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617

Chapter: 617

   사람들은 용사가 신들의 내전을 선신의 승리로 이끈 영웅이라고 믿었다.

   

   대륙의 멸망을 가로막은 구원자라고 칭송했고, 인간들에게 미래를 선사한 구세주라고 찬양했다.

   

   정작 용사 본인은 이러한 말들을 꺼림칙하게 여겼다. 그는 자신이 이루어낸 승리가 불행의 유예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멍청하고 대책없는 인간이라는 말을 들었다만 이런 바보인 나라도 잊을 수 없는 광경이 존재한다네.”

   “그게 뭔데.”

   “사람들의 불행.”

   

   어린아이가 살아남기 위해 부모의 시체를 입에 집어 넣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꼴로 살 바에야 차라리 죽고 싶다는 외침에 그래선 안 된다고 말하지 못하던 시대가 존재했다.

   

   모두가 삶보다 죽음에 익숙했으며, 비루한 삶을 이어 나갈 이유가 미래에 대한 대책 없는 희망뿐이던 때가 실존했다.

   

   용사가 용사로 살던 나날들은 역사상 그 어떤 시대보다 절망에 짙게 드리운 나날이었다.

   

   “어느 정도 불행을 겪다 보면 거기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만 난 도저히 그럴 수가 없더군. 사람들이 지닌 불행이 저마다 새롭게 느껴지더라고.”

   

   미련하기 그지 없는 일이란 걸 알면서도 용사는 모든 이들의 불행을 마음에 새겼다.

   

   저들이 느꼈을 절망을 가슴에 품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희망이 되기 위해 웃음을 지었으며, 이러한 불행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무기를 치켜들었다.

   

   “내가 용사가 된 까닭은 이 세상에서 불행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헌데 내가 한 일이 불행을 미룰 뿐이란 걸 알았는데 어찌 가만 있겠는가.”

   “미련하네. 빙구 아저씨.”

   “그 또한 자주 들은 말이다만 천성을 바꿀 수가 없더군.”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 앞에서도 당당히 무기를 치켜드는 용사의 근성은 내전이 이루어지던 시기에는 희망이 되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길고도 끔찍한 전쟁을 겪고서 살아남은 이들 대부분은 휴식을 바랐으니까.

   

   “그들이 잘못된 게 아니야. 이상한 쪽은 내 쪽이지. 간신히 전쟁이 끝났는데 수백 년 뒤에나 찾아올 재앙을 막기 위해 움직이겠다는 게 얼마나 멍청한 행동인가.”

   

   머나먼 미래를 생각하기에는 당면한 현실이 좋지 못했다.

   

   긴 전쟁을 거친 대지는 생명을 피우기엔 너무도 척박했다.

   

   열매가 피어야 할 숲은 대부분 불타올랐으며 고기가 될 짐승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일을 할 젊은이들마저도 부족했다.

   

   여기에 더해 긴 전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농사나 목축, 이외에 일상에 필요한 여러 기술들도 실전되었기에 현실은 쉬이 호전될 수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인간들의 곁에서 신이 떠나가버렸단 것이다.

   

   신들과 함께 살아가는 데에 익숙했던 이들은 조언을 구할 곳 없는 상황이 익숙해지지 못했다.

   

   전쟁이 끝났을 뿐 현실의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인간에게 있어 여전히 삶은 지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까마득한 미래를 위해 일어서자고 하면 누가 나서겠는가.

   

   “이래뵈도 용사라서 내 의견을 따라야한다 외치는 사람들이 있긴 했다만 내 보기에 분란의 소지가 될 듯 싶더군. 그래서 내 발로 사람들을 떠났다. 이건 내 고집이니 나 홀로 방법을 찾는 게 옳잖나. 그 후에는.”

   “처참하게 실패했지?”

   “…그걸 어떻게.”

   “착한 것말고는 대단한 게 없는 빙구 아저씨잖아. 시덥잖은 일에 잔뜩 얼굴을 들이밀다 정작 목표에는 조금도 다가가질 못했겠지.”

   

   할아버지의 이야기만 들어봐도 그의 실패가 얼마나 장대했는지 짐작하는 건 어렵잖다.

   

   이토록 긍정으로 가득한 인간이 그런 식으로 무너져내릴 때까지는 얼마나 많은 실패가 거듭되었겠는가.

   

   사실 악신의 소멸이라는 게 답이 없는 일이기도 하고 말야.

   

   이 세상에 개념이 존재하는 한 그들은 사라지지 않잖아.

