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65
연애 개허접인 닭장여왕님의 눈 완전 무셔. 말 한 마디 잘못하는 순간 달려들어서 그대로 목을 날려버릴 것 같잖아.
뭐. 그렇다고 겁먹어서 뒤로 물러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난 말야. 다른 허접들을 장난감 취급하는 건 좋아해도 다른 개허접한테 얕보이는 건 사양이거든.
특히나 주제도 모르고 나한테 덤볐다가 쳐발리고는 땅에서 질질짜기나 하던 어둠의 악신조차 못 이긴 퇴물 아줌마한테는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아.
“그 분을 음해하지 마십시오!”
“푸흐흫♡ 그렇게 믿고 싶구나?♡ 마음대로 해♡ 버려지고도 버려졌다는 걸 못 믿는 추한 아줌마를 보는 것도 재밌으니까♡”
“당신!…”
악귀마냥 찌푸려진 얼굴로 날 바라보던 요정여왕은 무언가 떠올린 듯 멈칫하더니 이내 다시 여유로운 체를 했다.
“아. 그렇군요. 이런 식으로 절 동요시키려는 건가요? 허나 무의미합니다. 저는 이 곳에 자리한 에르기누스님을 봤는걸요.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대마법사를요!”
그게 가짜라는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했나? 아무리 해골의 마법이 정교하다 하더라도 요정여왕을 속일 수 있을 정도는 아닐 텐데.
“그 분은 과거의 약속을 잊기 않으셨습니다!”
아아. 이해했어. 눈치 채지 못한 게 아니라 눈치 채지 않으려 한 거구나.
그 누구보다 에르기누스를 믿는다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거네.
“약소옥?♡ 혹시 다시 만나면 마음을 이야기하겠다는 꼬맹이 같은 약속 말하는 거야?♡”
“…그걸 당신이 어떻게.”
여자를 보면 어찌할 줄 몰라하는 동정찐따가 에르기누스니까 대충 찍어봤는데 정답이네.
그 인간 대체 얼마나 순박했던 거야.
“저기♡ 저기♡ 멍청한 아줌마♡ 혹시 사랑한다는 말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 있어?♡”
사랑이라는 말을 언급하자 요정여왕이 입을 다문다. 기괴해졌다 평소로 돌아오길 반복하는 눈동자만 봐도 대답을 알 수 있다.
에르기누스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한 적 없다.
“없지?♡ 그치?♡ 푸하핳♡ 역시나네♡ 너처럼 썩은 여자한테 사랑한다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어♡”
물론 그게 사랑하지 않아서는 아닐 것이다. 사랑한단 말을 꺼내는 것보다 머리에 문제가 생겨서 기절하는 게 더 빠를 인간이 에르기누스니까 하지 못했을 뿐.
“언제 당신을 짐승 같은 눈으로 쳐다본 적 있어?♡ 없을 걸?♡ 나이차이가 세기단위로 나는 할망구를 그런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이것도 거짓말. 에르기누스는 분명 이런저런 생각을 엄청 했을 거다.
원래 사랑을 처음 해보는 동정들은 다 그러잖아? 찐따끼가 있는 에르기누스라면 더하면 더했지 더하진 않았을 걸?
그렇지만 요정여왕은 그런 걸 모를 거야. 얘도 연애에 있어 허접인 건 마찬가지니까.
“명확한 고백 한 번이라도 받은 적 있어?♡ 없을 걸?♡ 저얼대로 없을 걸?♡ 마법밖에 모르는 찌질이가 여지를 남길 리 없잖아!♡”
이것도 단순히 부끄러워서 못 했을 뿐 에르기누스의 마음 속엔 수많은 말들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근데 그 마음을 여는데 실패한 이상 요정여왕은 그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자신의 사랑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아직도 부정할 거야?♡ 수백 년이 배신당하는 게 무서우니까 도망칠 거야?♡”
“아니에요. 그럴 리 없어요. 그 분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정말 아니라고 생각해? 근데 왜 당신의 손은 벌벌 떨리고 있는 거야? 우리를 향하는 공격이 한층 더 격해진 거야?
“이 시커먼 숲이 전부인 아줌마는 모르겠지만♡ 바깥에는 아줌마보다 예쁘고 말 잘하고 착하고 적극적인 여자가 한 가득이다?♡ 그런 사람들이 동정찐따마법사를 가만 내버려 뒀을까?♡”
“아니에요. 그 분은 저만이 눈에 들어온다고 했어요.”
