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68
‘아카데미에 입학하신 분들이라면 다들 아는 사실일 터입니다만 그래도 마법의 기원에 대해 짧게나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이건 마법학의 기본이니까요.’
‘먼 과거에는 마법이란 것은 도대체 무얼 하는 힘인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신께서 인간에게 내린 기적이다. 규율을 어기는 반역의 힘이다. 신이라는 존재에게 다가가기 위한 발판이다. 이외에도 무수한 의견들이 쏟아졌죠.’
‘허나 현대의 마법사들은 이를 가지고서 고민하지 않습니다. 대마법사 에르기누스가 마법의 기원을 밝혀냈으니까요.’
‘마법이라는 건 마력이라는 힘을 통해 세상에 자신의 뜻을 펼치는 일입니다. 신께서 무력하기 그지없는 인간을 위해 베풀어준 자비이며 과거의 선현들이 쌓아온 지혜의 총체이기도 하지요.’
‘훗날 마법사가 될 여러분들. 교과서에 적힌 내용은 여러분들의 기반이 될 터입니다만 그렇다 하여 여기에만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마법이라는 것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것이니까요. 언젠가 여러분들만의 마법을 찾아낼 그 날을 위해 계속해서 자신을 탐구하세요.’
조이가 아카데미에 처음으로 들어와 마법학 교수를 만났을 때. 학계에서 드높은 명망을 지닌 마법사는 첫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이러한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녀의 설명을 마법사들이 으레하는 이야기라 생각하고 한 귀로 흘려들었지만 조이는 아니었다.
한 개인만을 위한 마법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두 눈으로 직접 보았던 조이는 교수의 말이 허언이 아닌 진심임을 알았다.
그리고 진심임을 알았기에 그 광경에 도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이해했다.
그녀의 아버지. 파트란 가문의 공작이 펼치는 기적의 광경은 그녀가 평생을 바치더라도 닿을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경이로운 것이었으니까.
“마법사?”
“…네. 넷?!”
“집중해라.”
“네!”
잠시 정신을 놓았다가 해골의 목소리에 이성을 되찾은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가 내쉬고서 다시금 마법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태까지 조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풍경 그 이상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왕국 제일의 마법사이자 마도 제국의 여러 천재들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평을 받는 파트란 공작의 마법은 그만큼의 경이를 품고 있었으니까.
허나 지금 이 순간 조이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 마법의 기초를 갈고 닦은 대마법사이자 마법의 신조차도 존중을 표했다는 역사상 최고의 마법사가 보여주는 것들은 조이의 세계를 넓혀줬다.
“이제 가르침을 시작하마.”
“…아.”
해골이 손가락을 튕기자 대마법사의 능력에 의해 완성되었던 마법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경이를 잃은 조이가 아쉬움에 탄식했지만 해골은 그를 무시한 채 목소리를 냈다.
“이 부분. 무슨 의도로 그려낸 거지?”
“환각에 대한 대처를 하고자 했습니다. 해주와 관계된 마법 쪽에서 참고할 것을 가져와서…”
“그를 물은 것이 아니다.”
“…예?”
“마법사. 그대는 진정 공허의 권능을 파훼하기 위해 해주가 필요하다 생각했나?”
“…”
“아닐 것이다. 허나 그대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존재치 않았기에 모든 것을 고려하려 했지. 그 때문에 시작부터 어긋나버렸어.”
조이를 질책한 해골은 조이의 마법 속에서 해주와 관계된 것을 지웠다.
그러자 조이의 마법이 이전보다 훨씬 더 깔끔하게 바뀐다.
“마법이란 자신의 뜻을 마력을 통해 펼치는 것이다. 마법의 신께서 들으신다면 그런 거 아니라며 화를 내시겠지만 내 알 바인가? 내가 보기에 마법은 그렇다. 마법사?”
“예.”
“기도를 한다 생각을 해봐라. 한 가지의 간절한 바람과 온갖 욕망으로 가득 차 주절주절 이어지는 바람 중에서 무엇이 더 선명하겠는가.”
“한 가지의 바람입니다.”
“마법도 똑같다. 수십 가지의 잔재주보다 한 가지의 간절한 바람이 더 강하지. 내가 무얼 말하려는지 알겠느냐?”
“해야 할 일을 구체화시켜 마법 안에 한 가지 뜻만을 담으라는 것.”
기다렸다는 듯 조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에 해골이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좋아. 다음으로 나아가지. 이 마법 속에서 네가 불필요하다 생각하는 것을 지워라.”
해골의 가르침을 받는 조이는 무언가에 홀린 듯 그의 말에 집중했다.
주변에 서 있는 친구들도. 구석에서 들려오는 작은 코골이 소리도. 누군가가 자신의 메이스를 휘두르는 소리도. 어느 하나 그녀의 신경을 빼앗지 못했다.
마법사인 조이에게 중요한 것은 그저 마법에 대해 배우는 것뿐이었다.
“…따라가기 어렵네요.”
조이의 뒤편에서 함께 설명을 듣고 있던 페이비는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느낌에 작은 한탄을 내뱉었다.
요한 주교의 아래에서 신성 마법에 대한 가르침을 받으며 일반적인 마법에 관한 소양도 늘리고 있는 그녀지만 그 지식에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페이비가 자신의 업으로 삼은 것은 신성 마법이니까.
일반적인 마법에 대한 기본이 모자란 그녀로서는 해골의 설명을 완벽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벽에 부딪힌 것은 그 옆에 있던 아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카데미의 성적으로만 따지자면 조이에게 결코 뒤처지지 않는 아서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조이가 경탄을 하며 고개를 끄덕일 때 그는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야했다.
