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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13

Chapter: 613

   어린 루시를 따라 도착한 장소는 루시의 방 안이었다.

   

   베네딕과 미라가 루시를 위해 꾸며놓은 방 안은 많은 여자아이들이 상상할 공주님의 방이었다.

   

   다양하고 귀여운 인형들. 푹신한 침대. 분홍색으로 점철된 가구들. 침대 위를 장식한 하늘하늘한 연분홍색 캐노피.

   

   어떤 아이라도 이 방에 들어온다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기쁨을 드러낼 테지만 정작 이 방의 주인인 루시는 아니었다.

   

   너무 많이 울어서 메말라버린 눈가. 음식을 먹기나 하는지 의심스러울만큼 야윈 몸. 산발이 된 머리카락. 꾹 다물린 입술. 루시는 이 방 안에서 홀로 죽어가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를 웃음으로 보듬어주던 어머니는 이제 없다.

   

   어딘가 어리숙하지만 그래도 뜨거운 사랑으로 그녀를 품어주던 아버지는 이제 그녀를 미워했다.

   

   여태 주인의 눈치를 보던 저택의 시종들은 은근히 그녀를 무시하는 티를 낸다.

   

   여러 지위 있는 사람들이 시종들을 다그친다 해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더 이상 그녀의 편은 없으니까.

   

   최소한 루시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는.

   

   죽으면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먼 곳으로 떠나가버린 어머니에게 가면 다시 그 따뜻한 손을 붙잡을 수 있을까?

   

   나를 안아주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걸까?

   

   ‘이번 건국절에 어떡할 거야?’

   

   고립된 채 죽음이란 단어를 생각하던 여자아이가 생각을 달리하게 된 계기는 추악한 어둠에서 비롯되었다.

   

   ‘당연히 왕성에 가야지!’

   ‘언제까지 여기 처박혀 있을 순 없잖아.’

   ‘그래! 남자하나만 잘 잡으면 건방진 꼬맹이와는 영영 이별이라고!’

   

   건국절. 왕성. 사교장. 루시의 머릿속에 떠오른 광경은 안절부절하던 베네딕과 그를 보며 웃던 미라. 그리고 번쩍거리는 주변을 보며 웃다가 다급히 입을 가로막는 자신이었다.

   

   과거의 추억은 되새기는 것만으로 입꼬리를 끌어올렸지만 옅게나마 마음에 새겨졌던 행복은 금새 회색으로 뒤바뀐다.

   

   난 이렇게나 불행한데, 더 이상 행복해질 수 없는데, 왜 너희들은 여전히 웃는 거야?

   

   왜 나만 불행해야 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너희들보다 내가 뭘 못했길래 나만 모든 걸 잃어야 해?

   

   왜?

   

   왜?

   

   왜?

   

   ‘…싫어.’

   

   너희들이 행복한 게 싫어.

   

   나만 불행한 게 싫어.

   

   불공평하잖아.

   

   내가 불행한 만큼 너희들도 불행해야 하는 거 아냐? 응?

   

   알겠어. 너희들이 불행해질 생각이 없다면 내가 불행하게 만들어줄게.

   

   나 혼자만 웃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모두 다 우는 편이 나으니까.

   

   뒤틀려버린 어린 아이가 건국절 축제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하자 베네딕은 어긋난 희망을 품었다.

   

   루시가 조금이나마 상처를 떨친 게 아닐까하고.

   

   그래서 베네딕은 루시의 부탁을 들어줬다.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단 마음을 꾹 억누른 채 건국절의 축제에 방문했다.

   

   자리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베네딕 알른이란 영웅은 어디를 가더라도 환영받는 기사였으니까.

   

   몇 달 정도 저택에 틀어박혀 있었다 한들 그를 폄하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알른 백!”

   “괜찮으십니까?”

   “다시 일어나셔서 다행입니다.”

   

   밝게 빛나는 베네딕의 뒤편에서, 껄끄러운 감정을 숨기느라 필사적인 아버지의 뒤에서, 루시는 새삼 그 누구도 자신을 좋아할 수 없단 사실을 깨달았다.

   

   인사 한 번 나누었을 뿐인데 표정이 비틀린다.

