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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30

세희 연구소 깊숙한 곳, 납 인형 격리실.

[안녕.]

어디선가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납 인형의 내부에서 나를 향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설마 납 인형이 자아를 가지고 있었던 걸까?

이전에도 납 인형이 염파로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그저 자아 없이 염원에 휩쓸리는 현상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안녕.]

[안녕.]

[안녕.]

[안녕.]

내가 대답하지 않자, 납 인형의 내부에서는 끝없이 [안녕.]이라는 말이 반복되었다.

기계처럼 감정이 결여된 목소리였지만, 말할 때마다 조금씩 힘이 빠지는 것처럼 보였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끝없이 할 것 같아서, 나는 납 인형에게 의지를 흘려보냈다.

‘안녕.’

그러자 끊임없이 이어지던 [안녕.]의 메아리가 멈추고, 납 인형의 내부에는 침묵과 고요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쉼 없이 염파를 보내오던 녀석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뭐야, 단지 인사를 받아주길 원했던 건가?

나는 의아해하며 다시 물었다.

‘너는 누구야?’

‘납 인형의 자아인 건가?’

하지만 이번에는 그토록 시끄럽던 녀석이 말을 걸어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

혹시 잠들어 버린 걸까?

생각해 보니, “안녕”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것도 꽤 힘들어 보였지.

납 인형이 침묵하자, 나는 시선을 외부로 돌렸다.

납 인형의 근처에는 여전히 하얀 아귀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었다.

다만 전처럼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 아니라 뭔가 눈치를 보는 표정으로 납 인형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 아귀들은 납 인형인지, 아니면 나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듯했다.

눈치 빠른 아귀 하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탁자 뒤에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중 하나를 잡아 올려 한 입 베어 물었다.

뀨힝힝.

그러자 하얀 아귀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얀 아귀들은 염파를 보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 표정과 행동만으로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아마 말로 번역하자면, ‘으악, 회색 사신이다!’ 정도가 아닐까?

히히.

슬슬 도망가는 아귀들을 쫓아가려던 찰나, 머릿속에 익숙한 의지가 들려왔다.

‘엄마! 찾았어!’

전 세계에서 사악한 가스램프를 찾으라고 보냈던 미니 사신의 부름이었다.

나는 회색 사신의 몸으로 돌아와, 나를 부르는 미니 사신을 향해 순간 이동했다.

그렇게 격리실을 떠나는 순간, 등 뒤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잘 가.]

***

순간 이동으로 도착한 곳은 얼핏 보기에는 돌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풍경의 마을이었다.

다만 자세히 살펴보면 마을에서 밖으로 나가는 도로는 붕괴로 인해 막혀 있었고, 마을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그곳에서 약간 화가 난 것 같은 표정의 푸른 사신이 기다리고 있었다.

‘왜 그렇게 화가 났어?’

그렇게 묻자, 푸른 사신은 작은 손가락으로 마을을 가리키며 허공에 문자열을 수놓았다.

<인간이 잔뜩 죽어있어요.>

그렇겠지.

이곳은 가스램프의 냄새와 시체 썩은 냄새로 가득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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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무 얼굴을 찡그리지 말라고, 푸른 사신의 미간을 문질러서 펴주었다.

뚜방뚜방.

푸른 사신을 데리고 마을을 향해 걸어 나가자, 마을 입구에 피로 쓴 글씨가 적혀 있었다.

<절대로 들어오지 마시오.>

피로 쓴 데다가 흉흉한 내용이었지만, 별 의미가 없는 경고문이었다.

그야, 경고문은 인간의 언어가 아니라 오브젝트의 언어로 쓰여있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 이 마을에 도착했다면, 글씨를 읽을 수 없었겠지.

인간이 쓴 경고문 같은데, 정신 오염으로 원래 쓰던 언어를 잊어버린 것으로 보였다.

오히려 나에게는 다행이었다.

나는 오브젝트 언어를 읽을 수 있었으니까.

오히려 영어 같은 거였으면 읽을 수 없었겠지.

나는 피로 쓰인 의미심장한 문구를 지나, 마을로 천천히 들어섰다.

마을 내부는 가스램프의 냄새와 사악한 오브젝트의 기척이 가득했다.

그리고 정면에는 오브젝트들이 시체를 파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서울숲의 괴인처럼 바짝 말라붙고 비틀린 인간 형상의 오브젝트들.

다만 다른 점은 서울숲 괴인과 다르게 썩어 문드러져 악취를 풍긴다는 점이었다.

천천히 걸어 괴물들에게 다가가자, 걸음 소리가 괴물들의 소리 사이에 섞여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괴물들은 시체를 뜯어먹는 것을 멈추고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새빨간 핏물로 물든 입가.

칼날처럼 날카롭고 길쭉한 발톱.

썩어서 말라붙은 살점과 뼈만이 남은 육신.

그리고 괴물들 사이로 보이는 시체.

보기만 해도 끔찍한 괴물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체를 파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나와 푸른 사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물로 만든 바늘 100개!>

그러자 푸른 사신은 깜짝 놀라서, 허공에 문자열을 수놓았다.

마치 화살과 같은 속도로 물로 만든 바늘이 괴물들을 꿰뚫었지만, 괴물들은 그 정도 충격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

깜짝 놀란 푸른 사신을 뒤로하고, 나는 괴물들의 공간을 강하게 찢어버렸다.

달려오던 모습 그대로 토막 나서 바닥을 구르는 썩어 문드러진 뼛조각들.

나는 그런 괴물들을 바라보며, 조금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느껴지는 격에 비해 너무 약해….’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잘게 쪼개져 바닥으로 흩뿌려진 시체들이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꾸르륵.

