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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25

Chapter: 625

   손님들을 안으로 들인 쿠르텐 공작은 자꾸만 차오르는 분노를 애써 억누르며 내기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제가 내기에 대가를 바라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상대의 의지를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어정쩡한 각오로 이 곳에 찾아오는 자를 상대하는 건 고역스러운 일이니까요. 만약 상대의 각오를 다른 방식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대가 따위 아무래도 좋습니다.”

   

   내기는 어디까지나 공작의 취미에 불과하다.

   

   이를 통해 무언가를 취할 생각은 없다. 그래서야 쿠르텐이란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되지 않나.

   

   강자를 존중하며 자신도 존중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란 걸 목표로 삼는 쿠르텐이 뉴먼 백작가에서나 할 법한 짓을 벌여봐라. 부끄러워서 조상들과 함께 묻힐 수조차 없다.

   

   “2왕자님께서도 처음엔 자신의 애검을 내거셨습니다. 무인이 무기를 내민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전 내기를 받아들였죠. 그 후 저 분의 의복을 취하게 된 건 어디까지나 2왕자님의 바람을 들어드린 것입니다.”

   

   오랜만에 상대할 맛 나는 젊은이가 나와서 신이 난 탓도 있긴 하지만 추태의 근원은 어디까지나 2왕자에게 있다. 이에 대해 질책하면 쿠르텐 공작 입장에선 억울할 뿐이다.

   

   “베네딕. 자네와 내가 전선에서 함께 한 세월이 얼마인데 그런 오해를 하는가! 자네 눈엔 내가 그런 걸 즐길 쓰레기로 보였나!?”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말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열이 오른 공작이 질책하자 베네딕이 한껏 고개를 숙였고 그 뒤를 잇듯 다른 이들도 사과의 말을 전했다.

   

   모두가 공작의 눈치를 보는 공간에서 당당한 사람은 한 명. 내기의 당사자인 루시 알른이었다.

   

   “하아암. 언제까지 노망을 부리실 생각인가요? 자꾸 그러실거면 한숨 자고 올게요.”

   

   그녀의 담대함에 쿠르텐 공작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온갖 불손한 일을 저질러 온 아이답군. 상대의 지위가 어쨌건 자신과 동등한 인간이란 건가.

   

   “걱정말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시종들이 내기의 준비를 끝마쳤을테니.”

   “그럼 빨리 가죠. 살 날도 얼마 안 남으셨는데 시간을 알차게 쓰셔야죠.”

   

   불손한 말에 기겁하는 이들을 멈춰세운 공작은 두 손을 끌어모으며 붉은 색 눈동자를 노려봤다.

   

   “그 전에 이야길 나누어야 할 것이 있다. 그대는 내기의 조건으로 무얼 내밀 생각이지?”

   “눈빛이 음흉하시네요. 볼에 뽀뽀라도 해드려요?”

   “뭔.”

   “아닌가요? 제 입술을 가만 노려보고 계시기에 그런 줄 알았는데.”

   

   루시 알른은 장난스레 키득거렸지만 쿠르텐 공작은 도저히 웃을 수 없었다.

   

   그녀가 뽀뽀란 단어를 내뱉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날 선 기운이 올라왔던 것이다.

   

   “푸핳. 진짜 짐승들밖에 없네. 다 그렇게 내 입술이 가지고 싶었어?”

   

   비웃음과 함께 시선을 주는 걸로 살의를 누그러트리는 걸 본 공작은 복잡한 속내를 웃음 뒤에 숨겼다.

   

   나라를 뒤흔드는 미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다만, 그 미의 당사자가 이런 꼬마아이일 줄은 몰랐군.

   

   이 여자아이가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게 다행이야. 만약 누군가의 손을 잡는다면 그걸 사유로 내전이 일어날지도 몰라.

   

   “농담은 여기까지 할게요. 제가 내기의 조건으로 가지고 온 건 이 메이스랍니다.”

   

   테이블 위에 무구가 올려진 순간 응접실에 있던 전원이 숨을 들이킨다.

   

   과거 신화 시대에서 세상을 구원한 영웅 루엘이 사용하던 메이스.

   

   교회가 기를 쓰고서라도 얻고 싶어할 성물이며, 막대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다, 실성능도 경이로운 그 무구에 대해선 쿠르텐 공작도 알고 있었다.

