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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6

모험과 낭만이 가득한 세계, 실리아.

검 한 자루를 허리에 찬 채 모험을 나서고, 지팡이에서 나오는 화려한 마법으로 강한 몬스터와 맞서 싸운다.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엘프가 있는가 하면 용광로의 열기를 벗 삼아 쇠를 두들기는 드워프도 있다.

그야말로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이세계.

그러나.

실리아라는 세계는 플레이어들의 생각처럼 낭만만이 가득한 세계는 아니었다.

눈을 마주쳤다 하면 싸우기 바쁜 종족들.

언제 어디서 마주칠지 모르는 몬스터의 위협.

검을 차고 떠도는 떠돌이들의 패악질 등.

아르디나 대륙의 역사는 언제나 피와 비명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중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실리아 사람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답할 것이다.

두 차례에 걸쳐 발발한 종족 전쟁이라고.

1차 종족 전쟁은 2차에 비하면 기간 자체는 짧았지만, 모든 종족이 서로를 적대하며 싸웠기 때문에 피해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반면 2차 종족 전쟁은 그와 반대였다.

싸운 것은 마족과 인간뿐.

나머지 종족들이 인간의 편을 들어 지원을 해주긴 했으나 전투에 참여한 것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그러나 50년이 넘게 이어진 탓에 모든 종족이 전쟁에 끼어들었던 1차 종족 전쟁보다 더 많은 수의 생명을 앗아갔다.

피해자의 수를 직접 집계한 사람이 없어서 알 방도는 없지만, 결코 적은 수는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리고, 두 차례의 종족 전쟁이 발발한 원인은 모두 같았다.

마족.

두 차례의 비극은 그들이 락시아에서 아르디나 대륙에 건너오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이어지던 전쟁은, 세데스 성국의 중재로 간신히 합의점을 찾아 끝이 났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마련된 회담장에서, 인족의 누군가가 마족에게 물었다.

‘왜 굳이 아르디나에 넘어와서 이런 혼란을 만든 것인가.’

그에 대한 마족의 대답은 간단했다.

‘살기 위해서.’

마족들은 살기 위해서 락시아에서 아르디나로 건너왔고.

아르디나 대륙의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그들을 막았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수많은 삶을 피폐하게 만든 참혹한 전쟁의 시작은.

단지, 그뿐인 이야기였다.

* * *

성국 다음으로 정한 행선지가 마족들의 본거지인 마대륙 락시아라니.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기분이 묘하네.

“…마왕 모가지라도 따러 가는 거야? 카나는 사실 용사님이었던 거야…?”

다은도 나와 비슷한 감상을 느꼈는지 실없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실리아에도 용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있다.

락시아에 간다고 했을 뿐인데 마왕 모가지를 따러 가는 거냐는 말부터 튀어나온 걸 보면 다은이 생각하는 용사의 이미지와 사뭇 다르겠지만, 뭐가 됐든 나와 어울리지 않는 직함이라는 점은 확실했다.

“멀쩡하게 잘살고 있는 사람 모가지를 왜 따.”

“…응? 마족이라면 나쁜 거 아냐?”

“…왜?”

“왜냐니…. 전쟁도 일으키고, 사람도 죽이고…. 듣기로는 무서운 마물도 다룬다고 하던데?”

다은이 손가락을 접어가며 대답했다.

다른 건 다 그렇다 쳐도,

“사람은 나도 죽였는데.”

“앗…. 그, 카나는 전쟁 중이라서 어쩔 수 없었으니까, 응.”

“그 후에도 죽였는데?”

“…내가 잘못했어.”

연이은 반박에 다은이 백기를 들었다.

어차피 장난이라서 마음이 상한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그녀의 항복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뭐, 사실 다은이 생각하는 마족의 이미지가 딱히 특별한 건 아니긴 해.

실제로 실리아인들에게 마족에 대해 묻는다면 백에 구십은 그녀가 말한 것과 비슷한 말을 하지 않을까.

2차 종족 전쟁이 끝난 지 오십 년이 지났다는 말은, 다르게 말하면 오십 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이니까.

