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은 세 번째 악신이 부활했단 것을 보고 받은 후 성지의 예배당으로 향했다.
그 곳에는 성지에서 일하는 모든 사제들이 모여 하늘에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저들은 사도님이나 성녀님이 그랬던 것처럼 따스한 신성을 지니고 있진 않다.
허나 그렇다 하여 저들이 지닌 것이 신성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고, 또한 저들이 품은 신앙이 거짓으로 변하는 것도 아니다.
가장 위험할수도 있는 장소에 기꺼이 남은 이들은 신과 세상을 위해 자신을 바치기로 결정한 자들.
저들의 간절한 기도는 하나의 소원이 되어 한 가운데에 있는 성물에 뜻을 남긴다.
“진행상황은 어떻지요?”
“신성은 거의 다 집약된 상태입니다. 성녀님만 오신다면 바로 발동할 수 있을 겁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파괴의 악신마저 이 대지에 강림한 게 확인 되었으니까요.”
“…역시 그렇습니까?”
요한의 말을 듣고도 라자로 추기경은 그리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짐작하고 계셨습니까?”
“모두들 그럴 것입니다. 하나의 악신이 이 세상에 내려올 때마다 공기가 달라졌으니까요.”
추기경의 말에 다른 사제들이 조용하게 동의를 표한다.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차이는 아니다. 무엇이 달라졌으며, 어떻게 달라졌는지 묘사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악신이 강림함에 따라 세상은 분명 변화했다. 그것도 인간에게 적대적인 방향으로.
“본래 대지에 남아있던 신 몇이 봉인에서 풀려났을 뿐인데도 이 정도입니다. 신들의 시대가 다시 찾아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때문에 이 자리에 선 이들은 전 교황이 벌이려는 일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지를 알게 됐다.
신들의 시대가 찾아온다는 것은 단순히 신들이 그들의 곁에 선단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의 규칙이 바뀌고 그 규칙 하에 인간은 도구가 되어 피를 흘려야 한단 소리다.
신들의 승패가 결정되는 그 순간까지.
어쩌면 세상이 멸망하는 그 때까지도.
“라자로 추기경. 저희만이 위험을 느꼈다는 건 오만입니다. 모두가 그를 알고 있겠지요.”
그렇기에 모두가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하늘에 계실 위대한 주신을 향해서. 자신들을 구원해주기를 바라며.
“지금은 아마 그 어떤 때보다도 신을 향한 신앙이 드높은 때일 겁니다.”
“그러니 위험하지요.”
뒤 편에서 갑작스레 들린 목소리는 요한에게 한없이 익숙하며, 결코 이 자리에서 들려선 안 될 것이었다.
고갤 돌리기도 전에 그를 눈치챈 요한은 품 안 쪽에서 단검을 꺼내며 즉각 뒤로 휘둘렀다.
살을 파고드는 감촉과 함께 뜨거운 피가 요한의 손 위로 쏟아진다.
어떤 티끌도 묻지 않은 백색의 사제복이 붉은빛으로 물든다.
“당신은 전혀 녹슬지 않았군요. 추기경의 격무 속에서도 단련을 전혀 게을리 하지 않았단 증빙이겠죠. 요한 추기경. 정말 당신 답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주신 교회의 존엄이었던 남자는 목을 관통당한 채로 웃으며 요한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서 제가 당신을 참 좋아했죠.”
요한은 대답하지 않고서 교황의 얼굴을 움켜쥔 채 신성을 주입했다.
회복마법의 악용. 과다회복을 통한 신체의 붕괴. 한 때 더러운 일까지도 도맡아했던 요한이기에 다룰 수 있는 기술.
다만 요한은 자신을 과신하지 않았다.
이를 고안하고 가르쳐 준 것은 눈 앞의 남자니까.
그는 당연히 대응 당하리라 여겼고, 요한의 예상은 빗나갔다.
교황의 머리가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으음. 좋군요. 당신의 신성에도 조금씩 따스함이 담기는 듯 해요.”
허나 머리가 사라졌음에도 목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주신의 권능이 한층 더 강해지고 있기 때문일까요? 혹은 그대가 신실함을 얻었기 때문일까요.”
당혹 속에서도 요한은 해야 할 일을 하려 했다.
뒤 편에서 다가온 우악스러운 손길이 그를 뒤로 잡아 당기고, 방금 전까지 그가 서 있던 자리에서 검이 튀어나오기 전까진.
“영감님. 아직 청춘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건 알겠는데 적당히 합시다. 당신이 죽으면 경호인 난 뭐가 돼?”
검성. 현재 대륙에서 가장 검을 잘 다루는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이며, 현대의 검성은 역사상 존재했던 수많은 검성 중에서도 예외로 여겨지는 존재다.
평민 출신의 모험가가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본인이 바라지도 않는데 검성의 자리에 올랐다는 건 그녀가 지닌 검을 세상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
“사도께선 제가 이 곳을 노릴 것도 알고 계셨습니까?”
자신이 흩뿌린 모든 권능이 베여나간 것을 확인한 교황은 진심을 담아 감탄을 내뱉었다.
하나의 권능을 베어내는 것이라면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수십으로 흩뿌린 권능을 정확하게 발동하기 직전에 베어내기 위해선 얼만큼의 기량이 필요할 것인가.
주신의 사도께서 이 여자를 성지에 배치한 까닭을 이해했다.
이 자라면 지켜낼 수 있다.
표정으로 드러난 교황의 놀람에 검성이 혀를 찼다.
“예측하지 못하는 게 이상하지 않아? 이만큼이나 상식적인 자리가 어딨다고.”
