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치 반복 작업을 하는 것처럼 램프를 장작으로 파괴한 뒤, 램프의 위치를 알려준 검은 사신을 칭찬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램프를 찾았구나. 잘했어.’
그러자 검은 사신은 행복한 표정으로 히히 웃었다.
‘지구에 얼마나 많은 램프를 뿌려둔 거야?’
반대로 나는 도무지 끝나지 않는 램프 파괴 작업에 조금 지친 상태였다.
그렇게 검은 사신의 머리를 슥슥 문질러주다가, 다음 미니 사신을 향해 순간 이동했다.
도착한 곳은 한국 시내의 전자담배 판매점.
그곳에서 아기 황금 사신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엄마아!’
이런 곳에 램프가 있다고?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나는 황금 사신을 향해 램프의 위치를 물었다.
‘이거!’
황금 사신이 가리킨 것은 평범한 전자담배였다.
‘?’
이 황금 사신은 담배 연기가 매캐하기만 한데, 사람들이 자꾸 먹는다고 부른 것이었다.
담배는 연기가 나고, 해로운 데다가, 사람들을 유혹하기 때문에 램프라는 주장이었다.
물론 나는 이 묘하게 논리적인 아기 황금 사신을 댖지로 만들어버렸다.
‘앙대!!’
미니 사신들의 호출에 가보면 램프도 많았지만, 이런 터무니 없는 아이들도 많았다.
사신종 차별은 아니지만, 주로 황금 사신.
물론 다른 미니 사신들도 가끔 그러는 걸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반대로 미니 사신을 괴롭히면서 쉬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댖지가 된 황금 사신의 뱃살을 통통 두들겨 준 뒤, 다음 미니 사신을 향해 움직였다.
***
그렇게 도착한 곳은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꽤 넓은 방이었다.
꾸며진 모습을 보면, 어린아이의 방으로 보였다.
‘이런 곳에 램프가 있다고?’
그렇게 시선을 돌려보자, 시무룩한 표정으로 앉아서 램프를 잡아당기고 있는 검은 사신이 보였다.
그리고 검은 사신 옆에는 침대 하나가 놓여있었는데, 그 침대 위에는 한 소녀가 고풍스러운 램프를 꼭 안고 있었다.
“싫어…. 안 돼….”
그 소녀는 거의 의식이 없어 보였는데도, 검은 사신에게 램프를 빼앗길 수는 없다는 듯이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내가 모르는 언어인데도, 뜻이 이해될 정도로 강렬한 감정을 담은 말이었다.
검은 사신은 슬픈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엄마, 인간이 아파….’
흠.
내가 내려다보니, 소녀는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
마치 장기 이식을 한 것처럼 몸에 성한 장기가 하나도 없이, 전부 뜯어먹힌 상태였다.
그럼에도 수술 자국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면 분명, 램프의 짓이겠지.
게다가 강력한 정신 오염의 흔적이 보이는 것을 보면, 병원에서 검사해도 문제점을 찾지 못할 것이다.
“이게 없으면, 아빠가 죽어버려….”
나는 소녀의 강렬한 의지를 듣고, 램프에서 흘러나오는 힘의 흐름을 되짚어 나갔다.
뚜방뚜방.
크고 넓고, 좋은 집.
게다가 내부를 돌아다니는 직원들이 상당히 많아서, 집은 세심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하지만 램프가 도사린 집이라 그런지, 어딘가 삭막해 보이는 느낌을 풍겼다.
도착한 곳은 지저분하게 종이와 책들이 널려있는 서재였다.
한쪽 벽면에는 영어로 된 신문 기사들이 잔뜩 붙어 있었다.
읽을 수 있는 단어를 이어서 대충 해석해 보니, 전 세계 오브젝트 관련 기사들이었다.
그것도 전부 램프처럼 사람의 소원을 비트는 오브젝트 관련 기사였다.
‘램프의 연구를 하고 있었던 건가?’
