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72
새벽 2시.
서북부의 도시. 부르게.
영토 외각에 던전 발생.
주신의 사도가 예견했던 것보다 빠른 움직임이었지만 이미 대비를 하던 중이었기에 빠르게 대처에 들어감.
그 후 새벽 3시.
동쪽의 코토르.
해안가에 던전 발생.
사도의 예언과 동떨어진 타이밍에 사람들이 놀랐지만 기존에 그 곳을 지키던 인원들이 나서 기초적인 상황수습에 들어감.
그리고 새벽 3시 30분.
트리어의 유적에서 던전 발생.
미처 대피하지 못한 이들의 피해가 생김.
유적이 붕괴되며 생긴 혼란이 얼마간 이어지다 간신히 진정됨.
이외에도 밤중에 갑작스레 시작된 혼돈은 해가 떠오를 때까지도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여태 틀린 적 없던 주신의 사도가 실수를 저질렀단 사실에 대한 당혹스러움부터 시작해서 던전 공략이 준비되지 않은 탓에 생겨나는 여러 피해, 현지와 지휘부 사이의 의견차이,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사악한 존재들까지.
그 날의 밤은 사람들에게 신화의 시대가 다가오는 것에 대한 공포를 선사했다.
뭇 사람들은 악신이 부활할 때가 머지 않아서 이렇다 이야기할 지경이었고 각지를 유기적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맡은 카리아의 정보부 측에서도 무언가 변수가 생겼다고 여겼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 모든 혼란은 손해뿐인 헛짓거리이고 정작 그 혼돈을 만들어낸 이의 목적은 어느 도시에 조용히 침입하는 것이었단 걸.
알른의 영지에 들어온 교황은 느긋하게 도시를 살폈다.
대륙의 정세가 혼란스러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알른의 영지에는 평온이 깃들어 있었다.
사람들은 별 다른 걱정 없이 평소의 일상을 즐기고, 도시를 순찰하는 병사들도 경계심보다는 치안의 유지에 신경을 썼으며, 어느 상인이 바깥의 혼란스러운 정세를 전해도 주민들은 감탄사를 내뱉을 뿐 진지하게 미래를 걱정하지 않았다.
영주에 대한 믿음이 그만큼 두텁다는 증빙이었다.
이 부분만큼은 주신의 사도가 태어난 도시답다고 해도 괜찮겠지.
“헌데 다른 부분들이 너무 평범한 게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사도께서 태어난 곳인데 이게 뭡니까.”
“…노친네. 대체 뭘 바라는 거야?”
“최소한 그 분을 기리는 동상은 도시 곳곳에 새워져 있어야죠. 또한 그 분이 돌아다녔던 곳마다 안내문을 새기고 벽에는 벽화를…”
“이 도시를 개판으로 만들려고 찾아 온 사람이 할 말은 아니네.”
“음. 그런가요?”
라샤의 말에도 교황은 여전히 불만을 떨치지 못했다.
이 도시는 자신들을 지켜주는 이들에 대한 경의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도의 불운한 과거의 한 축을 담당한 이들주제에 참회의 마음을 조금도 지니지 않고 있었다.
“예정했던 것보다 더 크게 소란을 일으켜볼까요.”
“다른 놈들은 몰라도 베네딕이랑 그 기사들이 뛰어오면 나도 혼자 감당하기 힘들거든?”
“그 부분은 괜찮을 겁니다. 그 분은 주신의 사도를 낳은 아비라 하기엔 정신이 많이 연약하시거든요.”
“그런 방식은 좀 싫은데. 난 그 놈이랑 제대로 붙고 싶단 말야.”
두 사람이 대놓고 목소리를 높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어떤 사람도 둘은 인지하지 못했다.
아그라의 권능이 두 사람의 존재감을 끝내버렸기에 사람들은 둘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다.
그렇게 방해 하나 받지 않고 교황과 라샤가 도착한 곳은 알른의 영지 한 켠에 자리한 묘지였다.
“진짜 할 거야?”
“예. 그러려고 온 거니까요.”
