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675

한 도시에서 일어난 혼란은 주신의 사도가 친히 강림함에 따라 수습됐다.

거기에 걸린 시간은 겨우 반나절이었다.

뒤늦게 도착한 본국의 지원과 타 국가의 기사들이 전선을 밀어내는 데 도움을 주긴 했지만 결국 그들이 도시에 온 이유는 어디까지나 승기가 보였기 때문일 뿐.

사실상 멸망해야 할 도시는 주신의 사도 하나에 구원을 얻었다.

그녀라는 기적에 의해 다시금 일으켜세워졌다. 그렇게 던전을 끝마치고 나온 주신의 사도는 무심한 표정으로 환호하는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런 좆밥던전 때문에 뒤질 뻔 하다니. 아저씨들 더럽게 무능하네. 자괴감 안 들어?”

조막만한 입에서 내뱉어진 것은 폭언이었지만 그 폭언에도 사람들은 환호했다.

주신의 사도. 루시라는 사람 자체가 그들에게 있어 희망의 상징이 된 것이다.

허나 그 환호성 속에서도 루시와 함께 던전에 들어갔던 이들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루시의 친구들은 그녀가 생각보다 여린 사람이란 걸 알았다.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일어서지만 그 마음 속에는 상처를 꾸역꾸역 쌓아가는 인간이란 걸.

전선을 밀어낼 때, 던전의 문을 탈환할 때, 그리고 던전을 공략할 때.

루시가 얼마나 조급했는지, 그리고 간절했는지 아는 이들은 지금도 루시가 진심으로 웃고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눈 앞에 있는 이들의 바람을 이루어주기 위해 웃음을 지었을 뿐.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을 거란 걸.

“알른 영애!”

“주신의 사도시여!”

“루시 알른!”

“루시 알른!”

조이는 눈 앞에서 소리치는 이들을 닥치게 만들고 싶노라 생각했다.

타인의 마음 따윈 신경도 쓰지 않는 주제에 이젠 자신들의 마음을 강요하는 자들의 입을 가로막고서 루시를 데리고 돌아가고 싶었다.

저들에게 악의가 있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기뻐서 어찌할 줄 몰라하는 것 뿐이란 걸 알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멈춰라. 멍청아.”

프레이도 비슷한 생각을 가졌지만 조이와 달랐던 점은 실제로 실행에 옮기려 했단 것이다.

그를 눈치챈 아서가 미리 가로막지 않았다면 프레이는 자그마한 망설임도 없이 검을 휘둘렀으리라.

“그치만 짜증나는 걸.”

“그래도 참아라. 되래 루시 알른을 곤란하게 할 뿐이다.”

“…칫.”

아서라 해서 지금의 상황이 유쾌하진 않았다.

사람들은 오롯이 기적만을 바라볼 뿐 그 기적의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엔 관심이 없었다.

세상을 구원할 주신의 사도에게는 환호성을 보냈지만 그 밑에 존재하는 여린 여자아이는 시야에 두지 못했다.

지금은 미쳐버린 채 어둠 속을 유영하고 있을 빌어먹을 왕이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고. 그렇다면 저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건 자신들을 구원할 영웅이란 걸까.

“여러분들.”

도저히 수그러들지 않을 환호성의 위를 한 여성의 목소리가 뒤엎는다.

사람들을 구원해주었던 따스함이 담긴 목소리에 미친 듯 소리를 내지르던 이들이 하나 둘 입을 다물고서 목소리의 진원을 찾는다.

“승리의 기쁨은 알고 있습니다만 아직 저희에겐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주신 교회의 성녀는 대지를 뒤덮은 이들의 시선 속에서도 당당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 아직은 승리의 기쁨을 즐길 때가 아닙니다.”

무덤덤하려 노력하는 듯 하지만 격한 감정이 묻어나오는 그 목소리에 사람들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성녀의 말이 옳았다.

아직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대지에서 일어난 비극이 모두 마무리 될 때까지 그들은 쉬어선 안 됐다.

그것이야말로 산 자들이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페이비! 훌륭했어요!”

“역시 성녀님께선 다르시군요.”

“난 베고 싶었는데.”

“제발 좀 멀쩡한 인간이 돼라.”

그렇게 소란이 끝나고 친구들끼리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자 다른 이들을 페이비에게 잘했다고 이야기를 했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대신 해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허나 루시는, 루시만큼은 무언가에 사로잡힌 것처럼 허공을 바라보다가 페이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방금 전 병사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씨익 웃어보였다.

“허접치고는 잘했네.”

그녀가 한 말은 페이비가 그토록 바라던 칭찬의 말이었지만, 과연 그게 진심일지 페이비는 확신하지 못했다.

페이비는 이러한 정경에 익숙했다.

지독한 악취와 질척한 바닥과 침울한 분위기와 울음소리를 항시 들으며 살았다.

성녀의 직함을 지닌 그녀의 역할은 저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었으니까.

교황은, 그녀를 만들어낸 악인은 절망 속에 있는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야말로 성직자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순수하고 바보 같았던 페이비는 그 말을 의심하지 않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길 바라며 기꺼이 굳은 일을 해왔다.

주신의 뜻이 세상에 널리 퍼져 자신처럼 모두가 구원받길 기도하면서.

그러기 위해서라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았다.

페이비의 주변 사람들도 그것이 옳다고 이야기했다.

악신의 사도를 만나며 자신을 의심하게 된 순간에도.

신이 일으킨 기적을 눈으로 마주하게 된 때에도.

자신의 탄생이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단 걸 알게 된 날에도.

자신의 희생으로 타인을 구할 수 있다면 기꺼이 그러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에.

페이비는 깨달았다.

희생이란 단어가 잔혹할 수 있단 것을.