그 방구석에는 남자가 한 명,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마치 암세포가 좀먹은 말기 암 환자의 몸처럼 너덜너덜한 남자.
대신 남자의 몸에 자리 잡은 것은 암세포가 아니라, 오브젝트였다.
[계약의 오브젝트, 계약의 악마, 램프의 남자….]
[내가 졌다. 내가 졌으니까, 제발….]
남자는 양손으로 머리를 움켜쥔 채, 오브젝트 언어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남자는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런지, 내가 그의 코앞까지 걸어와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남자의 앞에는 미치광이처럼 오브젝트 언어로 마구 휘갈겨 쓴 종이들이 잔뜩 널브러져 있었는데, 나는 그중 하나를 주워서 읽었다.
<연구하느라, 하나뿐인 딸을 신경 쓰지 못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아니면 램프의 남자와 계약을 맺지 않은 것이 실수였을까?>
<아니, 역시 램프의 남자를 연구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실수였겠지.>
나는 그렇게 종이를 차례차례 주워가며, 오브젝트 언어로 쓰인 종이를 읽어 내려갔다.
그 종이에는 남자의 후회로 가득한 이야기가 잔뜩 적혀 있었다.
<오브젝트 관련 사건을 살펴보던 도중, 한 가지 흥미로우면서 강력한 오브젝트를 발견했다.>
소원을 이뤄주는 램프를 알게 된 남자가 연구를 시작하는 이야기.
<‘램프의 남자는 계약에 묶인 존재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순간, 그 남자가 나에게 찾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램프의 남자가 나타나 연구를 멈추면 보상을 주겠다는 계약을 제시하는 이야기.
<램프의 남자가 제시한 계약을 거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몸이 건강해지기 시작했다.>
<그때는 왜 연구가 잘 풀려서 몸도 건강해진 거로 생각했던 걸까? 왜?>
불규칙한 생활로 망가졌던 몸이 갑자기 건강해진 이야기.
<램프가 딸을 이용하고 있었다. 건강한 딸이 잔병치레를 시작할 때부터, 진작에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야 했어….>
그렇게 계속 후회에 후회를 거듭하던 이야기는, 자기 딸이 램프로 자신을 치료하고 있던 것을 발견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아무리 불러도, 아무리 외쳐도, 아무리 울부짖어도 램프의 남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오브젝트 언어로 휘갈겨 쓴 문서는 끝나 있었다.
나는 다 읽은 종이들을 다시 바닥에 내려놓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딸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죽어가고 있었다.
아빠가 아프지 않길 바라는 딸의 소원으로 아빠는 조그마한 병까지 전부 치료되었지만, 역시 램프의 소원이라고 해야 할까.
몸 대부분이 오브젝트로 변해버린 남자는 붉은 외신의 속삭임을 듣고,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
속삭임에 저항하던 푸딩 사신처럼.
‘흠.’
나는 남자와 딸 모두에게 장작을 쏟아부어 잃어버린 장기를 모두 롤케이크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자 부녀는 모두 조금 핼쑥했지만, 마치 저주에서 풀려난 것처럼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소녀의 품 안에 있던 램프도 태워서 없애버렸다.
램프의 남자가 이렇게까지 한 것을 보면, 이 남자가 위협적이었다는 뜻이었을까?
<‘램프의 남자는 계약에 묶인 존재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남자가 남긴 연구 결과를 머릿속에 잘 담아두었다.
***
송파구 외곽에 위치한 제임스 타워.
뚜벅뚜벅.
제임스는 그 타워 내부 복도를 천천히 걸어 나갔다.
‘….’
제임스 연구소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다운되어 있었다.
다들 일은 전과 다를 바 없이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타워 내부에는 축 처진 분위기가 가득했다.
황금 사신이 사라진 여파가 상당히 심각했다.
다른 색 애착 사신을 가진 직원들도 조심조심 다닐 정도였다.