조이가 대답을 하며 해골의 웃음을 만들어낼 때 그는 조이의 대답을 들으며 깨달음을 얻었다.
두 사람 사이의 재능에는 그만한 격차가 존재했다.
평소에도 내심 저 녀석이 천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기이하게도. 오늘 따라 저 녀석이 더 먼 곳에 서 있는 것 같구나.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곳에 말이야. 조이가 눈을 반짝이며 쉴 새 없이 목소리를 내고.
해골은 거기에 호응하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고.
다른 두 사람은 해골의 설명을 따라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는 그 시간은 어느 순간 해골이 입을 다뭄에 따라 끊어졌다.
“…에르기누스님?”
“이쯤하면 그대들을 위한 조언은 충분히 한 듯 하군.”
“그치만 아직.”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도와주는 건 조언이라 하지 않는다. 이후에는 알아서 고민해보도록.”
“…가능할까요?”
“가능하다. 이 대마법사 에르기누스가 보증하지.”
아쉬움이 잔뜩 남은 조이를 뒤로 한 에르기누스는 그 뒤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길고도 긴 세월 동안 홀로 있다가 괜찮은 재능을 만난 탓에 너무 신이 났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내용까지도 알려줘 버렸어.
…시간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군.
속으로 한탄을 내뱉으면서도 해골을 몇 마디 말을 더 하고자 했다.
이들은 주신의 사도와 오랫동안 함께 할 자들이니 짐을 남겨둔 자로써 응당 조언을 해야한다고 속으로 변명하며.
“신실한 분. 당신은 지금 올바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정진한다면 분명 신께서 응답 해주실 테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이미 그 분의 인도를 받았으니까요.”
“과연.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페이비의 환한 웃음을 마주하고서 옆으로 시선을 돌린 해골은 아서를 마주하고 잠시 말을 멈췄다가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냈다.
“솔라딘의 피를 이은 자여.”
“예. 말씀하시지요.”
“내가 처음에 한 말을 기억하오?”
“간…절함에 대한 말씀이십니까?”
“간절함이 진정 간절해지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간절함을 의심해선 안 되오. 외면하지 말고. 마주보시오. 그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조언이오.”
“…기억해두겠습니다.”
해골은 무언가 하고픈 말이 남은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그 이상 아무 말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그의 시선 안에 들어온 것은 방 한 쪽에서 같은 자세를 수도 없이 반복하고 있는 루시의 모습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무작정 메이스를 휘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그녀는 조금씩 자신의 자세를 수정하고 있다. 자신에게 걸맞는 동작을 찾아내기 위해서.
자연스레 시선을 끄는 루시의 움직임을 살피던 해골은 그 속에서 한 가지 확신을 얻었다.
처음에 저 꼬맹이를 마주했을 때는 혹시나 했다만 이제는 분명해졌다.
지금 저 꼬맹이에게 조언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
루시가 있는 쪽으로 다가간 해골은 루시와 자신만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진즉부터 해골의 접근을 인지하고 있던 루시는 결계를 확인하고는 해골을 흘겨봤다.
“뭐에요? 동정 마법사님? 얼빠여우랑 가까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물어보러 왔어요?”
“…크흠.”
순간 고개를 끄덕일 뻔한 해골이었지만 그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그를 억눌렀다. 이 꼬맹이는 자그마한 틈만 보여도 온갖 헛소리를 나불거릴 녀석이니까.
“꼬맹아. 지금 너 루엘 그 녀석의 조언을 구하고 있지?”
“꼰대 할배가 너~무 귀여운 저를 굳이 도와주겠다고 해서요. 어쩔 수 없이 맞춰주고 있답니다. 정말 귀찮은 할배에요.”
“…크흡. 큽. 크하하하!”
자신의 동료를 모욕하는 말에 해골은 그 어떤 때보다 더 큰 웃음소리를 냈다.
푸하하! 그 까탈스러운 녀석한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녀석이 있다니!
우리가 영웅으로 살 적에는 생각도 못할 일이군!
루엘 그 놈은 저 말을 듣고도 가만 있는 건가?! 속으로 감내하고 있는 것이야!?
그 놈도 녹슬대로 녹이 슬었군!
“동정 마법사님. 드디어 돌아버리셨나요?”
“아니! 아직 멀쩡하다! 루엘 그 놈이 보고 있는데 허술한 모습을 보일 순 없지! 절대로!”
“그래요? 그럼 얼빠여우 데려와도.”
“그건 봐다오. 제발. 내 제대로 된 조언을 해줄 테니까.”
“흐응. 해봐요. 조언. 들어보고 결정할 게요.”
대마법사를 대하는 태도치고는 너무 건방진 모습이었지만 해골은 그 태도를 애써 받아들였다.
뭐라 그러다 진짜 저 매혹적인 여성이 다가온다면 그는 정신이 나가버릴 테니까.
결코.
결코 루엘이 즐거워 할 일은 해주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너는 지금 스스로의 몸에 맞는 움직임을 찾고 있지?”
“와아.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모르는 새 끈적한 시선으로 절 바라보셨나봐요? 얼빠여우는 연막이고 사실은 저한테 매력을.”
“시끄럽다! 내가 너 같은 꼬마한테 무슨! …크흠. 하여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라면 루엘의 조언은 좀 걸러 듣는 편이 낫다. 네 말대로 꼰대인 그 놈은 본능적으로 규율과 규칙을 찾아 헤매거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 때 기존의 지식을 완전히 버릴 필요는 없지만 거기에 너무 의존해서도 안 된다.
기존의 지식에 너무 목을 매면 새롭게 만든 것도 기존의 파생이 되어버리니까.
“아마 지금쯤 내 말에 열받은 루엘 놈이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겠지. 전달해봐라. 하나하나 다 반박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