자신을 희생하여 타인을 구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대개의 사람들은 그게 고결하다고 여길 것이다.

허나 그 ‘자신’을 희생한 사람의 지인이라면, 그 ‘자신을 희생한 사람을 너무나도 소중히 여기는 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왜 당신이여야 하냐고.

왜 당신이어야만 하냐고.

꼭 당신이 희생해야만 하는 거냐고.

다른 사람이면 안 되냐고.

조금 쉬어도 되지 않느냐고.

계속.

계속.

계속 물을 것이다.

페이비도 물었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루시의 등에다 대고 질문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계속해서 루시에게 물어봤다.

진짜 너여야만 하는 거냐고 말이다.

그에 대한 루시의 대답은 이러했다.

나여야만 한다고.

루시는 모를 것이다.

희생이란 단어가 그녀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를.

그리고 루시는 몰라야만 한다.

자신이 얼마나 타인을 괴롭게 하고 있었는지를.

그건 믿음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 끝이 행복하다 할지언정 과정이 괴롭다면 주변 또한 괴롭다.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괴로움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시의 주변 사람들이 차마 그녀를 말리지 못하는 건, 그녀에게 화를 내지 못하는 건 루시가 착하기 때문이다.

루시는 선하다.

주신께서 직접 사도로 택해 세상을 구할 의무를 내릴 만큼의 선인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희생이 주변을 괴롭게 만들고 있음을 안다면 망설일 것이다.

모두가 이를 알고 있다.

자기가 괴롭다고 말하는 게 그녀의 짐을 더 늘린단 사실을 안다.

그러니 믿는다고 말하고 그녀의 등을 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녀가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면 최소한 그녀의 괴로움이라도 나누어 짊어지기 위해서.

페이비도 그랬다.

루시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녀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고자 무엇이라도 하려 했다.

근데 그 행동이 그녀의 짐을 늘려버렸다면, 그녀가 신경 써야 할 곳을 더했다면.

나는.

정신을 차렸을 때 페이비는 자신의 방에 돌아와 있었다.

자신이 오늘 하루 제대로 행동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주변에 그녀를 걱정하는 사람이 없는 걸 보면 평소처럼 행동한 듯 싶었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성녀다운 행동을 하도록 훈련을 한 게 도움이 된 거겠죠.

덜덜 떨리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던 페이비는 여느 때처럼 두 손을 끌어모으려다가 멈췄다.

내게 기도를 할 자격이 있는 걸까요.

주신의 사도를 돕겠다는 주제 넘은 생각으로 분에 넘치는 행동을 반복하다 그 분께 폐를 끼친 제가 주신께 기도를 해도 괜찮은 걸까요?

모두를 구하기는커녕 수많은 이들을 희생시키고 영애님께 슬픔마저도 안겨준 저 따위가 어찌.

아니에요.

이럴 시간에 수습해야 해요.

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 그리고 영애님께 이 이상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걸.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어깨를 떤 페이비는 무심코 거울 속에 자신의 모습을 비쳐보았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땀으로 범벅이 된 머리가 뺨에 달라 붙은 채, 거친 숨을 내쉬면서, 눈동자를 떠는 그녀의 모습은 결코 타인에게 보여줘선 안 될 모습이었다.

그래서 쉬고 싶다 말을 하려던 순간 페이비는 문 바깥에서 느껴지는 주신의 신성을 느꼈다.

그녀를 구원해 준 빛을. 그녀를 구원해 준 사람이 지닌 따스함을.

“허접성녀.”

그래서 페이비는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대답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했기에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침묵한 채 루시가 돌아가 주기를 바랐다.

쾅!

“들어간다. 멍청아.”

그리고 여느 때처럼 루시는 제멋대로 페이비가 마음 속 깊은 곳으로 바라던 일을 이뤄줬다.

“영애님.”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

“…네?”

“너 같은 허접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몰라. 당연하잖아. 너네처럼 하등한 멍청이들 생각을 내가 왜 알아야 해?”

말해주지 않으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그게.”

“그러니까 말해. 직접 추한 꼴을 지껄이는 녀석을 보면서 잔뜩 비웃어주고 싶으니까.”

그러니 내게 힘든 걸 말해달라. 내가 널 도울 수 있도록.

“…제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요?”

“없으니까 더 지껄여야지. 잔뜩 웃어줄 수 있잖아. 허접아.”

괴로운 건 함께 나누어야 하는 거니까.

“그치만 전, 전 영애님께 민폐를.”

“원래 허접들이 다 그래. 그래서 너무 즐겁다니까. 잔뜩 놀려줄 수 있거든.”

그리고 나면 웃을 수 있으니까.

“전.”

“그리고 이래야 내가 널 괴롭혀도 아무 말 못하잖아?”

내 짐을 나눠 짊어진 네게 보답할 수 있으니까.

루시의 말 뜻을 이해하고 눈물을 쏟아내는 페이비의 앞으로 다가 온 루시는 여느 때처럼 그녀의 양볼을 잡아 당기면서 씨익 웃었다.

“허접 돼지인 페이비주제에 나대니까 이 꼴인 거잖아. 멍청아.”

“…어. 여. 영애님? 방금 전에 뭐라고.”

너무도 놀라 울음마저 그친 페이비를 향해 가볍게 웃은 루시는 뒤 쪽으로 시선을 주면서 말을 이었다.

“내가 너무너무 귀여우니까 좋아하고 집착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말야. 주변을 봐.”

“성녀님께 너무 무어라 하지 말아주시지요. 제가 무능하고 믿음직스럽지 못해 그런 걸 어찌하겠습니까.”

요한 주교가 그 곳에 있었다.

“성녀님. 제가 당신의 짐을 나눠 드는 걸 허락해주시겠습니까.”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