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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41

예린은 꿈을 꾸고 있었다.

마치 시간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 오래전에 잊힌 기억의 파편을 되짚어 나가는 듯한 꿈.

그것은 마치 오래된 필름을 들춰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흐릿하고 불분명하지만, 동시에 강렬하고 생생한 감정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예린의 기억 속에 없는 광경이 흘러갔지만, 이 광경이 자신의 오랜 기억인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

머리가 좋은 만큼 기억력이 굉장히 좋은 예린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싹둑 잘라낸 것처럼 기억이 나지 않던 어린 시절의 기억.

첫 번째 장면은 낯선 풍경이었다.

길을 걷는 사람들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차가운 겨울 공기가 뺨을 스치고 지나갔고, 생소한 건축물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형형색색의 유리로 장식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건물들이었다.

그 건물들을 보며, 어린 예린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꿈속의 자신이 내는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 표정만으로도 행복감이 전해져 왔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장면은 마치 오래된 무성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오래전에 잊어버린 이런 기억을 꿈으로 보게 된 것은, 아마 예린 자신과 똑같이 생긴 인형과 나눴던 대화 때문이겠지.

기억이 나지 않는 과거.

보육원에 발견됐을 때 입었던 옷과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은 인형.

그리고 자신을 ‘성녀’를 본떠서 만든 인형이라고 소개한 오브젝트.

성녀 인형이 예린에게 정말 여러 가지를 물어봤지만, 예린은 답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야,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

그렇게 평화롭게 흘러가던 꿈의 풍경이 어느 순간 급격하게 변해버렸다.

마치 즐겁게 보내는 크리스마스처럼 춥지만, 따뜻하고 포근했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를 끝없는 어둠이 대신했다.

예린은 이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싼 것은 영원히 타오르는 듯한 하얀 불길.

그 불길은 그녀를 태우고 있었지만, 그녀는 재가 되지 않았다.

그저 끝없는 고통만이 반복될 뿐이었다.

“…!”

“…!”

어린 예린은 입을 열고 비명을 질렀지만, 타버린 폐부와 혀는 제대로 된 소리를 내지 못했다.

아무도 그녀의 작은 신음을 듣지 못했고, 오직 고통만이 그녀를 찾아왔다.

마치 희망은 없다는 것을 형상화한 것처럼, 주변은 끝없는 암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절망 속에서 조그마한 소녀, 예린은 염원할 뿐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이 고통 속에서 구해주기를.

빠져나갈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면서.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예린을 둘러싼 암흑이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마치 유리가 깨지듯, 어둠은 조각조각 부서져 나갔다.

그리고 그 틈새로 황금빛이 새어 들어왔다.

처음에는 희미한 빛줄기였지만, 점점 그 빛은 강렬해졌다.

마치 동이 트는 것처럼, 황금빛은 어둠을 몰아내고 모든 것을 밝게 비추기 시작했다.

태양을 닮은 황금색 빛무리.

오랜 시간 불꽃에 타오르던 어린 예린은 정말 오랜만에 따스한 태양 빛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둠이 절망을 형상화한 것이라면, 이 황금색 빛은 희망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황금색 빛무리는 화상으로 문드러진 예린을 어루만져 순식간에 치료해 버렸다.

그와 동시에 하얗게 타오르던 불길은 이 황금빛 앞에서 힘을 잃고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황금색 불꽃이 대신했다.

“아….”

예린은 그 불꽃을 보고 또 다른 고통이 올 줄 알고 움츠러들었지만, 황금색 불꽃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것은 예린을 부드럽게 감쌌다.

따뜻하고 편안한 기분.

고통은 사라지고, 대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화와 안락함이 그녀를 채웠다.

황금빛 속에서 예린은 태양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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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새벽의 첫 햇살, 한여름 오후의 뜨거운 열기, 가을 석양의 부드러운 온기를 모두 담고 있는 듯했다.

그런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더니, 어느새 예린의 품속에 무언가가 안겨 있었다.