   

   루시 알른이 사용하는 무구에 대한 건 유명했으니까.

   

   그렇기에 공작은 루시 알른이 또 어른을 놀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저런 무구는 가벼히 내걸 수 있는 게 아니다.

   

   인생의 끝자락에 몰렸을 때에나 손에서 놓는 물건이다.

   

   자신이 지닌 것이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저토록 귀중한 걸 내걸 이유 따윈.

   

   “쫄리세요?”

   “뭐?”

   “겁먹으셨잖아요. 그쵸?”

   겁 먹었다고? 내가?

   “걱정마세요. 설탕공작님. 전 당신 따위에겐 큰 걸 바라지 않거든요. 다 늙어빠진 노친네한테서 무언갈 받아봐야 징그러울 뿐이잖아요?”

   “자신이 있나?”

   “당연하죠. 죽을 날을 기다리는 퇴물한테 질 생각은 없답니다?”

   “…오냐. 그 제안 받아주마.”

   

   이성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이 제안은 거절하는 게 맞다. 쿠르텐 공작이 패했을 경우 저 무구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할 테니까.

   

   제 아무리 오대공작가의 주인이라해도 저 무구에 달하는 대가를 지불하기란 부담스러운 일이다.

   

   허나 쿠르텐 공작은 루시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한 걸음 물러서는 순간 모든 게 와르르 무너져내릴 것이란 직감이 들어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었다.

   

   “바로 가지.”

   

   이 담대한 꼬맹이의 자신감이 허세인지 아님 믿는 구석이 있는 건지 확인을 해봐야겠어.

   

   *

   

   <제발 생각을 좀 하고 말을 해라! 중대한 일을 앞에 두고서 자신의 무구를 도박판에 올리는 멍청이가 어디 있느냐!>

   

   자신이 내기의 대상이 되었다는 게 불쾌한 듯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잔소리를 계속해서 퍼부었다.

   

   그 심정을 이해는 한다만 내게도 이유는 있다.

   

   쿠르텐 공작과의 도박은 커다란 걸 내걸면 내걸수록 승률이 높아지거든.

   

   작은 확률에 겁먹고 어설프게 나서는 것보다 대범하게 나서는 쪽이 좋지.

   

   ‘저 자신을 걸겠다 그러니까 미쳤냐던게 누구인데요.’

   

   그래서 처음엔 나 자신을 걸 생각이었어. 가치도 높고 만약의 경우에 억지부리기도 좋으니까.

   

   근데 어두를 꺼내자마자 주변은 물론 할아버지까지 기겁을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무기 쪽으로 선회했다.

   

   <그건 미친 소리가 맞지 않으냐!>

   ‘할아버지. 바꿔서 생각을 해보세요. 제가 그만큼 간절하단 이야기라고요.’

   

   실은 간절함 따위 조금도 없다.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사람 모양의 과자를 얼마나 맛있게 뜯어먹을까에 대한 것 뿐.

   

   그치만 이렇게 말하면 납득을 안 해 주실 테니 적당히 핑계를 대자.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에요. 이래야만 하는 거죠.’

   <…쯧.>

   

   주신의 사도란 지위가 이럴 때 참 좋다니까. 아무 생각 없이 지껄이는 말에도 무게감이 생기잖아.

   

   <이길 자신은 있느냐?>

   ‘아마도요?’

   <뭐냐! 그 실없는 대답은!>

   

   그야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기본적으로 높은 운 수치에 용사 스킬의 보정까지 붙으면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모니터 너머였다면 아무런 긴장감 없이 딸깍딸깍거렸을 테지만, 여긴 현실이라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올지는 나도 몰라.

   

   ‘뭐 일단 해보자고요. 만약의 경우엔 엎어버리면 돼요.’

   <불안함이 그치질 않는군…>

   

   내기 종목은 블랙잭.

   

   카드의 숫자를 합해 21에 가까운 사람이 이기는 간단한 게임.

   

   카드를 나눠주는 사람은 정직을 신께 맹세한 딜러.

   

   완전 게임 속 그대로네.

   

   기시감이 드는 풍경을 히죽거리며 감상하던 난 주변의 웅성거림을 들으며 수중에 들어온 패를 확인했다.

   

   A랑 10.

   

   어.

   

   그림이랑 A는 11점으로 치니까.

   

   21점이네.

   

   *

   

   쿠르텐 공작의 손이 떨린다.

