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4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곳이로구나.>
할배는 뒷골목에 있는 저택을 보자마자 그리 이야기를 했다.
여기가 좀 흉흉하게 생기긴 했지. 철로 된 정문은 녹슬었고,
집을 지켜야 할 벽은 낡아서 무너질 것만 같고,
그 너머로 보이는 정원에는 시들어서 갈색으로 변한 식물밖에 없는데다 한 가운데의 집은 흉물이나 다름없으니.
…
화면 너머로 볼 때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좀 섬뜩한 것 같네.
“아가씨께서 말한 곳이 이 곳이었군요.”
칼은 저택의 모습을 보고서 반색을 했다.
이 폐가를 보고 어떻게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거지?
기사라는 족속들은 담도 커야 하는 건가?
“학창 시절에 많이 왔었죠.”
‘벌칙으로요?’
“벌칙으로?”
“예. 유령이 나온단 소문이 있어서 자주 사용했죠..”
학생들이 찾아와 소란을 일으킨다는 설정은 그대로 유지되는 모양이네.
오늘도 누군가가 있으려나?
아무도 없는 편이 안을 돌아다니기엔 좋은데.
“저도 이 곳에 자주 들렀지만 정작 유령은 한 번도 본 적 없습니다. 아마 헛소문이었던 거겠죠.”
‘있어요…’
“있어. 유령. 소심한 허접이지만.”
“…네?”
이 저택 옛 주인의 딸이었나?
대충 그런 설정이었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어차피 해를 끼치는 녀석이 아니라 신경 쓸 필요도 없지만.
‘가죠.’
“가자. 허접.”
“아가씨. 잠시만요. 농담이시죠? 아가씨!”
녹슨 정문을 지나서 저택 안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버려진 지 오래인 이 저택에 멀쩡한 것은 없었다.
만약 침입을 하는 데 희열을 느끼는 도둑이 있다면 이런 집은 절대 건드리지 않을 거다.
문이랑 문은 다 박살이 나 있어서 어디로든 들어갈 수 있으니까.
저택 안으로 발을 내딛자 바닥의 목재가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냈다.
“히익!”
비명소리에 고갤 돌리자 칼이 얼굴을 창백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뭐야.
얘 설마.
‘칼. 당신…’
“허접. 너 귀신을 무서워하는 거야?”
“아뇨! 기사라는 자가 어찌 삿된 존재를 두려워하겠습니까!”
칼은 내 의문을 부정하듯 크게 소리를 냈지만 정작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는 걸 감추지 못했다.
아니 맨주먹으로 트롤도 때려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녀석이 귀신을 무서워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얘 나중에 귀신으로 가득한 던전 같은 게 나오려면 어쩌려고 이러는 걸까. 그 던전은 진짜 게임의 장르가 달라지는 수준으로 갑툭튀 요소가 한 가득인데.
“진짜입니다! 믿어주십시오!”
‘알겠어요…’
“알겠어. 허접.”
여기서 따져봐야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그냥 내버려 둘게.
그렇게 무슨 소리가 날 때마다 움찔움찔거리는 칼을 데리고서 지하로 내려왔다.
내가 목적으로 하는 장소는 저택 지하 끝자락에 있는 철문이었다.
모든 것이 낡아서 부서질 것만 같은 저택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존재.
“그 열쇠가 이 문을 여는 열쇠였군요.”
칼은 그 문을 보고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도 꼴에 기사라고 내 앞에 서 있기는 하지만 손이 떨리는 것으로 보아 잔뜩 겁을 먹은 듯 했다.
하아. 이래서야 저 아래의 던전을 제대로 공략할 수나 있으려나.
열쇠를 꺼내어 문을 열려던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원래 게임일 때는 이 문을 부술 수 없었으니까 당연히 열쇠로 열어야 했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나?
이런 철문 정도는 나도 메이스로 때려 부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어서 메이스를 치켜 든 다음 그걸로 철문을 내리 찍었다.
콰앙!
꽤 힘을 실어서 철문을 내리 찍었음에도 철문에는 아무런 상처도 나지 않은 채였다.
“아가씨. 이 문은 무슨 수를 써도 부서지지 않습니다.”
<가끔 이런 것들이 있지. 이런 물건은 조건을 달성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으니 아무리 때려봐야 헛수고 일게다.>
그런 내 행동을 보자마자 칼은 이걸 부술 수 없다 단언했고, 할배는 이런 물건들이 종종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니까 뭐야.
