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빛이 스며드는 꿈속 정원은 그 어떤 세상의 걱정도 닿지 않는 곳이었다.
구름처럼 포근한 침대가 끝없이 펼쳐진 바닥을 채우고 있었고, 그 위로 미니 사신들이 뛰어다닐 때마다 부드러운 파도가 일렁였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작은 물결이 되어 퍼져나가는 모습은 마치 달빛 아래 잔잔한 호수를 걷는 것 같았다.
‘부드러워.’
‘따뜻해!’
미니 사신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의지를 흘리며, 침대 위를 뛰어다녔다.
침대 위에 누워버린 미니 사신들은 그 폭신함에 사로잡혀 그대로 몇 시간이고 누워서 뒹굴뒹굴했다.
그 미니 사신들은 폭신한 침대 위에 누워, 고개를 쭉 빼고 침대 근처를 흐르는 핫초코를 핥아먹었다.
하늘 위에는 부드럽게 흔들리는 캐노피가 걸려 있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은 이 캐노피를 통과하며 부드럽게 걸러져, 공간 전체를 따뜻하고 아늑한 빛으로 물들였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미풍에 살랑이는 캐노피의 소리는 마치 자장가처럼, 이 정원의 모든 존재들을 편안하게 감쌌다.
그 캐노피 너머에는 별빛처럼 빛나는 장작의 불빛과 기이할 정도로 거대한 나무가 있었다.
밤하늘처럼 보이는 장작의 별빛 때문일까, 이곳의 시간은 깊은 잠에 빠져든 순간만을 잘라낸 것처럼 보였다.
이 평온한 꿈속 정원에는 미니 사신들과 하얀 아귀들이 가득했다.
하얀 아귀들에게 이곳은 회색 사신의 시선이 닿지 않는 이상향이자 낙원이었고, 미니 사신들에게 이곳은 엄마는 모르는 비밀기지였다.
미니 사신들은 꿈속 공간이라는 특징을 이용해서, 이곳을 자신들만의 놀이동산으로 만들어 갔다.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거대 댖지 엄마 트램펄린.
미니 사신 정원에서 만든다면 헤일로까지 필요한 놀이기구였지만, 꿈속에서는 상상만으로 무엇이든 가능했다.
게다가 미니 사신 정원에서 만드는 순간, 엄마가 슈퍼 댖지로 만들어 버리겠지만, 여기서는 괜찮았다.
엄마가 모르는 비밀 정원이니까!
히히.
미니 사신들은 트램펄린 위를 튕겨 다니며, 행복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 밖에도 미니 사신들이 상상력을 동원해서 만들어 낸, 온갖 기상천외한 놀이기구들이 가득했다.
미니 사신을 하늘 높이 쏘아 올리는 안전띠 없는 바이킹.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선로를 이탈하는 롤러코스터.
고속으로 회전하다가 헬리콥터처럼 하늘을 날아오르는 회전목마.
이런 사고가 속출할 정도로 엉망진창이었지만, 그런 혼돈마저도 즐거움이 되는 곳이었다.
그야말로 미니 사신들이 만들어 낸, 미니 사신다운 놀이공원이었다.
그런 미니 사신 놀이공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하얀 아귀들은 좀 더 조용한 휴식을 즐겼다.
하얀 아귀들은 마치 작은 동산 위에서 평화롭게 휴식을 취하는 양 떼처럼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었다.
저마다의 평안한 자세로 침대 위에 몸을 뉘었다.
팔다리를 쭉 펴고 엎드려 있거나.
식빵을 굽는 고양이 자세를 취하거나.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네 발을 공중에 뻗고 있거나.
한쪽 볼을 부드러운 침대에 기댄 채,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잠들어 있거나.
다들 각자의 방법으로 쉬고 있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걱정과 불안을 잠시 내려놓은 것처럼 보이는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가끔 미니 사신들이 그런 아귀들의 모습을 구경하러 놀러 왔지만, 아귀들의 휴식을 방해하진 않았다.