   

   21.

   

   또 21이다.

   

   루시 알른의 패는 또. 또. 또 21이었다!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어찌 내기를 시작하고서 한 번도 빠짐없이 21이 나올 수가 있단 말이냐!

   

   “설탕공작님. 이제 배려해주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전 이미 충분히 이겼답니다?”

   “…다음.”

   “어라? 설마 진심으로 하고 계신 건 아니죠?”

   “다음 패.”

   “푸흐흫. 그럴 리가 없죠. 공작님이 저 같은 초보도 만날 뽑는 21을 못 뽑는 허접일 리 없으니까요.”

   “다음 패! 빨리!”

   

   알른 영애가 카드를 쥐는 모습은 허술하다. 제발 상대한테 봐달라는 식으로 흔들어대는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초보란 걸 확신할 수 있을 정도다.

   

   실제로 처음 내기가 시작되었을 땐 저 손놀림 때문에 안심을 했었고 중간까지도 초심자의 행운이라 여겼다.

   

   허나 이젠 아니다. 루시 알른은 분명 무언가 수작을 부리고 있다.

   

   “또 이겨버렸네요~ 설탕공작님이 불쌍해서라도 져드리고 싶었는데~ 죄송해서 어쩌죠?”

   

   마음껏 웃어라. 같잖은 수작질로 날 이기려던 자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허나 모두 다 수작을 들키고 무너져내렸다.

   

   “이상하네? 21을 뽑는게 그렇게도 어려우신가요?”

   

   루시 알른. 네 결말도 그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야!

   

   상대의 수작을 잡아내고 말겠단 일념으로 판을 노려보던 쿠르텐 공작은 버릇처럼 다음판을 외쳤지만 딜러는 미묘한 표정으로 고갤 저었다.

   

   “뭔가!”

   “각하. 끝났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 게임이 시작되고서 얼마가 지났다고.”

   “쿠르텐 공작. 당신의 품을 보시지요.”

   

   1왕자의 말을 듣고 느릿하게 고갤 내린 공작은 자신의 품이 텅텅 비었음을 확인하고 입꼬리를 떨었다.

   

   “에? 벌써 끝이야? 이제 좀 뭐하는 건지 알 것 같았는데.”

   

   그를 본 루시 알른이 비아냥과 함께 히죽댄다.

   

   “잘 놀다 가요. 호구공작님. 조언드리자면 도박은 더 이상 안 하시는 게 좋겠어요. 너무 허접이신지라.”

   “…잠깐.”

   

   그건 바보도 알 수 있을만큼 뻔한 도발이었지만 몰릴대로 몰린 쿠르텐 공작에겐 그런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한 번만 더 하지.”

   “네에? 또요? 설탕공작님은 재미없어서 싫은데.”

   “그대는 아무것도 걸지 않아도 좋다. 내가 이기면 그대가 사용한 방법만 알려다오. 그거면 족하다.”

   “지면요?”

   “지면?”

   “저랑 설탕공작님은 급이 다르잖아요. 제가 특별히 허접한 공작님과 놀아드리는 건데 공짜로 되겠어요?”

   

   비아냥거리는 게 마음에 안 들어도 공작에게 반박할 방법은 존재치 않았다. 현실이 그랬으니 말이다.

   

   “…무얼 바라지?”

   “글쎄요? 천천히 고민을 해볼게요.”

   “백지로 된 계약서에 서명하라고?”

   “싫으면 안 하셔도 돼요. 저야 좋죠. 퀘퀘한 할아버지 냄새를 견디는 게 고역이었거든요.”

   

   키득거리는 소리를 듣다 이성을 잃어버린 쿠르텐 공작은 악마의 속삭임이란 걸 알면서도 고갤 끄덕였다. 주변의 다른 이들이 만류했음에도 말이다.

   

   “시작하지!”

   

   승부를 거듭하며 경우의 수를 많이 지웠다.

   

   한 번. 이번 한 번의 승부면 충분해!

   

   그럼 이 건방진 꼬맹이의 수작질을 밝혀낼 수 있어!

   

   “어라아? 반드시 이긴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이상하네? 내가 뭘 잘못 들은 건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쿠르텐 공작은 처참히 발악한 끝에 또 다시 패배했다. 

   

   “푸하핳! 정말 허접하셔라~”

   

   그는 이제 눈 앞의 악마가 무얼 요구할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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