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9
뭐지?! 뭐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세례라는 거 원래 이렇지 않잖아.
게임 속에서 세례를 받을 적에는 그냥 단순한 이펙트가 뜨고 끝이 났다고. 이것도 현실이 되면서 무언가가 달라진 거야?
혹시나 싶어 마력 너머에 있는 페이비의 시선을 살폈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것만 봐도 이게 정상적인 상황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허접 주신 또 무슨 짓거리를 하는 거야?!
당신의 사도란 게 들켜버리면 내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거야?
아니면 진짜 날 암살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냐?!
“알른 영애님. 눈을 감아주시겠어요?”
페이비는 분명 당황했으면서도 별 일 아니라는 것처럼 말을 이었다.
자신의 감정과는 별개로 침착히 일을 진행하는 부분에서 그녀가 프로라는 게 느껴졌다.
…일단 시키는 대로 빠르게 세례를 진행하자.
어차피 내가 말을 하지 않는 한 아르마디의 사도라는 게 밝혀지는 건 아니잖아.
모르는 척 하면 그만이야.
내가 눈을 감고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자 페이비가 세례의 기도문을 읊었다.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중 띠링하는 소리가 났다.
메시지?
호기심에 슬며시 한 쪽 눈을 떴더니 내 앞에 창이 하나 떠올라 있었다.
[퀘스트 클리어]
[세례를 받음에 따라 당신은 아르마디의 신도가 되었습니다.]
[아르마디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당신의 존재가 아르마디의 사도로 격상됩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이제부터 ‘퀘스트’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하?”
퀘스트 기능?
“알른 영애님.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에요. 허접 성녀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계속 진행을 하도록 하죠.”
머릿속에 물음표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아르마디의 사도가 된 거야 알고 있었던 일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퀘스트 기능은 도대체 뭔데?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거야?
마음속으로 ‘퀘스트’라는 단어를 중얼거리자 나의 앞에 매일 아침 나를 맞이해주었던 창이 떠올렸다.
맞네. 소울 아카데미에 존재하던 퀘스트 창.
“후우.”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이 너무도 많았다.
메시지로 나에게 말을 걸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곤 생각했다.
시선이 닿았다거나 축복이 전해진다거나 하는 게 메시지로 떠오르는 건 그럴 수 있다 쳐.
그렇지만 메시지로 말을 거는 건 이상하잖아.
보통 계시라는 건 루엘 할배가 하듯 말을 거는 거지 메시지로 떠오르지 않는다고.
그야 메시지는 게임 속의 기능이니까.
당시엔 상황이 워낙 다급해서 넘겨버렸지만 퀘스트 창이라는 기능이 해금된 걸 본 순간 다시금 의문이 생겨났다.
아르마디. 넌 대체 뭐길래 게임 속 기능을 조작할 수 있는 거야?
설마 내가 게임 속에 끌려 들어오게 된 것과 관련있는 거냐?
뭐 이건 물어봐도 대답 안 해 줄 게 뻔하니까 다른 것 좀 물어보자.
게임 속 기능을 조작할 수 있으면 좀 더 쓸만한 걸 내놓을 것이지.
퀘스트 창이 뭐냐. 퀘스트 창이.
상태창이라거나. 감정 기능이라거나. 스킬 목록이라거나. 지도라거나. 좋은 게 얼마나 많은데 그 중에서 퀘스트 창을 준다고?!
허접 주신 너 그냥 나 골탕먹이고 싶은 거지? 그렇지?!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빌어먹을 허접 주신은 침묵을 지켰다.
지금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 지 훤히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도.
“이제 당신은 아르마디의 아래에 서게 되었습니다.”
페이비가 말을 함과 동시에 내 주변을 둘러싸던 신성한 마력들이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간지러운 기운들이 내 심장에 스며들어 혈관을 타고서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기이한 일이었다.
몸 안의 무언가가 뒤바뀌고 있었다.
내가 이전에 영약을 들이켰을 때처럼.
그렇지만 그 때와는 달리 내겐 아무런 고통도 찾아오지 않았다.
