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색 물결이 퍼져나간다.
조그마한 크기의 황금 사신들이 일제히 퍼져나가는 모습은 동심원을 가진 물결 같았다.
서로 부딪쳐서 쓰러지기도 하고, 뭔가에 걸려서 데굴데굴 구르기도 했지만 말이다.
유령화를 사용하는지 간헐적으로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면서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다만 유령화가 익숙하지 않은 건지, 황금 사신은 유령화를 할 때마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작은 발로 뛰어가다가, 장애물을 만나면 유령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장애물 반대편에서 나타나 양발로 바닥을 딛지만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데굴데굴 굴렀다.
그리고 인간을 발견하면 발을 열심히 놀려서 뛰어들어 안겼다.
가장 먼저 인간에게 안긴 사신은 승리자의 미소를 띠고 작은 양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마치 영역표시를 하는 것처럼 한 사람마다 한 마리씩만 붙었다.
다른 사신이 다가오면 눈으로 노려봐서 쫓아내기도 했다.
황금 사신이 퍼져나가기 전의 박람회장은 인간을 적대시하는 오브젝트의 뷔페였다.
먹잇감이 정신을 잃고 잔뜩 쓰러져 있는 뷔페.
하지만 그 뷔페에서 시식을 하려던 오브젝트들은 황금 사신의 등장에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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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젝트가 볼 때 황금 사신에게서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으니 말이다.
거기에 숫자까지 무지막지하게 많으니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인간에게 적대적으로 흐르던 공기가 순식간에 잔잔하게 일변할 정도였다.
하지만 황금 사신이 나타나서 생겨난 잔잔한 분위기는 채 10분을 넘기지 못했다.
인내심이 부족한 오브젝트들부터 황금사신을 무시하고 쓰러진 인간에게 무작정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황금 사신의 행동이 무해해 보인 것도 한몫했다.
오브젝트들에게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고, 사람들에게 달라붙어서 가만히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황금 사신의 무심한 행동은 다른 오브젝트들에게 용기를 줬다.
저 황금 사신들은 사실 소극적이고 무해한 녀석들이 아닐까? 하는 희망 말이다.
황금 사신을 관찰하며 기회를 노리던 오브젝트들이 다시 사냥감을 향해 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작은 호랑이만 한 크기의 도마뱀이었다.
과거에서 시간을 넘어 현대에서 되살아난 공룡들이었다.
인내심이 바닥난 공룡들이 잠든 사람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 순간 황금 사신들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수십 개가 넘는 눈빛을 받은 공룡은 주춤할 법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공룡은 그 정도 수준의 지능을 갖춘 오브젝트가 아니었다.
황금 사신의 경고성 눈빛을 무시한 대가는 처참했다.
작은 사신 모양의 구멍이 수십 개가 뚫린 채, 피를 줄줄 흘리며 죽어가게 된 것이다.
황금색으로 빛나던 사신이의 몸통은 핏물에 젖어 붉게 빛났다.
이런 귀엽고 참혹한 일들은 박람회장 곳곳에서 일어났다.
인간을 목적으로 덤벼드는 오브젝트가 없어질 때까지 말이다.
***
박람회장 내의 사람들이 모두 잠들고, 오브젝트가 잔뜩 풀려나와 엉망진창이 된 그때.
움직이는 사람이 없어야하는 그때, 부천 연구소 관리실 문이 열렸다.
깔끔한 정장, 실험 가운, 그리고 고풍스러운 지팡이를 든 남자가 앞장서서 걸어 나갔다.
그 뒤로는 하수인들처럼 연구원들이 따라 나왔다.
연구소장은 당당한 걸음걸이로 사람들이 모두 잠들어버린 박람회장 위를 걸었다.
그들은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한 연구소 부스를 향해 가고 있었다.
연구소장의 목적은 ‘세종 연구소’가 만든 박람회 부스.
그 안에서 전시중인 오브젝트 <부서지지 않는 큐브.>.
연구소장은 세종 연구소 부스에 도착해서 목적했던 오브젝트를 손쉽게 손에 넣었다.
격리실의 문은 이미 열려있었고, 보안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모두 잠들어버린 상태였으니까 말이다.
CCTV나 기타 전기 시설도 이미 침묵한지 오래였다.
소장은 오브젝트에 붙어있던 설명문을 보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부서지지 않는 큐브.>
“이걸로 필요한 오브젝트는 얻었군.”
연구소장은 왼손에는 큐브,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든 채 주위를 둘러봤다.
필요한 작업을 마치고 격리실을 나서자, 박람회장의 분위기는 조금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쓰러진 사람들만 가득했던 박람회장에 손바닥만 한 작은 생물들이 잔뜩 생겨나 있었다.
회색사신과 꼭 닮은 황금색 오브젝트였다.
쓰러진 사람들의 가슴팍 위에 서서 목을 쭉 내밀고 연구소장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바라보는 오브젝트가 수십 마리나 되니 왠지 미어캣 같은 느낌이었다.