이런 문 같은 건 게임에서처럼 퀘스트를 받은 게 아니라면 움직이지 않는단 이야기야?
으으. 만약 내가 직접 문을 부술 수 있었다면 앞으로 여러 꼼수를 부릴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아쉽다 생각을 하면서 철문을 열쇠로 열었다.
그러자 지하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빛 하나 없어서 무작정 앞으로 가면 굴러 떨어지기 딱 좋은 모습.
예전 같았으면 횃불이라도 구해왔겠지만 지금의 나에겐 다른 방법이 있다.
‘신성한 빛이시여.’
속으로 기도문을 외우자 내 앞에 적당한 밝기의 구체가 생겨났다.
<이제는 잘 다루는 구나.>
‘제가 언제 이 마법을 못 다룬 적이 있었나요?’
<너무 커다란 구체를 만들어내 섬광을 터트렸던 건 잊었느냐?>
눈을 부여잡은 채 바닥을 구르던 모습이 선하다며 웃는 할배의 말을 애써 무시하며 발을 움직였다.
할배. 노친네면 노친네답게 최근의 일은 빠르게 잊으라고요.
왜 나이도 많으면서 기억력이 이렇게 좋은 거야?
“이제 이 아래에서 그 여학생이 찾아달란 물건만 찾으면 되는 거지요? 빠르게 찾고.”
‘그거 신경 쓰지 마요.’
“허접. 넌 한치 앞 밖에 못 보는 구나?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예? 그렇지만.”
‘그거 핑계에 불과하거든요.’
“그 들러리 영애가 핑계를 댄 것 뿐이니까.”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하자면 길지만 물건을 찾아달란 건 여학생이 유저를 여기로 보내기 위한 거짓말에 불과하다.
진짜 목적은 다른 곳에 있다.
나는 칼에게 대충 대답을 하면서 지하 2층 안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나서 맨 안 쪽에 있는 문을 여니 그 안에 있던 돌로 된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던전의 입구이지 않습니까.”
그건 던전의 입구였다.
– 띠링.
[퀘스트가 변화합니다.]
[여학생의 부탁]
[???]
[보상 : ???]
‘여기를…’
“여기를 공략하게 만드는 게 들러리 영애의 목적이야. 음습한 여자라니까.”
“기이하군요. 던전을 공략하게 할 생각이었다면 아카데미 측이나 교회 측에 신고하는 게 제일 빨랐을 텐데요.”
나는 칼의 의문에 대답을 해줄 수 있었다.
여학생이 사실 초짜 사령술사여서 이 저택의 유령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저택의 유령과 친구가 되었다는 것.
유령이 저택에 있는 던전을 공략해 달라 부탁했다는 것.
그렇지만 아카데미나 교회에 부탁을 하면 던전의 공략됨과 동시에 유령이 퇴치 될 것이기에 고민하고 있었다는 것.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 유령이라는 소리에 칼이 겁을 먹을 게 뻔했기에 그냥 어깨를 으쓱이고 던전의 문을 밀었다.
주변의 풍경이 바뀐다.
그 곳은 음산한 공동묘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먹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에는 별빛 하나조차 내려오지 않았고 그 빛을 대신하여 비가 하늘에서 떨어지며 추적거리는 소리를 냈다.
비에 젖은 흙무덤에선 불쾌한 향기가 올라왔다.
게임에선 별 신경 안 썼는데 현실이 되니까 여러모로 거슬리는 곳이네.
머리가 떡이 되기 전에 해결하고 돌아가든가 해야지 원.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신성으로 된 방패를 만들어 냈다.
“음산한 저택에서 빠져나왔다 싶었더니 공동묘지인 겁니까.”
칼은 던전의 모습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마요. 칼…’
“허접. 걱정하지마. 여긴 귀신은 안 나오거든.”
귀신은. 말야.
내가 말을 꺼내기 무섭게 무덤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를 따라 시선을 옮기자 B급 좀비영화 마냥 시체가 무덤을 파헤치고서 몸을 일으켰다.
좀비.
이 던전의 주요 몬스터.
보나마나 허접 기사는 저걸 보고 겁을 먹겠지.
비명소리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는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무덤에서 일어난 좀비의 목이 허공을 날았다.
“언데드입니까? 다행이군요.”
‘뭐에요…’
“뭐야. 허접. 너 이런 걸 무서워 하는 거 아니었어?”
