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조금 이른 아침, 블라인드의 틈새로 햇살이 들어와 탐정 사무소에 황금색 줄무늬를 드리웠다.
끼익. 끼익.
내가 앉은 흔들의자에서는 기분 좋은 소음이 울려 퍼졌다.
쉴 때마다 듣는 그 리듬감 있는 소리는 왠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흔들의자와 황금색 햇살에 빛나는 노란 정장, 언제나의 아침이었다.
방 한구석에 놓인 TV에서는 시끄러운 소리로 ‘계양산 임시 캠프’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한국의 공권력이 인천의 어떤 마을을 포기했다는 흔하지는 않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꽤 있을 법한 사건이었다.
텔레비전의 끊임없는 소음과 차분한 실내 분위기의 불협화음은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아슬아슬하고, 혼돈스러운 느낌.
노란 탐정 사무소의 느낌이었다.
쾅쾅.
문을 두들기는 망치 같은 소리.
“선배, 저희 왔어요!”
목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후배 1호와 후배 2호.
꽤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혜진도 후배 2호가 돼서 사무소에서 일하기로 했다.
원래 후배 1호는 혼자서도 부산스러웠지만, 2호가 추가되니 3배는 부산스러움이 심해졌다.
자신의 짐을 내려놓은 후배 1호와 2호는 목제 탁자 위의 서류를 발견했다.
“선배? 무슨 사건이라도 받았어요?”
후배 1호가 목제 탁자 위에 문진과 함께 올라간 서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서류는 요즘 유행한다는 황금색 꿈에 대한 설문 조사였다.
황금색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뭔가 걸리는 게 있어서, 힘들게 얻은 자료였다.
정확히는 자료 좀 달라고 검은 녀석에게 졸라서 얻어낸 데이터였다.
“돌발적으로 발생한 황금색 꿈에 대한 설문 조사? 처음 들어보네요.”
“왠지 사건이랑 관련이 있을 것 같아서, 자료 좀 달라고 했지.”
뉴스에는 아직 나오지 않은 이야기다.
간헐적으로 황금색으로 가득한 꿈을 꾼다는 사람이 다수 나타나고 있다는 이야기.
집단 환각과 관련된 오브젝트일지도 몰라서 자료를 봤더니, 사건성은 없어보였다.
후배들은 서로 서류를 나눠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황금색으로 가득한 즐거운 꿈. 달콤한 음식과 춤과 노래. 왠지 행복해 보이는 집단 환각이네요. 꿈이라 그런지, 정확하게 기억을 못 해서 단서가 별로 없어요.”
“오브젝트 관련은 확실해 보이는데, 유해해 보이지 않는 건 또 신기하네. 사람들 인터뷰를 보면 오히려 꿈을 잊어버린 걸 엄청나게 아쉬워하는 것 같아.”
후배들이 이야기를 하는 소리를 배경음 삼아, 흔들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사건이 없는 평온한 아침의 탐정사무소였다.
***
두근. 두근.
심장 박동이 끝없이 울려 퍼진다.
두근. 두근.
지하 깊은 곳에 마련된 실험실에서 소장은 눈을 감고, 박동음을 듣고 있었다.
끝없이 울리는 심장 소리, 벽면을 질척하게 물들이는 핏물, 지하실을 가득 매운 혈향.
이 모든 것들은 이 지하실을 마치 동물의 위장 속에 들어온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소장은 공동묘지에서 아들과 만난 뒤로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두통에 고통 받고 있었다.
게다가 눈을 감으면 익숙한 환상이 보였다.
그 환상은 소장이 잊어버린 기억까지 되살려가며 점점 더 구체적으로 되어갔다.
새하얀 격리실, 소독약의 냄새. 거치대에 걸린 링거.
새하얀 침대. 그 위에 누워있는 초췌한 여자.
금속성의 환풍기가 돌아가는 소리.
오래전에 본 격리실의 한 조각이었다.
‘그 여자’가 말했다.
오브젝트는 소원을 이뤄주는 희망이라고, 오브젝트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말라고.
그리고 소장은 답했다.
답했다.
뭐라고?답했지?
기억이 나지 않는군.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겠지.”
“내 이름처럼 아주 사소한 일이야.”
“연구를. 연구를 하자. 인류를 구원할 연구를.”
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소장은 한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소장의 손위에 들린 작은 구슬은 기묘한 빛을 간헐적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소장의 간헐적인 두통은 도무지 멈추지 않았다.
딱.
지팡이를 내리치는 소리와 함께, 소장의 강박적인 행동은 멈췄다.
“그럼 실험을 시작하자.”
“정말로 오브젝트는 인류의 소망에 의해서 발생하는가? 고문을 당한 사람의 염원 발생 확인을 위한 실험을 시작하자.”
소장의 발밑에서 수없이 뻗어나간 연구원들은 고문 도구를 손에 들고 격리실로 퍼져나갔다.
조용한 격리실에서 끔찍한 소리와 고통에 찬 비명이 울려 퍼졌다.
***
익숙한 언제나의 격리실.
옴뇸뇸.
젤리를 하나 집어서 입안에 넣고 씹는다.
