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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84

두 번째 던전이 있는 장소로 향하던 도중 불의 악신과의 전투가 시작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화산에서 쏟아져 내린 용암을 굳히는 데 성공했으며 이제부터 계획한 바에 따라 악신을 제압하겠다고.

‘마법의 사도가 고용주님한테 이 말을 꼭 전해달라더라. 여태까지 당신의 예측이 틀린 적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걸 의심하지 않으니 고용주님도 걱정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달라고 말야.’

그 자존심 높은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고? 그것도 눈 앞에 악신이 강림한 상황에?

무심코 모니터 너머의 네베라를 떠올렸던 나는 현실의 네베라와 게임 속 네베라의 격차를 되새기고 가볍게 웃었다.

왤까. 타인의 기대가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 기분 좋게 느껴지는 건.

히죽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자 친구들이 날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날 흐뭇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부끄러움을 느낀 나는 감정을 숨기기 위해 괜히 화를 냈다.

“얼빵아! 지금 웃고 있을 때야!?”

“순간이동의 준비는 진즉에 끝났답니다.”

“진짜 제대로 준비 끝난 거 맞아?”

“걱정마세요! 더 이상 할 실수도 없거든요!”

그게 자랑스레 말할 일이야? 부끄러웠던 것도 잊고 빤히 바라봤더니 조이가 헛기침을 내뱉고는 마법진을 띄웠다.

“그럼 바로 이동할게요!”

“잠깐. 조이. 그 전에 루시 알른에게 물을 것이 있다.”

“뭔데요. 무능왕자님. 바보 같은 질문하면 걷어차 버릴 건데 자신 있어요?”

“오늘 첫 던전에 들어갔을 때 그 안의 풍경은 네가 예상한 것과 달랐다. 그렇지?”

질문을 들은 순간 난 아서가 뭘 걱정하는 건지 알 것 같았다.

내가 글리치를 쓰기로 결심했기에 별 문제 없이 지나갔지만 던전 내부의 정경은 내가 알던 것과 전혀 달랐다.

선물을 준비했다는 기사의 말대로 교황은 내 약점. 그러니까 나의 정신을 건드리기 위해 정성스레 던전을 개조해 둔 상태였어.

아마 다른 던전도 그럴 거야. 근본적인 컨셉 자체를 바꿀 순 없지만 그 안의 내용만큼은 오롯이 날 엿먹이기 위한 장치로 가득하겠지.

그걸 별 것 아니란 말로 웃어넘길 수는 없다.

나는 죄책감이란 감정에 약하니까.

“그러니 묻고 싶다. 죄를 저질러야만 하는 상황이 닥쳤을 때 그대는 태연할 수 있겠나?”

“3왕자님.”

“성녀님. 다그치는 게 아닙니다. 미리 생각하고 서로 할 수 있는 일을 정하잔거죠.”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했던 것처럼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자신들이 하겠다. 나를 위해 기꺼이 죄책감을 뒤집어쓰겠다.

“저희는 짐을 나누어 짊어지기로 결정했잖습니까. 이건 그 연장선에 불과합니다.”

그런 의지가 담긴 아서의 말을 가만 듣던 난 코웃음을 치며 아서의 가슴팍을 쿡쿡 찔렀다.

“죄송한데요~ 그런다고 안 멋있어 보이거든요? 오히려 사람을 죽이고 싶어서 안달난 정신병자 같아서 징그러워요.”

“농담으로 가벼이 넘기려 들지 마라. 네 녀석도 알지 않나. 누군가는 죄악을 넘어서야 해.”

“푸흡. 큽. 푸하하핳!”

“왜. 왜 갑자기 웃는 거냐!”

아서가 당혹스러워하는 걸 보며 한참 동안 웃던 나는 기특한 소리를 한 아서의 뺨을 툭툭 건드려줬다.

“이렇게 멍청한 생각밖에 못하다니. 참 같잖고 귀엽네요. 무능왕자님.”

“어이.”

“조금만 더 멋있었다면 반해버렸을지도 모르겠네요. 땅콩왕자님을 생각해보면 무능왕자님이 멋있어지긴 힘들 것 같지만요.”

일부러 아래쪽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흘린 난 흥분해서 날뛰는 아서를 무시한 채 걱정어린 눈을 한 조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뭐야. 그 눈은. 너도 쪼꼬미 왕자님처럼 멋있는 체 하고 싶어?”