“주신을 신앙하는 사람이 할 일은 절대 아닌 것 같은데.”
“필요한 시련입니다. 사도께는 조금 더 사연이 필요해요. 모든 이들이 동정할 만한 이야기가.”
개인적인 욕망이 약간 포함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이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나의 목적이 이루어지고 하나 뿐인 신의 세계가 찾아오려면 그 사도에게도 그만한 권위가 주어져야하니까.
아. 정말. 이러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하는 수밖에 없어.
입꼬리를 치켜 올리며 묘지 안으로 발을 들인 교황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안으로 또 안으로 향했다.
옆에서 라샤가 무언가 이상하다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었다.
무작정 안으로 향한 교황은 알른의 가묘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걸음을 멈췄다.
“하.”
그의 입가에 웃음이 스민다.
“하하하.”
자신이 다루던 힘이 흐트러질 정도로 격정적인 감정이 그에게 스민다.
“하하하하하!”
권능을 뚫고서 새어나온 웃음미 묘지 전체를 울린다.
“노친네! 돌았어?!”
“아! 그렇지만 이를 보고서 어찌 웃지 않는단 말입니까!”
“뭔 헛소리를.”
“됐습니다. 주변에서 제 목을 노리고 계신 여러분? 나오셔도 됩니다. 여기 있을 이유가 사라져버렸거든요.”
히죽이죽 웃으며 교황이 주변을 둘러보자 하나 둘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자리한 건 베네딕 알른. 대륙 최강의 기사만이 들 수 있는 대검을 든 괴물이었다.
“이 곳에 뭘 하러 왔나.”
“모르셔서 묻는 건 아닌 듯 합니다만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답해드리죠. 당신의 아내를 일으켜 세우려 했답니다. 그 때 사도께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서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달려드는 베네딕을 라샤가 가로 막는다.
실핏줄이 선 채 부들부들 떨리는 그녀의 팔은 베네딕의 검이 버겁단 걸 증명하고 있었지만 정작 라샤의 얼굴에는 희열이 스몄다.
“다만 제가 한 가지 몰랐던 사실이 있었네요. 설마 이 곳에 그 어떤 것도 없을 줄이야.”
이래서야 처음부터 허탕이었다.
온갖 손해를 감수해가면서 소란을 일으킨 보람이 없을 뻔 했어.
물론 지금은 보람이 생겼지.
이 곳에서 재미난 걸 보게 되었으니까.
“베네딕 알른. 당신께선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베네딕은 답하지 않고 재차 검을 휘둘렀지만.
“이봐. 날 봐야지. 날.”
그 검 또한 라샤에게 가로 막혔다.
“사도께는. 음. 알아도 몰라도 무언갈 전하지 않았겠죠. 당신은 유약하니까요.”
영주의 뒤를 따라 다른 기사들이 달려오지만 그들이 달리고 또 다시 달려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끝이 존재하지 않는 경주는 영원토록 이어질 수밖에 없잖나.
“좋군요. 좋아요.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단 사실이 너무도 마음에 듭니다. 아아. 한편으로는 주신의 사도를 믿지 못한 제가 원망스럽기도 하군요. 저 따위가 개입하지 않아도 그 분은 이미 완벽할 지언데 말이죠.”
의심의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아니했다. 불필요한 소란을 일으키느라 악신의 권능을 꽤 많이 소모한데다가 이 곳에서도 여러모로 힘을 낭비하게 될 것 같았으니까.
갑작스레 세상에 드리운 어둠이 끝을 만드는 것으로 기사들을 속박에서 풀어준다.
다른 곳에선 끝없이 늘어났을 묘지를 베어낸 검이 교황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선 회색의 여우가.
대지에선 나무의 뿌리가.
위에선 늑대의 송곳니가.
저 멀리에선 머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마탄이.
그 모든 걸 확인한 교황은 허탈한 웃음과 함께 한 번 죽었다가 다시금 일어섰다.
“자. 여러분. 저 하나를 죽이기 위해 여러모로 골몰하신 듯 합니다만 아마 무의미할 겁니다. 전 죽을 수 없는 몸이거든요.”
