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49
내가 이누키에게 받은 갑옷을 입고서 거울을 봤을 때 처음으로 느낀 감정은 혐오스러움이었다.
아니이이이이. 세상에 성인도 안 된 여자애한테 이런 옷을 입히는 어른이 어딨냐!
소아성애자는 수많은 범죄자 중에서도 밑바닥에 속한 쓰레기라고! 도둑이나 강도 같은 놈들도 뭐 저딴 쓰레기가 다 있냐고 욕하는 그런 종자란 말이다!
이 세계라고 해서 그 인식이 크게 다르지도 않을 텐데 왜 내 주변에는 이딴 구더기들이 한 가득인거야아아아!
<…솔직히 말해 좀 남사스럽군.>
‘남사스럽다에서 끝날 문제에요!?’
잘 생각해보면 이누키는 다른 누군가에게 계시를 받고 날 찾아왔다 그랬어.
그렇다는 건 설마 이 갑옷을 나한테 선물한 건 허접 주신의 계략!?
하악하악. 전신타이즈에 비키니아머 입은 메스가키 최고! 나 죽어어어어! 같은 소리를 저기 하늘 위에서 지껄이고 있는 거냐!?
아니면 누구냐! 변태 까마귀 너냐!? 네 취향은 이런 옷인 거야!? 아주 고귀한 취향이시네요! 제발 나가 뒤졌으면 좋겠다!
<그래도 말이다. 실력 있는 대장장이가 자신의 혼을 담아 만든 물건이잖으냐. 무언가 있는지 확인을 해보자꾸나.>
‘그…러기는 해야겠죠.’
의욕이 바닥에 떨어진 나였지만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한단 생각에 감정을 통해 갑옷을 살펴보았다.
[감정 레벨이 낮아…]
으음. 이번에도 이 꼴인가. 그럼 결국 직접 확인해보는 수밖에 없나. 귀찮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좋은 일이네.
지금 내 감정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건 이 갑옷이 상당한 수준의 물품이란 거니까 말야.
여캐의 복장은 레벨이 높아질수록 작아진다는 섭리는 이 세계가 현실이 되어도 멀쩡한 건가.
불편한 진실에 도달한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갑옷에 신성을 불어놓아 보았다.
미스릴을 기반으로 한 갑옷이라 그런가 신성을 움직이기가 쉽네. 거기에 더해 강화계열의 축복을 부여하는 것도 편해. 꼭 이 갑옷이 기운을 끌어당기는…
기운을 끌어당긴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갑옷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신성마법을 사용해 본 나는 그 마법이 내 쪽으로 당겨지는 걸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이거 설마 나에게로 기운을 유도하는 마법인 거야!?
마음 깊은 곳에서 경악이 새어나온다.
어쩌면 이거.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갑옷일지도 모르겠네.
<다른 것들도 시험을 해보자꾸나. 이게 단순히 신성만을 끌어당기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기운마저도 집어삼키는 것인지 알아내야 해.>
할아버지와 같은 생각을 했던 나는 갑옷을 입는 데 도움을 주었던 에린에게 마법을 사용해보라고 이야기했다. 공격 마법이라면 아무거나 좋으니 내 옆에 쏘아보라고 말이다.
“허나 그러다 제 실수로 아가씨를 공격하게 될 수도.”
“허접 에린. 넌 내가 너까짓게 쓴 마법에 당할 거라 이야기하고 싶은 거야?”
한참 망설이던 에린이었지만 내가 방패를 치켜들며 조르자 입술을 꾹 깨문 채 마법을 발동했다.
그녀가 쏘아 낸 얼음의 화살은 분명 내게서 저만치 떨어진 곳을 노리고 사용됐다. 그렇지만 내 인근에 궤적이 도달한 순간 자석에 이끌리듯 내 쪽으로 비틀렸다.
“아가씨!”
에린의 경악을 뒤로 한 채 얼음화살을 붙잡은 나는 손의 힘만으로 화살을 부수고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신성에 한정된 게 아니라 마력까지도 끌어당기는 건가.
