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언덕 위에 위치한 관리사무소 건물에서 내려다본 임시 캠프의 전경은 확실히 색다른 분위기였다.
별빛마저 구름 너머로 사라진 밤하늘이 캠프를 어둡게 짓누르며 밤의 어두움과 고요함을 증폭시켰다.
캠프 내에 띄엄띄엄 보이는 가로등이 어둠을 뚫고 나와 땅 위를 맴도는 듯한 희미한 노란색의 빛의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그 빛의 웅덩이는 관리가 되지 않아 페인트가 벗겨지고 작고 허름한 건물들과 마치 정맥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캠프의 골목길을 비춰주고 있었다.
그리고 캠프에서 가장 이질적인 골목의 어둠 속에서 돌아다니는 흑의인의 모습도 간간이 비춰줬다.
“큰일 났군.”
캠프 안에서 돌아다니는 주민들이 저 ‘닌자’ 비슷한 괴한들에게 죄다 죽어 나가는 것은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후배들이 숨은 위치를 모르겠어. 게다가 핸드폰까지 먹통이군.”
가장 큰 문제는 후배들과 합류 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닌자들이 나타난 뒤로 핸드폰까지 먹통이 돼 버렸다.
후배들이 많이 기다릴 텐데.
발길이 닿은 곳은 바로 이 관리사무소.
내가 여기서 뭔가를 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여기서 조금 시간을 보내야 할 필요가 있는 걸까?
여기서 내려다보니, 죽어 나자빠진 캠프 주민들의 시체가 잔뜩 보였다.
캠프 주민들을 좀비 취급을 하고 있었지만, 지금 보니 확실히 좀비는 아니었다.
좀비처럼 맹목적으로 움직이던 캠프 주민들은 의외로 인간처럼 쉽사리 죽어 나갔으니까.
경동맥을 잘려 실혈사하거나, 심장을 찔려 죽거나.
닌자들이 캠프민은 좀비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잘 보여주고 있었다.
아직도 밖은 목적을 알 수 없는 살인 닌자들이 가득했다.
아무리 봐도 지금은 관리사무소 밖으로 나갈 때가 아닌 것 같으니, 좀 더 안을 살펴봐야겠어.
빛을 내지 않도록 조심하며 관리사무소의 깊숙한 내부로 걸어 들어갔다.
뚜벅뚜벅.
바닥을 향하도록 가린 손전등 하나를 의지해서 칠흑처럼 어두운 복도를 걸었다.
발걸음이 닿는 대로 걷고 또 걸어서 도착한 곳은 관리사무소 지하의 어떤 창고 같은 방이었다.
손전등으로 비춰보니 서류 캐비닛이 빽빽하게 들어선 삭막한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방안에는 오래된 종이 냄새와 먼지가 가득했다.
방 안으로 들어가 아무 서랍을 열어서 파일을 꺼내서 보니, 익숙한 얼굴의 아저씨 사진이 보였다.
의뢰인과의 친분을 과시하던 아저씨.
정육점을 한다고 했던가?
서류는 나이나 사는 곳, 가족관계 등 이런 시시콜콜한 것들이 적힌 인명부였다.
인명부를 하나씩 살펴보면서 넘겨보았다.
의뢰인이 거주하던 건물의 집주인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사람이 인명부에 실려있었다.
어떤 사람은 좀비처럼 나를 쫓아왔었고, 어떤 사람은 후배랑 같이 닭꼬치를 먹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곳에 의뢰인은 없었다.
그리고 의뢰인 남동생의 파일도 뭔가 이상했다.
이 서류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단순한 서류 누락이 아니라면.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
우리 의뢰인은 도대체 누구고, 납치당했다는 남동생은 도대체 뭐지?
***
이상해.
“자, 따라 해 보세요. 한 글자씩 또박또박, 수아!”
“수. 아.”
의뢰인이 이상했다.
이름을 알려줘도 잘 납득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캠프 내부의 사람들이 의뢰인의 이름을 헷갈리더니, 이번에는 의뢰인이 자신의 이름을 잊어먹다니?
도대체 무슨 의미인 걸까.
캠프 사람들이 날뛸 때는 놀랐지만, 내심 의뢰인의 말이 사실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거기다 이젠 이름은 사소한 문제가 돼버렸다.
왜냐하면 의뢰인의 키가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제는 확실했다.
의뢰인의 키가 줄어들었다!
눈치가 부족한 망치 선배는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가방에서 ‘포교용 망치’를 꺼내서 휙휙 휘두르고 있었다.
“지금 캠프 상황이 상당히 위험하니까, 이걸 들어보세요! 공구로 쓸 수 있으면서 호신용으로도 완벽한 도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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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
의뢰인의 손에 ‘포교용 망치’를 쥐여주더니 뿌듯한 표정을 짓는 선배.
그리고 어색한 표정으로 망치를 들고 휘둘러보는 의뢰인.
“선배.”
나는 선배에게 다가가서 소곤소곤 작은 목소리로 불러냈다.
“무슨 일이야?”
“선배, 이상하지 않아요?”
“?,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나는 조용히 손을 뻗어 망치를 잡고 이리저리 휘둘러보고 있는 의뢰인을 보며 말했다.