처음에는 희미한 형체였지만, 점점 또렷하게 보였다.

품속을 내려다보자, 회색 사신이 예린을 올려다보며 히히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예린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렸다.

그것은 안도감이자, 기쁨이었다.

‘아무렴 어때, 사신이만 있으면 돼.’

기억나지 않는 과거?

오브젝트와 관련된 이야기?

생소한 문화와 환경을 보여주는 이세계?

그 모든 것이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그녀의 세상에선 오직 사신이의 존재만이 의미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예린은 회색 사신을 꼭 껴안았다.

그 순간, 그녀를 괴롭히던 모든 악몽의 흔적들이 산산이 부서져 사라졌다.

마치 아침 햇살에 안개가 걷히듯, 모든 불안과 공포가 녹아내렸다.

‘….’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예린은 눈을 떴다.

익숙한 침실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언제나 그랬듯, 그녀가 잠들고 깨어나는 공간.

그리고 그녀의 품 안에는, 꿈속에서처럼 회색 사신이 안겨 있었다.

회색 사신을 너무 세게 껴안아서 그런지, 말랑한 얼굴이 조금 찌그러진 모습에 예린은 미소 지었다.

‘역시 내 수호천사, 사신이야.’

마치 뼈가 없는 듯 말랑말랑하면서도 따뜻한, 언제나 그녀를 지켜주는 이 장난꾸러기 사신.

예린은 살며시 힘을 풀고 사신의 보드라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이미 악몽의 내용은 그녀의 기억 속에서 흐릿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일도, 모레도, 그 뒤로도 사신과 함께하는 즐거운 나날들이 계속될 것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사신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예린은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악몽 없는, 평화로운 잠에 빠져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맺혔다.

***

후배 2호는 버스에서 내린 뒤, 황량한 길을 걸어갈수록 조금씩 들뜨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고향’이라고 할만한 곳으로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황금 뿔 사신도 그녀의 감정에 영향을 받았는지, 머리 위에 누워서 뒹굴뒹굴하고 있었다.

말랑말랑한 뭔가가 머리 위에서 굴러다녀서 그런지, 조금 간지러운 느낌이었다.

‘오랜만이네…. 격리구역.’

아쉽게도 격리구역에 아는 사람은 남아 있지 않았지만, 추억 속의 음식점 등을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것 같았다.

사실 후배 2호는 아직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지만, 이번 사건 해결을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서 그런지 탐정 선배가 억지로 휴가를 줘버렸다.

그리고 나머지 탐정 사무소의 일원들은 노란 탐정 사무소 재개장을 위해서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격리구역은 여전하겠지?’

그녀 기억 속의 격리구역은 황금 뿔 증후군을 가진 사람만 올 수 있어서 그런지, 변화가 더딘 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격리구역에서의 일어날 작은 변화들은 직접 방문해서 체험하기 위해, 관련 소식들도 찾아보지 않았다.

‘탐정 사무소 전부 함께 왔으면 좋았을 텐데….’

격리구역에 들어가는 절차가 복잡하긴 해도 후배 2호가 있으니, 허가가 나오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탐정 선배와 망치 선배, 그리고 후배는 빨리 사무소 오픈 준비를 마쳐야 한다며 거절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격리구역 검문소에 도착하자, 전보다 훨씬 검문이 철저해져 있었다.

세희 연구소를 제외한 연구소의 보안 구역을 들어가는 절차처럼 복잡하고, 오래 걸렸다.

어찌나 오래 걸리는지, 황금 뿔 사신은 주머니 안에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할 정도!

“저기, 검문 절차가 왜 이렇게 복잡해졌죠?”

후배 2호는 이 수상한 상황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요즘 들어오려는 사람이 많아서 그래요.”

“?”

무슨 소리인지 몰라, 후배 2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자, 검문소 직원은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여기 황금 사신이 많다는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렸어요.”

