시에 사람들이 쓰러진 것이다.
그 파동은 그렇게 빠르지는 않았지만, 인간보다는 빨랐다.
그 파동이 우리가 있는 곳까지 도달하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무릎에 힘이 탁 풀리고 그대로 머리가 뒤로 넘어갔다.
힘을 주려고 노력해도, 소용없었다.
그저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할 뿐이었다.
아 이대로 넘어지면 사신이가 아플 텐데….
시야는 깜깜해졌고, 소리도 아득해졌다.
뒤로 쓰러지는 내 머리를 누군가가 살포시 받아줬다.
볼에서 느껴지는 사신이의 폭신폭신한 손 감촉을 마지막으로 내 기억은 끊어졌다.
***
황금나무에서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사람들을 잠재우는 파동이었다.
머리부터 쓰러진 예린이의 상태를 확인해보니, 지극히 건강했다.
다만 원인 불명의 수면에 빠졌을 뿐이었다.
볼을 손바닥으로 때찌때찌해봐도 깰 기색은 전혀 없었다.
상황은 심각했다.
동물원처럼 박람회도 역시 징크스를 피하지 못한 것이다.
세희 연구소 부스로 돌아가야 하는데, 예린이를 들고 옮길 근력이 없었다.
예린이를 여기 두면 당연히 죽겠지.
그렇다고 예린이 근처에 계속 머무르면 이번에는 세희 연구소 직원들이 잔뜩 죽을 거다.
모두 잠들어버린 박람회장은 벌써 이변이 생기고 있었다.
텅.
두꺼비집이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전등 빛이 가득하던 박람회장에 어둠이 짙게 깔렸다.
스피커에서 나오던 흥겨운 노랫소리도 끊겼다.
들리는 건 생물형 오브젝트들의 으르렁대는 소리들뿐.
박람회장에서 전기가 사라진 것이다.
자기구가 격리에서 풀려난 건가?
오브젝트들의 탈주는 계속 되었다.
입가에 피를 잔뜩 묻힌 예티 떼들이 그 시작이었다.
자신들을 전기로 지지던 사육사들의 피로 축제를 벌인 예티들은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새로운 사냥감을 물색했다.
저 멀리서 티라노사우루스의 커다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어떤 미친 인간이 격리실 문을 열고 다니는 거야?
예티들은 주린 배를 채우려고 슬금슬금 예린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예린을 노리는 가소로운 예티들의 머리통을 터트렸다.
물리 면역도 없고, 재생 능력도 없는 예티들은 그제야 내 모습을 확인하고는 후다닥 도망가 버렸다.
내 몸이 두 개였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을 텐데….
분신술을 미리 익혀둬야 했던 걸까?
분신이라고 하니 떠오른 능력이 하나 있었다.
미니 황금 사신.
내 마음대로 조종이 안 돼서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판사판의 마음가짐으로 황금 사신을 만들었다.
한 마리.
두 마리.
…
내 주변을 메울 정도로 가득 황금 사신을 만들었다.
나랑 똑같이 생긴 인형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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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사신들은 나를 쳐다보더니, 한 마리가 폴짝폴짝 뛰어서 내게 달라붙었다.
한 마리뿐?
저번에는 나랑 고양이에게 전부 달라붙었는데?
그리고 다른 한 마리는 쓰러진 채 잠든 예린이의 볼에 달라붙었다.
그러고 나서 황금 사신이들은 특별한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역시, 이런 상황에는 도움이 안 되는 능력인 건가?
몇 초정도 두리번거리던 황금 사신이들은 참새가 흩어지듯 일제히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황금의 물결처럼 사신이가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흩어진 사신이들은 한 사람당 한 마리씩 달라붙었다.
한 사람당 사신 한 마리.
1인 1사신.
박람회장에서 쓰러진 사람들에게 달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