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커’ 사건으로 유명해진 부천 연구소.
검은 요원은 아직도 부천 연구소에서 조사를 하고 있었다.
부천 연구소 주차장에 마련된 임시 조사 캠프.
검은 요원은 그 캠프 천막 밑에 앉아 신문을 펼쳐 읽고 있었다.
신문 1면에는 마네킹들이 빛 가루를 흩뿌리며 날아다니는 사진이 붙어있었다.
<스마일 테마파크는 무엇인가? 새로운 오브젝트인가?>
<갑자기 하늘에서 나타난 마네킹들! 전단지를 뿌리고 사라졌다.>
<또 다시 이어지는 이주 행렬, 불안에 빠진 서울.>
며칠 전 서울 전역을 날아다녔던 흉측한 얼굴의 마네킹들에 대한 기사였다.
1면뿐만 아니라 여러 면을 걸쳐서 설명을 할 정도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사안이었다.
우선 마네킹들이 빛 가루를 흩날리며 날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집중시켰는데, 묘한 내용을 담은 전단지까지 뿌려대니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전단지의 내용이 신문에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
<스마일 테마파크 오픈 임박!>
<앞으로 30일 뒤 스마일 테마파크가 오픈 합니다!>
<입장료는 겨우 코인 1개!>
<전단지를 지참하시면 입장료가 무료!>
문제가 되는 것은 홍보 문구가 아니라 전단지에 첨부된 지도가 문제였다.
첨부된 지도에 따르면 서울 거의 대부분을 먹어치울 정도로 넓은 영역을 ‘스마일 테마파크’로 지칭하고 있었다.
서울 시민들은 오브젝트가 나눠준 의미심장한 전단지를 보고 의문을 가졌다.
‘그렇다면 이미 있는 서울은 어떻게 된다는 거야?’
이미 엄청난 범위를 자랑하는 강철탑에게 시달린 경험이 있는 서울 사람들은 당연히 이렇게 생각했다.
‘진짜로 서울을 그대로 다 박살내버리고 그 자리에 ‘스마일 테마파크’가 들어설지도 모른다!’
그렇게 공포에 빠진 사람들은 전단지의 오픈일 전에 서울을 빠져나갈 준비를 했다.
금발의 소녀는 검은 요원이 읽는 신문의 1면 기사를 훔쳐보고는 말했다.
“와, 아저씨. 이거 진짜 괜찮을까요? 거의 서울 전부가 테마파크가 된다는 건데, 서울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다행히, 원인이 되는 오브젝트는 밝혀냈다고 하더군요. 세희 연구소에서 격리중인 오브젝트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그럼 의외로 금세 해결될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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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현재 정부에서 시도한 제거 작전은 실패했고, 이번에는 오브젝트를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송하려는 계획을 짜고 있더군요.”
현재 협회와 정부는 매우 골치 아픈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다행히 이 전단지 사태의 원인은 밝혀낸 상태였다.
세희 연구소의 ‘테마파크 초대장 인형’
사태 해결을 위해서 선택할 만한 선택지는 4가지.
첫 번째, 서울 비우기.
이건 너무 금전적 손실이 커서 최후의 선택지이다.
두 번째, 인형 속에 사람을 더 집어넣고 변화를 지켜보기.
이건 결과가 불확실하다. 오히려 테마파크가 넓어지는 부작용 등이 생길 수 있다.
세 번째, 인형을 파괴한다.
이건 이미 시도를 했지만, 인형을 아예 재로 만들어도 부활하는 것이 관측되었다.
네 번째, 인형을 서울 밖으로 옮긴다.
이건 현재 시도 중인데, 실패할 확률이 높다.
이미 세희 연구소가 테마파크 영역 밖이라서 인형의 위치와 테마파크의 위치는 상관이 없어보였다.
만약 협회와 정부의 계획이 모두 실패해서 서울 대부분이 파괴된다?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
“흐흥. 안테나를 꼼꼼히 청소해버려요.”
콧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걸레질.
‘테마파크 초대장 인형’의 머리위에 돋아나있는 안테나를 광이 나도록 닦는다.
별로 할 필요 없는 일.
오히려 위험하니까 웬만하면 하지 말라는 일.
‘예린아 위험하니까, 차단선 너머로 좀 들어가지 마.’
그런 말을 들어도 매일매일 안테나를 반짝반짝하게 닦았다.
테마파크 초대장 인형의 크기는 이미 20m를 넘어버렸다.
사실 이렇게 커지기 전에 뒤뜰로 옮기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인형을 옮기지 말고 격리실 벽을 모두 허물어버리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얌전한 오브젝트를 옮기기 위해 일부러 자극할 필요는 없다는 서아 언니의 의견이었다.
벽을 모두 허물어서 공간을 확보하고, 확보한 공간에는 쇠기둥을 잔뜩 박아 넣어 인형의 행동을 제한하는 설비를 설치했다.
격리실 벽이 모두 철거돼서 널찍한 공간 한 가운데.
인형은 미동도 하지 않고 그저 누워만 있었다.
이젠 케겍거리지도 않았다.
가끔 온몸을 떨면서 고통에 찬 울부짖음을 낼 때도 있었는데, 원인은 불명이었다.
지금은 털도 듬성듬성 쥐가 파먹은 것처럼 빠져서 암 걸린 인형 같았다.
그런 인형의 입속에서 팔 하나가 불쑥 튀어 나왔다.
“어?”
완전 예상 밖의 상황!