전쟁을 직접 겪은 사람들도 아직 살아있는 마당인데 공포와 혐오 같은 것들이 없어질 리 없지.

그러니까 이런 거다.

전쟁을 겪은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 마족을 좋게 생각하지 않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은 이야기만 듣고 마족에 대해 판단한다.

그나마 사실에 가까웠던 정보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점점 부풀려지고 왜곡돼서, 근거 없는 낭설로 변해버린다.

사람을 잡아먹는 걸 즐긴다느니, 세계 정복을 노리고 있다느니, 같은.

그리고 또 그런 낭설을 믿는 사람들이 생기고….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아니었어?”

“…후우.”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처럼.

가리드… 나의 아빠도 마족들을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보통 사람들처럼 낭설을 믿고 편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지.

그가 마족을 싫어한 것은, 그냥 살아온 시대가 시대라서 좋아할 수 없었던 것뿐이다.

아무튼 그런 아빠 덕분에 나도 제대로 된 지식을 가질 수 있었다.

더불어 왜 그런 낭설이 생겼는지도.

“어렵네….”

알고 있던 것들이 모조리 박살 난 다은이 알 듯 말 듯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마족들은 사실 착했다는 거야?”

“아니. 아르디나 대륙 사람들 입장에서는 나쁜 게 맞긴 하지. 이유가 있다지만 대륙을 침공해 온 건 사실이니까.”

“이유?”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유가 뭔데?”

“살기 위해서.”

나도 마족이 굳이 바다를 건너면서까지 대륙을 침공한 자세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

에델을 만나 대화하기 전까지는.

에델에게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듣고 나니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는 되더라.

아르디나 대륙의 생명체는 ‘마나’라는 미지의 힘을 다룬다.

반면, 마족들은 ‘마기’라는 미지의 힘을 다룬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사는 곳은 언제나 마기로 가득했고, 마기에 저항이 없으면 그들에게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도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다.

마기는 마족이 아닌 다른 생명체에게 독과 다름없었기 때문에.

아르디나 사람들이 그들의 이주를 필사적으로 막은 것도 그런 이유였다.

단순히 머물고 있기만 해도 그 정도인데, 그들의 고향인 마대륙 락시아가 얼마나 짙은 마기로 가득 차 있을지는 두말하면 잔소리겠지.

아이러니하게도, 마족들이 아르디나 대륙에 건너온 것은 락시아를 잠식한 마기 때문이었다.

“엥, 마기가 많으면 좋은 거 아니야? 마족들은 마기를 다룬다며?”

“마나….”

마나도 너무 많으면 살 수 없잖아… 라고 말하려던 나는 말을 삼켰다.

지구인인 다은이 이렇게 말해봤자 이해할 수 있을 리 없겠지.

“…사람이 살기 위해선 물이 필요해.”

“응.”

“근데, 물이 너무 많으면 못 살아.”

“…아하?”

마기가 너무 짙어져서 살 수 없게 된 마족들은 락시아를 떠나 아르디나 대륙에 정착했다.

완벽하게 들어맞는 설명은 아니지만 이 정도만 해도 대충 맥락을 이해하는 덴 문제 없겠지.

설명을 들은 다은이 뭔가 알 것 같다는 얼굴을 했다.

그러더니 뭔가 곱씹는 것처럼 생각에 잠겼다.

“근데… 마족들이 못 버텨서 도망칠 정도면 카나는 몰라도 나는 못 버티는 거 아니야?”

“…아마도?”

“그러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카나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겠네! 조심해서 갔다 와, 카나. …노, 농담이야!”

“…농담?”

“으, 응! 농담이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말아 줘. 내가 쓰레기가 된 것 같잖아…!”

“…그런 농담, 하나도 재미없어.”

“죄송합니다아….”

다은의 옷자락을 잡은 손에서 힘을 풀자 다은이 음울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나는 쓰레기야… 분리수거도 안 되는 쓰레기….”

“이제 그런 농담 안 할 거야?”

“안 하겠소! 다시는 안 하겠소…!”

“응. 그럼 됐어.”

