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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45

나는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하질 않는 아귀 사신에게서 순간이동을 이용해서 도망쳤다.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세희 연구소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아늑한 안식처, 내 격리실이었다.

대충 감으로 느끼기에 예린이가 슬슬 땡땡이를 칠 시간이었으니까.

격리실에서 예린이의 품에 안겨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자연스레 순간이동으로 이곳을 향했다.

순간이동이 발동하는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눈을 뜨자, 평소대로 익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공간이 나를 반겨주었다.

은은한 조명이 만드는 부드러운 그림자가 벽을 타고 흘러, 전원이 꺼진 커다란 TV 화면에 드리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아늑한 가구들보다 눈에 띄는 것은 언제나처럼 내 방을 가득 채운 미니 사신들이겠지.

세희 연구소에는 미니 사신용 휴게 시설이 정말 많았는데, 아무리 휴게 시설이 늘어도 내 격리실의 미니 사신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숫자도 언제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해서 그런지, ‘엄마 격리실 하루 이용권.’ 같은 권리를 사고파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TV 맞은편에는 폭신폭신하고 커다란 침대가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지만, 두툼한 이불 아래에서 꾸물꾸물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불을 살짝 들춰보니, 예상대로였다.

미니 사신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누울 자리도 없이 빼곡하게!

그 모습은 형형색색의 부활절 달걀을 채워 넣은 달걀 한 판처럼 보일 정도였다.

‘앗!’

‘엄마다!’

‘히히.’

이불을 걷어내자, 이불 밑에 숨어서 뒹굴뒹굴 움직이고 있던 미니 사신들이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앗, 들켰어!’ 하는 장난기 가득한 즐거움이 가득해 보였다.

내가 그 모습을 보고 손을 휙휙 휘두르자, 미니 사신들이 물결처럼 스르륵 움직이더니 이불 위에 내 몸이 딱 들어맞을 크기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미니 사신들이 만든 실루엣은 마치 내 그림자를 본뜬 것처럼 정확했다.

눈대중만으로, 게다가 수많은 미니 사신이 협동해서 이런 정교한 일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미니 사신들의 협동 능력과 운동 능력은 볼 때마다 조금 신기했다.

내가 그 공간에 몸을 맡기자, 미니 사신들이 히히 웃으며 이불을 끌어 올려 덮어주었다.

그야말로 자동 침대!

나는 그렇게 침대 위에 누워 TV를 켜자, TV에서 뉴스 진행자와 전문 패널의 대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얼마 전, 사라졌던 황금 사신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이후 정상적인 활동을 재개했다고 합니다. 이번 실종 사태의 의미를 어떻게 보시나요?]

[네,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가 황금 사신에게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정서적 안정 측면에서 황금 사신의 영향이 매우 컸다는 점이 드러났죠.]

내용을 대충 들어보니, 황금 사신의 귀환과 사회 안정이라는 주제로 하는 대담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들이 있었나요?]

[황금 사신이 사라진 일주일 동안, 도시의 불안 지수가 평소보다 47% 상승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범죄율은 실제로 거의 증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불안감이 크게 고조되었다는 겁니다.]

나는 TV에서 흘러나오는 대담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황금 사신 하나를 손아귀에 쥐고 의지를 보냈다.

‘저거 너희들 이야기야.’

‘?’

하지만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황금 사신이었는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황금 사신에게 ‘인간들이 너희들을 싫어한대!’ 장난을 치려는 순간, 한 황금 사신이 침대 위로 폴짝 뛰어 올라와 나에게 의지를 보내왔다.

‘엄마! 비밀이 비밀 아니야!’

‘?’

그러고는 허공을 올려다보면서 나를 향해 의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비밀이 비밀 아니야!’라는 괴상한 의지를 듣자, 지금 말하는 황금 사신이 누구인지 떠올릴 수 있었다.

저 아이는 내가 댖지로 만들어도 비밀을 끝까지 지키던 황금 사신이었다.

‘다 태워버렸대!’

‘비밀이 해로운 오브젝트래!’

‘인간이 도와달래!’

‘보라색 동생이랑 같이 모험했대!’

무슨 소리지?

황금 사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그런지, 파편화된 단답문으로는 도대체 무슨 일인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황금 사신 언어 해독에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지만, 이번 이야기는 도무지 해독할 자신이 없었다.

특히 황금 사신은 시간 순서를 뒤죽박죽으로 말할 때가 많은데, 이야기가 길기까지 하니 난감했다.

그래서 이야기 도중 자주 등장한 보라 사신을 불러낸 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었길래, 나에게까지 비밀로 한 거야?’

그러자 보라 사신은 나보다 조리 있게, 사건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램프의 남자’의 계약 조건 때문에 엄마를 부를 수 없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시간 순서대로 차례대로.

이야기를 듣고 나자, 비밀로 할법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램프의 남자가 휘두르는 힘, ‘계약’은 그만큼 위험한 힘이었으니까.

