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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85

“우리가 공략했던 때와 변화된 부분을 보면 교황의 의도가 뭔지는 명확하다. 병사의 질을 줄이고 양을 늘렸어.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인 피로 속에서 일어날 여러 문제를 바란 거겠지.”

“병사들의 모양새를 봐도 명백하다. 우리가 상대했던 적들은 하나 같이 미친놈들 뿐이었는데 지금 아래에 있는 녀석들은 명예를 중시하는 기사들이지 않나.”

“단순하고도 효과적인 방식이군.”

“뭐. 그래 봐야 꼬맹이가 저걸 건너뛴 순간부터 헛짓거리가 되지만.”

가라드가 헛웃음과 함께 내뱉은 말에 용사 일행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교황이 했을 모든 노력은 루시의 기행에 의해 무의미해졌으니까.

“굳이 그 이야기를 꺼내야 했나?”

“미안하다. 모두들. 내가 무능했던 탓에.”

“가라드! 네 놈은 눈치란 게 없나! 또 다시 용사가 우울해지지 않았나!”

“어쩌라고! 내가 한 말이 틀렸어?! 언제까지 현실을 부정하고 있을 건데!”

던전에 진입한 뒤로 루시 알른은 계속해서 기행을 벌였다.

수천의 군사를 뛰어넘고서 한 방을 넘어서더니 그 다음 방에선 갑자기 구멍을 파고 들어가다 다음 방으로 향하는 문 앞에 순간이동을 하질 않나.

외곽부분으로 향해 무언가 이상한 행동을 한 후 병사들 앞으로 향했더니 병사들이 루시라는 존재를 인식 못 하질 않나.

던전 중간에서 갑자기 멈춰서선 쭉 옆으로 향해 돌았더니 본래 나타나야 할 군사들이 자취를 감추질 않나.

용사 일행이 알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이 계속해서 일어났고, 그 때마다 용사 일행의 분위기는 점점 더 축처져갔다.

그녀가 쉬이 던전을 공략하는 데에 불만을 가진 건 아니다. 그런 추악한 질투를 하는 사람들이 영웅이라 불릴 리 없으니까.

이들이 우울함을 호소하는 이유는 오히려 반대였다.

왜 난 저런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을까. 루시처럼 생각하고 움직였다면 과거에 동료들이 그토록 고생할 일도 없었을 텐데 왜 나는 저런 사고방식을 떠올리지 못했나.

수백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후회를 한단 것이 바보 같은 일이란 건 모두 다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용사 일행은 회고를 멈추지 않았다.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서 우리가 저런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군사를 나오지 않게 만드는 건 할 수 있다.”

“기척을 없앤 방법에 대해서도 짐작 가는 부분이 있어.”

“허공으로 튀어올랐던 것도 재현하는 게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같은 현상을 능히 재현할 수 있는 천재들이었으니까.

“…진짜?”

가라드의 당혹에 맨 먼저 대답한 건 루엘이었다.

“군사를 나오지 않게 만드는 건 정밀한 마력감지가 있으면 가능하다. 특정 부분을 건드리는 순간 군사가 출현하는 형식인 것 같으니까.”

그 다음으로 이야기를 이은 건 용사였다.

“저 군사들은 결국 던전 내부에서 다급히 만들어진 자들이다. 당연하게도 기능에 하자가 있을 수밖에 없어. 현대의 용사는 그 틈을 파고 들었다. 특정 의식을 거치는 걸로 아군으로 인식 받은 거다.”

“이제 내 차례인 듯 하니 말하자면 과거 알른 영애가 기행을 펼치는 걸 분석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알게 된 사실이다만 물질과 물질 사이엔 미세한 틈들이 존재하더군. 던전 내부는 최대한 바깥의 환경을 재현하려 하지만 이렇게 과할 정도로 세세한 부분까지 흉내내진 못 해.”

세상에 존재하는 걸 인위적으로 재현하려다 생긴 오류. 루시는 그 오류를 파고 들어서 자신이 바라는 현상을 일으켰다.

“솔직히 말해 밑바닥에서부터 완벽히 재현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같은 환경에서 재현하라 그러면 충분히 가능할 거다. 그리고 말이다. 가라드. 그대도 추측가는 부분이 있을 터인데?”

“젠장. 모르는 체 넘어가주면 안 되냐?”

