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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7

조용하군, 조용해.

피로 물든 자갈이 깔린 광장에 서서, 파이프에 불을 붙이며 바라본 캠프는 기이할 정도의 적막과 고요 속에 잠겨 있었다.

으레 들릴 법한 곤충 소리도, 짐승 소리도 전혀 나지 않는 완벽한 고요.

가끔 골목에서 울리는 바람 소리와 꿈틀거리며 천천히 움직이는 그림자만이 캠프 안에 남은 움직임이었다.

캠프민이 모두 죽었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생기가 넘치고 화기애애했던 캠프는 그 건물을 묘비로 하는 공동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극도로 조용한 캠프는 심장 소리도 숨기기 어려울 만큼 조용했다.

어둠 속에 녹아든 닌자들만 남았다.

지금, 이 광장 구석에도 그림자 속에 숨어서 나를 지켜보는 닌자가 있었다.

캠프 주민만을 집요하게 말살하고 파이프를 태우며 노란 양복을 입고 있는 나를 시선에만 담아두고 무시하는 닌자.

캠프민만을 노린 작전으로 보였는데, 계양산 캠프를 계양산 공동묘지로 만들어 버린 후에도 계속 뭔가를 찾으려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기서 감이 왔다.

저 흑의인들이 찾는 것이 이 캠프의 ‘이변’.

그리고 그 ‘이변’이 의뢰를 해결할 단서가 될 것이다.

그런 강렬한 감을 느꼈다.

탕!

캠프의 적막을 찢어발기듯이, 강렬한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닌자들이 사실 총을 숨기고 있던 게 아니라면 후배 2호에게 넘겨준 리볼버의 총성이겠지.

총성은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서 울렸다.

총소리를 듣고 후배를 찾아가는 나처럼, 닌자들도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했다.

탕! 탕!

연속적으로 들려오는 총소리.

생각보다 위험한 상황인 건가?

내가 준 리볼버는 6발이니까 방금 사격으로 총알은 다 써버렸을 텐데.

총성이 들린 곳에 도착해 보니, 그곳은 건축 자재들이 잔뜩 적재된 곳이었다.

건축 자재들의 벽을 넘어서 들어갈까, 생각하던 중에 커다란 소리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삐이이이이이이이익.

거슬릴 정도로 커다란 호각 소리였다.

그림자 속에 숨어서 꿀렁거리던 닌자들도, 건축 자재의 벽을 넘어가고 있던 닌자들도 일제히 일어서서 어딘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튀어나온 닌자들의 숫자는 상당히 많아서, 내 예상의 배는 되어 보였다.

닌자들은 전부, 북쪽에 있는 어딘가로 향했다.

캠프의 북쪽에는 아마 거대한 지하 수로로 향하는 하수도 입구가 있던 걸로 아는데, 설마 거기에 뭔가 있는 건가?

그런 의문을 가지면서 닌자들이 빠져나간 공터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나를 둘러싼 닌자 중 한 명이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뭘까? 하고 구경하고 있었는데, 예상과는 전혀 다른 물건이었다.

푸딩!

귀엽게 포장된 고급 푸딩이었다.

아니 왜 닌자가 그런 걸 가지고 다니는 거야?

닌자는 마치 종교 의례를 행하는 것처럼 포장을 정성껏 벗겼다.

그 엄숙한 행위는 경건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포장을 벗긴 푸딩을 자신의 양손에 올리더니 바닥에 엎드린 채로 양손 위에 올려서 내게 내밀었다.

마치 왕에게 진상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과연 어떤 맛일까, 궁금함을 느끼며 진상품을 맛봤다.

옴뇸뇸.

와, 맛있어.

세희 연구소에서 먹던 것보다 맛있다.

한국에서는 본 적 없는 포장의 푸딩이었는데,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내가 발을 콩콩 구르며 좋아하고 있자, 닌자들이 모여서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거대한 인간 피라미드!

침대처럼 넓은 옥좌!

닌자들이 자기 몸을 쌓아 올려 만든 거대한 피라미드와 그 위에 얹어진 옥좌였다.

?

그래서 여기 올라가라는 건가? 계단도 없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닌자들이 피라미드에 계단을 만들듯이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 위를 번갈아 밟아가면서 올라가라는 것 같았다.

가장 밑의 닌자가 내민 손바닥 위로, 발을 얹었다.

단단하게 말아쥐어 줘서 그런지 꽤 안정감이 있었다.

히히, 왠지 좀 간지럽기도 하네.

손바닥 위에 발을 얹어서 그런지 좀 간지러워서 괜히 발가락을 꼼지락댔다.

손바닥에서 손바닥으로 발걸음을 옮겨서, 양발로 꾹꾹 눌러가며 옥좌 위에 섰다.

흔들거리거나, 불편할 것 같은데 생각보다 튼튼한 게 느껴졌다.

그럼, 그 위로 점프해서 다이빙!

폴짝폴짝.

내가 그 위에서 뛰어도 닌자로 만든 옥좌는 굳건했다.

폴짝폴짝, 왠지 재밌어서 계속 뛰었다.

옥좌의 양옆으로는 푸딩을 꺼내서 나에게 진상하는 닌자가 한 명.

반대쪽에는 부채를 부쳐주는 닌자가 한 명 나타났다.

오, 완전 왕좌 같아.

옥좌에 등을 기대고 편안하게 누워있으니, 진짜 왕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거대 피라미드 위의 거대 옥좌.

그 위의 나!

편안한 의자에 맛있는 푸딩, 그리고 장작에서 느껴지는 전능감.

이 닌자들, 세희 연구소로 데려갈까?