그렇다면 기사들의 검기라던가 하는 건 어떻게 되는 거지?
사람의 신체 내부에 돌아다니는 기운은 어떻게 되는 거고?
또 여기에 대응할 방법은 존재하는 걸까?
확인해야 할 게 산더미네.
에린을 안도시키고 바깥으로 나온 나는 이누키와 재봉사 할머니의 감탄을 들었고,
칭찬의 말을 내뱉으면서도 이런 갑옷을 입어도 괜찮은 것일까 걱정하는 칼의 목소리를 들었고,
날 보자마자 휘청하고서 넘어지더니 우리 딸에게 사춘기가 왔다며 엉엉 울어대는 베네딕을 만났다.
진짜 그 때 베네딕 진정시키느라 죽는 줄 알았다니까.
갑옷의 힘을 보여주니 어떻게든 납득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베네딕은 도저히 내 갑옷을 받아들일 수 없던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이 갑옷의 효과가 대단한 건 알겠다! 근데 어째서 이렇게 빈 곳이 많아야 하느냐! 멀쩡한 모양새라 하여 갑옷의 효과가 사라지는 건 아닐 텐데!?”
베네딕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이 갑옷의 제작자인 이누키였다.
“모릅니다. 전 그저 계시에 따랐을 뿐입니다.”
“…계시?”
“예. 저 같은 미물이 어찌 하늘의 뜻을 이해하겠습니까. 다만 하늘께서 제게 저리 영감을 주셨기에 전 거기에 따랐을 뿐입니다.”
내가 할아버지나 주변 사람들한테 허접 주신을 핑계거리로 내미는 것처럼 이누키도 계시를 받았다는 이야기로 모든 불만을 찍어 눌렀다.
나와 다른 점이라면 난 거짓말이지만 이누키는 진심이란 거겠지.
자신의 목숨보다 자존심을 더 소중히 여기는 대장장이는 베네딕의 험악한 눈빛 앞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았고 결국에는 베네딕마저도 이 갑옷이 완성형이라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그 뒤로는 검증의 시간이었다.
끌어당긴다는 것이 정확하게 어떻게 발휘되는지를 알아야 써먹는 것도 제대로 할 수 있으니까.
*
그 뒤로 여러 기사들의 협조를 받아 이런저런 것을 확인한 나는 제 1기사단과의 대련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 갑옷이 지닌 효능을 실전에서 써먹어 보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상대측에서 대놓고 명분을 내 준 지금.
나는 눈이 돌아간 기사를 앞에 두고서 진심 어린 웃음을 지어보였다.
상대가 사용하는 무기는 검. 기사들의 전형적인 무기. 동작을 보면 왕국 기사 특유의 검술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모양이다.
무색의 오러를 휘두르는 기사를 보며 갑옷에 신성을 불어넣는다.
그러자 신성이 도화선이 되어 갑옷이 지닌 힘을 증폭시킨다.
이론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변의 기운을 끌어당기는 힘이 말이다.
“…무슨!?”
오러라는 것은 결국 검사가 직접 자신의 검 위에 마력을 두르는 것이다.
누군가는 의식적으로 해내고 누군가는 무의식적으로 펼치겠지만 그래봐야 형체가 있는 기운이란 건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결국 오러 또한 갑옷이 지닌 힘에 이끌릴 수밖에 없단 것.
“풉♡”
오러가 흐트러진 검을 가뿐히 받아낸 난 퉁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튕겨나가는 검을 보고서 비웃음을 흘렸다.
겨우 이 정도야?
이런 공격밖에 못 해?
좀 더 제대로 된 검술을 펼쳐보라고.
왕국의 기사라면 최소한의 실력은 있을 거 아냐.
“감히이이이!”
오러에 색이 더해짐과 동시에 흐려졌던 오러가 다시금 짙음을 되찾는다.
오러 하나하나를 직접 제어해 흐트러지는 걸 막은 것이다.
이건 이전에 알른에 있을 때 이미 확인해 둔 사안이다.
기운을 끌어당기는 것은 절대적이지 않다.
