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45
왕국의 제 1기사단은 나라의 정예 중의 정예를 모아 놓은 최강의 무력집단이다.
당장 이 곳에서 알른 가문의 기사단을 제외한다면 제1기사단을 상대로 승리를 점할 수 있는 자는 존재치 않는 수준.
그런 이들이 최전선에 서겠다고 단언한 것은 분명 전력이란 부분에선 좋은 이야기였지만 조금 바꾸어서 이야길 하자면.
“공을 독점하시겠단건가요?”
이번 일로 얻을 것들을 집어삼키겠단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2왕비의 삐딱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1왕비는 여전히 태연한 웃음을 지었다.
“제 아무리 에르기누스님께서 단언한 일이라 하더라도 만약의 변수는 존재합니다. 저희가 상대하려는 건 드높은 악이니까요. 그렇다면 그 만약이 생겼을 때 가장 앞에 믿음직스러운 이들이 존재하는 게 낫지 않나요?”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알른 백이 자신의 기사단을 이끌고 선두에 서는 편이 낫죠. 단언컨대 알른의 기사단은 대륙 최강이니까요.”
2왕비는 자신의 사람들이 머무는 2기사단을 언급하는 대신 알른 쪽으로 이야기를 넘겼다.
권력싸움을 하기 위함이 아니란 걸 드러내기 위해서. 그리고 1왕비의 독단을 견제하기 위해서.
“알른 백?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신에게로 화살이 돌아왔음에도 베네딕의 표정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저희 기사단에 최강이란 과분한 호칭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베네딕. 왕국의 수호자로써 그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란 건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 그 누구도 그걸 의심하진 않아요. 아시잖아요? 제가 묻는 게 다른 거란 거.”
“굳이 최전선에 서야만 한다면. 그리고 지휘를 담당해야 한다면. 예. 그건 저희 기사단이었으면 좋겠군요.”
과거의 베네딕을 아는 이들은 그가 이토록 강하게 자기주장을 한단 사실에 놀랐다.
자신이 지닌 무력만큼이나 드높은 충성을 지닌 그는 나라가 바라는 일이라면 얼마든 한 걸음 뒤로 물러섰으니까.
사실 이번 일이 단순히 왕국에서 주도한 것이었다면 베네딕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1왕비의 의견을 존중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이번 일은 그의 딸이 바라여 계획한 일이고, 여기에 자그마한 어긋남도 존재해선 안 된다.
만에 하나라도 루시가 슬퍼할 법한 일이 생겨나게 내버려 둘 순 없다. 그러니 내가 전선에 서겠다. 그 어떤 재앙도 나의 힘으로 짓눌러 막아 보이겠다.
“흐음.”
이런 베네딕의 의지를 느낀 걸까. 1왕비는 잠시 침묵하다가 이내 고갤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일단 이 이야기는 뒤로 물리죠. 다른 분들 먼저 발언해 주세요.”
“저와 제 2 기사단. 그리고 제 옛 가문의 병력들은 마도 제국과 맞닿은 곳에 자리하겠습니다. 제가 거기에 있어야 외교적인 분쟁이 생겨도 해결이 쉬우니까요.”
1왕비가 물러서지 무섭게 2왕비가 목소리를 냈다. 1기사단에 비해 약간 부족할 뿐 정예라는 사실에는 변함없는 2기사단과 왕비의 옛 가문의 정예들이 합쳐진 전력은 분명 거대하다.
거기에 더해 2왕비 본인도 상당한 수준의 전사이니 2왕비의 세력이 거기에 자리하는 데엔 아무런 문제도 없다. 무엇보다도 그 곳을 지키게 되면 공을 차지하기가 어려우니. 높으신 분이 험지를 차지하겠다는 데에 반기를 드는 자는 없었다.
“버로우의 기사들 또한 최전선에 자리하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또 다시 어둠의 악신을 마주해야하는 자리인데요.”
“그렇기에 자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복수를 위해서.”
