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
“던전에 들어가기로 하셨고 그 전에 실전 연습을 하고 싶단 소리시군요.”
‘네.’
“그래.”
내 설명을 들은 기사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허접 기사. 영광인 줄 알아.”
자신 있게 답을 한 기사는 목검을 하나 챙기고는 훈련장 안 쪽에 있는 대련장으로 향했다.
“일단은 한 번 공격을 해보시죠. 아가씨의 실력을 확인해봐야 하니까요.”
‘이 메이스로요?’
“이 무기로 때리라고?”
“네.”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허접기사. 미쳤어?”
번역 탓에 다소 말이 험악해졌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지금 기사는 방금 전 훈련을 할 때 입었던 천 옷을 그대로 입고 있다.
사실상 맨몸으로 봐도 무방한 상태다.
갑옷 하나 입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든 메이스로 기사를 후려치면 대참사가 벌어질 터.
여태 내가 깨부수던 나무인형처럼 기사의 머리가 박살 날 게 분명했다.
내가 당혹을 표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사는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가씨가 아무리 강하게 때려도 전 다치지 않으니까요. 한 번 휘둘러보시죠.”
기사는 자신만만하게 어깨를 피고는 자길 때리라고 이야기했다.
여러 실전을 거쳐보았을 기사가 메이스의 위험을 모를 리는 없을 테고.
진짜로 안 다칠 자신이 있어서 이렇게 말을 하는 건가.
게임을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기사가 멀쩡한 게 맞긴 하지.
백작 가문의 기사 정도면 소울 아카데미에서 레벨 50정도의 NPC고 지금 난 레벨 0의 허접이니까.
아무리 필사적으로 때려 봐야 체력이 안다는 게 정상이긴 한데.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사람을 앞에 두니 망설임이 생겼다.
목각인형을 때릴 때랑 사람을 때릴 때의 느낌은 전혀 다르구나.
사람에게 무기를 휘두른다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이 정도도 못하시면 곤란합니다. 던전에 들어가면 진짜 살아있는 몬스터들을 죽여야 하니까요.”
기사의 말에 결심을 굳혔다.
그래. 이 정도로 겁을 먹어선 곤란해.
소울 아카데미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보면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물론이고 사람을 적대해야 할 일도 생길 텐데 이런 걸로 망설일 순 없어.
애초에 진짜 잘못될 거 같으면 저런 소리는 하지도 않겠지.
기사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사람인데 자기가 아픈 건 싫을 거 아냐.
메이스를 치켜들었다.
요 며칠 간 지겹도록 해왔던 동작.
메이스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기술.
머리 깨부수기.
기사에게 향하는 메이스를 보며 나는 스스로 완벽하게 기술을 펼쳤다고 확신했다.
허나 그 확신은 메이스가 기사의 살갗에 닿는 순간 무너져 내렸다.
거대한 바위를 때린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아무리 필사적으로 내리치더라도 상처 하나 낼 수 없는 바위에 메이스를 휘두른 것만 같았다.
실제로 별 충격이 없는지 기사는 여전히 웃음을 짓고 있었고 오히려 아픈 것은 내 손이었다.
“거봐요. 아무 일 없죠?”
‘사람이 맞으신가요?’
“허접 기사. 너 종이 잘못된 거 아냐?”
“너무하시네요. 전 순수 인간입니다.”
이딴 게… 사람? 진짜로?
소울 아카데미 속의 기사는 다들 이런 사람들인건가?
그럼 그 기사들을 전두지휘하는 베네딕은 도대체 얼마나 강하다는 거야?!
…다음에 징그럽게 굴 때는 조금만 더 참아볼까.
“혼자서만 연습을 하시기에 걱정을 했는데 실력이 괜찮으시네요. 어지간한 병사보다도 메이스를 휘두르는 실력은 좋습니다.”
‘그런가요?’
“흐흥. 당연하지.”
확실히 숙련도 시스템을 알고 이를 이용하는 것과 평범하게 훈련을 하는 것은 효율이 다른가 보네. 기사가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면.
“그렇지만 아직 경험이 많지 않으셔서 그런가 공격에 망설임이 많군요.”
그건 어쩔 수 없다.