끝을 없앤다는 것은 단순히 불사를 얻는다는 이야기와는 다르다. 이건 개념적인 문제니까.
“여러분께서 무엇을 생각하셨건 그건 과거의 저나 어느 대마법사가 시도해 본 방식일 겁니다.”
교황은 과거 이를 뼈저리게 느꼈다. 구원을 얻지 못했다면 아마 지금도 그 때처럼 방황하고 있겠지.
“그를 알게 해드리기 위해서라도 여러분에 맞추어 놀아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즐거운 시간을 보내주시길.”
자신을 죽이러 오는 이들을 향해 정중히 고개 숙인 교황은 다시금 알른의 가묘를 눈에 새겼다.
그 곳에 새겨진 성흔을.
*
갑작스레 시작되었던 혼란은 대륙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지만 그 사태 자체는 쉬이 해결됐다.
급하게 던전을 만들어낸 까닭인지는 몰라도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더 허접하더라고.
게임의 난이도를 응애모드로 바꾸면 그런 게 나오지 않을까 싶을 수준이었어.
덕분에 채 반나절도 걸리지 않고 모든 사태를 해결했지.
여기까진 좋았는데.
하도 빠르게 상황을 해결해서인지 몰라도 내 명성이 더 높아지고 말았거든.
단적으로 말해서 상황이 악화됐어.
“…더럽게 끈질기네. 좆같이 생긴 할배.”
“일국의 왕을 그리 부르는 건 어떨까 싶다만.”
“여자애한테 달라붙는 쓰레기는 이렇게 불러도 괜찮아요.”
차 한 잔 하고 가라는 어느 소국의 왕을 떨쳐내고서 돌아온 나는 기지개를 키고서 하늘을 바라봤다.
교황은 왜 이런 비효율적인 일을 저지른 거지?
날 당황시키기 위해서라기에는 너무 소모가 크잖아.
그 재앙들은 얼마든 더 위협적으로 써먹을 수 있었어.
그것들이 완성되기 직전에 이런 일을 벌였다면 피해가 더 커졌을 테지.
…희생당한 사람도 더 많아졌을 거고.
그런 생각을 하며 입술을 곱씹던 나는 머잖아 교황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됐다.
그 녀석이 얼마나 나란 존재에게 집착하는 지에 대해서도.
“결국 놓쳐버린 모양이야. 준비해둔 수를 모두 썼지만 죽지를 않았나봐.”
카리아가 하는 말을 가만 듣던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개자식에게 엿을 먹여주겠노라 결심했다.
아니 씹.
어느 미친 새끼가 타인의 부모가 묻힌 무덤을 파려고 그러냐!?
어느 문화권을 가도 그딴 짓을 저지른 자식은 개새끼라고 부른다고!
주신을 신앙한다는 새끼가 그딴 짓을 떳떳하게 저지를 수 있단 게 말이나 돼?!
“그래도 소모가 컸으니까 당분간은 변수를 만들어내지 못하겠지. 그러니 그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얼마 안 남은 거잖아?”
악신의 부활.
카리아의 웃음을 본 난 그녀에게 웃음을 되돌려줬다.
“하. 아줌마가 재잘대지 않아도 알거든?”
“기죽은 것 같지 않아서 다행이네.”
“결국 그 변태새끼는 아무것도 못하고 튄 거잖아? 허접다운 결말이라 비웃음밖에 안 나와.”
결과적으로 아무 문제도 없었으니까. 열이 받기는 하지만 딱 그 정도?
“하하. 고용주님답네.”
“…무슨 의미야. 아줌마.”
“말 그대로의 의미지.”
“내가 요즘에 너무 잘 대해줬지? 응?”
“아. 그보다 고용주님. 성녀님에게 관심을 가져줘.”
“그건 또 뭔.”
“급한 사람은 쉽게 넘어지거든.”
중요한 일은 자기 쪽에서 적당히 끊겠지만 사람의 마음을 달래는 건 못 한다는 카리아의 말에 난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