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람회장은 군대에 의해서 완전히 봉쇄되어 있었다.
명목상으로는 외부로 오브젝트가 탈출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외부에서 내부를 못 보게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도대체 왜 드론으로 촬영하는 걸 막겠다는 겁니까?”
한 기자가 봉쇄중인 초소에서 목소리를 높여가며 항의를 하고 있었다.
“군 작전 보안을 위해서입니다. 뒤로 물러나 주십시오.”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항의를 하던 기자는 결국 군인들에게 붙들려서 무력하게 끌려 나갔다.
군인들의 말을 무시하고 드론을 띄운 기자들도 있었지만, 드론은 순식간에 격추돼버렸다.
그 뒤로는 드론 재밍 장치가 설치되는 등, 정말 삼엄한 경비를 하기 시작했다.
몇몇 군인들에게 우호적인 기자들은 오브젝트를 자극해서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기사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기자들이 보기에는 군인들의 감시 대상은 박람회장 내부의 오브젝트가 아니라, 외부의 시선으로 보였다.
***
거대 회색 사신에게 쫓기는 남자를 악몽에서 깨우는 것은 포기했다.
나를 보기만 하면 숨이 넘어가는 데다가, 아무리 오래 생존시켜도 악몽이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뒤로 수많은 꿈속을 돌아다녔다.
아귀들이 우글우글하게 몰려드는 꿈, 처음 보는 오브젝트가 쫓아오는 꿈 등등.
다들 무언가에 쫓기는 꿈이 많았다.
문제는 저런 식으로 쫓기는 꿈은 아무리 오래 도망쳐도 끝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인간을 악몽에서 깨어나게 하는 건 쉬울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정도로 어려울 줄이야.
이번에는 고라니 떼에게 쫓기는 여자를 뒤로하고 새로운 꿈속으로 들어갔다.
새롭게 들어온 꿈은 굉장히 정교했다.
대부분의 꿈은 구석진 곳은 흐릿한데, 이번 꿈은 세밀하게 세계로서 성립하고 있었다.
신기한 마음에 꿈속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신아, 잠깐 기다려!”
이번에 나타난 꿈은 친근한 인물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바로 오예린이었다.
정교하게 묘사된 박람회장에서 예린이 소리 높여 나를 찾고 있었다.
예린은 나랑 똑같이 생긴 꿈속의 회색 사신을 열심히 쫓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꿈속 사신은 예린이를 피해서 여기저기로 도망 다니고 있었다.
‘?’
이게 왜 악몽?
아주 즐겁게 놀고 있는 거 아닌가?
예린이 표정도 꽤 즐거워 보이는데?
“사신아. 여기 와서 같이 사진 찍자! 고라니 잠옷을 챙겨왔어!”
예린이의 손에는 아동용 잠옷 하나가 들려 있었다.
아니, 저 옷은 도대체 언제 준비한 거지?
이 지극히 현실에 가까운 꿈에서 이상한 부분은 딱 하나였다.
실제보다 10배는 커 보이는 황금 나무.
점점 밝아져가는 저 거대한 황금 나무가 의미심장했다.
예린이의 상상력이 뛰어나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이 박람회장은 애매한 부분 없이 정확하게 묘사되고 있었다.
저 10배로 커진 나무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리고 이 거대한 황금 나무의 의미는 금세 알아낼 수 있었다.
이 꿈이 악몽인 이유였다.
점점 밝아지던 황금 나무는 수면 파동을 뿜어낼 때와 같은 밝기에 도달하자, 빔을 쏘아 보냈다.
예린이를 노린 빔 공격이었다.
순간 움찔할 정도로 격렬한 빔 공격이었다.
다만 예린을 목표로 한 줄 알았던 빔 공격은 사실 예린을 대상으로 한 공격이 아니었다.
예린이가 손에 들고 있던 고라니 잠옷이었다.
“안 돼!!!!”
불꽃에 휩싸여 천천히 타들어가는 고라니 잠옷.
굉장히 천천히 타오르는 불이었다.
잠옷 하나 태우는데 30분은 걸릴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천천히 타오르는 불은 저주였다.
오래도록 절망하고 슬퍼하도록 만드는 저주.
예린이는 그 불을 끄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불은 소설 속에서 나오는 지옥 불처럼 절대로 꺼지지 않았다.
심지어 물속에 집어넣어도 타올랐다.
“안 돼!” “안 돼!!” “안 돼!!!”
결국 재만 남은 고라니 잠옷 앞에서 예린은 대성통곡을 했다.
그와 동시에, 세계가 뒤로 감기기 시작했다.
예린이 행복한 표정으로 꿈속 사신의 뒤를 쫓는 그 순간으로 말이다.
***
박람회장 감시 초소 안을 초조하게 배회하고 있었다.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는 명확했다.
이번 사건의 피해 규모를 늘려라.
박람회장의 인간이 모두 몰살돼도 상관없다.
그 비밀 지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온갖 핑계를 대고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시간을 끌면 자연히 피해가 늘어날 테니, 시간을 끌고 있었는데 이변이 발생한 것이다.
인간에게 상해를 입힐 만한 오브젝트의 전멸.
상부에선 더 큰 피해와 더 많은 논란거리를 바라고 있었는데, 큰 문제가 생긴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황금색의 사신 때문에 모든 일이 어그러졌다.
