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 건물 옥상에 숨은 채, 유령 고양이가 있는 곳을 내려다보니 계양산 임시 캠프는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즐거운 파티가 있었던 흔적이 이리저리 박살이 나 있어서 마음이 아팠다.
나도 파티 좋아하는데!
넘어진 그릴은 내용물을 토해낸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황금색으로 잘 익은 닭꼬치들이 육즙을 흘리며 흙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파티가 끝난 공터에서 인간도 아니고 오브젝트도 아닌 미묘한 가짜 인간들이 좀비처럼 뛰어다니고 있었다.
박살 난 파티장 옆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숨어있었다.
가스램프를 들고 벽돌 벽에 자연스럽게 기대어 서서 숨어있는 노란 탐정.
커다란 망치를 들고 긴장한 표정을 한 탐정 후배.
둘 다 전과는 뭔가 달라진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으음, 굳이 말로 하자면 반쯤은 오브젝트처럼 변했다고 해야 하나?
하긴 사람을 야구공처럼 날려 보내는 사람이 평범한 사람일 리가 없지.
영화를 보는 감각으로 고양이의 모험을 관람하려고 했는데, 무언가가 내 감각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나에게만 들리는 ‘쾅!’ 소리가 울렸다고 해야 할까?
이 캠프 구석 어딘가에 소름 끼치는 무언가가 갑자기 나타났던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인간에 대한 어마어마한 악의.
저 멀리 캠프 구석과 고양이가 있는 곳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본다.
힝, 고양이의 대모험 계속 보고 싶었는데….
아마 고양이가 위험할 일은 없겠지, 탐정이랑 후배는 유능하니까.
게다가 왓슨도 있고!
탐정 일행을 뒤로하고 소름 끼치는 무언가가 느껴졌던 방향으로 폴짝폴짝 뛰어가기 시작했다.
***
저 옥상 근처에서 본 기억이 있는 글자들이 외눈 안경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회색 사신에게서 봤던 글자들.
우리들을 관찰하던 것으로 보이던 회색 사신은 어디론가 훌쩍 떠나가 버렸다.
세희 연구소에 있어야 할 회색 사신이 여기 나타나다니.
회색 사신이 누명이 자주 씌워지는 오브젝트라는 건 알고 있지만….
사건 현장에 자꾸 나타나니 의심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군.
도대체 왜 여기 나타난 거야?
그래도 인간에게 우호적인 회색 사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한층 수월했을 텐데….
후배 2호를 구해내는 일은 상당히 번거로울 것으로 보였다.
후배 2호가 숨어든 3층 건물은 캠프민들이 빼곡히 둘러싸고 있었다.
환영회에 사람이 많았던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된 것이다.
옥상의 문을 걸어 잠그고 농성하고 있었는데, 오래 버티기는 힘들 것이다.
영화 같은 곳에서 흔히 보이는 좀비들과 달리 캠프민들은 지능이 있으니까 계속 버티는 건 불가능하겠지.
벌써 사다리를 가져오거나, 벽을 타고 오르려고 시도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후배 2호에게 남은 총알도 겨우 3발밖에 없고 말이다.
으음, 답이 없군.
아마 의뢰인과 후배 2호를 빼내려면 저 산처럼 쌓여있는 캠프 주민들을 밖으로 유인해야지 비로소 가능성이 보일 것이다.
다행히 저 주민들에게는 좀비 같은 습성이 있었다.
우리 일행을 발견하면 머리를 쓰기보다는 맹목적으로 쫓아오려고 하는 습성.
만약 그런 습성이 없었다면 잘 조직된 민병대랑 싸우는 셈이 되는데, 거기서 도망치는 건 정말 힘들었겠지.
그랬으면 처음 골목길을 누빌 때 붙잡혔을 것이다.
“자, 이리 와봐.”
간단한 작전 설명.
내가 주의를 끌어서 저 좀비들을 모두 끌고 갈 테니, 후배 1호가 후배 2호와 의뢰인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라는 작전이었다.
이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의외로 저 고양이다.
저 고양이가 안전한 곳으로 잘 안내해주길 바래야지.
작전 설명을 하자, 오브젝트 고양이는 마치 알아들었다는 것처럼 애옹거렸다.
***
선배는 허술한 계획을 읊더니 갑자기 일어나서 공터로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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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짝. 박수를 두 번 쳐서 사람들의 주의를 끌어모았다.
“여러분. 밤도 늦었는데, 슬슬 환영회를 마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배의 말에 캠프민들이 침을 흘리면서 마구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배는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반대쪽으로 뛰어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소란스러움이 가시길 기다렸다가 담벼락 너머를 바라보자, 그 많던 사람들이 모조리 사라진 상태였다.
얼마 전까지 환영회를 한답시고 바비큐를 굽고, 닭꼬치를 먹었던 공터가 완전히 난장판으로 변해있었다.
아무도 없는 3층 건물로 들어가 잠겨있는 옥상 문을 두들겼다.
쿵쿵쿵.
조금 기다리자, 얼굴이 하얗게 질린 혜진이가 정신을 잃은 의뢰인을 품에 안은 채 문을 열어줬다.
양손으로 꼭 쥔 리볼버가 벌벌 떨렸고, 아직도 혼란스러워 보였다.
“도대체,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다들 친절했는데?”
“그래그래, 다 괜찮아. 문제없어.”
나는 그저 꼭 껴안아 주고 토닥여 줄 수밖에 없었다.
달래주기를 몇 분, 혜진이는 겨우 진정해서 대화를 할 만한 상태가 되었다.
