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섬광이 어둠을 가르며 하늘을 수놓았다.
지평선의 끝까지 빛으로 채워버리는 찬란한 빛, 미니 사신들의 염원을 담은 섬광이었다.
그 검격은 계약에 묶인 미니 사신들은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안개의 벽을 가르고, 그 너머로 나아가고 있었다.
검이 그어지는 궤적을 따라 공간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검격은 회색 사신의 공격조차 태연하게 몸으로 받아내던 램프의 남자조차 몸을 틀어 피할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
하지만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그 검격은 뜻밖의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램프의 남자를 살짝 비껴서 휘둘러진 검격은 남자 뒤에 있던 공간의 균열을 향해 정확히 날아간 것이다.
연기에 가려진 그의 얼굴에 작은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
황금 사신 융합체의 진정한 목적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황금 사신들은 처음부터 램프의 남자를 노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들의 목표는 공간 이동을 위한 균열을 없애는 것.
그저 회색 사신이,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남자의 얼굴에 미묘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에게 있어 공간의 균열을 만드는 것은 몇 초도 걸리지 않는 정말 쉬운 일이었다.
‘고작 몇 초를 벌기 위해 이토록 무모한 도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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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프의 남자는 융합이 풀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황금 사신들을 보며 생각했다.
그야말로 이 한 번의 공격을 위해, 미니 사신들은 모든 것을 건 것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지더니, 거대한 존재가 나타나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세계의 섭리를 거스르는 듯한, 그러나 동시에 세계가 환영하는 듯한 모순된 감각.
그것은 바로 회색 사신의 귀환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런.]
남자의 입에서 작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
두근.
내가 푸른 소녀의 몸을 입고 황금 뿔 사신이 있던 전장으로 돌아가자, 나에게만 들리는 커다란 맥동이 울려 퍼졌다.
그것은 세계에서 중요한 뭔가가 일어난 듯한 맥동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진 것치고는, 전장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바닥이 너무 단단해서 불편한 신발을 신고, 나는 안개를 천천히 가르고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안개 너머의 공터에 도달했을 때, 바닥에 잔뜩 널브러져 있는 미니 사신들이 나를 보고 반겨주었다.
‘엄마다!’
‘엄마!’
바닥에 널브러진 미니 사신들의 기쁨을 담은 의지.
그것은 뭔가를 해낸 것처럼 뿌듯한 의지들이 담긴 환호였다.
미니 사신들은 폴짝폴짝 뛸 힘도 없는지, 억지로 일어나 점프하더니 그대로 바닥에 넘어져 버렸다.
발에 힘이 없어서, 미끄러지듯이 머리부터 콩.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렇게 넘어진 황금 사신에게 다가가 일으켜 세워준 뒤, 흙먼지를 털어주었다.
‘신기하네.’
푸른 소녀와 회색 사신.
겉으로 보기에는 좀 닮았지만, 키도 복장도 피부색도 달랐는데, 미니 사신들은 매번 쉽게 자신을 알아보는 게 조금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램프의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갔다.
[….]
그때, 램프의 남자와 내 시선이 마주치자, 그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어딘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 걸으며, 짧은 폐허를 걸었다.
빛이 느껴져서 하늘을 올려다보자, 하늘 저편에서는 푸른 빛이 비쳐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힘을 잃은 연기가 천천히 흩어지고 있었다.
마치 아침 햇살에 흩어지는 새벽안개처럼.
그리고 도착한 곳은 태양이 서서히 내리쬐기 시작하는 절벽 끝이었다.
[이런 결말은 허무하지만…. 나쁘지 않군.]
절벽 끝에 도달한 램프의 남자가 나를 향해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피할 수 없는 세계의 끝이 머지않았다. 최후의 연금술사.]
그는 나를 바라보며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딘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뭔가 납득을 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램프의 남자를 어떤 형상으로 묶어두고 있던 무형의 사슬들이 하나둘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에서 심연과도 같은 짙은 연기가 쏟아져 나왔다.
램프의 남자가 그 형상을 잃어버리면, 잃어버릴수록.
흘러나오는 검은 연기의 양은 많아지기만 했다.
그렇게 사라지는 ‘형상을 묶던 틀’은 마치 램프의 남자를 제약하고 있던 계약들처럼 보였다.
램프의 남자가 완전히 사라지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검은 연기는 도무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지면을 가득 채우고, 하늘마저 검게 물들였는데도 멈추지 않고 계속 퍼져나가기만 했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땅을 뒤덮고, 하늘을 메우는 재해 수준의 오브젝트였다.
검은 연기는 램프의 남자가 최후까지 달고 다니던 램프들을 진작에 집어먹고는 그 격을 점점 늘려갔다.
한 발짝 모자랐던 검은 연기의 격은 그렇게 순식간에 외신에 닿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전혀 긴장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격은 모자라도, 계약이 아니면 죽일 수 없고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가진 램프의 남자 쪽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느껴졌으니까.
< ■ ■ ■ ■ >
파괴 조건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작게 웃으며 ‘푸른 소녀’의 몸에 새겨진 능력을 사용했다.