“아뇨. 보통이라 예측하지 못하는 게 정상입니다.”
교황의 입꼬리가 치켜 올라간다.
그렇다. 보통은 검성처럼 생각하는 게 맞지.
허나 주신의 사도께선 내가 지닌 예외성을 알고 계시다. 처음부터 모든 걸 파악하고 계셨다.
다른 모든 이들이 나의 신앙을 의심하고 의문을 가지는 그 때에도 그 분만큼은 결코 내 신앙에 의구심을 품지 않으셨다.
뒤틀리고 꼬였을 뿐 나의 신앙이 그 누구보다 굳건함을 알고 있으셨어!
그러니 그 분은 성지를 습격한단 것이 내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알고 계시지.
이 곳이 가장 악신을 부활시키기에 적합한 장소라는 걸 알면서도 여태까지 내가 미루고 미룬 이유에 대해서도.
이러지 않으면 그 분의 시련이 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이를 악문 이유도.
모두 다.
“하하하하하!”
즉, 이 곳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건 그 분의 기대를 무시하는 일이 된단 거겠지.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위대하신 주신의 사도시여! 이 교황이 당신의 뜻을 위해 모든 걸 바치겠습니다!”
“…뭐래는 거야. 미친놈이.”
“검성이시여. 당신은 알고 계십니까? 전 말입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세상을 돌아다녔습니다. 역사가 기록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오래 된 세월부터요.”
“아. 그래서?”
“그리고 전 그 시절부터 위대하신 주신을 신앙하였지요. 참고로, 이 곳을 성지로 결정한 것도 저랍니다.”
“…잠깐만.”
“그러니 당연히 참 많은 장치들을 이 곳에 만들어뒀죠.”
아주 오래 전, 이 세상에 단 하나의 신만이 필요하다 확신한 그 순간부터.
“오늘 주신 교회는 무너집니다. 교황의 탈을 썼던 한 악마에 의해.”
교황이 히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손을 치켜 든 그 순간 건물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 악마는 놀랍고도 참혹하게도 주신 교회의 중심에서 악신 아그라를 부활시켰습니다.”
그와 동시에 교황의 뒤에서 대기하던 성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성은 그들의 자세를 지켜보다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귀찮게 됐네.”
하나하나의 전력은 별 거 아냐. 단체로 합쳐봐도 쳐죽이는 건 어렵지 않아.
그렇지만 저 놈들은 죽어도 죽지 않는 놈들이란 말이지.
“영감.”
“말씀하시지요.”
“다들 알아서 살아남고 저거 지킬 수 있지?”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뒤 편에서 또 다시 새로운 목소리가 끼어 든다.
갑옷을 걸친 거구의 남성은 한 손에는 교회의 방패를,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두터운 메이스를 치켜 들고 있었다.
먼 과거 신화의 시대에 세상을 구원했던 성기사가 지녔던 것과 똑같이 생긴 물건을.
“제가 모두를 지킬 테니.”
“아. 그러면 안심이지. 전설의 성기사님.”
“그 분을 흉내낼 뿐인 인형입니다.”
“아니. 아니. 당장 본인이 자길 칭해도 된다고 했잖아? 너무 까탈스럽게 굴지 않는 게 좋아.”
검성은 여느 때처럼 투덜투덜거리면서 허리춤의 검을 향해 손을 가져다댔다.
그를 본 기사들은 자신에게 다가 올 충격을 대비하기 위해 방패를 치켜 들었지만.
그건 무의미했다.
“타인의 인정을 무시하는 일은 타인을 무시하는 일이 된단 말야.”
검이 휘둘러진 그 순간 검성의 앞에 있던 모든 것이 베여나갔으니까.
교황도. 기사들도. 문도. 벽도. 건물도. 그 너머의 하늘도.
모두 다.
“당신도 알고 있잖아?”
“알고는 있습니다만. 음. 아직 저는 그 이름을 댈 수 있을만큼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당분간은 인형으로 지내고 싶군요.”
“그런 식으로 살다간 제 명을 다 못 살걸.”
“그것이 낫습니다.”
“아. 진짜. 당신이랑은 안 맞는다니까.”
투덜거리면서도 계속해서 검을 휘두른 검성은 머리 위에 쏟아져야 할 잔해들을 가루로 만들었다.
겸사겸사 자꾸만 부활하려는 이들 또한 고기다짐으로 만들어주었고.
“그렇습니까? 제가 보기엔 두 분께선 꽤 잘 어울리는 듯 합니다만.”
다만 한 사람만큼은 그 폭풍 속에서도 태연했다.
다짐이 되어도 가루가 되어도 여전히 태연한 목소리를 내는 재앙은 웃으며 잔해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알른 백께 관심을 보이셨던 걸 보면 큰 남성이 취향이셨던 거 아닙니까?”
“좆같은 소리 하지 마. 노망난 정신병자새꺄. 이딴 원리원칙주의자랑 사귀고 싶겠냐?”
“…제가 원리를 따지는 건 사실입니다만 그 정도로 매도 받을 일은 아닌 듯 합니다만.”
“아. 미안. 그치만 상상해봤더니 소름이 돋아서.”
“옆에 그 분이 없는 게 다행이군요.”
교황의 뒤를 따라 기사들이 다시금 몸을 일으킨다.
루엘의 인형과 성직자들.
그리고 교회의 사람들.
선두에 선 검성이 무기를 치켜 든다.
“자. 여러분들. 최선을 다해 저를 막아주시기 바랍니다. 주신의 사도께서 제게 준비한 시련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