   

   그녀가 입을 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냥했던 사람이 미간을 찌푸린다.

   

   친한 체 다가오던 아이가 혀를 차며 도망친다.

   

   미라가 없으면, 어머니가 없으면, 그녀의 유일한 이해자가 없으면, 루시는 혼자일 수 밖에 없다.

   

   “하핳.”

   

   마음 깊은 곳에서 끌어오르는 감정을 참을 수가 없어서 웃음을 흘린 그녀는 베네딕과 인사를 나누는 왕의 모습을 눈에 새겼다.

   

   “오랜만에 봐도 여전히 귀엽구나. 루시야.”

   “왕님께선 오랜만에 뵈어도 이상한 냄새가 나네요. 살이 뒤룩뒤룩 쪄서 그런가?”

   “루시!? 너 지금 폐하께 무슨.”

   “돼애지. 돼애지. 푸하핳. 차라리 헛간에 틀어박히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꿀꿀이 왕님.”

   

   주변의 당혹, 당황, 분노, 멸시, 그 모든 감정들이 루시는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모두가 불행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웃음 짓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 화려하게 움직였다. 모두의 시선을 끌어모으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불행하기 만들기 위해서 소리쳤다.

   

   “그건. 그건 절대 해선 안 되는 일이다. 루시.”

   

   베네딕이 모든 일을 수습하고 난 후. 단 둘이 남게 되었을 때 베네딕은 루시의 양 어깨를 붙잡고 그녀를 다그쳤다. 뒤늦게라도 루시의 비틀림을 바로 잡으려 했다.

   

   “왜?”

   “왜 안 되는데. 바보 파파? 저 허접들이 왜 불행해지면 안 되는 건데?”

   “그건 옳지 못한 일이란다. 루시. 너도 알지 않으냐.”

   “왜 옳은 일을 해야 하는데? 난 저 허접들한테 어울려주고 싶지 않아.”

   “루시. 조금만 진정하고 내 이야기를 들어다오. 응? 미라도 네가.”

   “마마는 죽었잖아!”

   

   루시라는 착했던 아이가 처음으로 드러낸 반항 앞에서 베네딕은 무력했다.

   

   “방해하지 마. 바보 파파.”

   “…할 거다. 루시.”

   “왜? 마마가 그렇게 부탁했으니까?”

   “그런 게 아니다. 나는 너를.”

   “거~짓말. 그렇게 내가 소중했으면 여태 내버려 둘 리가 없잖아.”

   “그건. 그게.”

   

   이 때 베네딕이 변명이라도 내뱉었다면 뭐가 달라졌을까?

   

   울음을 터트리며 자기도 힘들었노라 하소연했다면 무언가 변했을까?

   

   아무 말 없이 루시를 안아주기라도 했다면 희망이 생겼을까?

   

   “하하핳!”

   

   이제와서 생각해봐야 무의미한 이야기다.

   

   “아하하핳!”

   

   베네딕은 말을 더듬다가 고개를 숙였고.

   

   “아. 정말.”

   

   루시는 그 망설임은 긍정으로 받아들였으니까.

   

   “쓰레기 아버님.”

   “루. 루시.”

   “전 당신이 정말 싫어요.”

   

   화목했던 집안은 이렇게 무너져내렸다.

   

   이후로 루시는 계속해서 사교계에 참여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거나, 친구를 사귀고 싶다거나, 맛있는 걸 먹고 싶다거나, 예쁜 걸 보고 싶다거나 하는 목표는 존재치 않았다.

   

   그녀는 오롯이 모두가 불행해지길 원했다.

   

   이를 말려야 할 베네딕은 루시에게 다가서질 못했다.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죄책감이 너무도 커서, 자신의 곤혹조차도 스스로 겪어야 할 죗값이라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루시의 소원은 점차 현실이 되어갔다.

   

   모두가 불행해졌다.

   

   사교계의 사람들도. 베네딕도. 루시 본인도.

   

   “하하. 들었던대로 짓궂은 농담을 즐기시는 군요.”

   “농담이길 바라시나요? 네에. 필사적으로 부정하고 싶으시겠죠. 근데 이걸 어쩌나. 모두 사실인데.”