“회색 사신의 능력인가? 처음 보는 능력이군. 시간의 틈새에서도 보지 못한 능력인데, 어떻게 된 일이지?”
긴 시간동안 관찰하고 연구해왔던 회색 사신에게 자신이 모르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은 연구소장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금은 ‘이름 없음’을 처리하기 위해 연구 중이지만, 차후에는 반드시 ‘회색 사신’을 붙잡아서 연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목적을 달성해서 떠나는 소장을 미니 사신들은 놓치지 않고 계속 주시 중이었다.
연구소장을 주시하고 있는 미니 사신들에게서는 왠지 모를 적대감이 느껴졌다.
소장으로써는 그게 의문이었다.
이 미니 사신들은 도대체 자신을 왜 적대하는가?
그 영문 모를 적대감의 원인이 뭔지 곰곰이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연구 소장은 손을 까닥여서 연구원들을 자신의 그림자로 불러들였다.
탁탁.
지팡이로 두 번 땅을 치는 소리와 함께 소장과 그 연구원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
내가 만든 황금 사신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데굴데굴 구르고 지들끼리 부딪치고 난리였다.
인간을 위협하던 오브젝트들은 갑작스러운 황금 사신의 등장에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았다.
하긴 갑자기 저런 조막만 한 게 막 뛰어다니면 이게 뭔가 싶겠지.
예린이는 이제 꽤 안전해보여서 바닥에 내버려두고, 전봇대를 타고 올라가 상황을 살펴보았다.
위에서 황금 사신들이 하는 행동은 쉽게 요약할 수 있었다.
‘…, 이 녀석들 인간을 너무 좋아하는데?’
위에서 바라본 나의 감상은 그것이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인간을 너무 좋아하는 황금 사신들.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예티의 심장을 뚫고 지나가는 황금 사신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3가지 오브젝트 능력의 콤비네이션이었다.
내가 만들어낸 쪼그마한 녀석이 피투성이로 돌아다니는 걸 보니 기분이 좀 이상했다.
전봇대 위에 쭈그리고 앉아서 계속 관찰해보자, 황금 사신들의 행동 패턴은 일정했다.
오브젝트에 관심이 일절 없음.
오브젝트가 인간을 위협하면 흉포화해서 공격한다.
애착 인간을 지키는 걸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애착 인간을 정하는 기준은 없어보였다.
인간이기만 하면 좋은 건가?
그냥 가장 먼저 찜한 황금 사신의 소유로 취급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해하기 힘든 감성이었다.
지금 내 정수리 위에도 한마리가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달라붙어있다.
난 인간이 아니라 오브젝트인데, 창조주니까 인간 취급해 주는 건가?
흉포한 황금 사신들에게 밀려나서 인간에게 공격할 가능성을 가진 오브젝트들은 박람회장 외곽으로 쫓겨났다.
인간에게 직접적인 해를 입히지 않는 오브젝트에게는 황금 사신이 아예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황금 사신들에게 밀려난 오브젝트들이 박람회장 밖으로 탈출할지도 몰라서 유심하게 쳐다봤더니 뭔가 이상했다.
이 박람회장, 일종의 감옥처럼 설계돼있네?
그것도 유심하게 살펴보지 않으면 감옥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기 힘들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황금 사신들을 피해서 도망친 오브젝트들은 박람회장 외곽을 빙 둘러서 있는 벽에 가로막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뭐, 박람회장 설계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내가 관심 있게 생각하는 것은 갑작스럽게 발생한 이 대량 수면 사태.
이 대량 수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아마 저 커다란 황금나무가 가지고 있겠지.
사람들은 황금 사신이 지켜주고 있으니 움직일만한 여유가 생겼다.
물론 황금 사신의 수호는 하루짜리니까, 빨리 해결해야 한다.
***
예린이의 보호는 황금 사신에게 맡기고 커다란 나무로 향했다.
부천 연구소의 부스는 신기하게 연구원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다른 부스들은 잠든 연구원들이 잔뜩 있는데 말이다.
관람객 몇 명을 빼면 연구원으로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정도로 ‘우리 연구소가 범인이다!’ 어필을 하면 모르는 게 바보겠지.
역시 부천 연구소에서 저지른 범죄!
도대체 이렇게 사람을 재워서 뭘 하고 싶었던 걸까?
동물원 설립을 막기 위해서… 일리는 없겠지만, 이걸로 동물원은 더욱 설립 허가가 나오지 않겠네.
이렇게 내 꿈이 하나 더 사라져가는구나….
지금도 강렬한 빛을 뿜어내는 황금 나무 앞에 도착했다.
널찍한 공터에 우뚝 솟은 나무.
덩그러니 혼자 놓인 나무의 파괴 조건을 살폈다.
[인간이 나무의 악몽을 극복할 것.]
‘응?’
그래도 이번 힌트는 이해가 되는 범주였다.
사람들이 지금 잠들었으니까, 아마 다들 악몽을 꾸고 있다는 거겠지.
여기서 누군가 깨어나면 나무가 박살난다는 거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