나의 몸을 휘젓던 기운들이 움직임을 멈췄을 때 페이비가 선언하듯이 목소리를 냈다.
“이로써 세례를 끝마치겠습니다.”
*
<성기사의 길에 들어서게 된 거다.>
교회에서 빠져 나와 세례를 할 때 느꼈던 경험을 할배에게 이야기해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신의 기사가 되면 그들의 신성한 기운이 사람의 육신에 변화를 일으키지. 네가 겪은 것은 그 과정일 것이다.>
그러니까 세례를 받으면서 자동으로 전직을 하게 됐단 소리지?
성기사인가.
나쁘지 않아.
따지고 보면 잘 된 일이다.
내가 키우고 있던 스텟이나 숙련도를 생각하면 최적이라 해도 무방하니까.
애초에 성기사가 되는 걸 염두에 둔 상황이기도 했고 말야.
그렇지만 왜 이리 기분이 찝찝한 걸까.
이게 다 그 빌어먹을 허접 주신의 뜻대로 흘러간단 느낌이 들어서 그런 건가?
<보통 성기사가 되기 위해선 여러 시련을 거쳐야 한다만 아르마디께선 네게 무척이나 관심이 많은 모양이구나.>
‘그러게요.’
관심을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말이지.
하아. 괜한 고민을 해서 뭘 하겠어.
결국 내가 원하던 대로 일이 진행된 거잖아.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생각하는 게 훨씬 더 이롭지.
‘할아버지. 성기사가 사용하는 여러 기술에 대해 알려주실 수 있죠?’
<물론이지.>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아르마디의 사도가 되었으니 아그라는 이전보다 더 내게 집착을 할 것이다.
어떻게든 나란 존재를 세상에서 지우려 노력하겠지.
그러니 죽고 싶지 않다면 강해져야 했다.
그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로.
숙소의 방으로 돌아온 나는 오늘 소울 아카데미에서 얻어 온 케타르의 수정구를 꺼내어 손에 쥐었다.
영약을 먹었을 때와 같은 고통을 느낀다 생각하니 수많은 걱정과 공포가 내 머릿속을 휘저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모든 생각을 공포극복이 지워버렸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서 케타르의 수정구를 깨트렸다.
그리곤 고통에 몸부림을 치다 정신을 잃었다.
영약을 먹었을 때보다 더 아플 수도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진짜로.
*
며칠이 지나 영지로 돌아왔을 때 베네딕은 나를 보자마자 여태 내가 겪었던 것 중에서 제일 심하게 호들갑을 떨었다.
던전에서 일어난 사건 이후 매일 밤마다 통신 마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도 그랬다.
아니. 반대로 생각을 해보면 통신 마법으로 안심을 시켜줘서 겨우 이 정도인 건가.
만약에 통신 마법이 없었다면 얼마나 난리를 쳤을까.
사고가 있었던 날 오열을 하며 소울 아카데미를 박살내겠다 소리치던 모습을 떠올리면 내가 돌아오기도 전에 소울 아카데미에 쳐들어오지 않았을까.
그렇게 영지로 돌아왔던 당일에 난 베네딕에게 붙잡혀선 하루를 보내야 했다.
이번에 한해서는 밉다거나. 징그럽다거나. 꺼지라거나 하는 말도 먹히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연금술사를 만났을 때보다 더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밤을 지낸 다음 날 나는 아침 일찍부터 바깥으로 나왔다.
본래라면 포셀과 함께 즐거운 단련의 시간을 보내야 하겠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던 것이다.
“또 무슨 업적을 이룩하셨습니까?”
근 몇 달 만에 만나게 된 주신 교회의 주교인 요한은 여느 때와 같은 밝은 웃음으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아실지 모르겠는데…’
“꼴통주교가 알진 모르겠지만 내가 이 허접 교회의 세례를 받아서 신도가 됐거든?”
“알고 있습니다. 성녀께서 직접 세례를 해주셨다더군요.”
