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방뚜방.
연구소 복도를 걸어 다니며, 새로 얻은 능력의 실험 대상을 물색했다.
이번에 처리한 오브젝트는 꽤 있었다.
황금 나무, 예티 그리고 황금 사신이 구멍 뚫어둔 무력화된 오브젝트들.
아쉽게도 황금 나무를 제외한 다른 오브젝트들에게서는 아무런 능력을 얻지 못했다.
원인은 잘 모르겠지만, 능력을 얻지 못하는 오브젝트는 종종 있었다.
기준?
그걸 알아보려고 1년 전에 열심히 조사했었다.
육체적인 능력을 주로 사용하는 오브젝트일수록 아무것도 못 얻을 확률이 높았다.
아마 근육이 비대해지거나, 가죽이 질겨지거나, 튼튼한 털이 나는 것 같은 능력은 내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아닐까?
다행히 황금 나무에게서는 수면 능력을 얻을 수 있었다.
상대방을 재우는 능력인데, 어느 정도의 효과를 가지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뚜방뚜방 복도를 걸어 다니다 보니,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쾅.
탁자를 손바닥으로 강하게 내리치는 소리 같았다.
소리가 난 곳은 세희 연구소 회의실.
유령화로 몰래 들어가 보니 자주 보기 힘든 얼굴이 있었다.
세희 연구소 부소장 박서아.
부소장실에서 나오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다음에야 보기가 힘든 얼굴이었다.
박서아는 화난 표정으로 책상을 내리쳐가며 소리치고 있었다.
박서아는 웬만해선 화를 내지 않는데, 저렇게 화를 내다니 무슨 일인 걸까?
“오예린 연구원. 해명 좀 해보세요.”
박서아의 내리친 손 밑에는 두 장의 사진이 놓여있었다.
하나는 황금 사신을 몰래 가방에 담아서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오예린의 모습이 찍힌 사진.
나머지 하나는 이번 박람회에서 찍힌 피투성이 황금 사신의 사진.
예린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쭈그러들었다.
황금 사신 무단 반출 때문에 혼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연구원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오브젝트를 무단으로 반출할 생각을 할 수 있죠?”
“죄송합니다.”
예린은 쭈글쭈글, 반대로 옆에 앉아있는 세희는 자신은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
“이세희 연구소장님!”
세희는 갑자기 자신이 불리자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도대체 감시 체계가 어떻게 되어있길래, 개인의 일탈만으로 이토록 쉽게! 이토록 간단하게! 오브젝트가 밖으로 빠져나갈 수가 있는 거죠?”
“그건, 예린이가 CCTV를 조작해놔서….”
“격리가 꼭 필요한 고 위험도 오브젝트가 오예린 연구원을 세뇌해서 탈출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때도 그런 말로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세희 연구소는 폐쇄되고 소장님은 구속감입니다!”
세희도 예린처럼 쭈글쭈글해졌다.
사실 예린이 오브젝트를 몰래 숨겨서 나가는데 성공한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는 했다.
평범한 연구소라면 절대로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서아의 잔소리의 결과는 참혹했다.
예린은 감봉과 근무지 변경을 당했다.
한동안 부소장실에서 근무하게 된 것이었다.
세희는 부소장이 감시체계를 다시 만드는 동안 부소장 대신 서류업무를 하게 되었다.
그 말을 들은 예린과 세희의 표정은 나라를 잃은 사람 같았다.
아, 그러고 보니 수면 능력 실험해 봐야 하는데….
***
터덜터덜, 무거운 발걸음으로 사신이의 격리실로 향했다.
아, 오늘부터 부소장실 근무라니.
사신이를 보러 나오기가 10배는 어려워졌다.
격리실에 들어가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사신이가 이불을 들추고 팡팡 침대 위를 두들겼다.
마치 이불 속으로 어서 들어오라는 것처럼 보였다.
와! 사신이의 초대!
나는 그대로 후다닥 달려서 침대 속으로 다이빙 했다.
그리고 사신이가 덮어주는 이불을 만끽하며 눈을 감았다.
어라, 갑자기 엄청 졸리네.
Zzz.
***
예린이에게 시도한 수면 능력 테스트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접촉 시에만 사용 가능.
오브젝트 대상으로는 사용할 수 없음.
한 번에 한 명을 재울 수 있음.
이번에 얻은 수면 능력은 나름대로 괜찮았다.
예린이가 귀찮을 때 재워두면 완벽!
지금은 귀찮지 않으니까, 예린이의 볼을 때려서 깨웠다.
때찌때찌.
예린은 생각보다 순식간에 일어났다.
흠, 수면 유지 능력은 조금 부족한 것 같네.
“아, 깜빡 졸았나?”
눈을 슥슥 문지르던 예린은 내 쪽으로 돌아보더니, 꼭 껴안고는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부소장실에서 근무하게 돼서 쉽사리 빠져나올 수가 없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사실 황금 사신 무단 반출에는 내 책임도 조금은 있으니 살짝 미안하기는 했다.
그리고 이번 황금 나무 사태를 해결한 것도 예린이 덕을 봤으니 뭔가 선물을 줘야겠다.
뭐가 좋으려나?
***
옴뇸뇸.
황금 사신이가 책상 위에서 꼬물거리고 있었다.
“와!”
내 투정을 들어주던 사신이는 갑자기 황금 사신이들을 소환했다.
그리고 배고파 보이는 황금 사신이들에게 케이크를 꺼내놨더니 이런 상황이다.