우선은 의뢰인은 왜 기절했는지, 그리고 갑자기 총을 써야 하는 상황이 온 이유를 물어봐야겠지.
“의뢰인은 옥상에서 갑자기 정신을 잃었어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면 왜 공격당한 건지는 모르겠어?”
“그것도 전혀 모르겠어요. 분명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혜진은 지금, 이 상황 자체가 이해가 잘 안되는 것 같았다.
“선배랑 나도 돌아다니다보니 이상한 걸 봤어. 어린애들이 강아지를 생으로 뜯어먹더라고. 그걸 보고 ‘아 빨리 돌아가야겠다!’ 했는데 총성이 들리더니 캠프 사람들이 눈 뒤집어져서 공격해오고 난리였지.”
“혹시, 여기 닭꼬치라고 주던 거 개고기는 아니겠죠?”
“에이, 설마….”
의뢰인을 옮기기 위해서 천으로 고정하던 중, 혜진이 굉장히 불길한 소리를 했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개고기면 맛이 다를 테니까.
“그러고 보니, 여기 사람들은 ‘관광객’에 집착하는 것 같더라.”
“관광객이요?”
“만나는 사람마다 관광객인지, 누구랑 같이 왔는지 꼬치꼬치 캐묻더라고.”
“저도 그거 관련 이야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한데, 그래서 공격받은 걸까요? 관광객이 아닌 것 같아서?”
“글쎄 그걸 누가 어떻게 알겠어. 여기가 이상하다는 게 확실해졌으니, 어서 의뢰를 해결해야지.”
나는 의뢰인을 등에 업고 담벼락에 앉아서 하품하는 고양이를 불렀다.
“고양아! 이제 안전한 곳으로 안내해 줘.”
애옹!
자신만만한 표정의 고양이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우리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
후우.
낯선 거리를 전력 질주를 하면서 거친 숨을 내뱉었다.
지칠 줄 모르는 좀비 떼에게서 도망치려니, 도저히 숨을 고를 시간이 없었다.
벽돌 벽을 뛰어넘고, 좁은 골목을 빙빙 돌고, 쓰레기통이나 같은 구조물을 넘어트리면서 도망쳤지만 좀처럼 좀비들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아 죽겠네, 이렇게 너무 몸만 쓰는 건 취향이 아닌데….
지금도 손에 들린 채 흔들리는 가스램프.
왓슨에게 몸을 숨겨달라고 하면 바로 해결될 일이지만, 조금 더 버텨보기로 했다.
왓슨에게 3번까지 부탁하는 건 괜찮은 걸 알고 있어도, 여전히 왓슨은 꺼림칙하니 말이다.
건물 옥상에서 옥상으로 도망가던 중, 시야 끝에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저게 뭐지?
늦은 밤, 검은색 옷차림.
눈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드문드문 드러나는 숫자만 봐도 상당히 많은 자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마치 닌자처럼 온몸을 검은 천으로 꽁꽁 싸맨 자들이었다.
일사불란한 움직임.
평범하지 않은 복장.
한국에서 저런 복장을 하는 단체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캠프로 스며 들어와서 캠프 주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어둠 속에 스며들어서 맹목적으로.
덕분에 나를 추격하는 캠프민의 숫자가 현격히 줄어들고 있었지만, 순수하게 기뻐하기에는 저 흑의인들이 너무 수상하게 생겼다.
상황이 변했으니, 후배들이랑 빨리 합류하는 편이 좋아 보였다.
나는 왓슨을 들어 올리고 말했다.
“왓슨, 내 모습을 감춰줘.”
“왓슨, 내 모습을 감춰줘.”
“왓슨, 내 모습을 감춰줘.”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퍼져나온 연기는 내 몸을 투명하게 만들었다.
빨리 돌아가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어.
***
컨테이너 하우스 근처에서 주변을 보자, 마치 성벽처럼 그 주변을 빼곡하게 가려주는 건축 자재들의 성벽이 보였다.
밖에서 볼 때는 건축자재를 잔뜩 쌓아서 보관해 둔 무더기.
안에는 꽤 넓은 공간과 작은 컨테이너 하우스.
고양이가 찾아준 이곳은 그야말로 완벽하게 숨겨진 장소였다.
혜진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 찾아올 수나 있을까요? 아예 시야도 안 닿는 곳인 데다가, 엄청 후미진 곳인데….”
“선배는 무조건 찾아오니까 걱정하지 마. 솔직히 선배가 가지고 다니는 오브젝트보다 더 오브젝트 같은 게 선배의 감이야. 게다가 정 못 찾겠으면 핸드폰으로 연락하겠지. 안 그래?”
선배는 이런 길 찾기는 엄청나게 잘하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혜진도 조금 지나면 선배의 기행에 익숙해지겠지.
걱정을 뒤로 하고 컨테이너 안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으니, 신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으윽.”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의뢰인 ‘수아’가 깨어났다.
혜진이 깨어난 의뢰인에게 후다닥 다가가서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정신이 좀 들어요?”
“아, 제가 쓰러졌었나 보네요? 죄송합니다.”
의뢰인은 아직도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지 휘청거렸다.
하기야, 한 달 정도 밖에 나갔다 왔더니 알고 지냈던 사람이 죄다 좀비 비슷한 것으로 바뀌어 버렸다면 충격을 받을 만도 하지.
정신을 차린 의뢰인, 수아는 굉장히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런데. 이상한 질문 같기는 한데요.”
“질문을 하나 해도 될까요?”
“기억이 잘 안 나서 그러는데.”
“제 이름이 뭐였죠?”
의뢰인이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