“그러기엔 그대의 표정이 너무도 진중하잖나.”

루시의 기행은 상식에서 벗어났기에 기행으로 보일 뿐. 자세히 살펴보면 충분히 떠올리고 행할 수 있는 일들이다.

결코 그녀만의 특권이 아니다.

이를 알아차렸기에 영웅들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만약 자신이 이를 눈치챘다면 과거 그들이 겪었던 고난 중 일부가 줄어들었을 터이고, 희생이 줄어들었을 것이고, 더 많은 이들을 구할 수 있었을 테니까.

“대체 꼬맹이는 저걸 어떻게 알아낸 거야?”

“본인의 말을 인용하자면 알아낸 게 아니라 알게 된 것이라 하더군.”

“그게 무슨 소리냐. 루엘.”

“주신께서 내려주신 지혜인지 본인이 원래부터 지니고 있었던 지혜인지는 모르겠다만 루시는 그저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이다.”

루시 알른 본인이 들었다면 무슨 헛소리를 하냐 되물었을 발언이었지만 영웅들은 루엘의 말에 진지하게 고갤 끄덕였다.

그게 아니고서야 루시가 보여준 것들을 납득할 수 없었으니까.

“재능인가. 하아. 점점 더 비참해지는 군. 난 왜 용사로 선택된 것인가.”

“잠깐만! 루시 알른이 실수를 했다!”

여태 단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던 루시가 처음으로 곤란한 듯 발을 구르는 걸 보고서 가라드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저 녀석도 인간인데 실수를 할 리가 없지!”

“…알른 영애가 실패한 걸 가지고서 기뻐하는 건 어떨까 싶다만.”

“어. 그것도 그렇네.”

“괜찮다. 가라드. 네가 쓰레기인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

영웅들이 투닥거리는 동안 루엘은 걱정 어린 눈으로 루시를 지켜 봤다.

*

<괜찮은 것이냐.>

할아버지의 걱정 어린 물음에 피식 웃었다.

‘왜요? 제가 잘못될까봐 걱정되세요?’

<당연한 것을 왜 묻는지 모르겠군.>

‘하하하. 귀여우시네요. 괜찮아요. 이 정도는 문제 축에도 못 끼니까.’

스피드런에서 사고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최고의 기록을 내기 위해선 진짜 말도 안 되는 테크닉을 당연하다는 듯 반복해야 하거든.

아무리 반복해서 연습한다 한들 사람인 이상 모든 순간에 완벽할 순 없고 실수를 했다면 거기에 대처할 방법을 당연히 마련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전의 좋았던 기록들을 생으로 날려버릴 수 있으니까.

사실 그게 아니라도 난 다른 방법을 알고 있었을 거다. 소울 아카데미 초기부터 온갖 방식의 스피드런에 도전했던 사람이 나거든.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거지만 스피드런은 단순한 경쟁이 아니다.

서로 간의 정보를 공유하며 이루어지는 협력이기도 하다. 각자가 만들어낸 새로운 루트가 합쳐지고 합쳐져서 최고의 기록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만의 루트를 만들기도 하고 타인의 루트를 받아들이기도 했던 나는 던전을 날로 먹기 위한 온갖 방식을 알고 있다.

방금 전에 실패한 건 1프레임 단위로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테크닉이었어.

성공하면 제일 빠르지만 실패하면 15초 정도 손해를 보지.

스피드런에선 뼈아픈 시간 낭비지만 여긴 현실이잖아. 다른 방식으로 날로 먹으면 그만이야.

“진격하라!”

뒤 편에서 들려오는 외침을 들으며 신성을 끌어올렸다.

어디 보자. 병사들의 구조가 내가 기억하던 것과 달라지긴 했지만 지휘관은 그대로야.

그럼 테크닉을 써먹을 수 있지.

히죽 웃으며 앞으로 내달린 순간 저 멀리에서부터 기마들이 내달려왔다.

선두에 선 기사는 말에 탄 채 자신의 할버드를 꾹 움켜쥐었다.

무기에 마력이 담긴 걸 확인한 나는 몸 안에서 스크롤을 꺼내 찢었다. 마법에 의해 몸의 무게가 한층 더 가벼워진다.

“받아라!”

지휘관이 소리를 치고서 3초 뒤에 점프.

