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희 연구소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찼다.
황금 사신들의 갑작스러운 귀환이 연구소 전체를 들썩이게 했다.
평소에도 평범한 연구소처럼 차분하고 정돈된 분위기와 거리가 있었지만, 지금은 한창 축제 중인 술집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연구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황금 사신이 사라진 동안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과자를 전부 황금 사신에게 먹이거나.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것처럼 황금 사신을 꼭 쥐고, 자기 얼굴에 문지르거나.
황금 사신을 머리 위에 얹고 춤을 추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돌아왔구나.”
“보고 싶었어!”
환호성과 웃음소리가 연구소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황금 사신들은 이런 인간들의 반응에 행복한 듯 히히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황금 사신의 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스한 기운과 태양의 향기가 연구원들의 마음을 더욱 들뜨게 했다.
그것은 김중뢰 선배도 이 난장판을 수습하는 것을 포기할 정도로 강렬한 광기의 현장이었다.
김중뢰 선배가 포기한 것처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을 보고, 예린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완전 난리가 났네….”
미니 사신 중독이라는 병이 있다면, 세희 연구소는 가장 심한 중독자들의 집합이니 어쩔 수 없겠지.
그렇게 미쳐 날뛰는 사무실을 천천히 빠져나가던 도중, 한 연구원이 황금 사신에게 과자를 계속 먹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인간….’
황금 사신의 배는 이미 둥글게 부풀어 올라 마치 작은 풍선 같았는데, 콕 찌르면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물론 물리 면역인 황금 사신이니만큼 아무리 찔러도 터지진 않을 것이다.
그 장면은 어찌 보면 황금 사신 학대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먹이는 연구원도, 먹는 황금 사신도 행복해 보이니 괜찮은 거겠지.
예린은 풍선 황금 사신을 지나쳐, 광기에 젖은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사무실을 빠져나온 예린이 향하는 곳은 명확했다.
‘황금 사신이들이 돌아왔으니까, 사신이도 돌아왔을 거야!’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안뜰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회색 사신이 돌아왔을 거라는 예감에, 예린의 걸음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안뜰로 향하는 복도를 지나며 예린은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했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어느새 달음박질이 되어 있었다.
조금은 한산하게 느껴지는 안뜰을 지나, 마시멜로 평원에 도착한 뒤.
예린의 눈은 본능적으로 주변을 살펴보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디 있을까? 사신이도 분명 돌아왔을 텐데….’
예린의 마음속에서는 기대와 불안이 교차했다.
황금 사신들이 돌아왔다고 해서 반드시 사신이도 돌아왔으리란 법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돌아다닌 끝에, 조금 이상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가스램프를 전력으로 빙글빙글 돌리는 푸른 머리카락의 소녀.
제임스가 보여줬던 책에 그려진 소녀, 회색 사신을 닮은 소녀가 그곳에 있었다.
‘!’
예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린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저 푸른 소녀의 몸 안에 회색 사신이 들어있다는 것을 순식간에 눈치챌 수 있었다.
귀여운 미니 사신들이 든 램프를 저렇게 돌리며 괴롭히는 건, 회색 사신만이 할 법한 장난이었으니까.
‘으앙!’
‘어지러워!’
램프 속에서 미니 사신들의 아우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목적했던 회색 사신을 발견하자 예린은 천천히 푸른 소녀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면서 가슴속에 여러 가지 생각과 기대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저 푸른 소녀 육신은 뭘까?’
‘정말 인간처럼 생겼는데, 같이 길거리를 돌아다녀도 괜찮을 것 같아.’
‘이번에 새로 생긴 쇼핑몰도 같이 갈 수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마침내, 푸른 소녀의 육신을 입은 회색 사신과 예린이 눈을 마주치자.
‘!!!’
푸른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마치 신기루처럼 ‘펑!’ 하고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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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도망가 버렸어….”
예린의 목소리에는 실망감이 가득했다.
이미 푸른 소녀의 육신을 입은 회색 사신과 할 놀이 수십 가지를 떠올리던 예린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바닥에 쭈그려 앉아버렸다.
그때, 예린의 시선에 무언가가 비쳤다.
회색 사신이 있을 때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무언가.
예린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이게 뭐지…?”
그것은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자신과 정말 똑같이 생긴 인형?
아니면 오브젝트?
한쪽 눈에 깨진 자국이 없다면, 자신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똑같은 모습이었다.
예린은 ‘와….’하는 감탄사를 흘리며, 천천히 성녀 인형을 향해 다가갔다.
마찬가지로 성녀 인형도 예린을 보고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 상태였다.
성녀 인형은 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의지로 염파를 흘렸다.
[진짜 성녀….]
