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56
“다. 닭장이란 게 무슨 뜻이죠?”
“반은 멀쩡해 보이는 데 뇌는 이미 부패됐구나? 그게 아니면 이런 냄새가 날 리 없지. 응. 역시 내 코는 정확해.”
“저한테 그런 냄새 안 나거든요! 지금은 이래도 요정여왕이라고요! 꽃냄새밖에 안 난단 말이에요!”
간슈의 시련 속에서 봤던 요정여왕보다는 좀 더 감정적인 모습이네. 그녀의 조각 비스무리한 거라 좀 더 정신연령이 어린 걸까.
꽤 열을 올리고 있는데도 적의가 안 새어나오는 걸 보면 날 공격하러 온 건 아니겠네.
“시끄러워. 냄새나는 아줌마. 당신이랑 너~무 잘 어울리는 이 쓰레기장에 왜 날 데려온 건지나 이야기 해.”
“다. 당신 정말 주신의 사랑을 받는 사람 맞아요? 그런 사람이 어떻게 이런 말을.”
“무슨 상상을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페도 주신은 여자애한테 매도당하는 게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변태새끼거든요? 지금도 위에서 침이나 흘리고 있을 걸?”
“그럴 리 없습니다! 위대하신 주신님께선 고결하신 분이라고요!”
어깨를 으쓱이며 가볍게 한 말에 요정여왕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고 보면 이 녀석은 신화의 시대에 머물렀던 존재인데다 격도 높지?
주신의 모습을 마주한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근데 그럼 어쩌라고.
네가 봤던 허접 주신이 어떤 녀석이었던 지금 나한테 이런저런 걸 내미는 허접 주신은 페도 변태라고! 어떻게든 날 괴롭힐 생각밖에 안 하는 질 나쁜 녀석이란 말야!
말해도 안 믿을 걸 아니까 아무 말 안 하겠지만.
“그런 식으로 넘기지 말아주세요! 주신께서는!”
“입 열 때마다 악취나니까 되도록 짧게 말해주시겠어요? 그러다 제 옷에도 냄새가 배기면 죽고 싶을 것 같거든요.”
“…대체 주신께서는 왜 이런 아이를. 아무리 생긴 것이 천사같다 해도 어투가 이래선.”
한참을 투덜거리던 요정여왕은 이내 푹 한숨을 내쉬고는 나무 그루터기에 자리를 잡았다.
“네. 본론으로 넘어가도록 하죠. 바깥에서 잠에서 깨어난 요정들을 만나셨죠?”
“벌레처럼 생긴 애들?”
“…그들이 그런 모습이 된 것은 요정들의 여왕이 악신의 기운에 침식당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요정들의 기원이 오염되었으니 자연 속에서 태어날 아이들이 그리 되는 것도 당연하죠.”
“태어났다고요?”
아니 잠시만. 태어났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걔네들은 원래부터 숲에 머물던 녀석들 아냐?
“그렇습니다. 태어난 겁니다. 수백년이란 세월을 넘어 요정여왕이 꿈에서 의식을 되찾아가고 있기에, 과거에 그랬듯 요정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거고요.”
위험해.
우리가 앞서 맞이했던 것처럼 요정들의 힘은 막강하다.
일정 수위에 이른 강자라면 대항할 수 있겠지만 그 이외의 생명은 요정들 앞에 굴복하게 될 거야.
무엇보다 요정들이 위협적인 부분은 일종의 현상이란 점.
요정여왕이 있는 한 그들은 사라지지 않아. 숲의 주인들도 언젠가는 요정들에게 굴복당할 거라고!
…이래서 허접 주신이 숲의 요정들을 굳이 언급한 건가.
젠장. 이렇게 중요한 일이었으면 좀 더 제대로 설명을 하란 말야!
게임 속에 없었던 일은 나도 어떻게 될지 예상 못한다고!
내가 만약 나중에 해도 되겠지 생각을 하면서 넘기면 어쩌려고 그랬냐! 이 빌어먹을 새꺄!
“바깥의 요정들은 요정다웠지요?”
“그래요. 벌레다웠죠.”
“요정여왕의 꿈이 끝난다면 아닐 겁니다. 그들이 순수할 수 있는 이유는 아직 요정여왕이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니까요.”
“그래서 어쩌란 건데요. 닭장 아줌마.”
“얼마 전 에르기누스님께서 이 곳에 오셨죠? 그 분께 말씀을 해주십시오. 이제 이 세상에 요정은 없어도 괜찮다고. 꿈을 꿈으로 끝나게 해달라고. 그것이 여왕의 바람이라고. 그거면 충분합니다.”
아니. 그러니까 지금 이 인간. 에르기누스의 손으로 자기를 직접 죽여 달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거지?
잠에서 완전히 깨어난 요정여왕이 세상을 뒤엎기 전에 처리를 해달라고.
“그 동정찐따마법사가 무슨 바보짓을 하려는지는 알고 하는 소리야?”
“추측은 갑니다. 아마 그 분께서는 이 숲을 다시금 본래의 상태로 되돌리려 하시겠죠.”
“그런데.”
“그렇기에 말을 하는 겁니다. 그 분의 헛된 희망이 자그마한 가능성마저 무너트리지 않도록. 요정여왕이 요정여왕으로써 죽을 수 있도록.”
대의를 위해 자잘한 것은 희생하자. 무수히 많은 희생이 생기는 것보다는 그 편이 낫지 않나. 요정여왕이 하려는 이야기는 대충 이 정도겠지.
“당신께서는 주신께서 선택한 사람이니 아마 납득하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게 최선입니다. 신화의 시대에서 멀어진 이들의 힘으로는 결코 기적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납득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저 쪽이 현실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현대의 사람들은 요정이 없는 세상에 익숙해졌다.