작년 어둠의 악신에 의해 모든 걸 잃어버릴 뻔 했던 버로우 공작은 복수에 대해 이야기하며 살벌한 웃음을 지었다가 이내 다른 이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보고 표정을 다잡았다.
“아 물론 지휘권을 바라진 않습니다. 저 또한 그 자리에선 한 사람의 기사로써 창을 휘두르죠.”
버로우 공작마저 최전선에 자리하겠다 선언함에 따라 더 이상 최전선에는 인력이 필요치 않게 됐다. 가장 기피해야 할 장소가 가장 먼저 채워진 것이다.
“저희 켄트 가문은 아르테아 백작가와 연계하여 후방의 수호와 보급을 담당하겠습니다.”
“아르테아는 이번에 군을 유지하기 위한 보급에 주력하겠습니다.”
이번 일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켄트 가문과 해상 병력이 주인 아르테아 가문이 뒤로 물러서자 그 아랫 순번이 된 이들은 놀라운 일을 마주하게 됐다.
제 2선. 그러니까 피해는 그리 크지 않으면서 공을 취하긴 좋은 자리가. 만약의 경우 피해를 최소화한 채 도주하기에 적당한 곳이. 고기 방패가 될 것을 각오하고 온 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고만고만한 지위와 권력을 지닌 이들은 서로 간에 치열하게 눈빛을 교환했다.
지금 이 자리에 여러 권력자들이 있어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지. 저들이 자리를 비우는 순간 고함소리가 터져 나오지 않을까?
“대략적인 것은 다 정해진 듯 하니. 알른 백. 잠시 대화를 나누러 가시죠.”
모두들 말을 꺼낼 기회만을 살피고 있던 그 때 1왕비가 먼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것이 최전선의 지휘권에 대해 논의하잔 것임을 이해한 베네딕은 다른 이들의 양해를 구하고서 몸을 일으켰다.
그를 따라 루시가 방 바깥으로 나가자 회의장 몇몇 군데에서 아쉬움 어린 한탄이 새어나왔다.
*
‘최전선에 왜 저렇게 집착하는 걸까요?’
버로우 가문의 시종을 따라 개인실로 향하던 나는 걸음 하나하나에서 고풍스러움이 묻어나는 1왕비를 보며 고갤 갸웃했다.
<복잡하게 생각할 이유가 있느냐? 그래야 자신이 얻을 게 더 많아지기 때문이겠지.>
‘그게 일반적인 생각이긴 하겠지만요. 1왕비가 사사로운 이득에 집착할 사람은 아닌데요.’
<안다. 네게 몇 번이나 들었잖으냐. 왕국이 잘 될 수만 있다면 무어라도 할 인간이라고. 그러니 최전선에 자리하려는 것이다.>
사실 말이 최전선이지. 이번 일에서 진짜 최전선은 결계 내부로 침투하게 될 이들이다.
나를 비롯해서 에르기누스, 베네딕, 검성, 예술 교단의 사도, 페이비, 뮤러 등. 악신의 기운으로 가득한 곳에 자진해서 뛰어 들어가는 것은 물론 어둠의 악신을 눈앞에서 맞상대할 이들에 비한다면 숲 바깥으로 나올 요정들을 상대하는 일은 그리 위험하지 않다.
즉, 지금 1왕비가 최전선이라 부르는 곳이야말로 제 2선인 셈이다.
<그렇지만 말이다. 침투를 택한 이들은 대부분 외부인이고 너 또한 당당히 공을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잖으냐.>
‘…어? 그. 그렇죠?’
<이런 상황에서 1왕비가 상황을 지켜보다 적당히 공을 세우면 어떻게 되겠느냐.>
‘가장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겠네요.’
결국 이는 명분의 문제다. 그리고 이 명분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1왕비는 지휘권을 바란다.
‘그럼 그냥 줘버리는 게 낫지 않아요?’
1왕비가 지휘를 게을리 할 일은 없다. 그랬다가 왕국에 피해가 나는 걸 내버려 둘 사람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이후에 과격한 행보를 하기엔 내부조. 그러니까 에르기누스를 비롯한 거물들이 막아서면 그만이니 거친 행동을 하기도 어렵다.