단걸 좋아하는 황금 사신이들은 케이크로 달려가서 각자의 방법으로 즐기고 있었다.
귀여워!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다.
서아 언니가 오브젝트를 함부로 찍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황금 사신이는 착한 애들이니까 괜찮을 거야!
마음 같아선 다시 집으로 데려가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참아야겠지.
그리고 데려가면 왠지 또 악몽을 꿀 것 같았다.
자는 도중에 황금 사신이의 온기가 사라지면 너무 슬퍼.
꼬물거리는 황금 사신이는 총 3마리.
하나는 코코아 속에 잠겨 있었다.
조금씩 줄어드는걸 보면 분명 마시고 있는 건 분명한데, 왜 저러는 걸까.
뭐, 귀여우니까 상관없지만!
나머지 둘은 케이크에 열중하고 있었다.
하나는 케이크 스펀지를 껴안고 냠냠.
하나는 딸기 잎사귀를 먹고 있었다.
왜 그런 걸 먹는 거야!
딸기를 제대로 먹게 하고 싶어도 손대려고 하면 화를 내니까 그저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절로 흘러나오는 웃음을 실실 흘리면서 사진을 계속, 계속 찍었다.
화가 난 서아 언니가 나를 데리러 올 때까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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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납치 사건은 마무리 단계에 도달해가고 있었다.
납치된 사람이 어디로 팔려갔는지를 알아냈으니 말이다.
황금뿔 브로커에게서 정보를 얻고 팔려간 곳을 추적해보니 목적지를 알 수 있었다.
바로 이 곳, 부천 연구소였다.
의뢰인의 언니는 부천 연구소로 산채로 팔려간 정황이 명확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운영 중이라는 말과 달리 완전히 폐허 상태였다.
아무래도 이미 장사 접고 멀리 도망가 버린 것 같은데?
완전히 폐허가 된 연구소로 몰래 잠입했다.
건물은 쓰레기가 가득할 정도로 정리가 안 되어 있었고, 건물 외벽은 철근을 드러낼 정도로 상해있었다.
“이야 완전 난장판이네.”
“선배! 좀 조용히 하세요. 그 유명한 ‘메이커’가 있을 지도 몰라요. 기!도!비!닉! 몰라요?”
조용히 하라는 후배의 목소리가 내 목소리의 3배는 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까?
멀리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적한 도로에 울리는 차량의 주행음.
그것도 꽤 숫자가 많았다.
아무래도 이 연구소에 볼일이 있는 건 우리만이 아닌 것 같은데?
그 유명한 ‘메이커’의 아지트니까 당연한 건가?
“누군가 오고 있어.”
경고를 하고 뒤를 돌아보니 대형 망치를 손에 꼭 쥐고 긴장한 후배가 보였다.
그 뒤로는 여기까지 기어코 따라온 우리의 의뢰인, 혜진 양이 있었다.
연구소 입구로 수많은 차량이 줄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선두로 도착한 대형 승합차에서는 2명을 선두로 많은 사람들이 내려섰다.
선두로 다가오는 인영 2개.
길쭉한 그림자 하나와 짜리몽땅한 그림자 하나.
나타난 것은 검은 양복을 숨 막히도록 갖춰 입은 남자와 금발의 소녀.
둘 다, 내가 익히 하는 사람이었다.
“친구~ 오랜만이야!”
“그래.”
“그리고 아가씨도 오랜만~”
금발의 소녀는 내 인사에 대꾸 없이 그저 우아하게 꾸벅 고개를 숙이기만 했다.
중앙 연구소 소속이었던 검은 녀석과 오무룡 협회장의 손녀.
아니 지금은 협회장이 아니던가? 어쨌든 높으신 분의 손녀.
그 손녀의 뒤에는 보디가드로 보이는 사람이 병풍처럼 빙 둘러서 서 있었다.
“우리는 지금 황금뿔 납치 사건의 피해자분의 수색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그쪽은 어때?”
“우리는 황금뿔 사건 자체를 해결하기 위해서 추적해왔지만… 이미 늦은 것 같군.”
“그치? 그럼 빨리 내려가 보자고. 범죄자들은 지하를 사랑하니까 말이야.”
나는 성큼성큼 걸어서 연구소 안으로 들어섰다.
검은 녀석은 뒤이어 도착한 직원들에게 주변 봉쇄를 지시하고는 나를 따라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연구소 내부는 외부보다 한층 더 박살이 나있었다.
여기가 진짜 얼마 전까지 운영하던 연구소라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는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리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느껴지는 짙은 피 냄새.
컴컴한 계단을 지나 지하실로 완전히 내려서자, 지독한 혈향의 원인이 밝혀졌다.
격리실마다 찐득하게 눌어붙은 핏물.
조각난 팔다리와, 뭉개진 신체 조각들.
도대체 여기서 뭘 한 거야?
도대체 무슨 실험을 해야 이런 격리실 풍경을 만들 수 있는 걸까.
격리실 밖에는 파랗게 질린 시체들이 구석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마치 쓰레기처럼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언니!”
혜진 양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를 쳤다.
그리고 시체 무더기 쪽으로 급하게 뛰어나갔다.
시체들에 뿔이 잘린 흔적이 모두 동일하게 있는 것을 볼 때, 모두 납치된 피해자들로 보였다.
찾아달라는 의뢰인의 언니는, 이미 사망했다.
“안 돼! 언니, 언니, 언니!”
흐느끼는 의뢰인의 울음소리와 함께, 생사불문으로 언니를 찾아달라는 의뢰는 성공했다.
비극이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