푹신한 구름처럼 몸을 감싸는 침대, 내 등을 감싸고 받쳐주는 쿠션, 적당히 부드럽고 편안한 이불.
침대 위에 간이 탁자 위에는 진한 초콜릿과 무지개 빛깔의 젤리가 놓여있었다.
시끄럽게 떠드는 TV에서는 인천의 한 캠프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무릎 위에는 유령 고양이.
편안한 세희 연구소에서의 일상이었다.
오브젝트와 아웅다웅하는 스펙타클함과는 전혀 다른 소박한 일상이었다.
애옹.
고양이의 등을 슥슥 쓰다듬고 있으면 고양이는 가끔 작은 소리로 울면서 이야기를 걸어왔다.
하는 말은 주로 자신이 겪어온 모험담에 대한 이야기.
강적을 물리친 이야기나, 강력한 오브젝트에게서 무사히 도망친 모험담.
하지만 슬슬 고양이의 이야깃거리가 떨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그야, 이제 했던 이야기만 계속하고 있는걸….
5번이나 반복된 ‘사거리에서 6마리의 도베르만과 싸운 이야기’가 시작되려고 했다.
‘잠깐, 그거 5번이나 했던 이야기야!’
내 마음을 읽은 고양이는 충격 받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입을 크게 벌리고 멍하니 선 모습.
와, 고양이도 저런 표정이 가능하구나.
애옹.
충격 받은 고양이는 ‘이제 슬슬 때가 되었다!’라고 울부짖었다.
‘무슨 때가 되었다는 건데?’
애옹!
고양이는 ‘새로운 모험을 떠날 때가 되었다!’라고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애오옹!
고양이는 ‘가장 위험한 곳을 모험하고 오겠다!’ 라고 말하더니 위풍당당한 발걸음으로 격리실 벽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격리실 벽을 훌쩍 넘어서 사라져버렸다.
TV에서는 정부에서 관리를 포기한 ‘인천 계양산 임시 캠프’를 비춰주고 있었다.
설마 저기를 가겠다는 건 아니겠지?
***
인천 계양산 임시 캠프.
캠프는 소문만 들어보면 악마들이 살아갈 것 같은 곳이었다.
도둑들이 숨어들고, 갈 곳 없는 범죄자들이 모여들고, 불법적인 무기와 마약이 산처럼 쌓인 곳으로 묘사되곤 했다.
TV같은 미디어의 영향이 지대했다.
무법천지 같은 면모를 강조하고, 흙먼지가 묻은 아이들을 비추고, 지친 주민들의 모습들을 담아서 송출했다.
악행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일부 사례를 과장하곤 했다.
‘캠프’라고 내려치고, ‘범죄자들의 소굴’이라고 내려쳐도, 계양산 캠프는 광활한 면적과 밀집된 인구를 가진 도시였다.
시작은 텐트와 임시 대피소였을지 몰라도, 이제는 아니었다.
좁은 통로가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있었고,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상인들이 물건을 팔고, 노인들이 앉아 지난날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등 활기가 넘쳤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텐트 사이로 하늘을 가릴 기세로 잔뜩 뻗어 나온 빨랫줄들과 그 줄에 널린 천 조각들이 휘날리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제 그 말들은 모두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인천 계양산 임시 캠프.’는 이상해졌다.
태양이 내리쬐는 한낮, 공포에 온 몸이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지금도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빨랫감을 터는 아줌마들의 말소리도 들려왔다.
멀리서 과일을 떼와서 팔아먹는 상인들의 큰 목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저 사람들 사이로 섞일 수가 없었다.
그저 건물 틈새의 그림자 속에 숨어서 숨을 죽이고 있을 뿐이었다.
자그마한 단칸방에 세를 주던 집주인 아주머니는 사람이 바뀌었다.
죽기 전에는 절대로 안 팔겠다고 했는데!
언제나 친근하게 인사해오던 정육점 아저씨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웃고 떠드는 아이들은 어딘가 공허해보였다.
모두 제자리에 있는데, 제자리에 있지 않은 기분이었다.
겨우 한 달 만의 귀향인데, 이상해.
너무 이상해.
소름이 끼친다.
한낮인데도 점점 추워지는 것 같았다.
다들 장난치는 걸까? 모른척하기? 몰래 카메라?
하지만 내 감은 절대로 말을 붙이지 말라고, 이질적인 것을 눈치 챈 티를 내지 말라고 했다.
닭살이 돋은 양손을 슥슥 문지른다.
“누나 뭐해?”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마구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뒤를 돌아보니, 이가 듬성듬성 빠진 아이가 환하게 웃으면서 서있었다.
하지만 뭔가 다르다, 확연히 달라.
나는 긴장을 숨기며 말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관광객처럼.
“걷다가 지쳐서 조금 쉬고 있었어. 캠프라면서 생각보다 넓네?”
“누나 관광하러 온 거구나?”
“으… 으응.”
“으음, 그렇구나.”
아이는 환하게 웃더니 등을 돌려서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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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숨쉬기가 힘들다.
토할 거 같아.
어지러워.
그도 그럴게.
저 아이는 내 동생인걸!
도대체, 도대체 한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