더 강한 힘과 의지가 있다면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만, 오러를 유지하는 일 자체가 상당히 신경을 잡아먹는지라 움직임에 어설픔이 생길 수밖에 없어지지.
“푸하핳♡ 오러 색이 꼭 오줌 같네?♡ 네가 오줌 같은 인간이라 그런 걸까?♡”
입술을 꾹 깨문 채 검을 휘두르는 기사를 본다.
그가 휘두르는 검의 궤적을 살핀다. 그의 공격은 내가 아는 기사단의 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니터 너머에서 보던 것보다 더 빠르고 거센 것 같긴 하지만 그래봤자지.
걸음만으로 공격을 회피한 나는 당혹과 분노가 뒤섞인 그의 시선을 마주하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느~려♡”
목을 노리고서 날아드는 검격.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는 것으로 회피한다.
“거기가 서서 제대로 움직이질 못 하는 거야?♡”
허벅지를 노리고서 들어오는 찌르기. 가벼운 걸음과 함께 몸을 비틀어 피한다.
“쪼끄마해서 방해될 것도 없을 텐데♡”
수많은 연격을 섞어 회피할 구석을 없게 만드려는 검. 피하는 대신 방패를 치켜 든 채 돌진해 검의 시작을 박살낸다.
“그럼 이게 실력이란 거려나?♡”
검 채로 튕겨나가 한 바퀴를 구른 기사는 실핏줄이 선 눈으로 날 노려보고 있다. 그렇지만 긴장은 되지 않는다. 위기감각 또한 조용하다.
“뭐해?♡ 이 천을 찢고 싶은 거 아니었어?♡ 여자애 살갗을 보고 싶어서 발악하는 줄 알았는데에~♡ 그새 포기한 거야?♡ 체력도 근성도 조루인 가봐?♡”
이미 내게 홀려버린 상대에게 패할 리 없단 거겠지. 고함소리와 함께 달려드는 기사를 살피던 나는 그의 검격이 내질러지는 것보다 먼저 기사의 품 안으로 파고 들었다.
그리고서 날 빤히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를 향해 웃음을 지어 준 후 힘을 담아 주먹으로 텅 빈 복부를 후려쳤다.
터엉! 갑옷이 찌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저만치 떠오른 기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요란스런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지더니 몇 번인가 부들거리다 움직임을 멈췄다.
“흐응♡ 정~말 재미없네♡ 어떻게 저런 조루가 기사가 된 거야?♡ 왕국의 제 1기사단은 누가 더 빨리 쓰러지는 지를 가지고 대결을 펼치나봐?♡”
짐승들의 사나운 눈빛이 나에게로 쏘아지자 내 뒤 편에 대기하고 있던 알른의 기사들이 저마다 무기를 꺼내든다.
“그럼 저기 있는 폐급 덩치는 기사단에서 제일 빠른 사람이겠네?♡”
“알른 영애! 해도 될 말이 있고 안 될 말이 있소!”
“왜?♡ 찔려?♡ 도대체 얼마나 빠르길래 얼굴이 벌개져서 화내는 거려나?♡ 설마 목소리만 듣고 가버리는 거야?♡ 이미 갑옷 안에 이상한 냄새로 가득한 거야?♡”
격돌을 앞둔 상황이니만큼 내 뒤 편의 기사들을 경계해야 할 터이나 왕국의 기사들은 내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저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분노가 생존본능보다 앞서는 것이다.
“아내가 있다면 꼭 보고 싶네!♡ 네가 얼마나 한심한지 하루 종일 떠들어 줄 것 같으니까 말야♡”
눈이 돌아간 기사단장이 내게 달려드는 게 보였지만 난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 필요 없었다.
저 녀석이 휘두른 대검을 내 옆에 자리하고 있던 칼이 가로 막았으니까.
“대련이 아니라 전쟁을 벌이려 하십니까.”
“그러게 말야♡ 허접견♡ 어차피 금방 찍 싸고 쓰러질 거면서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건지 몰라♡”
“비켜어어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