진짜 그 찐따가 그런 말을 했다고? 방금 막 지어낸 말 아냐?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서 만들어낸 거짓말인 거 같은데?
“권력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사람들이 여자 손 한 번 못 잡아 본 찐따한테 아무것도 안 했을까?♡ 온갖 사람들을 데려와서 찐따의 옷을 벗기지 않았을까?♡”
“거짓말. 거짓말 하지 마세요. 그런 일은.”
아니라고 하는데 왜 목소리가 점점 줄어드는 걸까? 내 눈을 못 마주치는 걸까?
“단명하는 인간의 사랑이 수백년 묵은 닭장 아줌마의 사랑만큼 무거울까?♡ 자기가 좋다고 달려드는 여자들을 찐따가 모두 쳐낼 수 있었을까?♡”
“아냐. 아냐. 아냐. 아냐.”
아니긴 뭐가 야냐. 당신도 의심하고 있잖아. 오래 전에 어둠에 물들어버린 당신은 더 이상 호수에 비친 달을 바라보며 사랑을 기다릴 수 없어.
“정말 썩어빠진 아줌마를 구하러 온 거라고 생각해?♡ 적당한 호구 하나를 다시 찾으러 온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아냐!”
당신은 더 이상 순수하지 않으니까. 수많은 색을 알면서도 하얌을 지키던 요정여왕은 이제 없어. 여기에 있는 거라고는 검은 색으로 물들어버린 것 뿐.
“크흡♡ 큽♡ 푸하하하핳♡ 아~♡ 그래♡ 열심히 부정해 봐♡ 꿈인데 자기가 바라는 대로 생각해야지♡”
“닥쳐어어어어!”
여왕의 진노가 숲 안에 울려 퍼지자 여태까지 우릴 공격하던 요정들이 당황해선 멈칫거린다.
그 덕분에 여유를 얻은 친구들이 공세로 전환해 요정들을 밀어붙였고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거센 숨을 내쉬는 요정여왕을 마주한다.
“방금 거 다 거짓말~♡”
“…뭐?”
“푸하하핳♡ 여자 손에 스치기만 해도 기절할 동정찐따가 뭘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본래는 분노로 흔들렸으나 이제는 당혹으로 흔들리는 검은 눈동자를 본다.
“아님 뭐야♡ 설마 의심한 거야?♡ 수백년 동안 아줌마 하나 구하겠다고 동굴에 처박혀 있던 찐따를 못 믿는 거야?♡”
똑바로 보면서 추궁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느냐고. 자신의 하나 뿐인 사랑을 믿지 못했냐고. 당신의 사랑은 그토록 허접했냐고.
“사과해♡ 이딴 멘탈 허접을 사랑한 동정찐따가 사과해♡ 너 같은 쓰레기년을 위해 여기까지 온 우리한테 사과해♡ 당신 같은 허접 때문에 벌레가 된 요정들한테도 사과해♡ 그러고 나서 혀 깨물고 뒈져버려♡”
요정여왕의 정신을 벼랑 끝까지 몰아붙인 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 눈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요정여왕이 미친 듯 무어라 중얼거리며 자신의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는 걸음걸이. 자괴감에 형태를 잃고 무너져가는 목소리. 이젠 이성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눈동자. 무너지는 몸. 마구잡이로 떨리는 어깨.
요정여왕이 무너져 간다.
순수를 잃어버린 요정이 자신의 몸을 감싸 안는다.
“아.”
그러던 어느 순간 요정여왕의 어깨에서 갑작스레 떨림이 사라진다.
“네. 그래요. 맞아요.”
무너져내렸던 목소리가 다시 형태를 갖추지만 그 형태는 이전과 달랐다. 흥분과 귀기가 뒤섞인 목소리는 등줄기를 절로 서늘하게 만들었다.
“전 순수를 잃었답니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요정여왕이 날 바라본다.
“그래서 어쩌라고.”
광인의 눈동자에 내 모습이 담긴다.
“이게 다 에르기누스님의 잘못이야. 맞아. 그 분이 잘못한 거야.”
“추하네. 닭장 아줌마♡ 이젠 상대 탓이야?♡”
“나는 기다렸는데.”
…대답이 없어?
방금 전까지 그렇게 분노해놓고 이젠 고개조차 돌리지 않다니 이게 무슨.
