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건물을 빠져나온 고양이는 폐허를 지나 서쪽으로, 서쪽으로 계속 달리기 시작했다.
폐허가 끝나고 미로 같은 도시가 나타나도 망설임 없이 계속 달려 나갔다.
복잡하고 시선을 끄는 도시 안을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질주했다.
도시 특유의 왁자지껄한 대화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가끔 멀리서 들리는 개 짖는 소리.
마치 길을 잘 아는 것처럼, 복잡한 도시의 갈림길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전혀 모르는 거리들, 하지만 고양이에게는 익숙해보였다.
그렇게 고양이를 따라가길 몇 시간.
마침내 높은 폐허 위의 탁 트인 전경의 앞에서 고양이가 큰 소리로 울었다.
애오오오옹!
성취감이 느껴지는 소리였다.
시선을 내려 아래를 내려다보니,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TV에서 ‘인천 계양산 임시 캠프’를 소개할 때면 꼭 보여주는 전경이었다.
캠프의 무질서함을 잘 보여주면서 꽤 멋진 풍광이여서, TV에서 자주 보여줄 만한 장면이었다.
TV가 아니라 직접 보게 된 캠프는 내 예상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TV에서는 ‘무법지대의 임시 캠프’라고 자주 묘사했는데….
내가 볼 때 꽤 멀쩡해 보여서, 무법이나 임시가 붙을 만큼 험악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한 것은 따로 있었다.
도시 안에 사람이 한 명도 없네?
진짜 한 명도 없어.
고양이를 몰래 뒤따라, 도시 안까지 들어와 보니 그 이상함은 배가되었다.
위태로운 계단 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좁은 골목을 가로 지르며 널려 바람에 너풀거리는 빨랫감들.
골목에 모여 앉아 악기를 연주하는 청년들.
담벼락 위에 손을 꼭 잡고 앉아 있는 커플들.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호객하는 상점주인들.
긍정적인 감정과 역동적인 생생함이 넘치는 도시였다.
하지만 장작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미묘하게 느껴지는 불쾌함이 점점 더 심해질 뿐이었다.
고양이는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는지,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캠프 안을 돌아다니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아마 모험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고양이는 이미 모험 속에 깊숙이 발을 디딘 상태였다.
저 가짜 인간들이 유령 고양이를 관심 없어 하는 척하면서 주시 중이었으니 말이다.
***
한낮의 햇빛이 블라인드를 통해 들어오며 바닥에 그림자를 드리웠고, 구석에 비치된 커피 머신은 특유의 소리를 내면서 향기로운 증기를 실내에 내보냈다.
갓 내린 커피 향과 오래된 나무 가구와 책에서 나는 냄새가 섞여 사무실 특유의 분위기로 변했다.
평소의 탐정 사무실이었지만, 출장 준비를 하는 중이라 평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벽에 걸린 코르크 보드에 붙은 사진들을 확인하면서 도구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노란색 정장의 매무새를 점검하고, 회중시계를 챙겨 넣었다.
그리고 선반 위에 놓인 가스램프를 잡고 들어올렸다.
내가 가스램프를 집자, 작은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선배! 왓슨 진짜로 챙겨갈 거예요?”
후배 1호는 식겁한 표정으로 말했다.
왓슨을 잘 모르는 2호는 궁금해 보이는 표정.
“그래. 가져가야지. 오히려 안 가져가면 후회할 걸?”
나는 왓슨을 눈높이까지 올려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리볼버를 한 자루 챙겼다.
“권총!? 선배 미쳤어요? 지금 어디 싸우러 가는 거였어요? 의뢰인 만나러 간다면서요? 그리고 그거 불법 아니에요? 한국에서 총이라니….”
“왠지 총이 필요한 상황이 있을 것 같아서 챙겨가는 거야. 그리고 영화도 못 봤어? 원래 명탐정은 리볼버 한 자루 정도는 챙겨두는 법이지.”
내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걸 처음 보는 후배 1호는 자신의 짐을 다시 점검했다.
그리고 후배 2호가 물었다.
“그래서, 우리가 어디로 가는 거죠?”
“인천 계양산 임시 캠프.”
나는 코르크 보드에 꽂혀있는 기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인천 계양산 임시 캠프, 미심쩍은 이유로 경찰 인력 철수.>
얼마 전부터 논란이 된 캠프의 기사였다.
***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코를 쥐어 막으며 한 남자가 투덜거렸다.
“아오. 숨을 쉴 수가 없네.”
끈적하게 피가 흐르는 벽면 때문인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피 냄새가 진동했다.
협회 소속의 남자는 최근 연속된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서 ‘인천 계양산 임시 캠프’까지 온 것이었다.
비밀리에 중앙 연구소를 부활시키려고 했지만, 실패.
부소장을 감옥에서 무리하게 꺼내서 다시 시도했지만, 또 실패.
소장 오브젝트를 부르지 못 하는 건 불가항력으로 보고 부소장으로 하여금 연구소를 운영하도록 맡겼더니, 부소장이 목 없는 시체가 되어 버렸다.
비밀 중앙 연구소 운영 준비에 심대한 차질이 빚어지는 중, 소장의 위치를 찾아낸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정부가 유심히 감시를 하던 ‘인천 계양산 임시 캠프’에서 정체불명의 실종 사건이 발생한 것을 추적하다보니, 그토록 찾아다니던 소장이 튀어나왔으니….