하늘의 캐노피가 빚어내는 그늘 속에서 은은한 빛을 즐기며, 하얀 아귀들은 편안하게 쉬고 있었다.
하얀 침대 위에 늘어선 하얀 아귀들이 만들어 내는 곡선들은 언뜻 보면 따뜻한 바다 위에서 흔들리는 작은 파도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어떤 평화로운 시간도 영원할 수는 없었다.
평온의 바다 위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폭풍우를 불러오는 먹구름이 멀리서 몰려드는 것처럼 보였다.
휴식을 즐기던 하얀 아귀들은 갑자기 드리운 그림자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뀨?
하얀 아귀들의 놀란 울음소리가 고요한 정원에 울려 퍼졌다.
하늘을 가득 채운 거대한 눈동자가 꿈속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드디어 찾았다!’라고 말하는 듯한, 장난기를 가득 머금은 눈동자였다.
하얀 아귀들과 미니 사신들은 그 눈동자를 보고 깜짝 놀라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앗!’
‘엄마가 왔어!’
‘들켰어!’
‘도망쳐!’
순식간에 평화로운 정원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미니 사신들과 하얀 아귀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회색 사신의 공간 차단으로 꿈속 정원은 완벽히 봉쇄되어 있었다.
그리고 회색 사신의 강렬한 의념이 꿈속 정원으로 밀어닥치자, 모든 것이 부스러지기 시작했다.
포근했던 캐노피는 마른 종이처럼 타올랐고, 자랑스럽게 솟아있던 놀이기구들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푹신했던 침대는 차가운 돌로 변했고, 침대 사이를 흐르는 핫초코는 부글부글 끓어올라 증기가 되어 사라졌다.
꿈속 정원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하얀 아귀들의 몸에는 불꽃이 저절로 들러붙었고, 미니 사신들은 모두 댖지가 되었다.
‘앙대!’
‘앙대!!’
뀨힝힝.
미니 사신들의 슬픈 의지가 울려 퍼졌고, 하얀 아귀들의 억울한 울음소리가 뒤를 이었다.
한때는 천국이었던 이곳이, 이제는 지옥이 되어버렸다.
미니 사신들과 하얀 아귀들의 꿈속 낙원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
은은한 커피 향이 감도는 노란 탐정 사무소.
블라인드 사이로 스며드는 따스한 햇살이 마치 줄무늬처럼 바닥을 수놓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시끌벅적했을 사무소는 오늘따라 유독 조용했다.
TV 소리도,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노란 탐정은 찬장에서 새로 꺼낸 커피잔을 손에 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오랜 시간 자신을 속박했던 램프의 속박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램프 사신이라니.
한쪽에서는 후배 1호가 망치를 내려놓은 채 램프 사신을 품에 안고 있었다.
투명한 램프 속의 램프 사신은 슬픔에 잠긴 듯 축 처진 모습이었다.
후배 1호는 안타까운 마음에 막대 과자를 들이밀었지만, 램프 사신은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어떡하니….”
작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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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사신은 웬만해서는 인간이 주는 과자를 거부하지 않을 텐데….
과자로 말랑한 볼을 콕콕 찔러도, 입가에 가져가도 소용없었다.
무심코 간식으로 눈이 따라붙는 걸 보면, 싫어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애착 인간에게 거부당한 상처가 그만큼 컸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후배 1호는 탐정 선배를 흘깃 쳐다봤지만, 차마 램프에게 오랜 시간 시달린 탐정 선배에게 램프 사신을 들이밀지는 못했다.
후배 1호는 그저 램프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며 달래줄 뿐이었다.
‘그래, 램프는 이미 죽었으니까….’
탐정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무언가 결심을 한 표정으로, 램프 사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치 세상을 잃어버린 듯한 표정의 램프 사신.
‘앙대….’
인간이 저런 표정을 지으려면 도대체 어떤 일을 겪어야 할까?
