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55

저니가 알고 있는 현실의 종교와 다르게 에델 교의 사제와 수녀는 동등한 위치에 있는 직급이다.

따라서 주어진 권한과 능력은 두 직급이 다르지 않았다.

…그러면 굳이 나눌 필요 없지 않나?

라는 저니의 질문에 대한 셀린은 다음과 같았다.

“직급은 같지만 성별은 다르니까요.”

“수행에 방해돼서 그런 건가요?”

“그런 이유도 없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하는 일이 달라서 그래요. 예를 들어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돌보는 건 저 같은 수녀들의 몫이에요.”

“아하…?”

“으음… 하지만 옛날에 비하면 경계가 많이 옅어진 것도 사실이니 저니 님의 말씀처럼 굳이 구분하지 않는 편이 편할지도 모르겠네요. 돌아가면 다른 분들께 건의를….”

“그, 그냥 해본 말이니까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아니, 제발 그러지 말아 주세요!”

기겁하며 손사래 치는 저니에게 셀린이 후후 웃었다.

“농담이랍니다.”

“…농담 두 번 하면 이단으로 잡혀가게 생겼어요.”

“설마요. 에델 님은 자비로우시답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저니는 한숨을 쉬며 앞에 앉은 카나를 꼭 끌어안았다.

“으흐흐. 말랑말랑한 카나, 최고야….”


“…낙마하고 싶지 않으면 놔.”


“조금만 이러고 있을게. 스읍, 하아…. 으헤헤, 너무 좋- 악!”

그것도 모자라 은근슬쩍 카나의 머리에 턱을 얹는 걸 시도하던 저니가 비명을 질렀다.

방심하고 있던 저니에게 일격을 먹인 카나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하지 말라면 하지 마.”


“아, 안 하게스미다….”

말랑말랑한 줄만 알았는데….

저니는 불의의 일격을 당해 씹어버린 혀를 쭉 내밀며 울상을 지었다.

셀린은 대화는 곧잘 나눠도 먼저 말을 거는 일은 많이 없었고, 카나는 먼저 말하기는커녕 대화할 때도 그다지 길게 말하지 않았다.

따라서, 일행의 여행길은 이런 식으로 저니가 장난치거나 소소한 대화를 나눌 때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고요한 분위기였다.

말을 타고 달리며 그들은 종종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곤 했다.

그 사람들은 험상궂은 용병들일 때도 있었고, 물건을 가득 실은 상단일 때도 있었으며, 근처 작은 왕국의 귀족일 때도 있었다.

경계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은 셀린의 복장을 확인하자 하나 같이 경계심을 거두고 반갑게 인사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눈을 가늘게 뜨고 저 멀리 어딘가를 바라보던 셀린이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아, 성국이 보여요…!”

“와아! 드디어!”

셀린의 말에 저니도 고개를 반짝 들며 반색했다.

과연 그녀의 말대로 지평선 끝에서 거대한 장벽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웅장한 위용을 본 저니는 좀처럼 입을 다물지 못했다.

“후후. 성국은 처음 오셨나 봐요.”

“네…? 아, 네…!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본 건 처음이인데… 정말 엄청나네요.”

성국은 말이 나라지, 사실 성지를 중심으로 한 도시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성국 안에는 세데스 외에는 다른 도시가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그 크기가 어지간한 영지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클 뿐.

“저것도 성법인가요?”

“네. 성지에서 나오는 에델 님의 신성력으로 만든 신성 결계예요.”

세데스 성국은 다른 도시들처럼 성벽을 세워 외세의 침략을 막는 대신, 거대한 신성 결계를 세워 성벽의 역할을 대신했다.

그만한 크기를 결계가 모두 감싸고 있다니.

…으음, 대단한 일인 거 같긴 한데 얼마나 대단한지는 잘 모르겠네.

저니는 그렇게 생각하며 저 멀리 보이는 신성 결계를 올려다봤다.

반면, 카나의 반응은 그녀와 조금 달랐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질릴 대로 질린 얼굴로 결계를 바라보는 카나.

말 위에 나란히 앉아 있지만, 반응은 전혀 다른 두 사람을 보며 셀린이 쿡쿡 웃었다.

* * *

성국에 들어가는 일은 간단했다.

“이렇게 쉽게 들여보내도 되나요?”

오죽했으면 저니가 이런 물음을 던질 정도로.