물론 주변의 토지나 요정의 숲을 통해 얻을 이익에 대해선 목소리를 내겠지만 그건 나랑 아무 상관없잖아.
<요정의 숲이 완전히 복원된다면 거기에서 얻을 이익은 그 정도로 끝낼 수 있는 게 아닐 거다.>
‘…네? 거기에 뭐가.’
있길래. 라고 할아버지에게 질문하려던 순간 우리는 대화를 위한 방에 도착했다.
우리를 안에 데려다 준 사용인은 다과를 준비해주고서 자리를 떠났고 그렇게 안에는 나와 1왕비의 사람들만이 남게 되었다.
“알른 백. 저는 백의 충성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당신이란 영웅이 권력을 욕심내지 않고 변경을 지키고 있단 사실엔 존경심마저 품고 있죠.”
“감사합니다. 1왕비님.”
“그렇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묻고자 합니다. 어째서 최전선을 지키고자 하십니까? 저는 백께서 에르기누스님과 함께 안으로 향하리라 생각했었습니다만.”
…응? 이 인간 갑자기 뭔 소리 하는 거야? 당연히 베네딕은 우리랑 같이 들어가야지.
이 괴물 같은 전력을 다른 곳으로 보내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래야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저기요. 베네딕씨. 당신은 또 왜 저기에 진지하게 대답하고 있는 거야!?
야! 빡대가리 파파!
이 인간아! 널 앞에 세워두고 뒤에서 콧노래 부르면서 꿀을 빨려던 내 계획은 어디다 내던진 거야!
네가 빠지면 전력의 손해가 막심하다고! 물론 그래도 괴물 같은 인간들이 한 가득이긴 하지만! 제일 든든한 건 너라고! 이 밸붕 캐릭터야!
“저도 마음 같아서는 영웅들의 곁에 서고 싶습니다. 이래뵈도 아직 혈기왕성해서 말입니다. 신화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여전히 꿈꾸고 있죠.”
그럼 그냥 내 옆에 있으라고! 있으면 되잖아!
대체 어디서 오해가 생긴 거야!?
설마 기사단을 파견해달란 부탁을 직접 기사단을 이끌어달란 의미로 받아들인 거냐?!
그거 그냥 포셀한테 넘기면 되잖아! 사실상의 지휘관인 포셀만 있으면 지휘관을 굴리는 덴 아무 문제 없을 테니까!
“그렇지만. 만약에 만약. 최악의 상황이 닥쳐왔을 때. 그 보루가 되어 줄 사람 또한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당신이 그 보루가 되어야 합니까?”
“예. 제가 반드시 그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 약조를 했으니까요.”
더 이상 이대로 내버려두면 돌이킬 수 없게 되리란 생각에 내가 나서려하자 할아버지가 다급히 날 말렸다.
<가만 있거라. 이러한 오해는 오히려 좋으니까.>
‘뭐가 좋은데요!’
<이럼 네 아비가 1왕비의 확실한 억제력이 되어줄 수 있잖으냐.>
‘그거 때문에 제가 더 고생을 하게 되잖아요!’
<네 아비가 빠진다 해서 네가 할 일이 느느냐? 전력을 보면 여전히 넌 네 친우와 함께 뒤편에 자리할 듯 하다만.>
그으건 그렇긴 한데.
으음. 으으으음.
내가 할아버지에 설득에 흔들리는 동안에도 베네딕과 1왕비는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알른 백. 아시겠지만 기사단의 사람들은 알른의 기사단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해합니다. 원래 최고를 두고 경쟁하는 이들은 서로 친밀할 수 없죠.”
“그래서 제안을 드리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알른 백.”
“무엇이죠?”
“기사단의 사람들이 알른기사단을 인정하게 만들어주신다면 저도 기꺼이 지휘권을 내어드리겠습니다.”
1왕비는 기사단 간의 친목을 핑계로 대련을 청했고 베네딕은 당연하단 듯 그를 수락했다.
그렇게 모든 이야기가 끝나버린 자리에서 나는 도저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