황금색 사신이 어디론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드디어 인명 사고가 일어나는가 싶었는데 결과는 정반대로 나와 버린 것이다.
이젠 시간을 끄는 것만으로는 상부의 지시 사항을 달성할 수 없게 되었다.
“어쩔 수 없군.”
그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입이 무거운 병사들 몇을 추려라, 직접 박람회장으로 들어간다. 칼로 죽이면 오브젝트가 한 거라고 우길 수 있겠지.”
이젠 직접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어차피 목표물은 잠들어있는 사람들뿐이니, 간단한 임무다. 최대한 빠르게 마치고 빠져나온다.”
깊은 밤, 사람들의 눈을 최대한 피해서 박람회장으로 향했다.
소수의 병사들과 봉쇄된 박람회장으로 잠입했다.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박람회장.
간이 로프를 설치하고 내려가서 작전을 설명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죽이고 30분 후 집합, 그리고 귀환하는 간단한 임무였다.
“지금으로부터 30분 뒤, 여기서 모인다.”
각자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흩어지는 병사들의 앞을 막는 존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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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사신이었다.
그렇게 많던 황금 사신은 한 마리만 남아있었다.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노려보는 황금 사신.
얼마전까지만 해도 오브젝트들을 도륙 내던 모습을 봐서 그런지 병사들의 몸이 확연히 굳어진 게 느껴졌다.
“지금 당장 흩어져! 무시하고 임무로 들어가!”
밝혀진 것이 전혀 없는 신종 오브젝트였지만, 인간을 공격한 사례가 없다는 것만이 희망이었다.
설령 황금 사신이 인간을 공격한다고 해도,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상부의 지시를 이행하지 못해도 죽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병사들이 흩어지는 것과 동시에 황금 사신도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병사들은 얼마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사인은 가슴팍에 뚫린 구멍이었다.
그렇게 장내를 바라보던 내 입에서도 핏물이 울컥 올라왔다.
입으로 끝없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내 앞에 피로 푹 절여진 황금 사신이 서있었다.
혐오하는 눈빛으로 나를 내리깔아보는 눈빛은 죽어가는 내가 보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
예린의 악몽.
이걸 악몽이라고 봐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이 느끼기에 악몽이니 악몽이겠지.
예린의 악몽은 나와 관련된 악몽이었다.
나와 관련된 만큼 생각보다 쉽게 해결이 가능할 것 같았다.
우선, 꿈속 사신을 정신없이 따라가는 예린의 눈앞으로 걸어 나갔다.
“와! 사신아.”
예린이는 가까이 다가온 나를 발견하고는 활짝 웃으면서 껴안았다.
예린은 행복한 웃음을 흘리면서 자랑하듯이 뭔가를 꺼냈다.
“짜잔, 고라니 잠옷이야! 귀엽지?”
내 몸에 고라니 잠옷을 대보면서 말을 이었다.
“이거 입고 사진 찍자. 박람회장에 왔으니까, 사진 하나 정도는 남겨야지!”
잠옷을 봤을 때부터, 왠지 이럴 것 같았다.
옷은 너무 불편해서 웬만해선 입지 않지만, 악몽을 물리치기 위해서 이번만큼은 양보해 주기로 했다.
꿈속이라 그런지, 날씨는 어느새 화창하게 바뀌었다.
허공에서 유령 고양이가 갑자기 나타나서 내 품에 안겼다.
하늘에는 구름 고기와 구름 고래가 날아다녔다.
푸른 잔디밭에는 꽃들이 만개했다.
그 꿈 같은 광경을 배경으로 해서 고라니 잠옷을 입고, 고양이를 품에 안고 섰다.
찰칵.
“와! 이거 봐봐!”
사진 속에 찍힌 모습을 보며 예린은 꺅꺅거리며 좋아했다.
신나게 방방 뛰며 좋아하던 예린은 점점, 점점 풀 죽더니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거 꿈인 거지?”
‘이런 행복한 일이 있을 리가 없어. 사신이가 옷을 입어주다니….’라고 예린이 중얼거렸다.
“사신이가 아무 이유 없이 옷을 입어주다니, 말도 안 돼. 이건 꿈이야!”
예린이는 머리를 사정없이 좌우로 젓더니 고함을 쳤다.
예린이의 고함 소리와 함께 세상은 와장창 박살이 났다.
***
황금 나무 옆에서 눈을 떴다.
예린의 악몽을 해결하자, 잠에서 깨어났다.
황금 나무는 능력을 잃고 나무 같은 모습을 잃어버렸다.
이제는 나무라기보다는 황금 블록 같은 형상이었다.
나무를 툭하고 건드리니까, 묵직한 소리가 울리면서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러고 보니, 황금 사신이 보이질 않는다.
황금 사신이 하루살이라지만, 아직 사라지려면 몇 시간은 남았을 텐데?
내게 붙어 있던 사신뿐만이 아니라, 박람회장에 있던 대부분의 황금 사신이 사라져버렸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유일하게 황금 사신의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가보니, 참혹한 광경이 나를 반겨줬다.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구석에 기대고 서있던 황금 사신은 나를 보더니, 일어나서 손을 흔들었다.
환하게 웃으면서.
또 보자는 것처럼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했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황금 사신은 불꽃으로 변해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