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70
발로 걷어차 기사를 날린 난 힘껏 여유로운 체를 했지만 속은 전혀 여유롭지 못했다.
진짜 좆 될 뻔했네!
조금만 더 늦었으면 비시 목이 날아가는 상황이었잖아!
아직 얘한테 주기로 한 것도 못 줬는데 그렇게 되면 곤란하다고!
내가 나쁜 년이 된단 말야!
이게 다 얼빵이 때문이야!
걔가 순간이동만 제대로 된 곳으로 했어도 이만큼 다급하진 않았을 텐데에에!
아드리에게 도와달란 부탁을 받았을 때 난 던전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이제 저 안의 던전을 어떻게 강간할지 고민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갑작스레 도와달란 외침이 들려왔지.
다른 사람을 보내기엔 적합한 사람이 주변에 없고!
그렇다고 친구들과 다 함께 움직이자니 던전에서 무슨 개판이 날지 모르고!
심지어 이번에 구원해야 하는 상대가 사령술사라 어중간한 사람을 보냈다간 개판이 날 게 뻔했어!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페이비가 내 어깨를 붙잡더라.
‘영애님. 이 곳은 저희가 해결하겠습니다.’
이미 이 던전에 대한 이야기는 머리에 새겨 뒀다.
자기들끼리도 알아서 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가 찾아오더라도 던전 바깥으로 흘러나올 괴물쯤은 상대하는 게 가능하다.
그러니 내가 직접 가라.
‘조이가 당신을 순간이동 마법으로 보내줄 겁니다. 다녀오세요. 당신이 돌아오기 전에 모든 걸 끝내두겠습니다.’
‘야. 너네들이…’
‘믿어주세요. 저희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꽤 강하답니다.’
그렇게 떠밀리다시피 여기에 온 것까진 좋았는데 설마 얼빵이가 또 실수를 저지를 줄은!
좌표 좀 제대로 고정하는 게 그렇게 어렵냐!?
예전에 와봤던 곳이 아니라 저 멀리에 던져버리는 이유가 뭔데!
차라리 지난 번처럼 하늘 위로 이동시켜주던가!
그럼 그냥 강하하면서 상대를 때려 부수면 그만이잖아!
아아악! 진짜 절대 용서 못 해. 돌아가면 얼빵이부터 괴롭혀줄 거야.
“사도시여. 왜 저희를 막으시나이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성기사의 말에 코웃음을 쳐줬다.
“쿱♡ 멍청한 소리 하네♡ 쓰레기를 괴롭히는 데 이유가 필요해?♡”
“그 자는 사령술사입니다. 지상에 존재해선 안 될 존재란 말입니다.”
“그러는 넌?♡ 시체박이 주제에 누굴 평가하는 거야?♡”
“…예? 전 결코 그런 것이!”
“부끄러워?♡ 그럼 방구석에 곤히 처박아 놨어야지♡ 애인들을 이렇게 자랑하면 역겹잖아♡”
메이스를 빙빙 돌리면서 아드리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녀는 다급히 비시를 데리고서 뒤로 물러났다.
눈치가 좋아서 다행이네. 저 녀석이 옆에 있으면 신성을 마구잡이로 끌어올릴 수 없으니까.
“너처럼 역겨운 쓰레기보단 친구가 없어서 유령한테 달라붙은 찐따가 낫지♡”
애초에 말야. 죽은 이의 혼을 부린다는 게 마냥 나쁜 것도 아니잖아.
음험하게 묘사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 잘 따지고 보면 긍정적인 면이 없진 않거든.
주신의 위용을 되찾겠답시고 악신을 부활시키려는 미치광이와는 비교하는 게 실례다.
“거기 패배자들♡ 나 노려보지 말아 줄래?♡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다 버리고 살아나선 또 쳐발리는 병신들이랑은 눈도 마주치기 싫단 말야♡”
말이 이어짐에 따라 그들의 표정이 험악해지는 게 훤히 보였다.
“아아~♡ 패배에 중독된 거구나?♡ 이번에는 귀여운 여자애한테 져보고 싶어?♡ 푸핳♡ 너네한테서 나는 시체냄새만큼이나 역하네♡”
뒤는 생각도 하지 않고 무작정 내게 달려들려는 이들을 기사가 제지한다.
이성으로 설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으니 무언가 제어할 방법을 지니고 있는 거겠지.