세희 연구소에 이 닌자들을 가둬두고 심심하면 피라미드를 만들고 놀면 재밌지 않을까?

이런저런 상상하고 있을 때, 갑자기 커다란 호각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사삭.

옥좌와 피라미드를 이루던 닌자들이 밑에서부터 빠져나간다.

닌자들이 공손한 동작으로 푸딩을 하나 진상한 뒤, 절을 하고 하나둘 떠나갔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나는 푸딩을 하나둘 까먹으면서 뒷걸음질로 사라지는 닌자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닌자들은 엄청난 양의 푸딩만을 남긴 채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이거, 언제 다 먹지?

***

닌자처럼 흑의로 온몸을 숨긴 남자.

피 냄새를 잔뜩 풍기는 남자.

그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들고 컨테이너 입구를 막고 서있었다.

그의 검에서 흘러내리는 진홍색 얼룩은 그가 어떤 목적으로 여기를 왔는지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나는 망치를 고쳐 쥐고, 상황을 살폈다.

그르륵.

닌자의 입에서 마치 끓는 듯한 소리를 내더니,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의뢰인.

닌자는 의뢰인을 지목하고 있었다.

“혜진아, 의뢰인을 지켜!”

닌자의 목표는 의뢰인으로 보였다.

좀 이상하긴 해도 의뢰인은 의뢰인이다.

닌자 따위에게 내어줄 수는 없지.

닌자도 싸우게 될 것을 알았는지, 긴장감이 점점 고조되는 것이 느껴졌다.

닌자의 시선은 내 일거수일투족을 자세히 살피고 있었지만, 주로 내가 들고 있는 거대한 망치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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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체중을 옮겼다.

두근두근.

마치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렸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흥분 때문에.

짧은 정적은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함께 깨어졌다.

인간 한계에 도달한 민첩함으로 순식간에 내 코앞에 휘둘러지는 금속의 참격.

침착하게 망치 머리로 막아냈지만, 닌자의 참격은 한두 번으로 멈추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온갖 자세에서 내질러지는 참격은 닌자의 훈련 수준이 달인의 영역인 것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나에게 닿지는 못했다.

닌자가 참격을 휘두르는 것을 노리고 망치를 휘둘렀다.

마치 장전된 대포에서 뻗어나가는 포탄처럼, 내 스윙은 닌자의 칼날을 박살 내고 오른손을 으스러트리고 그 너머의 머리까지 터트렸다.

머리와 오른손을 잃은 시체가 뒤로 넘어갔다.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뒤늦게 핏물이 컨테이너 바닥을 적셨다.

하아하아.

과도하게 도는 아드레날린에 숨이 가빴다.

하지만, 쉬고 있을 틈은 없었다.

또 한 명의 닌자가 건축자재의 성벽을 넘어 침입해 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다시 망치의 그립을 고쳐 잡고는 달려드는 닌자를 맞이했다.

이번에 돌입한 두 번째 닌자는 동료의 시체를 보고는 좀 더 신중하게 움직였다.

고요한 호수처럼 나를 빤히 쳐다보며, 기회를 노리는 것처럼 보였다.

탁탁탁.

발로 계속 바닥을 때리면서 리듬감 있는 소리를 울리는 닌자.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닌자는 갑작스럽게 튀어나와 나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목숨을 도외시한 동귀어진의 한 수로 보였다.

하지만 내 망치 앞에서는 무의미한 발악!

그 칼날째로 뭉개주려고 전력을 다해서 망치를 내리찍었다.

내가 이변을 느낀 것은, 그 스윙을 휘두르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닌자의 뒤편에서 닌자가 한 명 더 튀어나왔다.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두 명째의 닌자가 찔러 들어오는 칼날은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아, 이렇게 죽는 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탕!

선배가 남기고 간 리볼버에서 불꽃을 토했고, 기습하던 닌자는 머리를 관통당해 그대로 쓰러졌다.

“하아, 고마워. 혜진아.”

닌자 두 명을 더 물리친 우리들이었지만, 아직 쉴 수 있는 타이밍은 오지 않았다.

닌자가 두 명, 세 명, 네 명을 넘어서 계속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혜진이에게 남은 리볼버의 탄약은 2발.

다행히 컨테이너 입구는 좁았다.

둘러싸일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거 이길 수는 있는 걸까?

대치 중인 닌자는 5명.

더 많은 수의 닌자가 밖에 있을 수도 있지만, 우선은 눈앞의 일부터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다.

컨테이너 안의 공기가 점점 긴장감으로 가득 찰 때쯤, 소리 없는 신호와 함께 닌자들이 일제히 돌진해 왔다.

다가오는 닌자를 향해 망치를 휘두르려고 했지만, 닌자들은 더 이상 내게 망치를 휘두를 틈을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기묘한 각도로 찔러 들어오는 검격이 언제나 최소 2개.

반격하기는커녕, 그 참격들을 막거나 피하기 급급했다.

점점 구석으로 몰렸다.

혜진이와 내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이 정도 거리면 닌자들이 의뢰인을 직접 노릴 수 있을 텐데….

위험해.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탕! 탕!

두 발의 총성이 추가로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 총알들은 허무하게 빗나가버렸다.

리볼버의 존재를 인식한 닌자들이 일부러 쏘도록 유도한 것이다.

삐이이이익.

이젠 끝이야! 라고 생각할 때 커다란 호각 소리가 울려 퍼졌다.

호각 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닌자들은 나와의 거리를 벌리고, 천천히 뒤로 물러서며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기기 시작했다.

길게 울리던 호각 소리가 잦아들자, 대치 중이던 닌자들은 이미 그림자 너머로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하아, 살았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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