“제가 싫어하는 건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지. 저런 약해빠진 몬스터가 아닙니다.”
결국 둘 다 똑같은 언데드 아닌가 싶었지만 칼이 받아들이기에는 무언가 다른 모양이네.
그나마 다행이다.
혹시나 아그라가 개짓거리를 할까봐 데려온 건데 언데드가 무서워서 굳어있으면 곤란하니까.
<결국 이 녀석 귀신이 무섭단 걸 인정한 것 아니더냐?>
‘할아버지. 이럴 땐 모르는 척 넘어가주는 거에요.’
그래도 꼴에 기사인데 쫄보 취급을 받으면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겠어요?
관대하게 넘어가주는 게 주인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칼…’
“허접. 저런 쓰레기들 상대할 필요 없어. 가자.”
“예? 마물이지 않습니까.”
‘시키는 대로 하세요!’
“개면 개답게 주인 뒤나 졸졸 따라와. 알겠어?”
괜히 저거 건드렸다가 레벨업 되면 일이 귀찮아진단 말야.
내가 그리 이야기를 하자 칼은 떨떠름한 기색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칼의 동의를 구한 난 그를 데리고서 앞으로 뛰었다.
어차피 저 좀비들은 속도가 더럽게 느리다.
체력이나 힘 같은 건 좋지만 그 뿐. 빠르게 달리면 쫓아오지 못하지.
그래서 이 던전을 공략할 땐 좀비들의 존재는 무시하고서 무작정 앞으로 달리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얼마나 공동묘지를 달렸을까.
저 멀리에 공동묘지의 끝이 보였다.
반으로 쪼개진 십자가 아래에서 구덩이를 파던 자는 우리가 다가오는 것을 보더니 삽을 내려 놓고는 고개를 들었다.
“반갑습니다. 손님 여러분. 제 식구들의 환영인사는 만족스러우셨는지요?”
이 던전의 보스인 사령술사는 비를 먹어 축 늘어진 코트를 휘날리며 과장되게 인사를 건넸다.
“아가씨. 저 놈이 이 던전의 주인입니까?”
‘맞아요.’
“그래. 정신에 하자가 있어 보이는 게 이 던전과 어울리지 않아?”
“어이쿠. 칭찬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사령술사는 내 비난에도 불구하고 킬킬거리는 소리를 내며 손을 움직였다.
그 때였다.
칼이 발을 내딛었다.
상대가 수작을 부리기 전에 쓰러트려야 한다는 전투논리가 만들어 낸 돌격.
사령술사는 그에 조금도 반응하지 못했다.
칼이 내리친 검이 사령술사의 코트를 가른다.
“이야! 강하시네요!”
허나 칼의 공격에도 사령술사는 멀쩡했다.
마법으로 방어를 한 건 아니었다.
회피를 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코트의 아래에 베어낼 것이 없었을 뿐.
“하지만 안타깝습니다! 저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존재라서요.”
가죽으로 된 코트가 베어 흩날리자 그 아래에 감추어져 있던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령술사가 지닌 몸은 반투명했다.
공포영화에 나오는 유령처럼.
“그런 공격으론 저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답니다.”
이 던전의 주인은 사령술사이자 스스로가 사령인 존재.
저 자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공격이 아닌 다른 것이 필요했다.
저 녀석에게 데미지를 입히기 위해선 최소한 레벨 30이상의 성직자나 마법사를 데려와야 한다.
정석적인 방법으로는 게임 초반에 쓰러트릴 수 없는 보스라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여기엔 한 가지 꼼수가 있다.
당황해서 미간을 찌푸리는 칼을 지나쳐 메이스를 휘둘렀다.
“헛수고입니다.”
그러자 사령술사는 웃으면서 두 팔을 벌려 메이스를 맞이해 주었다.
그 정도로는 자신에게 피해를 입힐 수 없다는 것처럼.
허나 결과는 달랐다.
“흐읍?!”
메이스가 닿은 순간 사령술사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예상치 못한 고통에 당황한 걸까.
사령술사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더니 여유를 잃은 목소리로 내게 소리쳤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뇌가 썩어서 생각을 못하는 건가?♡ 공격했잖아♡ 찌끄래기 망령♡”
“당신. 당신 따위는 제게 상처를 입힐 수 없어야 한단 말입니다!”
그렇지. 원래라면 그게 정상이지.
근데 있잖아. 고인물한테 정상적인 걸 바라면 안 된다고.
이 허접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