“안 덤벼?♡ 이런 꼬마애한테 쫀 거야?♡ 키히힣♡ 허~접이네♡”
“전 오롯이 사령술사를 제거하기 위해 이 곳에 온 것입니다. 사도께 검을 들이밀 생각은.”
“흐응~♡ 근데 왜 눈빛이 그렇게 징그러울까?♡ 내 배꼽이 그렇게 신경 쓰여?♡”
“그렇게 말씀하신다 한들 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렇겠지♡ 시체가 아니면 흥분 못 하는 거잖아♡”
무기를 다잡으며 요정들을 주변으로 흩뿌린다.
이걸 놀이 정도로 생각하는 듯 요정들의 입가에는 웃음이 새겨져 있었다.
“혹시 미치광이를 따라온 게 그 이유야?♡ 나중에 내 시체를 가져가려고?♡ 우와아~♡ 진짜 기분 나빠♡”
“…전.”
“여태 몰래몰래 시체에 박았던 거지?♡ 고추가 제대로 남아있긴 해?♡ 썩어 문드러져서 형체도 없을 것 같은데에♡ 아!♡ 애초에 썩을 것도 없었던 거구나♡”
“…”
“그럴 것처럼 생기긴 했네♡ 하긴♡ 자신감이 넘쳤으면 시체에 성욕을 느낄 리가 없지♡ 음음♡”
기사가 선두에. 그리고 여러 시체들이 그 뒤를 따라 내게 달려든다.
잘 정돈된 연계는 없다.
최소한의 규합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감정을 따라 무작정 내게 달려들 뿐이다.
저런 다수는 전~혀 무섭지 않다.
내 눈에 비치는 저들은 그저 발정나서 여자애를 덮치고 싶어 하는 짐승들일 뿐이다.
오른 쪽으로 한 걸음.
검이 허공을 가른다.
그 후 뒤로 한 걸음.
날 붙잡으려던 손이 헛치고 뒤이어서 내질러진 창이 그 손을 꿰뚫는다.
한 걸음 앞으로 내딛으며 메이스로 머리를 깨버린 후 창을 붙잡아 당긴다.
그러자 창을 쥐고 있던 이가 내 방패가 되어 화살을 맞아줬다.
“풉♡ 그렇게 귀여움 받고 싶었어?♡”
“개년이이이…!”
인간방패를 내던지는 걸로 궁수를 견제한 후 뒤로 한 걸음.
재차 내 앞을 검이 가르고 지나간다.
덤으로 내 옆을 노리던 시체의 얼굴도.
“에에~♡ 자위도구를 그렇게 거칠게 다뤄도 돼?♡”
거칠어지는 적들의 숨소리.
주변을 무시한 채 나만을 바라보는 시선들.
분노가 잔뜩 서린 목소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도 하지 못하는 허접들의 헛짓거리는 참으로 유쾌했다.
바라던만큼 시간을 끌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놀아주고 말았을 정도로.
마음 같아서는 좀 더 비웃어주고 싶지만 여기까지만 하자. 지금 내겐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으니까.
발자취를 따라 그려진 진에 신성을 더하자 날 중심으로한 권역에 권능이 더해진다.
허접주신이 내게 준 정화의 권능.
부정한 것을 이 세상에서 지우는 힘.
주신의 힘이 대지에 내려앉음에 따라 지상에 존재해선 안 될 것들이 가루가 되어 바닥에 흩어졌다.
유일하게 남은 기사도 내 권능을 보고서 전의를 잃은 듯 무기를 내려놨다.
기사의 머리를 후려쳐서 기절시킨 난 인벤토리에서 밧줄을 꺼내 그를 포박했다.
할아버지의 훈수가 하도 심해서 귀가 아팠지만 어쨌거나 결과는 좋았다.
묶은 장본인인 나도 푸는 방법을 모르겠는데 묶인 당사자가 저걸 어떻게 풀겠어.
기사를 질질 끌어서 구석에 대충 던져 놓은 나는 저택 입구 근처에 있는 비시를 향해 다가갔다.
약속은 반드시 지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부탁을 해야지.
기왕에 약속한 거 제일 좋은 물건으로 만들어줘야 할 거 아냐.
빚을 잔뜩 쌓아 둔 상태에서 이런저런 놈팽이들한테 한껏 요구를 할 수 있는데 당장 급할 이유가 어딨어.