예린은 홀린 것처럼 성녀 인형 앞에 서서 말랑말랑한 볼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진짜 똑같아…. 사신이는 이런 인형을 어디서 구한 걸까?”
예린은 납 인형과 비슷한 인형이라고 생각하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녀의 머릿속에 염파가 울려 퍼졌다.
[저기…. 안녕하세요?]
“으헥.”
그러자 예린은 그 순간 놀란 고양이처럼 뒤로 펄쩍 뛰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놀람과 당혹감이 뒤섞여 있었다.
***
푸른 소녀의 모습으로 순간 이동한 나는 내 거처에 도착하자마자 깊은숨을 내쉬었다.
심장이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다.
예린과 마주쳤던 그 순간의 놀라움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듯했다.
“하아…. 깜짝 놀랐네.”
나는 중얼거리며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사실 이런 일이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진작에 푸른 소녀의 육체를 벗어던졌어야 했는데….
하지만 램프 사신을 발견하는 순간, 나는 쥐불놀이를 하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했다.
그러니까 예린이에게 들킨 건 전부, 램프 사신 때문이야.
나는 옆에 놓인 램프 사신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엄마?’
램프 속 작은 구름 뒤에 숨어있던 램프 사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불렀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괜히 얄미워져서, 램프 사신을 한 바퀴 더 돌려버렸다.
‘으앙!’
램프 속을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램프 사신의 모습을 보며 나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히히.
그렇게 잠깐 램프 사신과 놀다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푸른 소녀의 육신을 침대 위에 눕혔다.
‘….’
잠시 후, 나는 다시 회색 사신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눈을 뜨자 익숙한 편안함이 전신을 감쌌다.
푸른 소녀의 육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완벽함.
그 어떤 사각도 없이 360도로 펼쳐진 시야.
배고프지도, 아프지도 않은 육체.
그야말로 내장도 근육도 없지만, 완벽하게 작동하는 오브젝트의 육신.
회색 사신이랑 비교하면, 푸른 소녀의 육체는 언제나 고통 속에서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몸은 언제나 아팠으니까.
나는 회색 사신의 안락함을 느끼며, 예린이가 있는 곳을 향했다.
‘…?’
그렇게 예린이가 있는 곳에 도착하자, 예상외의 광경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성녀 인형과 예린이가 서로 마주 보고 앉아서, 익숙하게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으니까.
***
늦은 밤, 예린이의 아파트.
나는 성녀 인형과 함께, 예린이의 아파트에 도착한 상태였다.
푸른 소녀 모습에 대해서 잔뜩 물어볼 줄 알았는데, 예린이는 내가 숨기고 싶어 하는 것을 미리 캐치하고는 물어보지 않았다.
역시 예린이야, 상냥해.
그래서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오늘 예린이의 집에서 놀기로 한 것이다.
여전히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미니 놀이공원에는 미니 사신들이 가득했다.
웬만한 아파트 거실보다 규모가 컸지만, 내가 아파트 내부의 공간을 잡아 늘인 덕분에 그렇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예린이는 또 뭘 준비하길래,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걸까?
설마 또 흉악한 잠옷 같은 걸 준비하는 것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뒹굴뒹굴하고 있자, 미니 사신들 사이에서 놀고 있는 성녀 인형이 눈에 들어왔다.
예린이를 본떠 만든 성녀 인형도 미니 사신들에게 인기가 상당했다.
역시 장작이 많아서 그런 걸까?
물론 내부에 들어 있는 장작은 내가 전부 황금 장작으로 바꾼 상태였다.
흰 장작은 맛이 없다는 것을 몸이 기억해서 그런지, 흰 장작만 보면 기분이 안 좋아지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성녀 인형은 그림을 그리는 황금 사신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귀엽다는 것처럼 쓰다듬었다.
‘…!’
그때, 예린이가 히히 웃으며 엄청난 양의 옷가지를 들고 나타났다.
나는 예린이가 옷을 잔뜩 들고 오자, 바닥을 천천히 굴러서 거실 테이블 밑으로 숨어들어 갔다.
“이거 사신이 옷 아니니까, 숨을 필요 없어.”
예린이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는 작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적당히 시간이 흐르자, 나는 테이블 밑에서 발 한쪽을 슬쩍 내밀었다.
그러자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짓는 성녀 인형과 음흉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예린이가 보였다.
예린이의 표정은 마치 김중뢰에게 거짓말하고 땡땡이를 치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성녀 인형은 병원 같은 곳에서 쓰이는 안대를 하고 있었다.
예린이는 전후좌우에서 성녀 인형의 모습을 관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해. 김중뢰 선배도 눈치채지 못할 거야.”
그렇게 말하며 예린이는 흐흐, 하고 음흉한 목소리를 흘렸다.
‘도대체 뭐가 완벽하다는 거지?’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