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3
바닥에 널부러져서는 기괴한 소리를 내는 마녀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메이스로 내리 찍어 주었다.
메이스에 묻은 것을 털어내고 있자니 저 멀리 있던 조이와 제이콥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괜찮아요?”
‘물론이에요.’
“얼빵 영애. 제가 저런 허접한 녀석한테 당할 거라고 생각하나요?”
“그렇지만 다쳤잖아요.”
피해가 없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다.
마녀의 패턴을 완벽하게 익히고 있긴 했지만 마녀와 나 사이에는 분명 스펙의 차이가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괜찮다.
내게 이 정도는 상처 축에도 끼지 못한다.
차라리 포셀하고 대련을 할 적에 다친 게 이것보다 더 심할 걸.
걱정스러운 듯 나를 바라보는 조이를 향해서 웃음을 지어 주었다.
‘괜찮아요.’
“허접한 당신한테 걱정 받을 정도로 전 약하지 않아요. 얼빵 영애.”
“…하. 알겠어요. 망나니 영애님.”
걱정해줘도 지랄이라는 생각이 전해진 것 같은 느낌이지만 기분 탓이겠지.
나는 두 사람을 데리고서 안 쪽으로 이동했다.
채 몇 분 지나지 않아서 길목의 한 가운데에 이 실험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하얀 색의 석상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안전구역을 의미하는 증표다.
“여기가 안전구역이군요.”
“그럼 저희 이제 여기서 구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네…’
“그래요. 느려 터진 허접 아카데미의 구조대를 기다리죠.”
나는 방패와 메이스를 내려놓고서 벽에 등을 기댔다.
지금 이 파티의 지휘를 맡은 건 나이기에 내가 먼저 편안한 모습을 보여 줘야 다른 둘도 안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처음엔 조이나 제이콥이나 쉬어도 되는 지를 고민하는 듯 했지만 이내 긴장보다 체력의 회복이 더 중요하다 생각했는지 나와 마찬가지로 벽에 기댔다.
으으. 던전에 들어오고 나서 꽤 시간이 흘렀는데 왜 이렇게 구조가 늦는 거야.
한시라도 빨리 이 음침한 곳에서 탈출하고 싶은데.
<여아야.>
‘왜요.’
할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순간 흠칫했다.
이 던전에 떨어지고 나서부터 할배가 나를 부를 때는 언제나 안 좋은 일이 일어날 때밖에 없었으니까.
안전구획에 도달한 이상 안정이 보장된 거나 마찬가지니 걱정할 필요가 없단 걸 알지만.
마냥 안심을 하기엔 오늘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
<저 바깥에서 이 곳을 지켜보는 놈이 있다만.>
지켜본다고요?
할배의 말에 따라 시선을 돌리자 아르고스 한 마리가 안전구획의 영역밖에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기이한 일이었다.
아르고스는 경비다. 한 곳에 가만히 있지 않고 꾸준히 정해진 장소를 돌아다니며 침입자를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 녀석이 왜 가만히 서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단 말인가.
내가 생각을 거듭하는 동안 저 멀리서 아르고스 한 마리가 더 걸어오더니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를 본 순간 다급히 메이스와 방패를 쥐고서 몸을 일으켰다.
이건 변수다.
게임 속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변수 말이다.
“알른 영애!”
“영애님!”
‘괜찮아요!…’
“뭘 걱정하는 거야? 저 멍청이들이 못 들어오는 거 보이잖아? 괜찮아.”
불안에 떠는 조이와 제이콥의 목소리에 일단 안심하라는 말을 전했다.
이 상황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저들의 마음 속에 자리 잡은 공포가 순식간에 크기를 키워 패닉으로 바뀔 테니까.
우리가 주변을 경계하는 동안에도 안전구역의 주변을 둘러싸는 몬스터의 수는 마냥 늘어나기만 했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어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안전구역의 주변을 아르고스가 빼곡이 메우고 있었다.
도주는 불가능.
우리는 독 안에 든 쥐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안전하다.
안전구역의 안에 있으니까.
저들이 침입할 수 없는 곳에 머무르고 있으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거지?
이 세상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이 불길한 직감이 틀리는 꼴을 본 적이 없는 난 입술을 곱씹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준비해라. 무언가가 오는 구나.>
얼마 안 가 저 멀리서 아르고스 무리를 해치며 다가오는 거대한 것을 포착할 수 있었다.