“의뢰인 키요. 키! 키가 이상하지 않아요?”
“어? 그러고 보니 조금 이상하네? 의뢰인 키가 저것보다는 크지 않았었나?”
“165cm 정도였는데, 지금은 150cm 밑으로 떨어졌는데 겨우 그 반응이에요?”
“잠깐만, 조용히 해봐.”
망치 선배는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잘랐다.
선배가 바라보는 곳은 컨테이너 입구.
기묘한 분위기의 남자가 컨테이너 사무실 입구에 서 있었다.
온몸을 검은 천으로 둘둘 감은 남자였다.
***
꺼림칙한 느낌이 들어서 도착한 곳은 텅 비어 있는 시장 거리였다.
사람 하나 없는 길거리에 외롭게 서 있는 가로등이 시장 좌판들에게 그림자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주인이 없이 사방에 놓여있는 가판대들에는 미처 정리하지 못한 상품들이 가득했다.
나는 유령화를 풀고, 근처 좌판에 앉아서 사과 하나를 베어 물었다.
멀리서도 느낄 수 있었던, 악의의 덩어리는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
여기서 꺼림칙한 느낌을 좀 더 추적해야 할지, 아니면 이대로 고양이에게 돌아가야 할지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시장 구석구석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피 냄새.
피 냄새를 엄청나게 풍기는 남자들이었다.
그것도 보통의 피 냄새가 아니라 캠프에 잔뜩 있던 ‘가짜 인간’들의 피 냄새였다.
그런 흑의인들이 시장 곳곳에 나타나서 나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설마 싸움을 걸려는 건가?
“!”
하지만 흑의인들의 행동은 내 예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내 주변으로 둥글게 모여 앉아 절을 한 것이다.
편안하게 앉아서 쉬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불편해졌다.
왜 갑자기 이러는 거야?
거기에 장작도 감정을 잔뜩 빨아들였는데, 이건 호감 같은 종류의 감정이 아니라 숭배 같은 감정이었다.
한 번도 얻어본 적이 없는 감정이었다.
내가 주로 얻는 감정은 사랑이나 호감 같은 긍정적인 감정.
아니면 공포나 혐오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었는데, 갑자기 숭배라니?
갑자기 절을 받는 불편한 상황에 도망가 버릴까? 하는 생각이 3할.
장작에서 느껴지는 색다른 감각에 이대로 조금만 더 있을까? 하는 생각이 7할.
감정이 맛있어서 좀 더 있기로 했다.
호감이나 공포랑 달리, 숭배는 왠지 심장을 간질이는 듯하면서 전능감을 줬다.
왠지 내가 점점 대단해지는 기분!
히히.
***
의뢰인이 수색을 의뢰한 남동생의 인적 사항이 담긴 파일을 품에 넣고, 관리사무소를 나섰다.
언덕을 돌고 돌아, 내려간 뒤에 보게 된 것은 시체로 가득한 광장이었다.
피로 뒤덮여 붉은빛을 발하는 흉흉한 가로등은 광장의 분위기를 한층 공포스럽게 했다.
나름대로 조경이 잘 되어있던 자갈깔린 광장은 피로 얼룩지고 시체가 널브러진 곳이 되어버렸다.
잔뜩 쓰러진 캠프 주민들 사이로 간간이 흑의인의 시체도 보였다.
이 인간 같지 않은 느낌을 풍기는 유사 닌자들의 시체가 있다는 건 좀 신기했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캠프 주민들은 모두 간결한 상처만으로 죽어 있었는데, 이 흑의인들이 얼마나 냉병기를 쓰는 데 전문적인지를 알 수 있었다.
다만, 요즘 시대에 굳이 냉병기? 라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흑의인의 시체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시신의 상태는 처참했다.
과도, 중식칼, 갈퀴 같은 온갖 무기에 잔뜩 찔려서 사망한 것이다.
나는 개중 상태가 괜찮아 보이는 흑의인의 시체를 골라서 분석을 시작했다.
복면을 벗기자 드러난 것은 흉측한 피부였다.
머리카락이나 눈썹은 하나도 없고, 심각한 화상만이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이거 왠지 오브젝트로 만든 흉터 같은데?”
다만 화상의 정도에 비해서 상처가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원래 이렇게 생긴 종족이 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화상자국이었다.
저 정도 화상이면 피부를 모두 들어내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니 오브젝트로 만든 흉터겠지.
이 닌자들이 너무 조용하다고 느꼈었는데, 살펴보니 혀도 없었다.
도대체 이 녀석들은 뭐 하는 집단이야?
전신을 불로 지져서 화상을 만들고, 혀를 뽑아냈다.
화상 상처 위로 정체불명의 문신을 잔뜩 새기고, 요즘 시대에 쓸데없는 냉병기를 사용하는 닌자들.
거기에 목숨을 아끼지 않고 고도의 훈련까지 받은 집단.
이거 무슨 사이비 종교단체라도 되는 건가?
오브젝트가 엮인 종교단체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기야 하지만 굳이 여기에 나타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흑의인의 품 안에서 나온 한 가지 물건이었다.
정성스럽게 포장된, 고급 푸딩.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