게다가 빙의 능력이 강화되기 전에 ‘램프의 남자’를 만났다면, 푸른 소녀를 이용해서 파괴할 수 있었을까?

아마 지지부진한 전투가 이어졌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게 한차례 이야기가 끝나자, 나는 설명을 해준 보라 사신을 쓰다듬어 주며 칭찬했다.

‘잘했어. 역시 똑똑하네.’

그러자 그 옆에서 황금 사신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

[옥판….]

납 인형의 희미한 염파.

성녀 인형은 그것을 듣고 옥판을 내려다보며 조금 고민을 하다가, 납 인형에게 넘겨주었다.

성녀 인형에게 옥판은 나름대로 소중한 물건이었지만, 뭔가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작다고 생각했으니까.

성녀 인형이 교단에서 봤던 성물에 대해 적어둔 서적에 따르면, 옥판은 물리적으로 부수기가 굉장히 힘들었고 부서지더라도 금세 재생한다고 쓰여있었으니까.

게다가 납 인형은 신의 형상을 하고 신과 같은 느낌을 풍겼지만, 그 안에 품은 장작의 양이 너무 적었다.

[….]

그렇게 옥판을 받아 든 납 인형은 물끄러미 옥판으로 내려다보았다.

미동도 하지 않고, 하염없이 계속.

마치 옥판에 쓰인 글자를 읽은 것처럼 보였다.

[!]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납 인형은 보기 드물게 화난 표정으로 옥판을 이빨로 깨물기 시작했다.

이빨로 옥판을 부숴버리겠다는 것처럼 맹렬한 깨물기였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흉포한 야수였다.

하지만 회색 사신만큼이나 말랑한 납 인형의 이빨은 옥판에 상처를 입힐 수 없었다.

[앗!]

성녀 인형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납 인형에게서 옥판을 떼어놓았다.

그리고 납 인형에게서 옥판을 떼어낸 뒤, 성녀 인형은 납 인형의 입을 벌려 이빨을 확인하면서 타박했다.

[아, 역시. 이빨이 조금 깨졌잖아요.]

그러면서 황금색 장작을 납 인형에게 불어넣어, 납 인형의 조금 상한 이빨을 치료해 주었다.

[….]

자기 이빨이 통하지 않아서 그런지, 납 인형은 조금 시무룩한 분위기를 풍겼다.

마치 ‘내 이빨이 통하지 않는다니!’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납 인형은 표정 변화가 거의 없고, 염파도 거의 보내지 않아서 기분을 감지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성녀 인형은 납 인형의 기분만큼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성녀 인형에게는 오히려 표정이 살짝 더 다채로운 회색 사신 쪽이 알아채기 힘들었다.

그렇게 납 인형에게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하고 있었더니, 미니 사신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성녀 인형을 콕콕 찌르기 시작했다.

‘따라와!’

‘선물!’

성녀 인형은 납 인형을 커다란 하얀 아귀 위에 앉혀준 뒤, 미니 사신들을 따라나섰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하는 가벼운 의문을 안은 채.

[!!!]

그렇게 미니 사신들을 따라가 보니, 사탕 산맥 중턱에 커다란 건물 일부가 보였다.

설마!

성녀 인형은 어쩐지 익숙한 형태의 건물을 보고는 빠른 걸음으로 건물을 향해 달려 나갔다.

인간이었으면 숨이 차오를 정도로 가파른 경사로를 타고 올라 본 것은 익숙한 형태의 건물이었다.

[아아….]

성녀 인형과 교단원들의 추억이 깃든 건물.

하지만 성녀 인형이 태어났을 때는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교단의 건물.

건물의 재질은 과자로 만들어진 것 같았지만, 만져봐도 차이를 느끼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 감탄한 성녀 인형의 모습을 보며, 미니 사신들은 만든 보람이 있다는 표정으로 히히 웃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길로 쿠키로 만든 문을 밀고 들어가자, 기억 속에 있던 것과 똑같은 광경이 성녀 인형을 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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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건물 내부에 교단원들이 부활해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미니 사신들의 주인인 ‘회색 사신’도 하지 못한다고 했던 것이니까.

하지만 건물 내부에는 교단원 대신 검은 천으로 몸을 칭칭 감은 미니 사신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안녕!’

‘안녕!’

그런 미니 사신들은 성녀 인형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해맑은 표정으로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정말. 정말로 좋은 선물이네요.]

성녀 인형은 교단 내부를 바라보며, 그렇게 염파를 흘렸다.

[고마워요.]

***

세희 연구소 깊숙한 곳.

그 깊숙한 곳에 한 인간이 갇혀 있었다.

“서아 언니! 빨리 꺼내줘요!”

“조용히 해, 오브젝트! 진짜 오예린은 어디 있지?”

그것은 하얀색 연구원 가운을 입은, 오예린이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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