낡아서 해져버린 회색의 거적대기와 그 틈 사이사이로 보이는 썩어 들어가는 피부.
질질 끄는 듯한 다리와 그 육중한 몸을 지탱하는 역겨운 지팡이.
그 주변에 흩뿌려지는 불온한 기색과 얼굴을 가린 천 아래로 비치는 붉은 색의 눈동자.
그를 본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역겹다는 것이었다.
속이 울렁거린다.
단순히 눈을 마주했을 뿐이거늘 생리적으로 견딜 수가 없다.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 눈앞에 있다.
이 세상에 머무는 걸 허락받았을 지조차 의심스러운 무언가가 저 앞에 있었다.
<여아야.>
도망쳐야 해. 어디로?
어디로 가야 하지?
<정신 차려야 한다.>
아르고스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데 어디로 도망친단 말인가.
그런 건 불가능 해. 그렇다면 도망치기 위해선.
<여아야!>
“흐으읍.”
공포극복이 발동하며 나를 현실로 되돌려 주었다.
<괜찮으냐?!>
‘그럭저럭요.’
‘연금술사’가 지닌 패시브 스킬. 정신오염이 이렇게나 위험한 거였어?!
게임 속에선 적당한 정신계 스킬 하나를 쥐어주면 버틸 수 있는 스킬에 불과했는데!
“우웨에엑.”
구토를 하는 소리에 뒤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 손으로 자신의 목을 쥐고 있는 제이콥과 바닥에 주저앉아 소속을 게워내는 조이의 모습이 보였다.
씨발. 좆됐네.
나와는 달리 정신계 스킬이 없는 이 둘은 연금술사가 지닌 정신 오염에 대응하지 못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스스로의 손에 목숨을 잃고 말 거야.
<기절시켜라.>
‘네?’
<미쳐서 죽는 것보단 기절하는 게 낫다.>
할배의 말이 옳았다.
판단을 끝마친 즉시 방패로 제이콥의 머리를 후려쳐 날려버렸다.
한 방에 제대로 기절을 시킬 수 있도록.
그리고 나서 조이의 뒤통수를 때려 그녀를 잠재워 준 후 앞을 바라보았다.
<금기에 몸을 던진 미치광이라니. 저런 위험한 것이 왜 여기에 있는 것이냐.>
‘그야 저게 이 던전의 보스니까요.’
연금술사.
스스로가 지닌 흥미를 해소하겠다는 목적으로 금기에 몸을 바친 자.
그 죄악 때문에 봉인 당했으나 아그라의 눈에 띄어 던전의 주인으로 간택받은 자.
자신의 거처에서 연구를 즐겨야 할 저 미치광이가 어째서 빠져나온 것일까.
우리 셋 중에서 저 놈이 눈여겨 볼만한 실험체는 없을 터인데.
안전구획의 바로 앞까지 도착한 연금술사는 가만 내 얼굴을 보다가 느긋이 입을 움직였다.
“날 보고도 미치지 않다니.”
그의 입이 움직일 때마다 정신을 휘젓는 악취가 새어나왔다.
제기랄.
저 아가리에 메이스를 박아 넣어주고 싶네.
“신기하군. 아직 그만한 경지엔 이르지 못한 듯 한데. 역시 아르마디의 사도란 건가.”
아르마디!
주는 것 좆도 없으면서 어그로만 뒤지게 끌어대는 그 무능신이 오늘도 한 건 했구나!
씨발. 어쩐지 아르마디의 자비를 사용할 때마다 아르고스가 바로바로 등장한다 싶었어.
내가 미간을 찌푸리는 게 유쾌했는지 연금술사가 웃음소리를 냈다.
그 웃음소리는 지렁이가 피부를 타고 올라가는 것처럼 불쾌했다.
“실험체여.”
연금술사는 주름이 잔뜩 진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얌전히 나온다면 뒤에 있는 두 잡것은 건드리지 않으마.”
“정신이 썩은 병신이라서 그런가?♡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도 악취만큼이나 썩어있네♡”
주먹감자나 드쇼. 정신병자 새끼야.
내가 점점 메스가키한테 물들고 있기는 하지만 정신은 멀쩡하거든?!
정직이란 단어를 연금술을 이용해 금으로 바꿔먹을 미치광이의 말을 믿어 주겠냐?!
내가 대놓고 도발을 하자 연금술사의 눈에서 안광이 피어올랐다.