부풀어 오르는 빵 같기도 하고, 점점 커지는 곰팡이 포자 같기도 한 오브젝트의 시체를 보고 있었더니,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배고프네….’

나는 갑자기 느껴지는 허기에 뱃가죽을 슬슬 문질렀다.

<배고파요.>

푸른 사신도 보기 드물 정도로 배고픈 표정을 지었다.

오브젝트의 부풀어 오른 시체에서는 끝없는 허기를 자극하는 강력한 정신 오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설마 이 정신 오염은 저 징그러운 곰팡이 덩어리를 먹게 하려는 걸까?

그 장면을 상상만 해도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나는 황금색으로 타오르는 장작을 뿌려 흔적도 없이 전부 태워버렸다.

전투력은 약하지만, 정신 오염은 엄청났다.

이 녀석들은 내버려 두면 인간에게 너무 해로운 오브젝트로 보였다.

‘꼼꼼히 처리하는 게 좋겠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가장 근처에 있는 집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오랜 시간 쓰이지 않았는지, 뽀얀 먼지가 내려앉은 집안.

그 안에는 집안처럼 먼지가 내려앉은 시체가 하나 있었다.

푸른 사신은 그 시체를 보고 슬픈 표정으로 눈물을 흘렸다.

황금 사신처럼 펑펑 울지는 않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같이 울고 싶어지는 표정이었다.

시체 근처 식탁 위에는 일기가 하나 놓여있었는데, 일기의 글씨가 내 시선을 끌어당겼다.

내가 읽을 수 있는 오브젝트 문자로 쓰여있었으니까.

확인해 보니 앞부분은 영어랑 닮은 정체불명의 언어로 쓰여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오브젝트 언어로 적혀 있었다.

<오늘 고기를 잔뜩 얻었다.>

<길이 막혀서 식량도 얼마 없었을 텐데, 도대체 어디서 난 걸까?>

<나는 별로 먹지 못했지만, 아이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이들이 배불리 먹어서 행복하다는 내용을 시작으로.

일기는 고기를 잔뜩 먹은 아이들이 갑자기 마르기 시작한다는 걱정.

어느새 자신의 한쪽 팔이 말을 듣지 않고,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한다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그 뒤에는 아이들이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는 이야기도 자주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일기의 내용이 단편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에는 이런 의문이 적혀 있었다.

<그때 우리가 받아온 고기는 도대체 어떤 동물의 어떤 부위였던 거지?>

나는 일기가 놓인 식탁 밑에 놓인 시체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괴물처럼 뒤틀려 날카로운 발톱이 돋아난 팔만 멀쩡했고, 나머지 부위는 모조리 뜯어먹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시체였다.

‘….’

나는 슬퍼 보이는 푸른 사신을 머리 위에 얹고, 마을 내부의 괴물을 꼼꼼히 죽여가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마을 중심을 향할수록 가스램프의 냄새가 강해졌다.

그리고 오브젝트의 기척도 강해졌다.

괴물이 나온 집 벽에는 피로 쓴 글씨가 드문드문 보였다.

<배고파.>

<고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에 도착하자, 아주 많은 괴물이 달려들었다.

그래도 인간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던 마을의 오브젝트와는 달리, 좀 더 뒤틀린 모습이었다.

팔이 4개 달려있거나.

머리가 여럿 달려있거나.

날개가 달리는 등.

인간에서 훌쩍 멀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뀩’으로 흔적도 없이 없애버렸다.

괴물들을 처리하고 건물로 들어서자, 널찍한 로비가 나를 반겨주었다.

그 중앙에는 암세포처럼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살점이 있었는데, 그 살점에 달린 얼굴이 나를 향하더니 말을 걸어왔다.

[왔구나. 배고프지?]

그렇게 나를 향해 반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리다가도.

[아들아, 미안하다. 내가 정말 미안해.]

[오브젝트와 계약 따위 하지 말았어야 했어.]

눈물을 줄줄 흘리며, 후회로 가득 찬 목소리를 흘리기도 했다.

눈물을 흘리는 눈동자는 일그러진 살점으로 차올라, 앞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

나는 그 불쌍한 살덩어리를 바라보며, 양손으로 공간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오브젝트와 계약을 해버린 어리석은 인간에게 최후를 안겨주었다.

내가 양손을 마주치자, 공간이 빠른 속도로 우그러들며 검은 점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검은 점이 사라진 순간, 거대한 살덩어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저, 한 남자의 후회와 슬픔만이 공간에 들러붙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 흘리는 기척을 더듬어 건물 깊숙이 들어갔다.

그러자 깊은 곳에 있는 작은 방 안에서 목적했던 램프가 있었다.

‘해로운, 정말 해로운 오브젝트였어.’

나는 고풍스러운 램프를 내려다보며, 그 램프를 향해 손바닥에서 장작을 떨어트렸다.

황금색 불길이 달라붙자, 고풍스러운 램프는 천천히 검게 변해 흩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이 얼마나 해로운지를 알려주는 것처럼, 황동으로 만들어진 고풍스러운 무늬는 칠흑처럼 검은 가루로 변하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램프는 전부 가루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램프가 있던 자리 옆에는 일지가 하나 놓여 있었다.

일지의 주인은 마을 이장쯤 되는 걸까.

통신과 도로가 막힌 외딴 마을에서 벌어진 일을 적은 일지였다.

굶어서 죽어가는 아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램프의 남자와 계약을 한 이야기였다.

자기 살점이라도 떼어서 먹이고 싶다는 부모의 마음처럼.

자기 살점을 떼어서 먹일 수 있게 되는 램프였다.

나는 그 일지를 전부 읽고 장작으로 불태워 버렸다.

‘….’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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