‘황금 사신들이 빨리 돌아와야 할 텐데….’
장기적으로 볼 때 절대 좋지 않은 일이기에, 제임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주먹보다 작은 황금 사신이 없어졌을 뿐이지만, 제임스가 느끼기에 집무실은 어쩐지 텅 비어 보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자, 새로운 보고서들이 들어와 있었다.
<검은 행성 표면에 이상 현상 관측됨.>
<미니 사신의 새로운 행동 패턴 발견.>
검은 행성 보고서를 열자, 커다란 검은 행성 표면에 붉은색 고리가 퍼져나가는 사진이 보였다.
보고서에는 그 현상이 산불처럼 검은 행성의 표면을 대량으로 태우는 현상으로 보인다고 적혀 있었다.
검은 행성에 있는 생명체의 흔적이나, 오브젝트의 흔적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조그마한 흔적이었지만,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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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행성의 크기를 대입해서 계산해 보면, 저 조그마한 불꽃의 고리는 서울을 뒤덮을 거대한 불길의 흔적이었으니까 말이다.
‘설마 붉은 사신이 사라진 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
제임스는 그런 의문을 남긴 채, 다음 보고서를 열었다.
미니 사신 관측 보고서에는 새로운 미니 사신들의 습성을 소개하고 있었다.
뭔가를 태우기만 하면 쪼르르 나타나는 미니 사신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인터넷 등의 목격담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뭔가를 태울 때 미니 사신이 발견된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그래서 연구소에서 실제로 미니 사신을 부르는 실험을 시행했고, 보고서에 그 결과가 적혀 있었다.
격리실에서 매캐한 연기가 나는 플라스틱을 태우는 실험을 시행하자, 검은 사신이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몇 차례 반복해도 계속해서 나타났는데, 10회가 넘어가자, 검은 사신이 실험자를 때리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보고서는 끝나있었다.
‘회색 사신이 뭔가를 벌이고 있는 건가?’
제임스가 생각하기에 갑자기 연기를 선호할 가능성은 작아 보였으니까.
하지만 제임스도 황금 사신이 없어서 그런지, 머리가 잘 돌지 않았다.
제임스가 피로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황금 사신이 언제나 있던 자리에는 조그마한 아귀가 앉아 있었다.
황금 사신이 대신 놓아두고 간 하얀 아귀.
사람들이 하얀 아귀를 볼 때마다 한숨을 쉬어서 그런지, 아귀들은 색을 황금색으로 물들였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그리고 제임스는 핫초코를 천천히 마시며, 빨리 황금 사신이 돌아오기를 기원했다.
***
미니 사신들의 호출로 정말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정말 많은 곳에 램프가 있었다.
그리고 램프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불행과 죽음이 가득했다.
마치 램프가 바라는 것이 인류의 멸종인 것처럼.
나는 마시멜로 평원에 앉아, 연락을 기다리며 시간을 때우는 중이었다.
여분의 납 인형들을 불러들여서, 마시멜로 평원을 뚜방뚜방 뛰어다니게 하고 있었다.
새로 얻은 빙의 능력을 연습하는 겸, 심심풀이였다.
‘연락이 오질 않네.’
미니 사신이 발견할 만한 램프는 전부 찾아낸 것인지, 벌써 몇 시간째 호출이 오지 않았다.
납 인형이 잔뜩 뛰어다니자, 미니 사신들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행복하게 웃으며 납 인형을 졸졸 따라다녔다.
‘엄마다!’
‘엄마!’
‘달리는 엄마!’
그렇게 마시멜로 평원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더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마시멜로 평원이 조금 황량해 보여….’
황금 사신이 없어서 그렇다기에는 조금 이상했다.
‘흠.’
그렇게 내가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때, 하늘을 꿰뚫는 섬광이 보였다.
[엄마아아!]
지구와 미니 사신 정원, 그리고 공허까지.
모든 곳을 꿰뚫는 강렬한 의지의 외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