   

   유일한 해답은 에르기누스가 그랬던 것처럼 직위를 뺏는 건데 어중간한 녀석이 그 신위를 차지해봐야 개념의 악의에 물들어 똑같은 악신이 될 뿐이니.

   

   …생각해보니까 악신을 쓰러트리는 최선의 방법은 지금처럼 봉인을 유지해두는 거 아냐? 괜한 짓을 해봐야 일을 더 키울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으음. 자네가 생각한 것처럼 난 잔뜩 실패했네. 동료에게 폐를 끼치기도 했었지. 언젠가는 나란 존재가 신위를 거머쥐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만 그건 인간의 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게 아니더군! 하마터면 큰 일이 날 뻔 했어!”

   

   큰 일이 날 뻔 했다는 건 시도를 해봤단 소리야?

   

   그거 자칫 잘못했으면 신격에 짓눌릴 뻔 했단 이야기잖아!

   

   아! 그 때구나! 반쯤 미쳐서 할아버지를 찾아왔다는 게!

   

   신격의 영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로 이상한 짓을 한 게 분명해!

   

   실패 끝에 절망한 줄 알았는데 그냥 정신에 이상이 생겼을 뿐이냐!

   

   이래서야 할아버지의 걱정이 뭐가 돼! 괜히 오해했을 뿐인 거잖아!

   

   “에르기누스는 인간이 견딜 수 없다면 신위마저 견딜 수 있을 무언가를 만들면 되지 않냐 그랬지만. 말이 쉽지 그게 어디 가능하겠나!”

   “가능하던데?”

   “…그게 정말인가?”

   “동정찐따님께 과분한 자리긴 하지만 사실이긴 해.”

   “그…럴 리가 없는데? 에르기누스 본인도 실험해보다가 불가능하다 판단을 내렸단 말이다.”

   

   여태까지 당황은 해도 큰 동요는 보이지 않았던 용사지만 신의 위를 탈취했다는 사실에는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불가능하다 생각하고 포기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면 당황스러울 법도 하지.

   

   음. 근데 그것도 우연의 일치에 가깝지 않나? 요정여왕과 신격의 부담을 나누어 받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거라고 당사자가 이야기했으니까.

   

   “과연. 요정여왕께서는 신위에 한없이 가까우신 분. 에르기누스의 정신과 그 분의 혼이 합쳐진다면 기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군.”

   

   이런 사실을 전했더니 방금 전의 당황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용사가 간단히 납득을 했다.

   

   “그나저나 에르기누스와 요정여왕님인가. 훗날 만나게 되면 축하의 말을 전해주게.”

   

   심지어는 자신이 직접 가지 못하는 게 아쉬우니 성대하게 축하해달란 말을 하더니 에르기누스의 소망이 이런 식으로라도 이루어져서 다행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크흠. 하여간 이런저런 방법을 생각하며 고민하던 나다만 그 끝에 다다른 결론은 처음과 다르지 않더군. 최선은 악신을 봉인한 채로 내버려 두는 것이야. 봉인이 풀리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라면 이만큼 안전한 방식이 없어.”

   “당신 정말 뇌가 순수하구나? 생각이란 걸 좀 해. 깨지지 않는 봉인이 어디 있어.”

   “나도 거기에 동의하네. 제 아무리 강대한 마법도 시간 앞에서는 무력한 바. 영원토록 풀리지 않을 봉인은 존재치 않아. 그럼 어찌해야할까.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내가 낸 해답은 쇠하지 않는 정신이 봉인이 되면 되지 않으냐 하는 것이었지.”

   

   용사의 말을 알아 듣는 건 어렵잖았다. 이 사람은 자신이 직접 봉인이 되는 것을 택했다. 수백년 동안 홀로 남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이 곳에서 지키고 있는 건 악신 아그라의 중심이 되는 부분이다. 다른 악신이 모두 깨어나더라도 그들의 중심이 되는 아그라만 부활하지 못한다면 그 때와 같은 재앙은 일어나지 않아.”

   

   모든 재앙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큼은 하는 게 도리 아니겠느냐며 웃는 용사를 보고 있자니 감탄보다는 착잡함이 먼저 마음을 휘감았다.

   

   용사라 해서 긴 시간을 홀로 견디는 것이 즐거울 리 없다. 활달하고 호방하며 주변을 아끼는 호인인 그다.

   

   마법을 연구할 곳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은 에르기누스처럼 외로움 속에서 평온하진 않을 거다.

   

   그럼에도 외로움을 자처한 것은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겠지.