이런 의문이 들 정도로 슬픈 표정이었다.
노란 탐정은 마침내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잘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후배 1호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램프 사신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램프 속 작은 사신이 고개를 슬쩍 들었다.
그 눈동자에는 혹시나 하는 희망이 담겨 있었다.
탐정은 중앙 연구소를 돌파할 때보다도 더 긴장된 표정으로 천천히 손가락을 램프 속으로 넣었다.
그러자 램프 사신은 눈가에 눈물을 매단 채, 울먹이며 그 손가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듯이, 그 손가락을 꼭 껴안았다.
노란 탐정은 그렇게 손가락으로 램프 사신을 쓰다듬어 주며, 안심한 것처럼 한숨을 푹 쉬었다.
램프 사신과 ‘왓슨’은 느껴지는 분위기부터 완전히 달랐지만, 램프에 시달린 탐정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웠으니까.
노란 탐정은 램프 사신을 멀찍이 들어 올린 채, 자기 자리로 돌아가 의자 위에 몸을 묻었다.
“하아…. 웬만한 의뢰보다 더 힘든 것 같아.”
탐정은 램프 사신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리고 등받이에 기대며 잠시 눈을 감았다.
“이제 좀 쉬면서 간단한 의뢰나 받아볼까….”
생각을 되짚어 보면 중앙 연구소 침입부터 시작해 국가 시설 잠입, 그리고 특급을 넘어서는 ‘계약의 마도서’와의 대결까지.
너무나 힘든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눈을 감고 있었더니, 무언가 이상한 감각이 전해져 왔다.
눈을 살짝 뜨자 정말 깜짝 놀랄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램프의 고리에서 가느다란 쇠사슬이 생겨나, 천천히 그의 손목을 휘감고 있었다.
“!!!”
탐정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램프 사신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애착 인간과 자신이 쇠사슬로 당연히 이어져야만 한다는 표정이었다.
쇠사슬을 채우고 싶어 하는 램프 사신과 절대로 안 된다는 노란 탐정이 실랑이를 벌이던 순간, 사무소 전화가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
“네, 노란 탐정 사무소입니다.”
램프 사신과 노란 탐정의 난장판과는 어울리지 않는, 차분한 후배 3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임스 연구소 말씀인가요?”
후배는 전화 도중 고개를 들어 노란 탐정 쪽을 확인하자, 노란 탐정은 괜찮다고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후배 3호는 전화를 끊더니, 텅텅 빈 일정 예약용 화이트보드 위에 글자를 써 내려갔다.
<제임스 연구소와의 미팅.>
노란 탐정은 그 미팅 약속을 바라보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철컥.
그 순간, 뭔가가 잠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
고개를 내려보니, 어느새 램프 사신이 노란 탐정의 손목에 튼튼한 쇠사슬을 잠가버린 상태였다.
‘인간, 언제나 함께야!’
***
미니 사신의 ‘앙대!’와 하얀 아귀의 ‘뀨힝힝’이 가득한 꿈속 정원.
나는 활활 타오르는 정원을 바라보며 나름대로 추억을 되짚어 보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이네.
최초의 미니 사신, 아니 황금 사신 정원.
미니 사신 정원으로 변하면서 사라져 버린 줄 알았는데, 그냥 구석으로 치워져 버린 거였다니.
예상조차 하지 못한 사실이었다.
유지에 장작이 필요한 데다가 현실도 아니었지만, 이곳을 발견한 것은 꽤 좋은 일이었다.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헤일로를 뒤집어쓴 채, 작은 의지를 흘렸다.
이곳은 꿈속이라서 헤일로를 써도 아프지 않으니까, 능력 테스트하기에 굉장히 적합한 곳이었다.
나는 댖지가 된 미니 사신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한 미니 사신을 들어 올렸다.
미니 꽃 사신.
시간과 관련이 있는 새싹 사신의 특수 개체.
나는 시간의 헤일로를 들어 올리며, 히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