“정말 괜찮겠어요? 전, 아뇨. 저희는 루시를 알아요. 항상 당신의 옆에 있었으니까요.”

“진짜? 좀 소름끼치는데.”

평소 같았다면 그런 의미가 아니라며 소리쳤을 조이였지만 오늘의 그녀는 눈조차 피하지 않고 가만 날 바라봤다.

그래서 나도 나름의 진지함을 담아 조이에게 대답을 해줬다.

“내 귀여움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일단 용서해주겠지만 한 가지 괘씸한 부분이 있어.”

“…네?”

“나에 대해 잘 안다면서 날 의심해? 이 루시 알른이 병신들의 개허접던전에서 고생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최근 들어 불어난 게 분명한 뱃살을 붙잡아 당기면서 질책하자 조이가 다급히 뒤로 물러나면서 두 팔로 몸을 가렸다.

“갑자기 거긴 왜 잡아당기세요!”

“부쩍 늘어난 게 의심주머니인가 싶어서.”

“그럴 리가 없잖아요!”

“이상하네. 다른 데는 다 그대로인데 거기만 늘어났잖아. 그럼 거기가 문제인 거 아닐까. 돼지야?”

“전 돼지가 아니라 얼빵이거든요!”

“좋아. 얼빵아. 대답해봐. 누가 어디서 고생한다고? 응? 으으응?”

내가 발을 떼기 무섭게 조이가 경계심을 끌어올리는 걸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 정말. 너무 하찮아서 놀리기도 미안하네.

표독스럽게 생긴 주제에 저렇게 귀여워도 되는 거야?

“그냥 가만히 내가 하는 거나 구경해. 병신의 수하들이 얼마나 허접한지 잘 알려줄 테니까.”

내가 모니터 바깥에서 인생을 바쳤던 소울 아카데미는 높은 확률로 허접주신이 만들어낸 물건일거다.

여러 신들의 중심이 될만큼 대단한 존재이니 다른 차원에도 끼어들 수 있는 걸테지.

이렇게 생각해보면 게임 속 글리치들이 다르게 보여.

원래 글리치라는 건 개발사가 의도하지 않은 오류나 버그지만, 만약 아르마디가 그걸 의도하고 게임 내부에 집어넣었다면?

이후에도 수정하지 않고 글리치를 내버려 둔 게 의도적인 일이었다면?

현실의 한계 때문에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많은 일들이 실제로는 가능했다면?

방금 전 글리치를 이용해 말도 안 되는 던전 공략을 성립시킨 나는 스스로의 생각에 설득력이 있다고 여겼다.

결국 이 세상의 던전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 악신과 그 하수인들이 자신의 권능을 이용해 만들어낸 공간이니까.

누군가가 만들어낸 게임과 저들이 만들어낸 던전은 다를 바가 없잖아. 그치?

“영애님. 설마 홀로 던전에 들어가겠단 말씀은 아니시죠?”

내가 강한 체를 한다 여긴 것일까. 페이비가 걱정을 담아 목소리를 냈다.

허나 그 목소리와는 다르게 그녀의 눈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아마 내가 또 다시 희생을 하려 든다면 페이비는 저 눈빛에 담긴 감정을 입 밖으로 내겠지.

“당연한 걸 왜 물어봐?”

“영애님!”

“난리치지 말고 잘 들어. 너네가 허접찌끄래기라서 그러는 게 아냐. 실제로 좀 멍청하고 허접하고 바보같긴 하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라고. 이해돼?”

이전에 홀로 던전에 들어갔던 때와는 다르다.

지금의 난 친구들이 고난을 겪는 게 두려워서 혼자 모든 걸 감당하려 하는 게 아니니까.

내가 혼자 던전에 들어가려 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나 이외의 다른 변수까지 상정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프레임 단위로 완벽하게 이루어져야하는 글리치를 친구들을 데리고서 어떻게 하겠냐고.

“…만약 영애님께서 거짓말을 하신 거라면 일이 끝난 후에 하루 종일 잔소리를 할 겁니다.”

“며칠 동안 옷 갈아입히기 인형으로 삼을 거기도 해요!”

“왕국의 수도에 그대만을 위한 공연장도 만들어주겠다.”