인형의 크기로 봤을 때, 돌입한 사형수는 모두 죽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었는데!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비상 호출 버튼을 꾹, 눌렀다.
연구소 내부를 울리는 비상벨.
경찰과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상황을 정리했다.
경찰들은 죄수 재이송을 위해 대기했고, 직원들은 화염방사기 등으로 인형 난동 상황을 대비했다.
이송을 준비하던 협회 직원분들도 몰려와서, 기대에 찬 눈길을 보냈다.
직원들의 기합 소리가 연구소 내부에 울렸다.
“하나, 둘. 하나, 둘.”
직원들이 인형의 입에서 튀어 나온 손을 잡아당긴다.
입에서 뽑혀 나온 여자는 바닥에 힘없이 널브러졌다.
돌아온 사형수는 문신투성이의 여자.
나는 여자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서아 언니 뒤로 후다닥 숨어들어갔다.
무서운 분위기의 사형수!
서아 언니 등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어서 살핀 사형수는 전처럼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기지 않았다.
오브젝트 내부에서 너무 고생을 해서 그런 걸까?
“서아 언니, 저 사형수 분위기가 상당히 바뀐 것 같지 않아요?”
“확실히 좀 얌전해진 것 같긴 하네요.”
인형의 입에서 끄집어 올려진 여자는 다시 수갑을 차고, 재이송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오브젝트 안에서 겪은 일을 증언하고, 재판을 받고나면 약속된 대로 무죄 방면되겠지.
묵묵히 경찰들의 설문에 응하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진 게 느껴졌다.
더 이상 무서운 느낌이 들지 않아서 등 뒤에서 빠져 나오자, 옆에서 서아 언니가 물었다.
“오예린 연구원. 이제 숨지 않는 건가요?”
“아하하, 그게 전혀 무서운 기분이 안 들어서 괜찮아요.”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이런 느낌이 바뀌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확실히 신기했다.
간단한 조사를 마친 사형수가 절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연구소 밖으로 끌려 나갔다.
연구소 입구에 주차 중인 죄수 이송 차량.
버스에 올라타기 전 사형수 여자는 하늘을 한참이나 올려다보다가, 경찰들 손에 잡혀서 버스 안으로 사라졌다.
하늘에 뭐라도 있는 건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평범한 보름달이 노랗게 빛을 내고 있을 뿐이었다.
***
사형수가 떠나고 한산해진 테마파크 초대장 인형의 격리실.
간간이 돌아다니던 경찰 인력도 빠져서 몇 배는 널찍하게 느껴졌다.
“어 세희 언니도 왔네요?”
“그냥, 좀. 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격리실에 와서 보니, 예린이가 먼저 도착해있었다.
퇴근 시간이 지난 지는 이미 오래지만,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아마, 사신바라기인 예린이도 그런 거겠지.
케겍.
케게겍.
사형수를 토해낸 인형은 이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인형은 곧 죽을 것이다.
숨소리만 들어봐도 그런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리고 인형이 죽으면 사신이가 돌아오겠지.
사신이가 돌아오지 않는 경우?
상상해 본 적도 없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간 격리실은 인공조명에서 울리는 고주파 음이 은은히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그런 적막 속에서 푸스스, 하는 가루가 흩어지는 소리가 났다.
20m는 되는 거대한 인형이 가루가 되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사막에 부는 바람처럼, 가루를 싣고 흩어지는 소리가 적막 속에 울려 퍼졌다.
“사신이가 왔다.”
격리실을 가득 메운 먼지의 범람 속에서 노랗게 빛나는 친숙한 불빛이 나타났다.
나와 예린이는 그대로 가루를 뚫고 뛰어 들어가, 사신이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잘 다녀왔어! 사신아.”
웬일인지 오늘은 사신이도 마주 꾹 안아주었다.
***
‘테마파크 초대장 인형’이 파괴되었다.
“서아야, 뒷일은 잘 부탁해!”
이런 말만 남기고 인형 소실 보고나 기타 작업을 모두 나에게 던지고 이세희 연구소장은 바쁜 일이 있다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작업이 대충 마무리되고, 이세희 연구소장은 뭘 하고 있나 찾아보았다.
이세희 연구소장은 특급 위험도의 오브젝트 ‘회색 사신’의 특별 격리실 내부에서 발견되었다.
그것도 잠든 상태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녹화된 CCTV영상을 뒤져보았다.
격리실로 이세희 연구소장과 오예린 연구원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서로 회색 사신을 차지하겠다고 싸웠지만, 금세 협의점을 찾았다.
좌예린, 우세희. 정도로 정리된듯하다.
오예린 연구원이 먼저 안마를 시작하자, 이세희 연구소장도 그것을 따라했다.
손가락, 발가락부터 볼까지 안마를 3회 실시했다.
안마를 해주면 잠드는 습성이 있다는 것이 연구소 데이터베이스에 1회 보고된 바 있는데, 회색 사신은 이번에도 순식간에 잠들었다.
안마를 하던 두 명은 회색 사신이 잠든 것을 확인하자, 그대로 회색 사신을 침대로 옮겼다.
이제 관리 작업이 끝났으니, 두 명 모두 격리실을 나와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회색 사신이 누운 침대 위로 같이 누워 잠이 들어버렸다.
연구소 격리 규정 위반!
원래 규칙대로라면 당장 끌어내야겠지만, 잠이든 특급 오브젝트를 자극하는 것도 규정 위반.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대신 나는 품속에서 <회색 사신 정신 오염 보고서.>라고 쓰인 노트를 하나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