사실 간단이라는 말도 어색했다.

그들이 한 것이라곤 뻥 뚫려 있는 입구에 서 있는 성기사와 가벼운 인사를 나눈 후 결계 안으로 들어온 게 끝이었으니.

“두 분은 제 동행이니까요. 제가 두 분의 신분을 보증해서 쉽게 들어올 수 있었던 거예요.”

그에 대한 셀린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이것보다 복잡하다는 얘기인가요?”

“그럼요. 앞에 선 분들을 보시지 않으셨나요?”

저니는 그녀보다 한발 앞서 성국에 들어간 상단을 떠올렸다.

“아… 저는 상단이라서 꼼꼼하게 검사하는 줄 알았어요. 갖고 들어와선 안 될 걸 몰래 숨겨서 들여오는 걸 방지한다든가… 그런 이유로요.”

“으음, 입국 관리는 성기사분들의 몫이라 저도 거기까지는 모르겠네요. 그래도, 다른 분들은 저희처럼 쉽게 통과하지 못한다는 건 확실해요.”

“그렇군요. …잠깐, 이렇게 쉽게 들여보내 주는 걸 보면 설마….”

“네?”

“셀린이 엄청 높은 사람이라서 그런 거 아니에요?”

“…후후.”

무언가 숨기고 있는 듯한 셀린의 웃음에 저니가 경악했다.

“진짜였어요?!”

“그럴 리가요. 저는 그냥 평범한 수녀일 뿐인걸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진짜 평범한 사람은 몇 없던데….”

“정말이에요. 제가 아니라 다른 사제님이나 수녀님과 동행하셨다 해도 똑같았을 거예요.”

셀린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는 저니를 피해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두 분은 오늘 묵을 곳이 있으신가요?”

“아뇨. 저나 카나나 성국은 처음이라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잘 몰라요. 괜찮은 곳이 있다면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글쎄요. 강림제가 코앞이라 웬만한 여관들은 이미 꽉 찼을 텐데….”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요?!”

“그만큼 에델 님의 강림이 뜻깊은 일이란 뜻 아닐까요?”

“….”

신앙심이 뚝뚝 묻어나오는 대답에 저니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하긴, 따지고 보면 현실에서도 성수기가 되면 숙소나 교통편을 잡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지.

그렇게 생각하니 납득 못 할 것도 아니구나.

저니는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정작 그녀와 대화하던 셀린은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지만.

팔짱을 낀 셀린이 미간을 가볍게 좁혔다.

“빈 여관이라….”

“어… 잘 찾아보면 한두 곳 정도는 있지 않을까요?”

“확답은 못 드리겠네요. 설령 그렇다고 해도 찾으려면 꽤 많이 돌아다니셔야 할 거예요.”

“윽… 이를 어쩐담. 노숙이라도 해야 하나…?”

“숙소를 구하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교단에서 만든 임시 숙소가 있습니다만….”

“정말요?!”

“말 그대로 임시 숙소라서 좀 힘드실 수도 있는데, 괜찮으세요?”

“…뭔가 불길한 말이네요.”

불길한 뉘앙스가 가득 담긴 말에 저니는 선뜻 괜찮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고, 저니와 카나는 셀린의 안내를 따라 교단에서 만들었다는 임시 숙소로 향했다.

이윽고 그 실체를 구경한 저니가 말했다.

“이건 무리네요.”

그러고는 이번에는 카나에게 물었다.

“카나는 어때?”

도리도리.

카나는 말도 하기 싫은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저었다.

임시 숙소의 정체는 수십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천막이었다.

비바람은 피할 수 있지만, 씻을 곳도 없고, 개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해 주는 최소한의 가림막조차 없는.

이런 곳에서 수십 명과 부대끼며 잠을 청하고 싶지 않은 건 같은 마음이었던지라, 저니와 카나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천막에서 등을 돌렸다.

“정말 ‘임시’ 숙소네요.”

“참배객들을 위해 만든 무료 숙소들도 이미 꽉 차버려서요.”

“어쩔 수 없죠. 열심히 빈 여관을 찾아보는 수밖에….”

나는 몰라도 카나라도 안에서 재워야지.

저니는 주먹을 꼭 쥐며 다짐했다.

그녀야 땅바닥에서 자도 디버프 좀 걸리는 게 끝이지만, 실리아 세계의 주민인 카나를 그렇게 재울 순 없지 않은가.