그리고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이 작게 한숨을 쉬고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은 검문이 까다로워져서 많이 줄었지만, 며칠 전만 해도 kg 단위의 순금으로 가짜 뿔까지 만들어서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까지 있었어요.”

kg 단위?

그게 도대체 얼마야?

후배 2호는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송파구만 가도 황금 사신들이 많은데, 굳이 검문소까지 있는 격리구역에 올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검문이 끝나고, 후배 2호는 격리구역 내부로 들어설 수 있었다.

“끝났… 다… 아?”

그렇게 기지개를 켜며 격리구역 내부로 들어가던 후배 2호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기지개를 켜다 말고 멈추어 서버렸다.

???

검문소 직원 말처럼 황금 사신이 많았다.

그냥 많은 것도 아니고, 엄청 많았다.

“진짜 많네….”

이 정도면 세희 연구소 안뜰 수준인 것 같은데?

변화가 더딘 격리구역은 사라져 버렸다.

황금 사신들의 행복하게 만드는 향기 때문인지, 그 자리를 대신 한 것은 활기와 역동성이 넘치는 격리구역이었다.

마치 감옥에 갇힌 사람들처럼 처지를 비관하고 조금은 우울해 보이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즐거운 웃음소리와 달콤한 간식 향기가 채우고 있었다.

후배 2호는 황금 사신 테마파크가 되어버린 격리구역을 관광객이 된 기분으로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녔다.

돌아다니는 황금 사신을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황금 사신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 주고.

근처 가게에서 파는 황금 사신용 말랑 쿠키를 사서 먹이기도 했다.

‘왠지 세희 연구소에 온 것 같은 기분이네…. 살찔 것 같아.’

후배 2호는 황금 뿔 사신과 달콤한 쿠키를 나눠 먹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앗!’

그렇게 돌아다니던 도중, 후배 2호의 품속에 있던 황금 뿔 사신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일어섰다.

‘뿔!’

그리고 꽤 빠른 속도로 어딘가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커다란 사슴뿔이 생겨난 황금 뿔 사신과 서로 마주 보고 만세를 하고 있었다.

‘무지 커!’

‘무지 커!’

그리고 서로의 뿔을 보며 감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서로의 뿔을 쳐다보던 황금 사신 둘은 고개를 숙여 말랑말랑한 뿔을 서로 문질렀다.

그리고 히히 웃었다.

‘히히 간지러.’

사슴뿔 사신의 옆에는 정말 훌륭한 사슴뿔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대충 예상했지만, 황금 사신의 뿔은 정말 애착 인간을 닮는 거구나….

후배 2호는 멍하니 그렇게 생각했다.

***

먼지로 가득했던 탐정 사무소는 한차례 청소가 끝나자, 원래 모습을 되찾은 상태였다.

이제까지의 모든 ‘홈즈’들이 사건 해결에 급급해서 사무소 내부에 쌓여가던 쓸모없는 가전이나 가구들도 전부 버려버렸다.

물론 그렇게 무거운 것들은 사람 머리통만 한 망치 머리를 마구 휘두르는 후배 1호가 옮겨주었다.

노란 탐정은 확연하게 깔끔해진 사무소를 보며 미소 지었다.

“이제 ‘홈즈’라고 불리는 일 없이, 내키는 대로 의뢰를 받으면 되겠어.”

“정말 다행이에요.”

그렇게 말한 후배 3호가 ‘청소 수고하셨어요.’라고 하며, 따뜻한 커피 한잔을 노란 탐정 앞에 두었다.

노란 탐정은 그 커피를 들어 올려 향기를 즐기고, 한 모금 마셨다.

오브젝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자유를 쟁취해서 그런지, 한층 더 향기로운 커피였다.

그렇게 다시 한 모금 커피를 마시려는 순간.

쨍그랑.

깜짝 놀란 탐정이 커피잔을 떨어뜨려 버렸다.

“어… 어째서?”

깜짝 놀란 노란 탐정의 탁자 위에는 고풍스러운 램프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히히.

노란 탐정의 귓가에 장난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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