‘최초의 오브젝트. 희망을 담은 황금색 불꽃.’
그리고 나는 하얀 아귀를 소환해 하늘 위로 치켜들었다.
‘마지막으로, 인간을 지키는 순백색의 수호자.’
그러자 특급 오브젝트를 뛰어넘은 푸른 소녀의 연금술이 발현되었다.
“연금술사의 태양!”
뀨!
순간, 하얀 아귀가 찬란한 빛을 발하며 거대한 태양으로 변모했다.
하얀 아귀는 태양처럼 빛을 뿜어내며 검은 연기를 태우기 시작했다.
진짜 태양처럼 외신을 살라 먹는 마시멜로 태양이었다.
“….”
그렇게 모든 검은 연기를 지워버린 자리에 남은 것은.
그때 꿈속에서 봤던 계약을 나누던 곳과 닮은 황량한 절벽과.
덩그러니 남은 책 한 권뿐이었다.
나는 그 책을 들어 올려,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본 적이 없는 오브젝트였지만, 푸른 소녀는 아는 마도서였다.
연금술사 세계의 수많은 이상 현상을 마도서라고 부르게 한, 최초의 마도서.
소원을 들어주는 계약의 마도서.
나는 외신의 격을 잃어버린 책을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황금색 장작으로 태운다.>
나는 주저 없이 손아귀에서 황금색 장작을 피워올려, 책을 태워 없애버렸다.
그렇게 램프의 남자와 계약의 마도서가 엮인 이야기는 막을 내렸다.
***
후배 2호는 끝없는 검은 연기 속에서 하얀 아귀와 황금 뿔 사신을 끌어안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미니 사신들은 힘을 모두 써서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면서, 후배 2호 일행을 지키기 위해 바닥을 열심히 기어서 다가온 상태였다.
그때, 숲속에서 번쩍이는 하얀 섬광이 어둠을 가르고, 검은 연기의 장막을 찢어냈다.
그리고 주변을 가득 메운 검은 연기가 천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하늘이었다.
사라져가는 연기의 틈으로 맑은 푸른빛이 새어 들어왔다.
마치 묵직한 커튼이 걷히듯, 푸른 하늘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검은 연기에 가려졌던 태양 빛이 새어 들어왔다.
마치 소나기가 내린 뒤, 갠 하늘에서 태양이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처럼.
빛줄기는 점점 더 강렬해져, 전투가 끝난 폐허를 환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그 빛 아래 드러난 풍경은 그야말로 황폐 그 자체였다.
포격으로 완전히 박살 났던 교단 폐허는, 램프의 남자와 미니 사신의 전투로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남은 것은 전투의 흔적뿐이었다.
엄청난 열기에 유리처럼 녹아내린 지면.
마치 거대한 뱀이 지나간 것처럼, 깊게 갈라진 균열.
까맣게 타서 죽어버린 나무들.
한쪽 눈이 깨진 성녀 인형은 조금 쓸쓸한 표정으로 교단을 이루던 석재의 파편을 쓰다듬었다.
‘으앙!’
‘괜찮아! 엄마가 다시 만들어 줄 거야!’
성녀 인형의 주변에는 성녀보다 몇 배는 슬퍼 보이는 미니 사신들이 몰려가서, 인형을 토닥여 주고 있었다.
후배 2호가 보기에, 그 모습은 세희 연구소의 오예린 연구원과 굉장히 닮아 있었다.
“드디어 끝났군.”
그때 노란 탐정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지막이 말했다.
뭔가를 벗어던진 듯한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탐정 선배는 램프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정말, 정말로 오랜 시간 노력했었다.
고작 일반인 3명으로, 무려 중앙 연구소장이 갇혀 있던 비밀 격리시설을 털어버릴 정도였으니까.
두꺼운 쇠사슬로 탐정의 손에 묶여 있던 가스램프, 왓슨이 가루가 돼서 사라지고 있었다.
왓슨을 이루던 연기도 천천히 힘을 잃고 흩어지고 있었다.
연기가 제대로 형상을 이루지 못하게 되어서 그런 걸까.
그 연기는 어쩐지, 탐정 선배와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노란 탐정은 몇 번 사람이 바뀌었다고 들었는데….
하지만 선배들은 관련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설마 그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그 연기 속에는 탐정 선배와 닮은 형상 말고도 꽤 많은 사람의 흔적이 보였다.
여자, 남자를 가리지 않고, 그 모습은 다양했다.
하지만 후배 2호가 눈을 깜빡이자, 흐릿하게 남아있던 연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때, 품속에서 졸린 것처럼 꾸벅꾸벅 졸던 황금 뿔 사신이 갑자기 눈을 뜨더니, 미어캣처럼 고개를 길게 빼고 어딘가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시선을 돌려보니, 공터에 널브러진 모든 미니 사신이 비슷한 모습으로 한 방향을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
‘엄마아아!’
그리고 미니 사신들이 시선이 향한 곳에서, 회색 사신을 인간같이 도색한 것처럼 생긴 존재가 걸어 나왔다.
‘가자, 얘들아.’
그렇게 나타난 푸른 머리카락의 소녀는 굉장히 피곤해 보이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