   

   “자네가 돌파한 던전은 사실 위대하신 주신과 에르기누스가 협력하여 설계한 함정이라네. 아그라의 봉인에서 힘을 잔뜩 뺏을 수 있으니 저런 기괴한 던전을 만들 수 있다더군.”

   “…당신들 바보야? 여기 있는 병신이 일어나면 저런 식으로 던전을 만들거란 이야기잖아.”

   “그것도 그렇군. 봉인을 지켜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어.”

   “아니.”

   “뭐. 자네처럼 이 던전을 공략하는 이가 나오기도 하니 괜찮지 않겠나?”

   

   대책 없는 용사의 말을 들으며 생각한다.

   

   이 자가 선택한 결말에 나름의 고결함이 존재한다는 건 인정한다.

   

   그의 희생이 이 세상을 좀 더 안전하게 만든다는 것도 알겠다.

   

   그렇지만 용사의 행동을 긍정하진 못하겠다.

   

   이유? 대라면 댈 순 있지.

   

   한 사람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평화는 한 사람이 무너지는 것으로 끝나버릴 불안정한 평화다. 라거나.

   

   불행을 대가로 삼는 건 옳지 못하다거나.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거나.

   

   근데 이런 건 다 구차한 핑계에 불과하다.

   

   내가 용사의 웃음을 노려보는 건 어디까지나 당당한 체 하는 용사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자네와 이야기를 나눈 덕분에 한 오백년 정도는 더 버틸 기운을 얻었어. 옛 사람의 지루한 이야기에 어울려줘서 고맙네.”

   

   용사도 인간이다. 지금 마음 속에 쌓여 있는 감정들은 무수히 많겠지. 그리고 그건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게 많을 테고.

   

   헌데도 투정 한 번 없이 웃는 것은 그가 용사로서 활동하며 웃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날 안심시키기 위해 강한 체 하고 있는 거야.

   

   허접 어른 주제에 건방지게. 

   

   어떻게하면 저 가면을 무너트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으려니 어느 순간 용사가 미소와 함께 단호히 이야기를 끊었다.

   

   “그대에겐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지 않나. 망령 같은 상대에게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되지.”

   

   그를 잇듯 내뱉어진 말은 단호한 축객령이었다.

   

   “내가 누구한테 어떻게 시간을 쓰건 무슨 상관이야? 설마 신경 쓰여서 그래? 빙구아저씨도 짐승이었구나?”

   

   일부러 살짝 긁어봤지만 용사의 웃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참고로 말을 해주자면 그대가 던전들의 끝에서 보았던 것들은 그대 내면의 목소리라네. 무엇을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면의 조언이 그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지.”

   

   조금 더 있다 가겠다고 말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내 몸이 약간 흐려졌다. 이 공간의 주인은 용사이기에 내가 밀려나는 것이다.

   

   “자네의 무구 속에 깃들어있는 녀석들에게 안부나 전해주게. 아. 그리고 무구 안에 내 힘 일부를 넣어뒀으니 그것도 확인하고.”

   

   고향을 떠나는 자식을 배웅하듯 손을 흔드는 용사를 보고 있자니 짜증이 올라왔다.

   

   왜 제멋대로 오라가라야!

   

   난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내가 기껏 동정을 해준다는데 실패자 따위가 거부하다니 건방져!

   

   야! 허접 주신! 네가 날 여기까지 불러냈잖아! 뭔가 시킬 게 있는 거 아냐?!

   

   빨리 말해! 당장!

   

   뭐라도 된 것처럼 웃는 저 얼굴에 한 방 먹여주고 싶다고!

   

   – 띠링.

   

   명령하듯 소리치기 무섭게 익숙한 알림음과 함께 내 앞에 푸른 색 창이 떠오른다.

   

   그리고 거기에 적혀 있는 내용은 너무나도 내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용사에게 한 방 먹이십시오.]

   

   흐릿해지던 내 몸이 다시금 형체를 되찾고 그 어느 때보다도 풍부한 신성이 내 몸을 휘감는다.

   

   키야! 드디어 주신다운 일을 하는 구나! 이래야 기도할 맛이 나지!

   

   “주신이시여. 당신께서 왜.”

   “글쎄에♡ 바깥을 무서워하는 폐급어른을 쫓아내고 싶어진 게 아닐까♡” 

   

   메스가키 식 카운슬링입니다. 부디 분노와 함께 당신의 진심을 토해주시길 바랍니다.

   

   참교육이요? 할 수 있으면 해보시던가.

   

   허접아~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