“카나야아…! 도대체 나는 이렇게 착한 아이한테 무슨 짓을…!”

와락!

“…에휴.”

다은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려다가 그녀의 몸에 가로막혀 한숨을 내쉬었다.

“대비책은 마련해 뒀으니까 걱정하지 마.”

사도들의 몸이 경지에 비해 튼튼한 것은 맞지만, 다은의 수준으로는 아직 마대륙의 마기에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에델에 말에 의하면 마대륙 최심부의 마기는 나조차 버티기 힘들 거라고 했으니 분명히.

내 말을 들은 다은이 머리를 갸웃할 때였다.

“대비책?”

똑똑.

“들어가도 될까요?”


“어라, 셀린?”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

그 후에 들려오는 셀린의 목소리에 다은이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문을 열어주었다.

“아, 좋은 아침이에요. 두 분 모두 안녕히 주무셨나요?”


“덕분에요. 셀린도 잘 잤어요?”


“후후, 네.”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아직 아침 먹을 시간은 아닌 거 같은데.”

“어라, 아직 못 들으셨나요?”


“…네? 못 들었냐니….”

다은이 다시금 머리를 갸웃거렸다.

“에델 님께서 두 분과 동행하라고 말씀하셨어요. 물론 저니 님이 싫다고 하시면 어쩔 수 없지만….”

싫으신가요?

셀린이 다소 우울한 목소리로 말하자 다은이 황급히 손을 흔들었다.

“아, 아뇨! 싫기는요! 단지 조금 갑작스러워서….”


“후후, 다행이네요. 저니 님이 저를 싫어하는 줄 알고 상심할 뻔했어요.”


“셀린을 싫어할 리 없잖아요.”

셀린과 대화하던 다은이 허리를 숙였다.

“카나. 혹시 대비책이라는 게….”

“응. 셀린이야.”

“그렇구나…. 아니, 잠깐만!”

다은이 내 어깨를 턱 잡았다.

얼핏 힘을 준 것 같으면서도 아프지 않게 어깨를 잡은 채로 그녀가 내게 물음을 던졌다.

“셀린이 에델 신이 자기보고 우리들과 동행하라고 말했다는데, 혹시 카나도….”

그러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

“…에델 신이랑 대화한 거야?”

“응.”

“…정말로?”

“응.”

“기도실에서? 단둘이서?”

“응.”

딱히 숨길 일도 아니라서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중요한 건 대화의 내용이지.

혹시나 해서 물어봤더니 에델도 숨길 필요 없다고 말했고.

심지어 에델이 교단의 고위직들에게 나와 대화했다는 사실을 알린 데다가, 편의를 봐주라고 한 탓에 원치 않게 유명 인사로 급부상했다.

수십 년 만에 내려온 신탁이 편의를 봐주라는 내용이었으니 난리가 안 날 수가 있나.

그런 말을 할 거였으면 성국에 도착했을 때부터 좀 하지.

그랬다면 수녀 행세 같은 걸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설마 일부러 그런 건 아니겠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에델이 보인 모습들을 떠올리면 의심이 들었다.

“내가 이상한 건가? 신과 단독으로 대화했다는 게 이렇게 담담하게 얘기할 만한 내용이야?”

다은이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로 중얼거렸다.

슬쩍 손을 흔들어 봤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반쯤 풀린 상태 그대로였다.

놀랄 만한 말이긴 하지만, 저렇게까지 놀랄 만한 일인가?

실리아 사람들이 당황하는 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 에델이란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모를 우상이 아닌, 실존하는 신인 동시에 만물의 어머니나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다른 세계에서 온 다은이 그들만큼 에델의 존재감을 느낄 리 없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구태여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다은을 지켜보았다.

솔직히, 허둥대는 걸 보는 게 꽤 재밌었거든.


           


I Became a Raid Boss

I Became a Raid Boss

레이드 보스가 되었다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One day, when I came to my senses, I found myself reincarnated in another world. After enduring a rough life post-reincarnation, I thought I could finally settle down, quietly tending to a flower garden in the mountains… …But something feels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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