할버드 위에 착지한 후 휘두르는 힘을 그대로 받아서 하늘 위로.

아직은 추진력이 모자라지만 괜찮다.

뒤에서 알아서 추가를 해 줄 예정이거든.

“감히!”

할버드가 내던져지는 걸 확인하고 방패를 치켜 든다.

물리적인 충격을 온 몸으로 받아내서 한층 더 가속.

끝도 없이 이어진 군사들이 아예 보이지 않는 곳까지 날아간다.

으으음. 참 아쉽네. 내가 좀 더 썅년이었다면 양심의 가책 없이 신나게 무기를 휘둘렀을 텐데.

소울 아카데미에서 무쌍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를 이렇게 날려먹어야하다니.

<루시야.>

‘왜요? 괜히 걱정했다고 말하려고요?’

<적당히 상식에서 벗어난 일을 해주면 안 되겠느냐?>

‘…네? 이전에 했던 일들보다 이 쪽이 더 정상적이지 않아요? 타이밍만 알면 누구라도 할 수 있잖아요.’

<자칫 실수하면 그대로 죽을… 하아. 됐다. 그냥 빨리 박살내고 다음으로 가다오.>

‘네에에.’

*

“에르기누스님.”

정신만을 메이스 안 쪽으로 보냈던 에르기누스는 요정여왕의 부름에 느릿하게 눈을 떴다.

“점점 더 악신의 기운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에르기누스는 악신의 기운이 강해지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루시 알른의 던전 공략이 거의 끝에 달했기 때문이겠지.

악신의 수하가 쓰러지며 주신의 권능이 한층 더 강해질 테고 그 반발로 악신의 부활이 빨라지는 거니까.

“아마 머잖아 악신이 이 곳에 강림할 겁니다.”

“무언가 느껴지시나요?”

“…아뇨. 물리적으로 알고 있을 뿐입니다.”

깨어나기 전에 에르기누스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광경은 자신이 소환한 부하에게 짓눌려 죽어가는 보스였다.

분명 내가 상대할 적에는 불사의 군단을 이끄는 지옥의 군주 같은 느낌이었거늘 어쩌다 그 꼴이 된 걸까.

어차피 알른 영애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것은 알고 있었다만 그래도 조금은 위용을 보여주길 바랐던 내가 잘못되었던 건가.

“에르기누스님?”

“아아. 죄송합니다. 좀 충격적인 광경을 보고 와서.”

“어머나. 정말요? 얼마나 충격적인 광경인데요?”

“일이 끝나면 제 기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으음. 좀 오래 기다려야겠네요.”

“아뇨.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방금 전 그 광경을 보고 온 덕분에 알른 영애라는 사람에 대해 무한한 신뢰가 치솟아 오른다.

진정 그녀의 계획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면 공허의 악신은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쓰러지게 되겠지.

다만 알른 영애에 대한 신뢰만 언급하면 여왕께서 필시 나중에 날 괴롭히실테니 적당히 말을 바꾸자.

“당신이 곁에 있으니까요.”

“…에르기누스님.”

– 하! 같잖은 짓을 하는 구나!

던전의 입구에서 모습을 드러낸 정체불명의 형상 속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람같기도 하고 동물 같기도 하며 무생물같은 부분도 있는데다 때로는 신적인 존재로 보이는 그것은 세상의 정경을 제멋대로 뒤바꾸며 웃었다.

– 그대들이 정말 둘인 것 같나? 자신이 보고 있는 게 진실이라고 믿나? 공허 속에서 미쳐버린 정신이 환상을 만들어낸 게 아니라고 정말 확신할 수 있느냐!

“참. 이 정도까지 예측대로인 것도 신기하군.”

악신의 주변에 넘실대는 기운을 보던 에르기누스는 코웃음을 치며 요정여왕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여왕은 웃으며 고갤 숙이더니 이내 두 손을 끌어모았다.

“여러분들. 즐거운 놀이시간입니다.”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요정들의 날갯짓 위로 환상이 그려진다.

아무것도 없는 공허가 아니라 봄날을 떠올리게 만드는 숲의 정경이.

“재미 없는 저 분께 즐거움을 알려드리도록 하죠.”

요정여왕과 에르기누스가 공허의 악신과의 전투에 돌입했다.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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