벌써 거기까지 소식이 전해진 거야?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나에 대한 정보가 그렇게 빨리 퍼진대?
뭐. 차라리 잘 됐다. 거기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굳이 설명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제가 신성마법을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꼴통주교. 내가 신성마법을 익힐 수 있게 돕도록 해.”
이전에 세례를 받으면서 신성을 몸 안에 품게 된 나지만 아직까지 신성마법을 사용하진 못한다.
왜냐하면 신성마법을 쓰기 위해선 교회에서 가르침을 얻어야 하거든.
대화하기도 껄끄러운 요한을 굳이 찾아온 이유가 바로 이거다.
신성마법을 배우기 위해서.
소울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까지 어느 정도 숙련도를 키워 놔야하지 않겠어?
내 부탁을 들은 요한은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내리고는 말을 이었다.
“영애님. 신성마법이라는 것은 단순히 아르마디의 신도가 되었다고 배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오랜 시간 자신의 신앙을 증명한 후에야 사제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요한은 여러 이유를 들어가며 부탁을 거절했지만 나는 그 모든 게 핑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신성력을 일정 이상 쌓아야만 배울 수 있는 마법이 있긴 하지.
근데 그렇지 않은 마법도 있잖아.
어디서 내가 배울 수 있는 게 없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야.
그냥 내가 마음에 안 든다 할 것이지.
음흉한 노친네 같으니라고.
이런 식으로 나올 거란 건 알고 있었지만 생각한 것보다 더 노골적이네.
나는 요한이 하는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다가 품 안에서 유리병을 하나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무엇입니까?”
‘마력 상승의 영약이요.’
“마력 상승의 영약이야. 너 같은 허접은 평생 보기도 어려운 물건이지.”
“…그게 정말입니까?”
‘아르마디에게 걸고 맹세할게요.’
“허접 주신한테 걸고서 맹세할게. 이건 영약이 맞아.”
자신을 향한 모욕에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던 요한이지만 내가 아르마디를 허접주신이라고 부르자 입술을 일자로 만들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 자는 음흉한 노인이지만 동시에 독실한 성직자이니까.
신을 믿는 자의 앞에서 허접 소리를 했으니 어떤 험한 말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었다.
허나 요한은 정색을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마력 상승의 영약이라는 건 그만큼이나 매력적인 물건이었던 것이다.
영약은 마시기만 하면 바로 능력치를 상승시켜 준다.
그 능력치가 바닥을 치건 한계치에 달했던 간에.
당연히 영약이 더 가치 있게 다가오는 것은 후자 쪽이다.
능력치가 낮을 적에는 그를 상승시키는 게 어렵지 않지만 능력치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수치를 상승시키는 데에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하니까.
지금 내 앞에 있는 요한 같은 경우엔 성직자로써 최상위의 자리에 달한 사람.
능력치를 상승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하고 더 강해지기 위해선 스킬의 숙련도를 쌓는 것밖에 남지 않은 이다.
그런 사람에게 영약이란 너무도 매혹적일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 더 높은 곳을 향하는 걸 포기하지 않은 요한이기에 더더욱.
‘저를 가르쳐 주신다면…’
“날 도와주겠다고 약속한다면 이 영약을 줄게”
게임 속에서도 너는 영약의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어.
과연 지금이라고 다를까?
난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
요한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 영약을 바라보다가 길게 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얼 배우고 싶으십니까?”
하하. 역시나.
아무리 고귀한 척을 해봐야 결국 자신이 바라는 물건 앞에선 어쩔 수가 없지?
허접한 성직자 같으니라고.
내가 입술을 가리며 웃음을 지어보자 요한이 입술을 곱씹었다.
<이게 아르마디의 사도가 할 행동인가 싶구나.>
내가 요한을 유혹에 빠트리는 것을 구경하던 할배는 현실과 타협해 버린 요한을 보고는 목소리를 냈다.
‘뭐 어때요. 전 제가 사도가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닌데.’
<허어. 아르마디께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그러게요.’
물어볼 수 있다면 제가 물어보고 싶은 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