하루 아침에 아드리가 성불할 것도 아니고.
“비시. 엄마한테 좀… 설명을 해주겠니?”
가벼운 마음으로 발을 움직였던 나는 울먹이는 비시의 어머님과 입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다 사과의 말을 내뱉는 비시를 보고 입술에 힘을 더했다.
어. 어어어.
여기 분위기 왜 이래?
여느 때처럼 루시님! 감사합니다! 같은 이야기가 나올 차례 아니었나?
뭐가 문제지?
<사령술사란 게 들켰잖으냐. 어미의 입장에선 충격이겠지. 자신의 딸이 흑마법사란 걸 알게 됐으니까.>
‘방금 전까지 목숨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는데 그런 걸 신경 쓸 틈이 있어요?’
<그 목숨의 위협을 어디 사는 누가 하도 깔끔하게 처리했잖으냐.>
그치만 그 전까지 비시는 자기가 죽을 각오를 하고서 저들을 가로 막았었잖아.
그걸 훤히 바라보고 있었을 텐데 저런 추궁은.
아. 젠장. 뭐가 옳고 그르고 하는 건 생각하기 귀찮아.
그냥 내 권위로 찍어눌러버릴테다.
머리를 대충 정리한 나는 비시의 어깨를 붙잡아서 뒤로 당겼다.
비시 어머니의 눈가에 놀람과 반가움이 새겨졌다가 뒤늦게 불안이란 감정이 따라붙었다.
“저. 알른 영애. 아니. 사도님. 비시는 나쁜 아이가 아닙니다!”
좋은 부모네. 지금쯤 죽어라 대검을 휘두르고 있을 어느 주책맞은 아저씨마냥.
나를 볼 때마다 울컥하는 베네딕의 얼굴이 떠올라서 웃음을 흘린 나는 팔짱을 낀 채 비시어머님을 올려봤다.
“알아.”
“잠시 방황하다가 실수를 저질렀을 뿐 저 아이의 근본은.”
“안다고. 아줌마. 이 들러리가 쓰레기라고 생각했으면 내가 여기 왔을 것 같아?”
긍정받을 거라 생각하진 못한 듯 그녀가 입을 뻐끔거리기에 피식 웃으며 비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녀석이 멍청하고 소심하고 무능한 데다 그런 주제에 욕심이 많은 녀석인 건 맞지만 그거랑은 별개로 벌을 받을 녀석은 아냐. 허접 주신한테 올려보내 봐야 뭐 이딴 걸 보냈냐면서 되돌려 보낼 걸?”
“…네?”
“조금 귀엽게 생겼다면 모를까. 시골 촌년처럼 생겨서 매력이라곤 조금도 없잖아. 허접 주신 취향은 아냐.”
자기 딸을 옹호하는 건지 욕하는 건지 모를 말에 비시 어머니의 눈동자가 핑핑 돌았다.
이럴 땐 메스가키 스킬이 참 귀찮다니까.
어떻게 하면 당신 딸이 괜찮은 사람이란 걸 전할 수 있으려나.
“훌쩍.”
그런 고민을 하던 중 갑자기 뒤편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눈시울이 붉어진 비시는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려 했지만 끝없이 쏟아지는 울음을 감추기엔 그 손이 너무도 작았다.
결국 벅차오르는 감정을 견디지 못한 건지 비시가 날 끌어안고서 오열하기 시작했다.
피하려면 얼마든 피할 순 있었지만, 그럼 내가 피도 눈물도 없는 나쁜 년이 되어버리니까.
당장은 참아줘야지. 뭐.
– 고마워요.
아드리가 답잖게 고개 숙이는 걸 본 나는 등줄기가 근질거리는 느낌을 견디지 못하고 입술을 움직였다.
‘이 장난감은 너보다 날 좋아하는 것 같네? 불쌍해라. 둘도 없는 친구라고 생각한 건 너 혼자였나봐.’
– …지랄 마! 비시랑 제일 친한 친구는 나야! 비시는 내 거라고! 넌 포동포동한 수녀나 바보 같은 마법사랑 놀아! 이 개년아!
목숨을 구해준 사람한테 하는 말치고는 좀 많이 거치네.
난 투덜투덜 거리면서도 입가에 웃음을 새겼다.
역시 찬양받는 것보다 이 쪽이 더 마음이 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