   “…제 어디가 음침하단 겁니까?”

   “대답하기가 어렵네요. 어디를 봐도 곰팡이처럼 퀘퀘하신 분이라.”

   “허.”

   “굳이 대답을 해드리자면. 으으음. 아. 눈빛도 음침해서 대답하기 싫어졌어요.”

   “…루시 알른!”

   

   르네와 루시가 만나게 된 것은 이 불행의 연쇄 속이었다.

   

   사교장이 어두침침하길 바라는 루시는 당연하다는 듯 모두에게 환영받는 1왕자에게 다가가 시비를 걸었다. 그를 불행에 빠트리기 위해서.

   

   르네는 처음에 좀 견디는 듯 했지만 결국 여느 사람들처럼 루시에게 분노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한바탕 소란이 일 즈음 달려 온 베네딕이 상황을 수습했지만 그런다고 사교장의 분위기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루시는 그 날도 당당하게 자신의 목표를 이뤘다.

   

   “알른 영애.”

   

   르네가 다시금 말을 걸어온 건 베네딕이 사교계의 주최자와 대화를 하러 떠나갔을 때였다.

   

   “왜요? 음침한 외톨이 왕자님? 설마 저랑 친구가 되고 싶으신 건가요? 그런 거라면 미리 사과드릴게요. 전.”

   “…하아. 루시 알른. 입 좀 다물어 봐라. 최소한 내가 할 말은 끝내야 할 것 아닌가.”

   

   당시 이미 성인에 가까웠던 르네의 진심 어린 짜증은 어렸던 루시를 겁먹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얕보일 수 없단 이유로 루시는 어깨를 폈지만 정작 그 속마음은 쪼그라 든 채였다.

   

   “쯧. 이런 실수를.”

   “히끅.”

   “자. 잠시만 기다려. 아니. 기다려 주십시오. 알른 영애. 당신을 향해 혀를 찬 것이.”

   “히끅.”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제발 울지 마십시오. 당신이 울면 알른 백께서 어찌 나올지.”

   “누가. 히끅. 운단 거. 끄흡.”

   “예. 안 울고 계십니다. 안 울고 있다고! 인정해 줄 테니까 제발!”

   

   다행스럽게도 르네가 루시를 달랠 때까지 베네딕은 돌아오지 않았다.

   

   눈가가 살짝 붉어지긴 했지만 최악의 오해를 살 위기에서는 벗어났다.

   

   이 사실에 안도한 르네는 자신을 노려보는 루시를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다 들켰으니 가식은 그만 떨겠다. 괜찮겠지?”

   “그런 것까지 일일이 허락받으시는 건가요? 스스로 선택할 줄을 모르시나봐요?”

   “괜찮다는 걸로 알아듣겠다.”

   

   루시는 툴툴거리는 르네가 무서우면서도 신기했다.

   

   여태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이렇게 계속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은 처음이었으니까.

   

   대부분은 첫 마디를 나누고서 돌아서고, 오래 끌어도 한 번 화를 내고 나면 루시가 없는 체 하는 것이 보통.

   

   르네는 그야말로 첫번째 예외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마. 루시 알른. 너 말하고 싶은 바와 말하게 되는 것이 다르지?”

   “…네에?”

   “생각하는 것과 입에서 새 나오는 게 다르잖나.”

   

   그랬기에 루시는 르네가 자신의 비밀을 눈치챘단 사실을 오랫동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왕궁의 사람들 중에 행동으로 감정을 읽을 수 있는 자가 있었다. 내 그 녀석이 하는 일이 하도 신기해서 방법을 알려달라 부탁했지. 그러니 그 녀석이 알려줘도 못 따라 할 테니 기꺼이 알려주겠다고 말하지 뭐냐. 그 기고만장한 표정에 열이 받아서 최선을 다해 배웠더니 어느 정도 추측을 할 수 있게 됐다. 그 녀석은 속임수도 못 간파하고 생각도 제대로 못 읽는 기술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흐읍. 끅.”

   “잠. 뭐냐! 왜 울려고 하는 것이냐! 난 이번에 아무 잘못도!”

   “으아아아앙!”

   

   르네가 주절거리는 것을 듣다 그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달은 루시는 참고 또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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