미친. 더럽게 무섭네.
근데 니가 열 받으면 어떡할 건데.
너 어차피 안전구역 안으로는 못 들어오잖아!
“아르마디의 권능을 믿는 모양이다만 네가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이 연구실은 던전이지만 동시에 본인의 육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연금술사가 팔을 들어서 보란 듯 주먹을 쥔 순간 좁았던 복도가 커다란 광야로 바뀌었다.
던전조작.
이 괴물이 보스로 나올 때 사용하던 패턴 중 하나.
도대체 뭘 하려는 거지?
이런다고 해서 우리가 안전구역에 있다는 사실이 바뀌진 않잖아.
내 의문에 답을 하듯 연금술사가 쥐었던 주먹을 다시 피자 복도가 원래의 크기로 돌아왔고 그렇게 나는. 아니 우리는 아르고스의 무리 한 가운데로 내던져졌다.
…뭐야?
<여아야! 앞으로 굴러라!>
“나올 생각이 없다면 빼내면 그만이지.”
철벽이 내지르는 비명을 듣고서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그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나의 어깨 위에 무게가 더해지는 게 느껴졌다.
“권능이 모든 걸 해결해주리라 생각지 말거라.”
그리곤 나의 어깨를 타고서 무언가가 스며들었다.
생각을 할 시간도. 저항을 할 틈도 없었다.
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더니 내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돌바닥에 얼굴을 처박았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온 몸이 마비되기라도 한 것처럼 손가락 하나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원랜 너만을 데려가고 다른 둘은 짐승의 먹이로 줄 셈이었다만 생각이 바뀌었다. 반항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자신의 미래를 보여주어야 하는 법이지.”
연금술사가 발을 끄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를 듣자마자 나 자신에게 아르마디의 자비를 사용했다.
오늘까지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나다.
그 중에는 당연히 아르마디의 자비가 지닌 숙련도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아그라의 저주를 해주할 단계에 이르진 못했지만.
바꾸어 말하자면 신적인 수준이 아니고서야 모두 다 해주를 할 수 있단 소리다.
나는 상태이상이 풀리자마자 메이스를 집어 들고서 연금술사에게로 달려들었다.
승기가 없는 것은 안다.
지금의 나로써는 연금술사에게 대응할 수 없음을 당연히 안다.
허나 그를 알면서도 달렸다.
시간을 끌기 위해서.
혹시나 모를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구원이 손길이 내게 닿기를 바라며.
허나 기적이 일어나는 것보단 연금술사가 입은 거적대기의 아래에서 촉수가 쏘아지는 것이 빨랐다.
반응할 수 없는 속도로 쏘아진 촉수가 복부를 후려쳤고 내 몸은 그대로 날아가 벽을 형성하던 아르고스에게 부딪혀 그대로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갑옷을 뚫고서 들어온 고통에 헛구역질을 하고 있으려니 내 손목과 발목을 미끌거리는 것들이 부 잡았다.
거기서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탈출은 불가능했다.
연금술사의 촉수들은 너무도 질겼다.
“포기를 모르는 아해로구나.”
연금술사의 주름진 손이 내 목을 부여잡는다.
썩어 들어가는 중인 그 팔에서 어떻게 이런 힘이 나오는 건지 연금술사가 살짝 힘을 주었을 뿐인데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난 끈기 있는 녀석을 좋아한다. 평범한 놈보다 가지고 노는 맛이 있으니 말이야.”
산소가 점차 희미해지는 게 느껴진다.
머리가 새하얗다.
죽음의 공포를 느낄 겨를조차 없다.
“어떻게 마음을 꺾어볼까.”
씨…발. 좆같은 허접 무능신 아르마디.
날 관음하고 있다면서 이 변태 새끼야.
그럼 도와줘.
네가 축복을 내려 준 인간이 뒤지기 전에 살려 달라고.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잖아.
책임을 져!
설마 던전이 아그라의 구역이라 개입할 수 없단 거야?
그런 거라면 나가 뒤져.
네 무능 때문에 뒤져나간 신도들한테 사죄하면서 자살해 이 허접 새끼야!
띠링.
[도움을 원해?]
정신이 희미해지는 와중에 내 눈 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본 나는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뭐야.
왜 이제서야 등장하는 거야.
아르마디 너 메스가키한테 매도당하면서 즐기는 마조 변태 새끼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