그러니 요정이란 존재가 영원히 사라져버린다 해도 문제가 생길 여지는 없다.
그에 반해 요정의 숲을 정화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고자 하다 실패한다면 생겨날 피해는 크다.
최악의 경우에는 신화 시대의 재앙이 재현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치만 말야.
“흐응♡ 뇌가 썩으면 생각도 같이 썩는구나?♡ 푸하핳♡ 입에서 괜히 썩은냄새가 나는 게 아니었네♡”
현실과 타협할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들지도 않았어.
“당신. 제가 하는 말을 들으신 겁니까?”
“누구랑 다르게 난 귀가 멀쩡하거든?♡ 눈은 장식으로 달고 다녀?♡”
우리는 이 곳에 어둠의 악신을 상대할 각오를 하고 온 거야.
신화시대의 투쟁을 각오하고서 이 곳에 자리 잡은 거라고.
근데 뭐? 요정여왕이 부활하는 게 너무 무서우니까 적당히 타협해 주세요?
좆까. 기적을 일으킬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면 여기에 오지도 않았어.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신화시대의 두려움을 몰라요!”
“그럼 닭장 아줌마는 우리에 대해서 뭘 아는데 그렇게 단정을 지어?♡ 멀쩡한 곳 하나 없이 다 썩어버린 퀘퀘한 아줌마가 뭘 아냐고♡”
하. 뭐? 내가 신화시대의 두려움을 몰라? 아주 지랄을 하시네.
“이 좆만한 숲 따윈 재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 빡대가리를 상대로 이긴 게 나야♡”
지하에 머무르던 불의 악신은 완전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약하지도 않았다.
그 놈은 분명 신화에 어울리는 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게 패배했다.
내가 일으킨 기적의 앞에 무너져 내렸다.
“너네가 아무것도 못하고 처발린 찌질이한테 주제를 알려준 것도 나야♡”
어둠의 악신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서 나를 배제하려 했다.
그럼에도 나한테 패배하고서 재기할 힘조차 잃어버렸다.
“근데 내가 뭘 모른다고?♡ 다시 말해줄래?♡ 응?♡”
공허의 악신은 아카데미를 완벽하게 장악한 후에 아그라를 부활시키려 들었다.
그렇지만 실패했다.
에르기누스의 마법진을 장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 채 무너져내렸다.
“뇌세포가 문드러져서 방금 한 말로 못 떠올리는구나?♡ 어쩔 수 없지♡ 대신 말해줄게♡ ‘당신은 신화시대의 두려움을 몰라요!’ 푸흫♡ 큽♡ 크하핳♡ 푸하하핳♡”
지금 이 세상에서 나보다 악신의 두려움을 더 잘 아는 이는 없다.
단순히 내가 썩은물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도 내가 악신을 많이 상대해보았으며 그들을 상대로 수많은 승리를 거두었기에 자신 있게 꺼낼 수 있는 단어다.
“자살하고 싶은 거라면 저 안에 처박혀서 혀라도 깨물어♡ 그걸 할 용기도 없으면 얌전히 찌그러져서 기도나 해♡ 시대에 뒤쳐진 아줌마♡”
그런데 어둠의 악신 하나한테 쪽도 못 쓰고 쳐발린 아줌마 주제에 너희들 따위로는 요정여왕을 구원할 수 없다고?
패배의식에 찌들어서 질질 짜는 걸 봐주는 것도 정도가 있지.
누구는 지금 수백년 동안 당신 하나를 구하기 위해 지하 밑바닥에 처박혀서 오늘만을 기다렸는데 당사자란 새끼가 자길 죽여달라 그러다니.
같잖아서 웃음도 안 나와.
“빨리 돌려보내기나 해. 당신 같은 패배견이랑 어울려 줄 여유 같은 거 나한테 없거든.”
꼴을 보아하니 딱히 도와줄 것 같지도 않고. 더 이상 개소리를 들어봐야 짜증만 날 것 같으니. 빨리 여기에서 나가고 싶네.
그리고서 화풀이를 겸해서 조이랑 아서나 괴롭혀야.
살갗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자마자 방패를 치켜든다.
오른쪽에서 휘둘러지는 채찍. 어설프게 막으려하면 방패에 휘감기겠지.
일부러 빈 손을 내어줘서 거기에 채찍을 휘감은 후에 방패 끝으로 찍어서 채찍을 끊어냈다.
“화나서 공격을 하는 거야?♡ 요정여왕다우시네♡ 어쩜 정신연령이 다른 벌레들이랑 똑같을 수가 있담?♡”
“…기적을 일으킬 자신이 있다고 하셨죠.”
“맞아♡ 난 누구랑 달리 어리고 유능해서 포기를 모르거든♡”
“시험을 해보겠습니다. 당신이 정말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
요정여왕이 말을 끝마치면서 뒤로 물러나자 하늘에서 흐린 빛이 들어오며 숲의 정경이 드러난다.
“이 숲에서 탈출해보십시오. 그럼 에르기누스님이 하고자 하는 바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드리죠.”
“너처럼 낡은 녀석한테 왜 도움을 받아야 해?♡ 그냥 보내주면 안 돼?♡”
“자신이 없으십니까?”
“그러는 넌 자신 있어?♡”
“물론이죠. 당신은 결코 여기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겁니다.”
흐으응. 그러니까 숲처럼 보이는 이 던전에서 탈출하란 거지?
푸하하핳. 아. 진짜. 어쩜 저렇게 멍청하고 바보 같은 이야기만 할 수 있담?
“숲에 처박혀 있는 동안 꿈만 꿔서 그런가 현실감이 없네. 닭장 아줌마♡ 알겠어♡ 원하는 대로 처발라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