뭐야? 내 목소리가 안 들리는 거야?
“잔뜩 기다렸는데. 그 분이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꿈을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 그 분이 좋아할 모습을 갖추고서. 계속. 계속. 계속. 계에에에속.”
어. 어어어. 하. 할아버지. 요정여왕 왜 저래요? 진짜 이성이 아예 날아가버린 것 같은데? 우리를 장난감 취급할 때의 모습은 완벽히 사라져버렸는데!?
<…저 쪽이 진짜겠지.>
‘진짜라는 건.’
<방금 전까지 이성을 유지하던 여왕의 모습은 꿈의 모습이란 거다.>
내가 한 말의 충격이 너무 커서 잠에서 깨어나 버린 건가!?
조이조이야!
여태까지 내가 시간을 많이 벌어준 것 같은데 아직 준비 안 됐니?!
거의 다 완료됐다고? 조금만 더 버텨달라고? 조금이 몇 분인데!
“그러니까 내가 미쳐버린 것도 그 분의 잘못이야. 그 분이 제멋대로 나를 꿈에 방치해둬서 그런 거잖아. 난 잘못 없어. 난 최선을 다했어. 맞아. 난. 난. 난.”
주변의 환상이 무너져 내린다. 어둠의 권능에 의해 만들어졌던 모든 것이 부서진다.
우리가 어둠에 물든 광경이라 생각했던 모든 것들은 어디까지나 순화된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어둠을. 물리적인 것도. 정신적인 것도. 추상적인 것도. 어쨌건 어둠이라면 뭐든 다 있는 듯한 장소는 현세에 자리한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아아. 그래. 그 분이 제멋대로 한 거니까 나도 제멋대로 하자. 내 곁에 두는 거야. 함께 꿈을 꾸는 거야. 히히. 히히히.”
우아악. 이대로 내버려두다간 조이가 할 일을 끝마치기도 전에 결계를 무너트리겠네!
“일단 시선을 끌어야 하는 거죠?!”
숨을 가다듬은 칼이 검을 휘둘렀지만 그의 검로는 어둠에 묻혀서 지워졌다.
“…이건 뭐야?”
뒤이어 휘둘러진 프레이의 검도 마찬가지였다. 짙고도 짙은 어둠은 자신 이외의 그 누구도 허락하지 않았다.
“성녀님! 정화를!”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어둠이 너무 강대합니다! 무언가 이상합니다! 악신을 직접 상대할 때도 이 정도는!”
나와 페이비가 신성으로 어둠을 물리려고 계속 시도해 보고 있지만 어둠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이건 분명 이상이었다. 어둠의 악신이나 공허의 악신을 상대할 때도. 불의 악신을 직접 마주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뭐지? 뭐지!?
<아직 꿈이 끝나지 않은 거다! 현실과 이 곳의 법칙은 달라!>
‘뭐가 문제인지는 알겠는데 그게 중요한 상황이 아니잖아요!’
<춤을 춰라! 이 곳은 요정의 꿈이다! 요정의 춤은 결코 부정될 수 없어!>
이 상황에 춤을 추라고요!?
아악! 젠장! 알겠어요! 만약 뭐 잘못되면 다 할아버지 탓 할 테니까 그런 줄 알아요!
톡.
가벼운 걸음으로 어둠의 위를 밟는다.
대지가 어디인지 알 수도 없고 다른 장애물이 어디에 있는건지도 모르겠지만 모든 걸 직감에 맡긴 채 몸을 움직인다.
“아아. 거기에 계시군요.”
톡.
어둠 속을 자그마한 팔과 다리로 헤엄친다.
나의 춤이 저 너머에 닿기를 기원하며 주위로 흘러간다.
“…어라?”
톡.
춤을 춘다.
요정의 춤을 춘다.
요정이 되어 춤을 춘다.
요정들과 함께 어둠 속에서 춤을 춘다.
바라는 것은 하나.
잠시라도 저 미친 년의 눈짓이 내게 닿는 것.
“요정?”
“루시이이이!”
요정여왕의 시선이 닿는 것과 동시에 뒤 편에서 조이의 필사적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걸 들은 난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바닥에 악신의 봉인을 내던졌다.
구의 형체를 지니던 봉인이 산산조각나고.
일순 그 주변이 하얀 색으로 변했다가.
이윽고 주변의 모든 어둠이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한다.
[어둠의 악신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어둠의 악신이 요정의 숲에 강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