운이 좋았다.
남자에게 주어진 임무는 하나, ‘소장을 비밀 연구소에 영입하라!’.
앞장서서 걷는 연구원의 뒤를 따라서 지하 깊숙한 곳으로 들어서자, 피 냄새는 더욱 진해졌다.
거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심장 박동 소리까지 더해졌다.
두근두근.
수많은 심장이 일제히 뛰는 소리.
그 박동음은 마치 공기를 밀어내는 것처럼 크게 울려서, 그 진동은 남자의 몸통도 덩달아 울리게 할 정도였다.
계속 걸어 도착한 곳은 넓은 공동이었다.
그 공동 한 가운데, 소장이 있었다.
“잘 왔네. 협회의 이름 모를 아무개 씨.”
소장은 과장된 제스쳐와 말투로 말했다.
한시라도 빨리 이 지하시설에서 나가고 싶은 남자는 소장의 빈정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할 말만 했다.
“소장, 다시 중앙 연구소….”
짝.
소장은 박수로 남자의 말을 끊고는 말했다.
“협회 출신이라면 내 이름을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모른다. 내가 그 이름을 알기엔 너무 젊은 것 같아 보이지 않나? 거기에 소장의 이름이 적힌 모든 서류는 파기되었으니 조사하는 것도 불가능해.”
“….”
“이름 없음 때문에, 이제 너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름을 기록할 수도 없다.”
소장은 그 말을 듣고 생각에 빠졌다.
“소장, 아니 ‘메이커’! 다시 중앙 연구소로 돌아와라. 이제 중앙 연구소에서는 네가 하고 싶었던 모든 실험을 지원해줄 수 있다.”
“이름. 이름은 사소한 거야. 중앙연구소로 돌아오라고? 좋군. 아니 좋지 않아. 왜?”
남자의 말을 들은 소장은 천장을 바라보며 횡설수설 중얼거렸다.
뭔가 불길한 느낌을 느꼈는지, 남자는 뒤를 돌아서 나가려고 했지만, 어느새 연구원 두 명이 나타나 자신의 어깨를 붙들고 있었다.
“뭐, 뭐하는 거야?”
소장은 남자의 코앞까지 걸어와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며 말했다.
“이름.”
“뭐?”
“내 이름이 뭐지? 한 번 테스트해 보니까, 이름을 부르는 것까지는 가능하더군. 일반인들로도 테스트해 봤으니 확실해.”
“절대, 으아아아아악!”
거절을 입에 담으려던 남자의 눈에 그대로 메스가 박혀 들어갔다.
주르륵,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메스가 뽑혀 나왔다.
소장의 손에 들린 구체가 기묘한 빛을 뿜어냈다.
심각한 출혈이 있어야 했지만, 어째서인지 출혈은 순식간에 멈춰버렸다.
“뭘 그렇게 두려워하는 거지? 내 이름을 부르면 ‘이름 없음’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당연하지!”
“불러보는 게 어떤가? 의외로 내가 소장의 몸을 차지한 기생 오브젝트일지도 몰라. ‘검은 나비’ 같은 기생형 오브젝트의 숙주에 이름을 붙이는 건 괜찮지 않나?”
“아니, 넌 기생형 오브젝트 따위가 아니야!”
“말이 안 통하는군. 뭐, 언젠가는 말해주겠지. 시간은 많아.”
“으아아아, 그만해. 나는 몰라! 모른다고! 모른다고 했잖아!”
하지만 소장은 남자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
“안녕하세요. 혹시 의뢰할 거리가 있지 않으신가요?”
하루 종일 경찰서 앞을 서성이던 선배는 또 이상한 소리를 시작했다.
“저거, 저에게도 했던 말이죠? 언제나 하는 멘트였어요?”
“응, 저게 멋있는 줄 아나봐.”
소근소근. 소근소근.
2호랑 선배 뒷담화를 하고 있으니, 의뢰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선배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또, 저 이상한 멘트로 의뢰인을 얻는 데 성공한 것이다.
“자, 그럼. 지금 바로 ‘인천 계양산 임시 캠프’로 가자.”
납치 사건인 만큼 목적지를 아는 이상 시간을 지체할 필요는 없겠지.
택시를 잡아타고 도착한 ‘인천 계양산 임시 캠프’.
예상과 다르게 활기가 넘치고 즐거워 보이는 곳이었다.
아이들은 밝고 화기애애해 보였고, 상인들은 생기가 넘쳐보였다.
그리고 산 중턱에 모여 앉은 노인들이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꼴을 보면 납치 사건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분위기였다.
우선 사람이 너무 많아서 눈길을 피하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선배? 이런 곳에서 납치가 일어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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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미간을 좁힌 채, 심각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선배?”
“모르겠군. 뭔가 이상한 것 같은데 모르겠어.”
왠지 모르게 엄청 겁에 질린 의뢰인을 따라서 의뢰인의 주거지로 향했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주차장도 없는 3층짜리 허름한 건물.
그곳에서 꼬맹이 한 명과 여성 한 명이 나와 우리 일행을 반겨줬다.
“누나아아아!”
꼬맹이는 양 팔을 벌리고 뛰어와 의뢰인의 발치에 달라붙었다.
하지만 의뢰인은 표정을 새파랗게 질린 채,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저거 완전 꼽등이가 다리에 달라붙은 표정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