나는 현대를 살던 일반인에 불과한 걸. 흉기로 다른 사람을 해한 경험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잖아.
당연히 망설임이 있을 수밖에.
“계속 공격을 해보시죠. 익숙해 질 때까지. 단 이번에는 저도 공격을 할 테니 신경을 쓰셔야합니다.”
‘알겠어요’
“마음대로 해.”
나는 기사가 이끄는 대로 공격을 이어나갔다.
온 힘을 다해 휘두른 메이스는 적중할 때도 있고 빗나갈 때도 있었지만 기사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요리조리 피해 다니기는! 아 진짜 어떻게 한 방 제대로 먹일 수 없나?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 기사가 갑작스레 자신의 목검을 휘둘렀다.
공격을 본 순간 머리가 새하애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방패를 들어야 해.
방패를 움직여서 저걸 막아야 해.
그리 다짐을 하자마자 머릿속에 저 공격을 막아낼 방법이 떠올랐다.
단순히 방패로 공격을 막는 게 아니라 검로의 중간에 끼어들어 상대의 공격을 방해함과 동시에 위력을 줄이는.
“오오.”
공격을 내지른 기사마저 무심코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로 뛰어난 움직임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건 단순히 내 방패 숙련도가 올라서 생긴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달리기를 하면서 방패 숙련도가 쌓였다고는 해도 아직 높지 않을 테니까.
이런 대단한 움직임을 펼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아마도 이건 스킬의 영향이겠지.
방패계 스킬인 [철벽]이 이로운 효과를 주는 게 아닐까.
피해량을 15퍼센트 감소시켜 주던 스킬이 왜 이렇게 바뀐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것 말고는 추측이 가는 부분이 없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낫네요.”
‘그쵸?’
“하. 허접 기사. 날 뭘로 본 거야? 안목이 별론가 보네?”
“아직 여유로우신 것 같으니 좀 더 강하게 가겠습니다.”
네? 아니. 저기요?!
방금 도발한 거 내가 아니거든요?
메스가키 스킬이 제멋대로 번역해서 말한 거라니까?!
내 잘못 아냐! 그러니까 진정!…
윽!
재차 휘둘러진 검을 또 다시 방패로 막아 냈다.
생각을 할 틈은 없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직감을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검의 속도를 쫓아갈 수 없었다.
적당히!
좀!
하란 말야!
이건 대련이 아니라 괴롭힘이잖아!
너 솔직히 말해봐!
평소에 내가 메스가키 짓을 해서 짜증이 나 있었지!
그거 지금 풀고 있는 거지!
불평이 절로 생겨났지만 불만들은 입 밖으로 튀어나가지 못했다.
기사가 휘두르는 목검을 막아내는 걸로도 벅차서 목소리를 낼 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점점 더 기사가 휘두르는 검격이 매서워지던 중 나는 직감이 외치는 것을 놓쳐버렸다.
방패가 갈 곳을 잃어버리며 멈춰버렸고, 방해물이 없는 검은 경로를 따라 정직하게 날아들었다.
맞았다. 그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아버렸지만 충격은 오지 않았다.
슬며시 눈을 뜨자 나의 눈앞에 바로 멈춰버린 목검이 보였다.
“방패술에 재능이 있으시군요. 처음 방패를 다루어 보는 데 이 정도라면 갈고 닦으면 어느 수준에 이를지 짐작조차 되지 않습니다.”
기사는 분명 말로 나를 칭찬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달랐다.
나를 쳐다보는 그의 눈은 분명하게 날 질책하고 있었다.
“허나 마지막에 방어를 포기하고 눈을 감은 건 너무도 실망스럽습니다. 그건 아가씨가 할 수 있는 최악의 행위였습니다. 이게 실전이었다면 아가씨는 확실히 죽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흥. 어쩌라고.”
이건 분명 나의 잘못이 맞았기에 순순히 사과를 하려 했지만 메스가키 스킬은 다르게 말을 했다.
이런 순간에도 미안합니다.나 죄송합니다.는 못하는 거야?!
오히려 역정을 내는 내 모습에 기사의 미간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다시 한 번 해보죠. 오십시오.”
기사가 시키는 훈련은 일정한 강도를 유지했다.