“카나는 아가야. 지켜줘야 해.”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돌아다니면 한 곳 정도는 있겠지.

굳은 결의를 마친 그녀가 셀린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려고 할 때였다.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던 셀린이 손뼉을 짝 쳤다.

“아, 이건 어떠세요? 두 분만 괜찮으시다면 신전에 있는 빈방을 내어드릴 수 있어요. 두 개까지는 힘드니 한 방에서 같이 주무셔야 할 테지만요.”

“괜찮고 말고요!”

곤란하던 와중 눈이 번쩍 뜨이는 제안을 들은 저니는 행여나 셀린의 마음이 바뀔세라 고개를 격렬하게 끄덕여 긍정했다.

“오히려 저희 쪽에서 괜찮냐고 물어야 할 거 같은데요? 셀린 덕분에 검문도 쉽게 통과하고, 숙소도 제공받고…. 너무 신세 지는 거 같아서 죄송할 지경이에요.”

“후후, 신세라니요. 저도 두 분 덕분에 편하게 돌아올 수 있었는걸요. 심지어 불편을 감수하고 배려해 주셨잖아요.”

푸릉-

셀린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낀 말이 작게 콧김을 뿜었다.

저니가 카나에게 오케이 사인까지 받는 것을 확인한 셀린이 ‘그럼 안내할게요’라는 말과 함께 출발하려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잊고 있던 걸 떠올렸다는 듯 약간의 난감함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런데 한 가지 알아두셔야 할 게 있어요-”

* * *

“하아….”

나는 복잡한 눈으로 내 앞에 가지런하게 놓인 물건을 바라봤다.

이 물건의 정체를 몰라서 경계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 알아서 문제지.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담긴 눈으로 내려보고 있으니 흥얼거리면서 돌아다니던 저니가 슬쩍 고개를 들이밀었다.

“카나, 안 입어?”

“….”

…입어야지.

…입어야, 하는데.

“카나의 수녀복 차림이라니, 완전 기대돼…!”

두구두구.

나는 입으로 이상한 소리를 내는 저니를 외면하며 다시금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

내 앞에 있는 물건의 정체는 옷, 그것도 수녀들이 입는 수녀복이었다.

수녀도 아닌데 대체 왜 수녀복을 입게 된 걸까.

“왜냐니? 여기에 묵는 걸 허락하는 대신 여기에 묵는 동안은 수녀복을 입고 생활해야 한다는 게 조건이었잖아.”

“…아무 말도 안 했어.”

“얼굴에 훤히 쓰여 있는걸.”

그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얼굴을 매만졌다.

당연히 손에 묻어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하하! 정말 쓰여 있다고 생각한 거야?”

“아니야.”

내 표정이 그렇게 읽기 쉬운 건가 확인해 본 것뿐이라고.

그렇게 말했지만 저니는 전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나는 만면에 기분 나쁜 미소를 머금은 저니를 설득하는 걸 포기하고 애꿎은 수녀복을 뒤적거렸다.

시간을 잠깐 돌려, 도저히 머물 생각이 들지 않는 임시 숙소를 본 우리가 절망하고 있을 때.

셀린이 우리에게 제안했다.

신전의 남은 방을 내어주겠다고.

다만, 그 남은 방이라는 게 수녀원에 있는 방이라서 머무는 동안엔 수녀복을 입고 생활해야 한다고.

별일 있겠나 싶어서 그러겠다고 했지만 막상 눈앞에 닥치고 나니 영 내키지 않네….

노출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깜찍이라고 쓰고 끔찍하다고 읽는 스타일의 옷도 아니지만 왜 이렇게 내키지 않지?

똑똑.

“두 분, 아직인가요? 이제 곧 식사 시간이에요.”

아, 잠시만요! 카나가 아직 못 갈아입었어요! 카나야, 곧 식사 시간이래. 빨리 안 입으면 밥 못 먹는다? 아니면 내가 직접 입혀줄까~?”

“으….”

결국 재촉에 못 이긴 나는 눈을 꼭 감고 수녀복을 들어 올렸다.


           


I Became a Raid Boss

I Became a Raid Boss

레이드 보스가 되었다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One day, when I came to my senses, I found myself reincarnated in another world. After enduring a rough life post-reincarnation, I thought I could finally settle down, quietly tending to a flower garden in the mountains… …But something feels off.”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