“대련! 잔뜩 할 거야!”

친구들의 협박에 웃음으로 대답한 나는 조이의 손을 붙잡았다.

“갈게요.”

순간이동의 마법이 발동되고 주변의 풍경이 뒤바뀐다.

“어. 어라? 왜 좌표가 엇나갔지?”

더 이상 저지를 실수가 없다던 얼빵이가 또 다시 얼빵한 행동을 저질렀지만 이번만큼은 혼낼 이유가 없었다.

조이의 실수로 우리가 도착한 곳은 운 좋게도 바로 두 번째 던전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었으니까.

내가 올바른 행동을 할 때 운이 좋아진다고 했던가.

아무래도 이번에 내가 내린 선택은 아르마디가 보기에 괜찮았나보네.

*

메이스 안에 있던 용사는 던전공략이 끝나고서 한참이 지났음에도 충격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그들이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를 몇 번이나 넘겨가며 간신히 쓰러트렸던 적이 저토록 쉽게 쓰러졌단 사실이 그만큼 경악스러웠던 것이다.

“다들 미안하다. 내가 무능해서 그대들이…”

“대체 그 이야기만 몇 번 하는 거야? 좀 그만해!”

“이건 루시가 너무 괴이한 것이 맞다. 결코 그대가 무능한 게 아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짠했는지 용사를 놀리기에 여념이 없었던 이들조차도 안절부절해하면서 그를 위로할 정도였다.

“다들. 알른 영애가 두 번째 던전에 도착했다.”

에르기누스의 말에 세 사람의 시선이 화면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의 눈가에는 기대와 불안감이 뒤섞여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지난 번보다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지진 않겠지?”

“제발 그랬으면 좋겠군. 또 다시 내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 벌어진다면 진짜 목을 메고 싶어질 거야.”

루시에 대해 비교적 잘 알지 못하는 가라드와 용사가 쓴웃음을 짓는 동안 루엘과 에르기누스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루시 알른이란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 상식을 깨부수고 자신의 상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존재였으니까.

“어라? 왜 또 혼자 들어가는 거야? 더 이상 희생 안 하겠다면서?”

“뭘 들은 거냐. 방금 전 루시는 자신이 혼자여야만 할 필요가 있기에 저런 선택을 했노라고 했다.”

“…그런 말을 했었나?”

“속뜻은 그랬다.”

홀로 던전 안에 들어간 루시를 맞이해 준 것은 광활한 평원과 그 위에 자리한 군사였다.

“끝없는 전쟁의 던전인가.”

“최악이군. 이 곳은 홀로 들어올 곳이 아냐.”

“진짜 지옥 같은 곳이었지.”

수천 수만에 달할 군세를 모두 지나쳐야지만 끝에 도달할 수 있는 던전의 정경에 영웅들이 하나같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곳은 결코 홀로 공략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개인의 실력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루엘. 어찌할텐가. 아무리 현대의 용사가 대단하다 해도 이건.”

“잠자코 보기나 하게. 용사여. 루시는 이 곳에 대해 알면서도 홀로 방문한 거다.”

“…왜?”

“이제 보면 알겠지.”

화면 너머의 루시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 바위를 발견하고는 그걸 살짝 밀고서 아래에 스크롤 하나를 깔았다.

“에르기누스. 저건 무슨 마법이지?”

“부양마법이다. 효과가 대단한 건 아니고 살짝 띄워주는 정도야.”

저런 걸 왜 바위 아래에 깔지? 그래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을 텐데?

에르기누스가 의문을 품은 그 순간 루시가 갑작스럽게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포탄처럼 쏘아진 그녀는 말도 안 되는 속도로 하늘을 날아 수천에 달하는 군사를 뛰어넘었다.

“야. 에르기누스. 그냥 부양마법이라며.”

“…내가 잘못 본 건가?”

“방금 루시에게 물어봤다만 일반적인 부양마법이 맞다는 군.”

“진짜?”

“진짜냐?”

“내가 뭐 하러 거짓말을 하겠나. 나도 이해가 안 된다.”

에르기누스도. 가라드도. 용사도. 루엘도. 그 누구도. 방금전의 현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참고로 루시 본인도 이게 왜 되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미치겠군.”

에르기누스의 중얼거림이 모두의 심정을 대변했다.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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