그러니까 일정하게 빡셌다.
메이스를 휘두를 틈 같은 건 없었다.
방패를 움직이는 데에 집중하지 않으면 언제 검이 방패를 넘을지 모르는 상황이라 전신의 신경을 방패에 모아야 했다.
덕분에 방패 숙련도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지만 그걸 몸으로 체감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좀 더 방패를 잘 움직이게 되면 기사도 더 거세게 검을 휘둘렀거든.
점점 더 거세어져 가는 목검을 필사적으로 막다 보니 삼십 분이 지났을 무렵 나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체력의 한계가 온 것은 아니었다. 평소에 죽어라 달리기를 하던 것에 비하면 이 정도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를 지치게 만든 건 기사의 공격이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공격이 쉴 새 없이 이어지는데 데 그 중 하나라도 놓치면 그 검이 목 앞에 도달한다.
상대가 날 공격하지 않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검에 담긴 위협은 실시간으로 내 신경을 갉아먹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검에는 초짜인 나조차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한 살의가 담겨 있었으니까.
기사가 왜 이런 훈련을 반복하는 건지 대충은 안다.
아마 기사는 내가 공격에 익숙해지기를 바라는 거겠지.
어떤 공격이 오더라도 눈을 감지 않고 대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걸 거다.
그걸 어렴풋이 나마 추측하곤 있었지만 열 받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친구랑 딱밤 내기를 하다 졌는데 때릴까 말까 하는 장난을 삼십 분 동안 반복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열이 받을 수밖에 없잖아.
“벌써 포기하시는 겁니까?”
좋은 훈련이었다는 건 부정하지 않을게.
덕분에 방패를 다루는 실력이 많이 늘어난 건 사실이니까.
네가 공격하는 걸 보는 데에도 많이 익숙해졌고.
그렇지만 말야. 계속해서 당하기만 하다 보니까 한 방을 먹여주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고.
‘그러는 기사님이야 말로 힘드신가 보네요? 포기 같은 말이나 하고.’
“허접 기사. 힘들어서 그래? 힘들면 포기해도 되는데. 여자애보다 체력이 후달리는 허접이라면 말야~”
기사가 한 말을 정면에서 비웃어 주었더니 기사의 표정이 굳었다.
애초에 도발할 생각으로 말을 하니까 효과가 좋네.
평소에는 무슨 말을 들어도 꿈쩍 않던 녀석이 겨우 저 정도로 얼굴을 굳히다니.
“저는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만.”
‘그래요? 그럼 다시 하죠.’
“그럼 다시 해. 난 포기 안 했거든. 허접 기사.”
“마음대로 하시죠. 끝까지 어울려드리겠습니다.”
기사가 딱딱한 어투로 그리 단언을 한 순간 몸에 힘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너 정말로 화났구나? 그치? 열 받았지?
그렇지 않으면 메스가키 스킬이 발동할 리가 없잖아.
있는 거라고는 패널티 뿐인 스킬의 유일한 버프 효과. 상대가 화가 나면 날수록 스텟이 상승합니다.
스텟이 얼마나 상승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이게 고정 수치인지 아니면 퍼센테이지인지도 모른다.
난 메스가키라는 스킬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거든.
그렇지만 확실한 건 있다.
이 허접 기사를 계속 화나게 만들면 내 스텟이 점점 더 올라갈 테고 그럼이 허접 기사에게 한 방을 먹여 줄 확률이 더 늘어난다는 것.
신체의 스펙이 올라도 여전히 허접 기사와 나의 차이는 압도적이다.
신체 능력의 차이도. 전투 경험의 차이도.
그러니까 더욱 도발을 해야 한다.
이 허접 기사가 자신의 이성을 잃어버리게 만들어야 한다.
메스가키 스킬이 최대한의 효율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설마 내가 진심을 담아서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네.
역시 세상 일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거구나.
“허접 기사~ 설마 지금 자기 아가씨가 뭐라고 했다고 화난 거 아니지?”
“아닙니다.”
“허접♡ 주인한테 대드는 기사라니 기사 실격이네♡”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몸에 힘이 더욱 더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메스가키 스킬. 도발 효과가 장난 아닌데?